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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을 가다] 한국한의학연구원

과학기술이 곧 국가의 미래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람의 삶은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과학기술이 전제돼야만 더 좋은 성능의 휴대폰을 개발하고, 자동차도 만들 수 있다. 또한 우주도 가고, 유전자를 연구해 질병을 고칠 수도 있다.

2008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총괄했던 과학기술부가 폐지되고, 교육부과 합쳐져 교육과학기술부가 탄생했다. 하지만 교육과 과학기술 부처의 통합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과학기술 부문의 추동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파퓰러사이언스의 진단이다.

과거 과학기술부 산하에는 26개의 대표적인 이공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있었다. 지금 13개 연구기관은 기초과학을 다룬다는 이유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에, 나머지 13개 기관은 돈 버는 기술을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지식경제부 산하에 편재돼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이끌어 온 연구기관들은 이처럼 뿔뿔이 흩어져 주무부처의 변방에 머물고 있다. 파퓰러사이언스는 이처럼 위기국면에 처한 연구기관들의 확실한 자리매김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을 가다’라는 시리즈를 신설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연구기관의 연구 목표, 전략, 활동, 그리고 성과를 알려 과학기술 입국의 꿈과 취지를 되살리고자 한다. - 편집자 註

■ 신비의 베일을 벗어 던져라

수천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발전해 온 한의학은 우리나라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몇 안 되는 자원 중 하나다. 약재와 침술 등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치료법들은 이미 효능이 입증된 상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동반 성장해 온 서양의학에 비교한다면 아직도 신비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약재와 침술의 치료 효과는 인정될 수 있지만 이 같은 치료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하면 그저 신비로운 치료법의 하나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처럼 신비의 베일 속에 가려진 한의학을 과학으로 입증해 내는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 바로 한국한의학연구원이다.

현재 서구에서는 한의학을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으로 분류한다. 현대의학의 주류인 서양의학을 정통의학으로 간주하고, 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한의학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의학이 대체의학에 속하지 않는다. 그 만큼 국내에서는 주류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사실 서구에서도 한의학을 대체의학으로 분류하고 있기는 하지만 치료효과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다양한 범위의 치료 철학, 접근 방식이 기존 서양의학에서 해결하지 못한 질환에 상당한 치료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대체의학 시장 규모는 2,00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오는 2015년에는 2배가 넘는 4,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만일 우리나라가 이 중 10%만 확보해도 하나의 산업 단위가 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대체의학 시장, 그 중에서도 약재와 침술로 대표되는 전통의학 시장의 점유율이 미미하다는 것. 실제 중국은 이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12%를 차지하고 있다. 생약 등 천연물 약제를 발전시켜온 독일도 25%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시장 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와 같은 계열의 전통의학을 발전시켜 온 중국과 일본은 예외로 하더라도 전통의학과 무관한 독일의 강세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세계 전통의학 시장은 물론 대체의학 시장에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현대화, 과학화, 표준화, 그리고 산업화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동반 성장해 온 서양의학에 비해 아직도 신비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치료 효과가 인정되더라도 어떤 과정을 통해 치료가 이루어지는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하면 그저 신비로운 치료법의 하나로 치부될 수 밖에 없다.

한의학과 관련된 국내 유일의 연구기관인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한의학의 현대화, 과학화, 표준화, 그리고 산업화를 이뤄낸다는 목적으로 지난 1994년 설립됐다. 30여명의 미니 연구원으로 출발해 올해에는 인력만 201명, 그리고 한 해 예산이 300억 원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한의학연구원의 대표적 연구 분야는 이제마 프로젝트다. 중국, 일본과 차별화되는 우리 고유의 사상의학을 현대화ㆍ과학화ㆍ표준화시키는 것이다. 사상의학은 사람들을 태양인ㆍ태음인ㆍ소양인ㆍ소음인으로 분류하고, 이 같은 분류에 따라 각각의 체질에 맞는 맞춤 치료법을 적용한다는 게 기본 개념이다. 하지만 사상의학의 경우 철학적인 성격이 강해 각각의 체질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따라 한의학연구원은 각각의 사람에 대한 유전자 분석과 생체 특징 연구를 통해 체질을 분류, 과학적 검층체계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또한 4개 유형의 체질 분류에 추가적인 하위분류 체계를 두어 8개 또는 16개로 분류하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분류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사상의학에 기초한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침술 분야에서는 침구경락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침술의 경우 개인적인 경험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우수한 침술치료 기술을 보유한 한의사가 사망하고 나면 학문적으로 전수되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한의학연구원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침구치료 기술을 찾아내고, 이를 과학적으로 계승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약제의 효능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만성 난치성 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도 수행중이다.

현재 당뇨병, 면역질환, 골 관절 질환 등에 효능을 발휘하는 약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암 치료제로 알려진 미질초의 경우 기존 방식으로 약을 다려내는 것보다 저온추출법을 이용하는 것이 치료효과에서 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 같은 각종 연구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연구원이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 표준화도 그 중 하나. 서양의학과 달리 한의학은 약제나 처방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과학적인 효과 입증은 물론 한방 산업화에도 걸림돌이 돼왔다.

한의학은 약제나 처방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한의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술적 표준을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실제 침(針)의 경우만 해도 표준화된 규격이 없어 길이, 두께, 형태 등이 침구 제조회사마다 다르다. 또한 약제도 채취 시기, 토질 등에 따라 효능이 다르지만 성분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한의학연구원은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의 기술 표준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한의 기술 표준센터는 한의학의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 낸다는 목표 하에 내년부터 오는 2011년까지 191억 원을 들여 연면적 5,860㎡ 규모로 설립된다. 한의 기술 표준센터가 설립되면 한의학의 기술별 표준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한의 기술의 계량화 및 과학화에 나설 계획이다.

한의학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현대화, 과학화, 표준화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적 환경도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은 한의학 처방을 활용해 새로운 약제를 발굴해도 신약으로 분류돼 양방의 의사나 약사만이 이용할 수 있다. 정작 한의사는 이 같은 약제를 처방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

한의학연구원의 김기옥 원장은 “한의학에 대한 이 같은 규제는 산업화의 커다란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한의학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칸막이를 통한 기득권 유지를 골자로 하는 약사법은 개정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대덕=강재윤 기자 hama9806@sed.co.kr

[interview]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장

Q. 원장님의 이력이 독특한데요?

A. 경희대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석ㆍ박사를 취득했습니다. 대한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을 지냈으며,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한의원을 경영했습니다. 기공분야가 전문입니다. 지난 2000년에는 한의학연구원과 공동으로 ‘기(氣)의 의학적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경험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연구원 내부적으로는 한의학의 현대화, 과학화, 표준화를 위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풀어내고 싶습니다. 현재 전국에 있는 11개 한의대에는 국내 0.3% 이내의 우수한 인재들이 입학하고 있으며, 한의사의 평균 연령도 31.2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시장 포화와 여러 가지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만일 이들에게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한의학의 쇠퇴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Q. 한의학의 현대화, 과학화가 중요한 이유는?

A. 한의학에서는 어떤 천연물이나 약제가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는지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현대화ㆍ과학화시켜 서양의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해 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다른 국가의 과학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천연물 약제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면 우리는 이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빼앗기게 될 공산이 큽니다.

Q. 산업화는 어떻습니까.

A. 지금 국내에 사용되고 있는 의약품 대부분은 외국 제약사들이 연구개발한 것을 복제한 것입니다. 앞으로 FTA 타결 등을 통해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면 의약품 가격이 4배 이상 급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의학의 산업화는 우리가 가진 원천기술을 이용해 의약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수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한의학이 가진 강점이라면?

A. 우리 한의학의 경우 허준의 동의보감이 발행된 조선 중기에는 중의학을 압도할 만큼 체계적인 발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이 발간된 이후 중국, 일본에서 불법 해적판을 제작할 만큼 첨단 의학 서적이었습니다. 또한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은 우리 한의학에만 있는 고유의 것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의학이 따라오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사상의학을 발전시켜 세계화시킨다면 기존 서양의학의 치료법을 재편해야 할 만큼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봅니다.

Q. 그럼에도 한의학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A.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한의학이 계승ㆍ발전되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의사의 한 사람으로써 반성할 점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치료효과가 우수한 치료법에 대해서는 ‘비방’이라는 이유로 자기 혼자만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근래 들어 건강보험 참여에 미온적이었거나 서양의학에 대한 일종의 보호막으로써 각종 처방의 표준화를 꺼린 것도 장애물로 작용했습니다. 효능이 우수한 약제를 값싸게, 그리고 많이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지요.

Q. 독일이 전통의학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다소 의외인데요?

A. 독일이 이 시장에서 25%의 점유율을 갖게 된 것은 천연물 소재의 생약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은행잎에서 추출되는 혈액 순환제인 징코민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은행잎에서 추출하는 성분이 가장 우수하다고 합니다. 현재 독일은 한국의 은행잎을 수입해 세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고 있습니다. 반면 은행잎을 수출하는 한국은 독일로부터 징코민 성분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Q. 결국 투자가 문제인 것 같군요?

A. 중국의 경우 전통의학 연구개발비가 우리보다 2.3배 많습니다. 인력은 무려 40배나 많죠. 전통의학과 다소 거리가 있는 미국조차 대체의학에 매년 3,000억 원 이상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인력 및 예산 확대는 물론 한의학을 국가적 전략사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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