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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역이용하는 바이러스 킬러

HIV 바이러스의 뛰어난 돌연변이 능력 역이용해 에이즈 등 난치병 치료

지속적인 돌연변이를 통해 어떤 치료제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바이러스를 상상해보라.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뛰어난 돌연변이를 통해 생존하는 바이러스의 변신 능력은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변신 능력이 뛰어난 바이러스와 직접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역이용해야 할 때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속도를 더욱 촉진시키면 그 바이러스는 너무 빠른 유전자 변형 속도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죽게 된다.

영화 속에서는 돌연변이를 촉진시키는 기술로 치명적인 슈퍼 세균무기를 만들어 내지만 현실에서는 아주 강력한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들어내는 연구에 활용된다. 워싱턴 대학의 생물학자 로버트 스미스는 “이 같은 전략은 기존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역이용해 바이러스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여러 대학의 연구소에서는 이 같은 역이용 전략을 활용해 C형 간염 바이러스와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을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연구도 그 중 하나.

특히 이 연구는 다수의 제약회사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진행되고 있다. 다른 바이러스보다 유전자 변형 속도가 빠른 HIV 바이러스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3,300만 명이 감염돼 있으며, 이들은 치료제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제약회사 코로니스 파마슈티컬은 HIV 돌연변이 가속 치료제 연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곧 인체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KP-1461’로 알려진 이 치료제는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집는 전략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HIV 바이러스는 건강한 세포에 침입했을 때 자신의 유전 정보를 이중나선형 DNA로 바꾼다. 그러면 감염된 세포는 HIV 바이러스의 DNA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오히려 HIV 바이러스의 DNA를 복제해 더 많은 HIV 바이러스를 생산해낸다.

기존 방식의 치료제들은 이 같은 HIV 바이러스의 복제·생산과정을 일시적으로 혼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IV 바이러스는 돌연변이 능력을 발휘해 생존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KP-1461은 오히려 HIV 바이러스의 유전자 복제과정을 가속화시켜 바이러스가 자멸하도록 만든다. 비결은 KP-1461의 분자가 HIV 바이러스의 분자 생체 단위체로 위장하는 것.

즉 HIV 바이러스가 복제될 때 HIV 바이러스의 유전자 코드에 KP- 1461의 분자가 위장 잠입하게 된다. 그러면 HIV 바이러스는 복제과정에서 수많은 오류를 저지르게 되고, HIV 바이러스 DNA의 대량생산을 담당해야할 숙주세포 점령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HIV 바이러스는 숙주세포 점령을 포함해 생존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DNA를 보유하지 못함에 따라 죽게 된다. 물론 과학자들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의 기본 전제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슈퍼 세균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하지만 미네소타 대학의 바이러스 학자인 루이스 맨스키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의 경우 보통 미생물 자신에게 해로우며, 외부에는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

또한 바이러스가 특정 약물에 내성을 가지려면 10~20번이 아니라 약 100번 이상의 자기복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국 약물에 대한 내성을 갖기 이전에 바이러스를 쓰러뜨리는 것이 열쇠다.

하지만 언제 바이러스를 죽게 할지 결정하는 것은 아직까지 어려운 문제다. 맨스키는 HIV 바이러스가 단 한 번의 자기복제를 한 후 자멸토록 하는 치료제를 실험 중이지만 인체실험을 하려면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또 지난해 여름 진행된 코로니스 파마슈티컬의 KP- 1461 임상실험에서는 실험실에서 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회사의 임상개발 담당 부사장인 제프 파킨스는 올 하반기로 예정된 임상실험을 위해 연구자들이 더욱 효과적인 약물투여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한다.

계획대로라면 조만간 보다 쉽게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역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스 대학의 생물공학자 마이클 딤은 연구자들이 더 효과적인 혼합물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수학 공식을 만들어냈다.

세포 내에서 바이러스 유전자가 뒤섞이는 횟수 등 몇 가지 변수만 입력하면 그의 방정식을 통해 안전하게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 최소한의 돌연변이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이 속도에서 바이러스는 DNA 오류를 복구하거나 약물을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을 바꾸지 못하고 사멸하게 된다.

딤은 “바이러스가 다시 돌아와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잘만 활용하게 된다면 인플루엔자, 사스 등 많은 질병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실제 코로니스 파마슈티컬의 파킨슨 부사장은 KP-1461이 HIV 바이러스를 박멸시키지 못할지라도 에이즈 치료제 연구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의 바이러스 학자인 새티시 필라이는 “이 연구가 단지 새로운 항바이러스 약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에서 멈춘다고 해도 선택의 여지가 거의 남지 않은 환자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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