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곧 국가의 미래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람의 삶은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과학기술이 전제돼야만 더 좋은 성능의 휴대폰을 개발하고, 자동차 만들 수 있다. 또한 우주도 가고, 유전자를 연구해 질병을 고칠 수도 있다.
2008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총괄했던 과학기술부가 폐지되고, 교육부과 합쳐져 교육과학기술부가 탄생했다. 하지만 교육과 과학기술 부처의 통합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과학기술 부문의 추동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파퓰러사이언스의 진단이다. 과거 과학기술부 산하에는 26개의 대표적인 이공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있었다. 지금 13개 연구기관은 기초과학을 다룬다는 이유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에, 나머지 13개 기관은 돈 버는 기술을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지식경제부 산하에 편재돼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이끌어 온 연구기관들은 이처럼 뿔뿔이 흩어져 주무부처의 변방에 머물고 있다. 파퓰러사이언스는 이처럼 위기국면에 처한 연구기관들의 확실한 자리매김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을 가다'라는 시리즈를 신설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연구기관의 연구 목표, 전략, 활동, 그리고 성과를 알려 과학기술 입국의 꿈과 취지를 되살리고자 한다. - 편집자 註
저탄소 녹색성장 기술개발의 첨병
정부는 지난 8월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핵심과제로 선포했으며, 9월에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전체 연구과제 중 7개가 모두 신재생에너지와 관련돼 있다. 이는 태양광, 풍력, 바이오연료 등으로 대표되는 그린에너지가 우리나라의 차세대 핵심 성장 동력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이자 7위의 소비국이다. 또한 에너지 자원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자원 빈국이다.
더욱이 국토 면적이 좁고, 일조량이나 바람의 질 등을 따져보면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자연자원이 풍부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기술 개발 및 산업화를 통한 해외 수출이 가능하며, 에너지 자원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는 에너지 믹스(Mix) 차원에서도 필요충분조건이 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에너지원은 석유를 중심으로 한 화석연료다. 최근의 경기침체로 원유가격이 40달러 밑으로 떨어졌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화석연료는 고갈의 위기를 피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시대가 도래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는데, 바로 이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는 기회가 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세계 시장을 주도한다면 지난 10여간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으로 각광 받았던 IT 분야만큼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해 이를 산업화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태양광, 풍력, 바이오연료 등으로 대표되는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은 향상시키고, 가격은 낮추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
태양광의 경우에는 염료감응형 태양전지 개발에 연구의 무게를 두고 있다. 현재 상용화된 실리콘 결정 태양전지의 경우 에너지 변환 효율이 11% 수준에 불과한데다 가격 역시 높기 때문이다.
염료감응형 태양전지의 경우 약 15%에 육박하는 에너지 변환 효율이 가능하며, 이론적으로는 28%까지 에너지 변환 효율이 가능하다. 1w당 태양전지 모듈 단가도 1,000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최근 연구가 시작된 양자점 태양전지의 경우 50% 수준의 에너지 변환 효율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는 전해질, 상대전극, 나노다공질 전극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염료는 식물의 엽록소처럼 햇빛을 받아들여 전기를 만들고, 나노다공질 전극은 만들어진 전기의 통로 구실을 한다.
양자점 태양전지는 양자점이라고 불리는 나노물질을 사용해서 태양전지를 만드는 꿈의 기술로 이론적으로는 74%까지 에너지 변환 효율이 가능하다.
풍력은 이미 산업화 단계로 넘어가 기업들이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있지만 풍력 발전기의 원천기술인 블레이드 설계와 해상용 풍력발전기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오연료의 경우 곡물을 이용하는 기술은 국내 실정에 적합하지 않다. 이 때문에 폐기되는 목재 찌꺼기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사실 바이오연료 분야는 처음부터 해외에서 산업화를 일궈내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곡물자원도 충분하지 못한 국내 현실에서 곡물을 이용한 바이오연료 생산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인도네시아 등에서 직접 고무나무를 재배한 후 여기에 바이오연료 플랜트를 결합하면 산업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고무나무 같이 기름성분이 많은 나무에서 1차적으로 바이오 디젤용 기름을 짜내고, 폐기물로 처리되는 나무 찌꺼기에 바이오매스 기술을 결합해 2차적으로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한다는 것.
이 같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함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게 바로 온실가스 처리 기술, 즉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기술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고효율 건식흡수제를 개발해 이산화탄소 포집 비용을 크게 낮추는 것은 물론 발전소나 제철소 굴뚝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에서 바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을 개발, 오는 2012년부터 산업화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은 건식, 습식 등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지만 1톤당 45달러의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를 15달러 수준으로 낮추는 연구가 핵심이 되고 있다.
이산화탄소 저장은 폐(廢)유전이나 폐(廢)가스전에 저장하는 기술과 함께 해저의 대수층에 저장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산화탄소 절감은 어느 나라도 피해갈 수 없는 현안이기 때문에 세계 수준의 원천기술을 확보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수소경제시대를 대비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미래의 청정에너지인 수소를 얼마나 싸게 생산할 수 있느냐, 그리고 수소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연료전지를 개발할 수 있느냐 여부가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현재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수소의 경우 천연가스를 이용한 증기개질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에 지나치게 고가며, 화석연료를 이용해야 한다는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고온 원자로에서 발생되는 열을 이용해 물을 분해, 수소를 생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고온 원자로의 경우 700℃ 내외의 열 공급이 가능해 일반 원자로의 300℃ 수준보다 높다. 하지만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약 1,000℃의 열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황과 요오드의 결합 및 분리를 반복하는 분젠반응을 통해 700℃ 내외의 열만으로 물을 분해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고온 원자로를 이용한 물 분해의 경우 2030년이면 산업화가 시작될 전망이다.
수소를 기반으로 하는 연료전지의 경우 단위면적 당 전력생산 크기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현재 1㎠ 당 0.6w 수준의 전력생산을 1w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가정에서 사용되는 연료전지의 경우는 2015년이면 산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수송용 연료전지는 2020년, 발전용 연료전지는 2030년을 전후해 산업화될 것으로 보고 이 같은 스케줄에 맞춰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interview 한문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
Q.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발표 이후 에너지 분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A. 에너지 분야의 연구는 국가 경제 및 산업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현재 신재생에너지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처리, 원자력, 핵융합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연구를 당장의 효율성으로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장기적인 전망을 전제로 차세대 성장 동력을 만들어간다는 관점에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온실가스 처리, 그리고 화석연료의 효율성 제고 등에 대한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Q. 태양전지의 경우 다른 연구기관들도 참여하고 있어 중복 연구 논란이 일지 않을까요?
A.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지난 30년간 이 분야의 연구를 지속해왔습니다. 현재는 3세대 태양전지인 염료감응형 태양전지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른 연구기관이 태양전지를 연구한다고 해도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기술간 경쟁도 필요하다는 것이죠. 최근 대부분의 연구에 융ㆍ복합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양한 접근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Q. 그렇다면 다른 연구기관과의 융ㆍ복합 연구도 추진하겠다는 것인가요?
A. 현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내부적으로는 연구 영역 사이의 담을 허물고 융ㆍ복합 연구가 가능하도록 조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연구기관과의 융ㆍ복합 연구인데,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대부분의 연구기관이 지금까지 수행해온 고유의 연구 영역이 있고, 복수의 서로 다른 연구기관들이 효율적인 융ㆍ복합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합니다.
특히 민간업체와의 융ㆍ복합 연구는 더욱 어렵습니다.
민간기업의 경우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뿐만 아니라 앞으로 추진하려는 연구조차 기업비밀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장벽이 제거돼야 활발한 융ㆍ복합 연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Q. 정부 조직개편 이후 지식경제부로 주무부처가 바뀌었는데?
A. 에너지 분야의 연구개발은 대부분 산업화와 직결돼 있으며, 저희 연구원 역시 과거부터 연구과제의 55% 이상을 산자부(현 지식경제부)로부터 받아 왔습니다. 이처럼 연구개발 결과물을 곧바로 산업화에 응용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됐다는 차원에서 보면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죠.
Q.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현재로서는 시장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는데?
A. 물론 국내 환경만 본다면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급속한 시장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중심으로 본다면 IT분야를 능가하는 성장 동력이 될 전망이며, 우리나라는 원천기술로 에너지를 수출하는 국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신재생에너지 연구는 2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화석연료에 집중된 에너지원을 다양화하는 것, 그리고 원천기술 수출을 통해 국부를 창출한다는 것이죠.
Q. 이산화탄소 포집ㆍ저장 기술에 대한 수요도 큰데, 이 역시 성장 동력으로 볼 수 있는지요?
A. 최근 환경과 에너지는 더욱 밀접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데, 어느 국가도 이를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또한 현재의 화석연료를 완전히 대체하는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화석연료의 사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동안에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기술이 필요한데,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이산화탄소 포집ㆍ저장 기술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원유가격이 올 초와 같은 고공행진을 지속했다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저유가 상태가 지속되고, 고갈에 대한 우려 역시 수면 아래로 잠복하면 관심 밖으로 밀려나죠. 당장의 저유가 현상에 숨을 돌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담=정구영 편집장
강재윤 기자 hama9806@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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