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식사랑은 동물과 곤충을 포함한 모든 자연계의 보편적 본능입니다. 펭귄이 대표적이죠. 16종의 펭귄 중 가장 몸집이 큰 황제펭귄의 암컷은 알을 낳은 후 바다로 나갑니다. 알을 낳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만큼 이를 보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암컷으로부터 알을 넘겨받은 수컷은 부화를 위해 두 달 동안 꼼짝하지 않습니다. 점점 야윌 수밖에 없죠. 알이 부화했는데도 암컷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는 식도 안쪽 벽에서 나오는 젖 같은 물질을 새끼에게 먹입니다. 수컷의 자식사랑인 것이죠.
더 극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산란을 하고 떠난 암컷을 대신해 온몸을 바쳐 새끼를 기르는 가시고기가 주인공입니다. 이놈은 새끼를 지키기 위해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해 결국 죽어갑니다. 아마도 이는 종(種)의 보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이겠지만 수컷의 장엄한 자식사랑을 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암컷의 자식사랑도 대단하죠. 그런데 수컷에게는 경제력을 구비해야 하는 숙명적 부담이 따릅니다. 제비갈매기를 예로 들어보죠. 제비갈매기는 북아메리카에서 무리를 지어 사는 바닷새입니다. 일부일처제를 따르며, 한 해의 이혼율은 20%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이혼의 사유가 바로 수컷이 가진 경제력입니다. 제비갈매기 암컷은 먹이를 가져다주는 수컷의 능력이 떨어지면 더 나은 수컷을 찾아 떠납니다.
이 같은 상황이 사람이라고 예외이겠습니까. 남성, 특히 가정을 가진 아빠들에게 경제력 부재나 박탈은 더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야기합니다. 실제 실연의 고통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다시 자살하지 않지만 경제적 고통 때문에 자살하려 했던 사람은 재차 자살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확산되면서 중산층과 서민 아빠들에게 구조조정의 공포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수출과 내수의 동시 부진으로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각 분야에서 실직, 해고, 감원의 칼바람이 거세질 것이라는 얘기죠. 한국 경제는 벌써부터 J(Jobless)의 공포로 얼어붙은 듯합니다. 최근 불어 닥친 J의 공포는 원인이 구조적이라는 점, 그리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합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이 경기후퇴를 의미하는 R(Recession)의 공포를 지나 디플레이션을 의미하는 D(Deflation)의 공포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디플레이션은 한번 발생하면 악순환이 반복되는데다 정책수단의 약발도 먹히지 않아 인플레이션보다 위험하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수요 감소→물가 하락→기업의 매출감소→부도 증가→실업 증가→가계 파산의 순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벤 버냉키 의장이 “디플레이션의 위험이 생기면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막겠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J의 공포로 비롯된 시대의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고통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금방 익숙해지거나 쉽게 견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분담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주가하락을 노려 선물을 매도하는 투자자, 대출금 회수로 기업 자금난을 가중시키는 은행, 그리고 환차익을 노려 달러를 풀지 않는 대기업의 행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인데, 지금은 모두가 함께 사는 방안을 생각할 때 입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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