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는 좋지 않은 편이다. 언제 상용화될지 알 수 없는데다 막대한 투자가 요구되는 ‘돈 먹는 하마’라는 것.
하지만 2명의 캐나다 엔지니어가 개발하고 있는 자화표적핵융합(MTF) 방식은 저렴한데다 빠른 시일 내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에너지 위기를 구할 핵융합 발전의 기린아로 부상하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버너비에 있는 거번먼트 스트리트.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보네빌 플레이스의 좁은 아스팔트길을 올 라가다 보면 셰이드-오-매틱 블라인드 제조공장 및 도매상의 주차장이 보인다.
바로 그 건너편의 허름한 사무용 건물에서 모든 인류를 위한 무한에너지의 꿈이 자라고 있다. 초록색 사무용 건물의 지저분한 게시판 위에 는 흰 종이가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마치 중세의 고문기계 같은 기계가 그려져 있다.
이 기계는 금속제 막대기가 고슴도치처럼 둘 러쳐 있는 공 모양을 하고 있으며, 2개의 긴 실린더로 양분돼 있다. 크기는 하지만 웅장한 모습은 아니다. 흰 종이 오른쪽 하단에 축척을 표시하려 고 그려놓은 사람의 모습을 보면 이 기계의 높이 가 사람 키의 10배 정도임을 알 수 있다.
턱수염을 기른 47세의 프랑스계 캐나다인 미 셸 라베르지는 사모펀드에서 투자받은 200만 달러로 저렴하고 안전한 핵융합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다소 바보 같아 보이는 아이디어지만 그는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도 인정하다시피 핵융합 발전은 큰 대학이나 정부기관이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핵융합 발전은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이미지가 좋지 않은 발전 기술이기도 하다.
사기성이 농후해 보이고, 언제나 완성하려면 20년은 더 걸린다고 둘러대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아 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기술이란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라베르지는 몇몇 캐나다인들이 조그마한 사무용 건물에서 가장 어려운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미친 짓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화표적핵융합(MTF; magnetized target fusion)이라 고 불리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핵융합 발전 방식을 활용, 독특한 핵융합로를 개발하고 있다. MTF 방식은 자장 내에 갇힌 고온 이온화 기체인 플라즈마를 급속히 압축해 핵융합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비교적 저렴하고 측정 가능한 게 특징이다.
6명으로 구성된 그의 회사 제너럴 퓨전에 10년의 시간과 약간의 자 금을 준다면 저렴하고 안전한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해 보이겠다는 게 라베르지의 말이다. 만약 라베르지가 성공한다면 그에 따르는 대가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화학적 연소에서 생기는 부산물, 반감기가 긴 방사능 폐기물, 그리 고 체르노빌 사태 같은 재해의 위험성도 없는 저렴하고 무한한 에너지가 생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를 통해 이미 제너럴 퓨전에 자금을 지원한 마이크 브라운은 현재 또 다른 투자자를 찾고 있다.
벤처캐피털 회사 크라이샐릭스 에 너지의 창립자인 그는 “라베르지가 해낸다면 노벨상은 떼 논 당상”이라 고 말한다.
유리한 고지 점할 기술
과학자다운 용모를 점수로 따진다면 라베르지는 10점 중 4점 밖에 받지 못할 것이다. 그의 얼굴은 주름이 져 있다. 그리고 다소 유행에 뒤진, 철사로 만든 안경테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생각할 문제, 즉 연구 외에 다른 문제가 닥치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5~6 걸음마다 발을 헛디딘다.
사무용품이나 호텔 사용료, 그리고 인사관리에 들어가는 돈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 비용은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꼭 써야 하는 지출이다. 하 지만 제한된 자본으로 원대한 꿈을 이루려는 물리학자에게는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한마디로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라베르지는 물리학을 전공한 동업자 더그 리처드슨을 크레오 프로 덕트사에서 처음 만났다. 현재 코닥이 소유하고 있는 크레오 프로덕트 는 밴쿠버에 있는 이미징 기술 개발업체다. 이들은 이 회사에서 11년 동 안이나 열 프린터 헤드처럼 생활에 도움을 주는 정밀기기를 만들었다.
물론 라베르지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중년의 위기를 겪기 전 얘기지만. 그는 제너럴 퓨전의 작고 미래적으로 보이지도 않는 본사 창고로 파퓰러사이언스 객원기자인 조쉬 딘을 안내하면서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내가 지금 여기서 뭘 만들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저는 아주 저렴하게 프린팅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기계는 결국 우편함에 차고 넘칠 쓸모없는 우편물이나 마구 찍어내는데 쓰이겠더라고요. 그리고 그 기계에 들어가는 종이를 만드느라 산림이 베여져 나가고요. 그것은 한정된 지구의 자원을 정말 빠른 속도로 낭비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뭔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저는 핵융합 물리학 박사학위가 있습니다. 핵융합에 대해 알고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저는 핵융합 발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이 같은 생각으로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리 온건하게 말해도 성과가 의심스러운, 그 리고 무모한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기성찰을 거친 후 라베르지 는 크레오 프로덕트를 퇴사, 브리티시컬럼비아 해안에서 조금 떨어 진 섬에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핵융합 발전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라베르지는 4년 동안 여러 차례의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절반은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절반은 정부 보조금으로 이루어진 80만 달러를 투자한 끝에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할 기묘한 기계를 들고 나타났다.
그 기계는 수십 개의 코드가 연결된, 농구공만한 빛나는 철구(鐵 球)였다. 오래된 공상과학(SF)영화에서 피(被)실험자의 머리에 씌우 는 장치를 생각하면 거의 비슷하다. 코드는 24개의 축전기에 연결돼 있었고, 그 모든 것은 1950년대 쓰던 전함의 함교처럼 생긴 관제탑에 연결돼 있었다.
이 같은 모습은 얼핏 구식 기술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라베르지 아이디어의 핵심이었다. 철구는 현재 전시물로 쓰인다. 라베르지는 요즘도 투자자들 앞에 서 이 기계를 작동시킨다.
하지만 철구는 사실상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실제 지난 2006년 이 철구는 강력한 전자펄스로 일으킨 충격파를 통해 소량의 플라즈마를 빠르고 강하게 압축하면서 핵융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론 이것은 작은 규모의 핵융합이다. 기존의 자화표적핵융합 (MTF) 실험에서 플라즈마를 압축시키기 위해 매우 비싼 고출력 전기 시스템을 사용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라베르지는 공기압 램을 플라즈마 컨테이너의 외벽에 충돌시켜 충격파를 발생 시키는 발상을 해냈다. 바로 이것이 확연한 차이점이었다.
물론 라베르지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전기를 생산해 내려면 넘어 야 할 산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기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기계는 에너지를 만들지 못합니다. 100KJ(킬로줄)이나 되는 에너지를 투입했는데도 1NJ(나노줄)의 에너지밖에 산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플라즈마를 충돌시켜 고밀도로 만드는 기술의 장점을 입증하고 약간의 중성자를 얻어낸 성과는 있습니다. 저는 이 중 성자를 마케팅 중성자라고 부릅니다.”
중성자는 핵융합 반응의 명백한 징후다. 라베르지는 모든 핵융합 연구자들이 원하는 것, 즉 투입한 에너지보다 산출한 에너지가 많은 상태를 최종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아 직까지는 그 같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사실 투입 에너지보다 산출 에너지가 1.5배 정도 많다고 하더라도 목표를 이루었다고 볼 수 없다. 실용적인 전력원이 되려면 투입한 에너지의 10~25배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네바다 대학의 물리학 교수이자 과거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의 핵융합 연구부장이던 리처드 시몬은 “우리는 항성의 내부 같은 상태를 구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항성의 내부, 일례로 태양의 압축된 중심부는 고온·고밀도며, 4개의 수소 원자핵이 1개의 헬륨 원자핵으로 변하는 핵융합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같은 핵융합을 통해 열에너지가 발생한다.
한마디로 지구에서 인공적으로 핵융합을 하려면, 다시 말해 수소 동위원소를 연료로 쓰려면 온도를 1억5,000만℃로 끌어올린 다음 플라즈마를 압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당연히 엄청난 전기가 들어가야 하며, 엄청난 규모의 인프라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플라즈마를 압축시킬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플라즈마를 압축시킬 다른 방법, 바로 그것이 라베르지 핵융합 방식의 특징이다. 그는 자신의 방식을 이용하면 전기를 덜 쓰고, 시설 역시 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 만큼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 경쟁에서 유지 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핵융합로가 일단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이후로는 스스로 움직이게 된다. 핵융합로의 연료인 듀테륨과 트리튬은 각각 질량수가 2와 3인 수소 동위원소로 일명 중수소라고 불리는데, 이런 중수소는 풍부한데다 값도 싸다.
듀테륨은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는 수소 동위원소다. 이론적으로 바닷물 1ℓ는 가솔린 30ℓ에 해당하는 잠재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트리튬은 약한 방사능이 있으며, 반감기는 12년이다. 듀테륨보다 찾기는 좀 더 어렵지만 리튬에서 얻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캐나다는 세계 최대의 리튬 매장지다. 제너럴 퓨전에게는 일종의 행운인 셈. 라베르지는 전함의 함포만한 긴 금속 파이프에 에너지를 투입했는데, 이것이 바로 핵융합로에 쓰일 피스톤 하우징이다.
피스톤 하우징은 핵융합 발전소를 짓기 위한 수많은 관문 중 첫 번째 단계다. 제너럴 퓨전의 핵융합로는 언젠가 이 같은 피스톤 하우징을 200개 정도 장착하게 될 것이다. 피스톤 하우징은 1톤의 무게가 나가며, 그 속에는 증기로 작동되는 100kg짜리 피스톤이 들어 있다.
서보-제어(servo-control)를 사용해 100만분의 1초 단위로 정확하게 작동되는 이 피스톤은 여러 개가 동시에 움직여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충격파를 생성한다. 연료를 압축시킨 후 연소시키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것을 열핵 (thermonuclear) 디젤엔진이라고도 부른다.
아마 이 같은 말은 미래 의 대단한 마케팅 문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베르지는 피스톤 하우 징 주변을 걸어 다니며 그 속에 있는 실제 피스톤을 가리켰다. 피스톤은 30cm 두께에 레코드판 직경만한 굵기였다. 딘은 이 피스톤이 작동될 때 얼마만한 소음이 나는지 물어보았다.
엄청난 속도의 피스톤이 그만한 강도의 철에 부디 친다면 엄청난 소음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라베르지는 시범삼아 피스톤 한 개를 작동시켜 보겠다고 했다. 물론 최대 출력으로 작동시키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실제 압력의 100 분의 1 수준으로 작동거리의 3분의 1을 움직여 보겠다”며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으음, 전력이 없는 것인가” 하면서 두 개의 코드를 끌어 당겼다.
그 중 하나는 제초기를 연결할 때 쓰는 오렌지색 실내외 겸용 코드처럼 생겼다. 피스톤 하우징의 실린더에 압력이 들어가자 마치 어항에 쓰 는 공기 펌프에서 거품이 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5, 4, 3, 2, 1, 0” 하면서 라베르지는 재차 스위치를 눌렀다.
피스톤이 앞으로 전진 했다. 그 소리는 아이가 북을 두들기는 소리보다도 작았 다. 핵융합로의 시동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힘차게 작동하는 피스톤이 이 기계의 핵심입니다. 자동차를 아무리 뜯어봐도 초전도체 같은 것은 없습니다. 파이프, 피스톤, 튜브만 있을 뿐입니다.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자동차만큼이나 간단한 핵융합로를 만들고 싶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정부와 대학이 연합해 200억 달러나 들여 만드는 핵융합로를 우리는 단 돈 5,000만 달러에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차이점입니다.”
핵융합로의 연료인 듀테륨과 트리튬은 각각 질량수가 2와 3인 수소동위원소로 일명 중수소라고 불리는데, 이런 중수소는 풍부한데다 값도 싸다.
핵융합의 장구한 역사
핵융합이란 말은 다분히 미래 지향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핵융합의 역사는 문자 그대로 태양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됐다. 태양 은 핵융합을 통해 열에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두 개의 이온이 같은 속도 로 충돌해 둘 사이의 정전기적 반발력이 사라지면 두 이온은 결합해 무거운 원자가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열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지구상에서는 이 같은 핵융합을 인공적으로 실시한다. 여기서 생긴 열에너지를 열교환기로 보내 증기를 발생시키는 것. 그리고 화력발전소 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한다.
최초의 핵융합 실험은 1930년대 캠브리지에서 있었다. 하지만 그 후 핵융합 연구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냉전기이던 1950년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간 핵융합을 무기로 활용하려는 연구가 이어진 것.
실제 미국은 1952년 핵융합을 이용해 파괴적인 무기인 수소폭탄 을 만들었고, 그 첫 실험에서 태평양의 섬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평화 무드가 유지될 때의 핵융합 연구도 상당한 방해를 받았는데, 그것은 다음의 2가지 원인 때문이다.
첫 번째는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다. 라베르지와 리처드슨 같은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몇몇 핵융합 실패가 워낙 크게 보도 된 탓에 핵융합의 명성은 상처를 입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탠리 폰즈와 마틴 플레이쉬먼의 저온 핵융합 실험, 그리고 루시 탈 리아칸이 퍼듀 대학에서 실시했던 거품 핵융합 실험이다.
폰즈와 플레이쉬먼은 1986년 저온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핵융합을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로 고온을 가해줘 야 한다. 이 때문에 핵융합하면 고온 핵융합을 의미한다. 반면 그 같은 막대한 에너지 없이 일반적인 온도에서도 순간적으로 고온을 만들어 핵융합을 할 수 있다는 게 저온 핵융합의 개념이다.
하지만 폰즈와 플레이쉬먼은 실험장비의 이상으로 실험결과를 정확히 계측하지 못했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미국 에너지부는 그들 의 연구결과가 허위라고 발표했다. 2002년에는 탈리아칸이 극초음속 진동을 이용해 액체 솔벤트 내에 기포를 만들고 그 거품이 터지면 핵융합이 일어난다고 적은 논문 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결과도 신뢰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해 그는 대학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 같은 잇따른 실패로 핵융합의 인상은 나빠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돈이라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정부는 실현하는 데 수십 년이나 걸리는 아이디어에 돈을 쓰기 싫어한다. 예를 들어 1982년 미 의회는 20년 내에 핵융합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계획을 통과시켰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자화표적핵융합(MTF) 프로그램 을 이끌고 있는 글렌 워든은 미국 정부가 돈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는 “1980년대 미국은 핵융합 연구에서 세계 최고의 자 리를 달리고 있었다”며 “하지만 현재 핵융합 연구에 쓰는 예산은 유 럽의 3분의 1, 그리고 일본의 2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최근 전 세계에서는 여러 개의 거대한 핵융합 실험이 진행 중이 다. 이 실험들의 차이점은 플라즈마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제너럴 퓨전은 핵융합의 일반적 모델이 아닌 좀 특이한 수단을 사용 한다.
핵융합의 일반적 모델이란 세계 최대의 실험시설에서 실시되고 있는 방식이다. 이는 또한 모든 핵융합 실험의 근본이며 국제열핵융합 실험로(ITER)의 기반이기도 하다. ITER은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한국, 유럽연합 등 7개국 정 부가 공동으로 재정을 대고 있다.
올해부터 남프랑스에 건설이 시작된 다. 대부분의 핵융합 실험과 마찬가로 ITER은 ‘토카막’이라고 불리는 플라즈마 챔버를 사용한다. 토카막이란 자력 코일이 부착된 도넛 형태의 챔버라는 뜻의 러시아어 약자를 음역한 것이다.
토카막은 정말 거대한 도넛처럼 생겼는데, 핵융합을 할 때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둬두는 역 할을 한다. 작동 메커니즘은 거대한 초전도 자석이 플라즈마를 챔버 벽에서 떼어놓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 전파와 양자 빔을 사용해 플라즈마를 쏘아 보내 핵융합 반응을 촉발하는 것이다. 핵융합로의 설계방식, 그리고 크기와 자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ITER과 제너럴 퓨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용화에 걸리는 시간이다.
라베르지가 장난삼아 ‘토카막 마피아’라고 부르는 플라즈마 물리학계의 통념에 따르면 토카막 방식의 핵융합 발전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0~40년이 걸린다. 하지만 라베르지와 리처드슨은 “지금까지 핵융합 발전을 위한 연구에 30~40년이 소요됐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는 앞으로 50년이 더 걸려야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위기는 그 때까지 기다려줄 여 유가 없다. 라베르지는 이렇게 예언한다. “앞으로 10년 내에 곤란한 상황이 닥칠 겁니다. 일이 꼬여버리는 거죠. 화석연료 수요에 비해 공급 이 딸리면 그 부족분을 보충할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야 합니다. 빨리 찾으면 재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생산에 뭔가 혁신적인 돌파구가 없는 한 새로운 에너지를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민간 기업이 그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 ITER이 그 돌파구를 빨리 제공해 줄 것 같지는 않다. ITER 의 실험은 엄청나게 많이 연기됐으며, 적어도 2018년까지는 가동될 것 같지 않다.
계산이 정확하다면 그 후 언젠가는 300~500초마다 5 억W의 전기를 핵융합을 통해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핵융합에 들인 에너지의 10배 규모다. 하지만 ITER은 시범 적인 실험에 불과하다. 상용 핵융합 발전소 건립이라는 목표를 달성 하려면 적어도 20년 이상 더 걸릴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물론 제너럴 퓨전 이외에도 다른 방법의 핵융합을 모색하는 곳 은 많다. 예를 들어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자화표적핵융합 (MTF)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워든은 제너럴 퓨전과 비슷한 모델 에 매달려 있다.
그는 맥주 캔만 한 컨테이너에 플라즈마를 채운 후 전극을 사용해 캔을 찌그러뜨려 플라즈마를 응축시키는 실험을 하 고 있다.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과학자들은 국가점화시설(NIF) 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세계 최대의 레이저를 사 용, 유리 속에 갇힌 플라즈마를 고속으로 쏘아 보내는 것이다.
또한 핵융합 발전을 하려는 민간 기업에 제너럴 퓨전만 있는 것 도 아니다. 지난 2007년 5월 며칠 동안 트라이 알파라는 회사가 양 자-붕소 핵융합(proton-boron fusion)을 시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캘리포니아 어빈 대학의 주목받는 물리학자 노먼 로스토커가 참여하고, 4,000만 달러의 벤처자금이 투입된다는 소식으로 핵융합이 재차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 이후 이 회사는 철저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라베르지는 양자-붕소 핵융합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행하려면 온도를 더 올려야 한다. 이 때문에 토카막 반응 에 쓰이는 것 같은 초전도 자석을 사용해 원하는 온도를 얻을 것이 다.
하지만 라베르지는 양자-붕소 핵융합의 경우 자신의 방식에 비 해 심각한 이론적 결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전에도 자주 하던 말이지만 양자-붕 소 핵융합은 걷지도 못하는 아이한테 뛰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회의에 참석해 물리학자들한테 물어봐도 그들 역시 ‘그것은 걷지도 못하는데 날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회사의 야망이 너무 커보이나요? 아마 그들 회사의 야망이 더 그럴 것입니다.”
“핵융합 발전이 없다면 우리의 에너지 상황은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라베르지는 말한다. 10년 내에 곤란한 상황이 닥칠 것이란 얘기다. 그는 “화석연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리면 그 부족분을 보충할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려운 물리학 문제
마이크 브라운은 “제너럴 퓨전의 핵융합로 연구가 다소 부진한 모습 을 보이는 것은 해결해야 할 물리학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다. 그의 벤처캐피털 회사 크라이샐릭스 에너지는 아직 미숙한 단계 인 제너럴 퓨전을 이만큼이라도 뒷받침해준 회사다.
브라운의 사모펀드는 수년 동안 대체 에너지에 집중적으로 투자 됐다. 그는 완벽한 연료전기 개발에 기여한 캐나다 회사 발라드의 첫 투자자였다. 그리고 현재 69세인 그는 돈보다는 에너지 위기에 처한 지구를 핵융합 발전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이 연구를 돕고 있다.
가장 훌륭한 비즈니스맨으로서 은퇴할 시기가 된 브라운은 오히려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다. 그는 라베르지야 말로 공학과 물리학을 모두 겸비한, 흔치않은 재능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특히 라베르지는 한 때 내리막길을 묘 기를 부리며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다운힐 스케이트보더이자 캐나다 국가대표 행글라이더 팀의 일원이기도 했다.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유럽은 지금 ITER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 요. 자화표적핵융합(MTF)은 무시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중에는 누구 하나 MTF를 무시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것을 알고 나면 이 일을 하는 보람이 나지요.”
과학자로서의 경력 대부분을 미국의 핵융합 연구 프로그램, 특히 자화표적핵융합(MTF)에 쏟아 부은 로널드 커크패트릭은 제너럴 퓨전의 계획을 검토하는 몇 안 되는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이 핵융합로가 지금 바로 작동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앞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이론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기술적 과제는 엄청나다”고 말한다. 그 중에는 플라즈마와 납-리튬 내부 간에 불안정성이 생길 가능성이 포함된다. 납-리튬은 플라즈마를 냉각시켜 핵융합이 발생하는 온도까지 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이 때 문에 커크패트릭은 “라베르지의 핵융합 발전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면서 “하지만 얼마나 위험한지도 투자자들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의 연구부장이던 리처드 시몬은 제 너럴 퓨전의 계획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자화표적핵융합(MTF) 자체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MTF는 작은 규모와 적은 인원이 수행할 수 있는 접근 방식입니다. 그 점이야 말로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부가 돈을 대는 방식에 비할 수 없는 민간기 업 특유의 효율성도 겸비했습니다.”
라베르지는 다음 단계의 연구를 위해 1,000만 달러가 필요한 상태인 데, 그 중 700만 달러는 이미 확보했다. 그는 이를 통해 값싸게 만든 24 개의 피스톤으로 액체 납-리튬이 가득한 철구에 충격을 주는 연구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의 팀은 충격파 및 피스톤 동조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그 같은 연구에는 2년이 걸린다.
그 이후 5,000만 달러의 자금이 유입되면 실험용 핵융합로를 건설할 것이다. 2012년 말이 되면 순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인데, 이것은 ITER보다 6년이나 빠르다. 라베르지는 “그 시점에 순이익을 얻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면서 “성공한다면 엄청난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 수순은 첫 번째 상용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 거기에는 2억 ~5억 달러가 들것이다. 하지만 순이익만 발생하면 돈은 자동으로 굴러 들어올 것이다.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ITER에서 에너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답이 안 나오는 일입니다. 물론 늦더라도 작동은 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갑니다. 똑같은 전기를 생산하는데 우리는 5억 달러면 되지만 그쪽은 500억 달러나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전기가 나오는 것도 우리는 6년 내인데 그쪽은 2035년까지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신문의 헤드라인
파퓰러사이언스 객원기자인 딘의 일행이 제너럴 퓨전을 방문한 날 오 후. 더그 리처드슨은 딘 일행을 사무실 뒤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는 쓰레기가 뒤덮인 숲을 지나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로 갔다.
거기에서 그는 휘발유 가격이 적힌 신문의 헤드라인을 가리키며 말 했다. “언제나 뉴스가 똑같아요. 유가와 기후변화에 대한 것뿐이지요. 하지만 혁신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발명은 자원 보존에 도움이 될 겁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리처드슨은 누가 선물해준 기후변화 머그컵을 보여주었다. 그 컵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마치 그린란드의 빙원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할 때처럼 여러 장소가 물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뉴욕, 런던, 파리, 밴쿠버, 아마존 정글이 물속으로 잠긴다. 라베르지는 회사의 웹사이트를 갱신하고 있고, 팀의 플라즈마 전문가인 젊은 대학원생 스티븐 하워드는 현재 그 성능을 알아보기 위 해 시험 중인 플라즈마 주입기의 설계를 손보고 있다.
리처드슨은 에 너지 수요에 관한 차트를 계속 보여주었다. 또한 에너지 수요 충당을 위해 현재 건설하고 있거나 건설 중인 프로젝트의 기술도 보여주었 다. 그는 현재 세계의 전력 수요는 하루 4,000GW(기가와트)라고 말했다.
1GW는 1,000MW인데, 2030년에는 하루 7,000GW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버틸 수 없게 된다. 제너럴 퓨전이 그 부족분을 메울 수 있을까.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자화표적핵융합(MTF)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글렌 워든은 거기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아이디어는 타당하지만 실현은 어려운 일이다.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그는 이렇게 말한다.
“1910년대의 어떤 사람이 보잉 747기를 만든다고 쳐 봅시다. 제작 계획이 다 있어도 극히 곤란한 일입니다. 그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원도 없고, 일반인들은 제트엔진 이 뭔지도 모를 겁니다. 일이 막히게 되겠지요. 핵융합 발전소를 짓 는 것은 보잉 747기를 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리처드슨은 워든이 딘에게 해 준 말은 몰랐지만 보잉 747기의 사례를 전혀 다른 각도로 얘기했다. 나무와 종이로 비행기를 만들던 시 대에서 보잉 747기가 나올 때까지는 불과 65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베르지 역시 핵분열 개념이 실증돼 그것으로 발전을 하기까지 고작 1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것도 1940년대의 일이었다. 그 때와 지금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돈이다. 리처드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회사가 새로운 세균이나 조류를 사용해 역청암을 먹고 석유를 토해내게 하는 방식을 제안한다면 어떨까요? 지금 당 장은 돈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우리가 하는 것 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지요.”
실험용 핵융합로를 만들 수 있는데도 돈이 없어 손가락만 빠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리고 방 안에 들어가 더욱 비참하고 실의에 빠진 과학자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는 것도 비참하다. 과학자들은 어찌 보면 이상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구겨진 카키색 작업복을 입고 복합 상업지구 창고에 앉아 코드에 연결된 피스톤을 주무르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커크패트릭이 말했듯이 제너럴 퓨전은 가장 가능성 있는 핵융합로 설계를 제안한 상태다. 라베르지는 말한다.
“사람들, 특히 정치가와 갑부들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너럴 퓨전, 아니 라베르지는 실패할까. 물론 돈이 바닥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 알지 못하던 새로운 물리법칙 때문에 좌절할 수도 있다. 브라운은 그런 물리법칙이 있다면 찾아내야 한다고 웃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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