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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정지 환자 살리는 저체온 치료법

일반인들은 심장정지를 일으킨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게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한고비 넘겼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심장정지를 일으켰다가 다시 심장이 뛰게 된 환자의 90%는 결국 죽고 만다. 살아남은 환자의 경우도 80%는 영구적인 뇌손상을 입는다.

하지만 필라델피아의 두 의사는 최근 심장정지 환자의 뇌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저체온 치료법이다.

저체온 치료법의 핵심은 심장이 다시 뛰기 전에 환자의 체온을 낮추는 것이다. 이는 세포의 반응을 늦춰 심장이 다시 뛸 때 장기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6월 22일 오후 3시. 46세의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응급실 직원이던 팸 바코의 심장이 멎었다. 그녀는 근무 교대를 앞두고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리고는 머리를 책상에 떨어뜨린 채 숨을 쉬지 못했다.

바코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근처에 있던 동료가 소리를 질렀다. “직원이 쓰러졌어요!” 몇 분 후 10여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바코를 둘러쌌다. 그들은 전기충격식 심장소생기로 소생을 시도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두 번이나 더 전기충격을 가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이탈사인 스피커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삐, 삐, 삐 하고 흘러나왔다. TV 연속극에서라면 누구나 이 상황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실에서는 다르다.

심장정지를 일으켰다가 다시 심장이 뛰게 된 환자 중 90%는 결국 죽고 만다. 살아남은 사람이라도 80%는 영구적인 뇌손상을 입는다. 심장정지를 일으킨 것이 몇 분에 불과하더라도 뇌 등 산소가 필요한 인체 장기는 큰 손상을 입게 되는 것.

바코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혈압은 위험하리만치 낮았다. 그리고 충분한 산소를 빨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가 호흡 튜브를 달았다. 후송이 가능할 만큼 안정을 찾자 바코는 이웃에 있는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8층의 심폐소생과학센터로 보내졌다.

간호사 제이미 월터는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녀는 바코에게 진정제를 놓아 안정시킨 후 추위에 떨지 않도록 마취시키는 또 다른 약품을 투여했다.

환자의 정맥에 1.6~4.4℃의 식염수를 주사하고, 환자의 다리와 몸통을 차가운 물이 든 버블 랩 같은 포장재로 감쌌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바코의 체온은 32.7℃가 됐다.

이는 의사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저체온 상태였다. 그녀는 이 상태로 24시간 동안 있었다. 바코는 운이 좋았다. 다행히도 그녀가 쓰러진 곳이 펜실베이니아 심폐소생과학센터 근처였기 때문이다.

심폐소생과학센터의 랜스 베커, 벤저민 아벨라 두 의사는 바코 같이 심장정지를 일으킨 환자에게는 저체온 치료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고문같이 보이지만 이 같은 치료법을 써야 살아날 확률이 높아지고 뇌손상 역시 최소화 된다는 것.

사실 심장과 뇌 조직을 직접 파괴하는 것 은 심장정지 자체가 아니다. 실제로는 지나치게 빨리 공급된 산소가 범인이다. 심장이 재차 뛰기 시작하면 산소가 다시 공급되는 데, 이 때 환자의 신체가 차갑지 않을 경우 산소가 세포 붕괴와 장기 손상을 초래한다.

저체온 치료법이라고 불리는 이 치료법은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실시된 2건의 임상실험에서 전기 충격을 받은 지 4시간 이내에 저체온 치료법을 시술받은 환자는 20%나 생존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1시간이나 의학적으로 ‘죽은’ 상태의 환자들이었는데도 말 이다. 저체온 치료법을 5년이나 사용한 피츠버그 대학 의대에서 최근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이 치료법이 특정 환자 집단의 생존 확률을 두 배나 높여준다고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치료법에 대해 들어 본 적도 없다. 또한 이 같은 치료법을 실시하는 의사도 극소수다. 저체온 치료법의 핵심인 ‘통제된 저체온’ 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행하는 것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의사들은 특수한 치료계획 안을 개발 및 습득해야 한다. 또한 특수 장비 도 사야하고, 병원 내 다양한 부서의 인원에게 훈련을 시켜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투입해서 실시하는 저체온 치료법은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이 치료법은 조금만 실수해도 큰일이 난다. 환자의 체온을 조금만 더 낮추었다가는 심장이 다시 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저체온 치료법의 열렬한 신봉자인 펜실베이니아 대학 의사들도 이 치료법이 표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더욱 완성도 높은 치료법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이들은 쥐와 돼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 하면서 심장이 다시 뛰기 전에 체온을 낮추는 치료법의 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얼마 후면 기계를 사용, 이 치료법을 인체에 실험할 예정이다.

이 기계는 응급처치 기술자들이 환자의 정 맥에 약품을 주입, 환자의 체온을 낮추는 장비다. 베커와 아벨라는 매년 병원 밖에서 심장정지를 일으키는 16만6,000명의 환자 중 적어도 15%를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 저체온 상태로 마취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저체온 치료법의 메커니즘

베커는 펜실베이니아 심폐소생과학센터의 디렉터다. TV에 나오는 키가 작고 하얀 코트를 입은 수사관 캐릭터인 그레고리 하우스 같지만 보다 친근한 인물이다. 1980년대 초반 시카고에서 레지던트 생 활을 할 때 그는 응급실 근무, 그리고 그곳의 환자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는 치료 자체보다는 환자의 증상을 통해 그 원인 을 추론해내는 과정에 더욱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시카고의 마이클 리스 병원에서 경력을 쌓은 베커는 기존의 심장정지 환자 관련 통계수치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심장마비는 혈액이 심장으로 들어오지 못할 때 발생한다. 반면 심장정지는 심장이 갑자기 멎어버리는 상태로서 심장마비에 비해 훨씬 덜 발생한다. 그는 18%의 환자가 살아남는다고 배웠지만 의구심이 들었다.

응급실에서 근무해 본 경험에 의하면 그 통계수치는 분명 사실과 달 랐다는 것. 그래서 그는 현장 사례에 대한 병원과 구급대원 등 의료 활동 종사자의 보고서 3,000건 이상에 나타난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그가 이전에 봤던 통계수치는 실제보다 10배나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시카고에서 심장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1.8%에 불과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 통계수치 18%는 환자가 보다 신속히 병원에 도착해 의료진으로부터 심폐 기능 소생술을 시술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실시된 연구에서 나온 것이었다.

3년 후 뉴욕시에서 실시된 같은 주제의 연구에서 환자의 생존율은 베커가 살펴본 것과 비슷한 1.4%에 불과했다. 하지만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는데도 죽는 이유는 뭘까. 이 의문은 베커가 1990년대 초반 조교수로 강의를 시작할 때까지도 그를 괴롭혔다.

과학자들은 심장이 산소가 풍부한 피를 공급받지 못하면 세포가 죽어가기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심장이 다시 뛰는 경우 세포는 활기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실험을 해본 결과 정반대의 사실이 드러났다는 게 베커의 말이다.

베커는 세포에 한 시간 동안 산소를 공급 하지 않고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다음 세포에 산소를 3시간 동안 공급시켰다. 처음 산소가 모자라던 상황에서 손상된 세포는 4%에 불과했지만 산소가 다시 공급되자 무려 73% 의 세포가 타격을 입었다.

그는 비로소 세포를 파괴하는 것이 산소의 급격한 재순환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2년간 실험을 더 한 끝에 그에 대한 핵심적 원리를 알 수 있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기관은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든다.

이 과정은 매우 조심스럽다. 잘못된 시기에 산소원자에서 전자를 빼거나 더하게 되면 산소원자는 자유라디칼(free radical)이 돼 세 포를 파괴하고 DNA에 돌연변이를 초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원자에서는 스핀의 방향이 반대인 2개의 전자쌍을 만들어 안정된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자유라디칼은 짝을 짓지 않은 활성 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고, 매우 큰 반응성을 가지며, 수명이 짧다. 물론 세포는 이 같은 위험한 연쇄반응을 막는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산소가 없으면 그 체계는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 산소가 다시 들어오면 미토콘드리아는 대량의 자유라디칼 을 만들어내 세포를 파괴한다. 이렇게 파괴된 세포는 죽어가기 시작하고, 면역체계는 이에 맞춰 상태를 더욱 악화 시키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다른 인체 장기 보다 산소를 많이 소비하는 심장과 뇌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베커는 또 다른 놀라운 발견도 해냈다.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베커도 세포를 37℃의 배양기에 두었다.







하지만 그가 몇 시 간 동안 세포를 관찰하지 않았을 때 세포가 어 떤 이유에서인지 약간 냉각됐다. 온도가 낮아지자 미토콘드리아와 면역체계가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포가 죽어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것이다.

바코를 담당하고 있는 심장의사 조너선 콤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체온 치료법은 일견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길게 잡으면 지난 1950년대부터 의사들은 심장정지를 일으킨 환자의 체온을 낮추는 것 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이론화시켰다. 하지만 베커의 연구는 저체온 치료법이 세포 단위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를 처음으로 설명해 주었다.

베커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어요. 세포 단위에서 볼 수 있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야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는 발견한 내용을 발표한 후 1999년까지 쥐와 돼지에 대해 실험을 했다. 동물실험 결과는 세포실험 결과와 완벽히 일치했다.



2002년에는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 의사들 이 최초의 인체연구 사례를 발표했는데, 이 치료법을 쓰면 다른 치료법을 썼을 때 죽을 환자 중 5분의 1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베커는 2003년까지 시카고의 환자들에게 이 치료법을 사용했다.

2005년에는 그와 아벨라가 미국심장협회를 설득, 협회 지침에 저체온 치료법을 끼워 넣는데 성공했다. 오늘날 뉴욕, 마이애미, 보스턴, 시애틀의 앰뷸런스는 심장정지 환자의 경우 저체온 치료법을 시술할 수 있는 병원으로만 데려간다. 저체온 치료법이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은 것이다.

저체온 치료법의 문제점

하지만 미국심장협회의 승인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저체온 치료법이 인정받는 치료법이 됐다고 해서 곧바로 널리 쓰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벨라가 지난 2006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병원 응급실과 심장의사들 중 26%만이 심장정지를 일으킨 환자에게 저체온 치료법을 사용한다.

미국심장협회 지침 에는 의사들에게 저체온 치료법을 사용하도 록 권하고 있지만 저체온 치료법을 가장 잘 실행하는 방법은 나와 있지 않다. 게다가 미국심장협회는 저체온 치료법을 극히 일부 환자, 즉 병원 밖에서 쓰러진 환자 에게만 시술토록 권하고 있다.

입원 중에 심장정지를 일으킨 환자의 경우 몸 상태가 워 낙 나빠 저체온 치료법을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치료법을 쓰는 의사 는 소수에 불과하다. 실제 바코를 담당하고 있는 심장 의사 조너선 콤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체온 치료법은 일견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 만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그는 베커, 아벨라와 함께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저체온 치료법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환자의 심장이 일정시간 이상 정지 상태로 있을 경우 그런 사람에게도 저체온 치료법이 효과가 있는가?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는 최대 시간을 1시간으로 보고 있다. 그 이상 심장정지 상태가 오래되면 뇌손상을 피하기가 곤란하다. 심장 소생 후 환자가 깨어나 멀쩡한 상태라면 그런 사람도 다시 진정시켜서 저체온 치료법을 실시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과다한 진정제 투여로 또 다른 위험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한다. 현재 이 병원의 임상연구부장 인 아벨라는 이렇게 말한다. “확실한 과학적 지식을 갖춰 해답이 나와 있다면 그대로 이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저체온 치료법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대학병원마다 제각각 독자적인 저체온 치료법의 세부 치료계획안을 만들어왔다.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조차도 1년에 이 치료법을 쓰는 환자는 25명뿐이다.

바코를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서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으로 이송할 때 응급실 근무 의사는 즉시 심장치료실에 전화를 걸어 간호사들이 저체온 치료법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 하도록 했다. 전화를 받은 심장치료실에서는 돌발 상황 발생에 대비, 간호사로 하여금 밤새도록 바코를 지키게 했다.

그밖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저체온 치료법 초기 단계에서 바코의 심장은 충분한 강도로 뛰지 못했다. 간호사는 그녀에게 혈압 조절제를 투여하고 몸에서 염분을 낮추었다.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하면 폐에 물이 찰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체온이 30℃ 이하로 떨어지면 심장이 즉시 멎어버릴수도 있다. 베커와 아벨라는 현재 저체온 치료법을 실시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연구를 통해 시정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무엇인지 찾는 중이다.

여러 가지 변수가 보다 분명해지고 치료계획안이 확립된 다면 병원 측에서도 저체온 치료법을 수용하기가 쉬워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심장이 다시 뛰기 전에 저체온 치료법을 실시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러려면 치료법을 더욱 정밀하게 시술 하고 치료법에 대한 더욱 큰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의사나 응급의료 기술자가 심장이 멈춰 버린 사람에 대해 저체온 치료법을 시술할 때까지 준비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좀 곤란 하지 않은가.

환자의 체온 낮추는 기계

1999년 5월 20일. 당시 29세이던 안나 바겐홀름은 세계 최북단 도시 중 하나인 노르웨이의 나르빅에서 친구와 함께 스키를 타고 있었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각. 그녀는 협곡을 따라나있는 길을 가던 중 협곡 아래의 강으로 머리부터 추락했다.

그녀의 몸은 강 위의 얼음 사이로 떨어졌다. 다행히 그녀는 얼음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숨을 쉴 수 있었다. 친구들이 물에 빠진 그녀를 발견했지만 꺼낼 수 없었다. 바겐홀름은 차디찬 물속에서 10분, 20분, 30분을 버텼다.

40분이 넘게 지나갔을 때 사지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그녀는 물속에 완전히 빠져 들어갔고 심장은 정지했다. 오후 7시 40분. 구조대가 도착해 얼 음 사이에서 그녀를 끄집어냈다. 체온은 14.3℃ 였다. 구조대는 호흡 튜브를 장착시키고 계속 심폐기능 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녀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지만 심폐기능 소생술을 계속 시도한 덕택에 장기에 최소한의 산소가 보급됐다. 1시간 동안 헬리콥터를 타고 간 끝에 그녀는 트롬쇠 대학병원에 당도했다.

여기서 그녀는 인 공심폐기에 연결돼 체온을 다시 회복하면서 인공적으로 호흡과 심박이 이루어졌다. 오후 10시경 그녀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체온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의사들은 3일간 진정제를 투여한 후 점차적으로 진정제를 줄여 나갔다. 결국 그녀는 눈을 떴다. 그녀는 살아났고 의식을 회복했다. 1시간 이상 산소가 공급되지 않았지만 뇌손상은 없었다.

4개월간의 재활치료를 받은 후 그녀는 직장에 돌아왔다. 베커는 의학저널 란셋 2000년도 2월호에서 바겐홀름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때는 마침 베커가 저체온 치료법을 열심히 연구하던 때였다.

그는 바겐홀름이 오랫동안 산소 없이도 살아남았다는데 놀랐다. 하지만 이 사례에는 분명한 변수가 있었다. 바겐홀름은 심장이 다시 뛰기 전 이미 저체온 상태였던 것이다. 베커는 “이는 저체온 치료법을 적절히 사용 하면 엄청난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실제 베커와 아벨라가 2007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심장이 정지된 쥐를 소생시키기 전에 체온을 낮추면 살아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고 한다. 이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다. 몇 분간의 산소 부족으로 인해 생긴 세포 손상도 일단 저체온으로 만들어놓고 심장을 소생시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체온을 빨리 낮출수록 다시 산소를 공급할 때 죽는 세포의 수도 적다. 박사 후 연구자인 공학자 조시 램프의 도움을 얻은 베커와 아벨라는 정맥을 통해 환자의 신체에 얼음물 형태의 식염수를 흐르게 하는 기계를 설계했다.

아벨라는 “이 식염수는 녹기 시작 한 눈 같은 슬러시, 또는 술과 레몬즙의 칵테일 인 마가리타 같은 형태”라고 말했다. 이 기계는 조작에 맞춰 슬러시, 또는 마가리타 형태의 식염수를 만든 다음 이것을 사용해 환자의 체온을 2시간 내에 32.7℃까지 낮춘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8시간이나 걸린다.

현재 시제품을 사용해 돼지에게 실시하고 있는 실험이 잘 돼 간다면 베커와 램프는 이 기계를 심장정지 환자에 대한 임상실험에 투입하기 위한 FDA의 승인을 요청할 것이다. 또한 램프에 따르면 이 장비를 휴대 가능한 크기로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는 “꿈은 이루어지게 마련”이라면서 “이 기계는 앰뷸런스에 탑재돼 응급의료 기술자가 사용하게 될 것”이 라고 말했다.

흥미롭지만 평범한 진실

다시 심장치료실로 돌아가 보자. 바코는 24시 간 동안의 저체온 상태를 거친 후 다시 체온이 회복됐다. 냉각용 포장재와 차가운 식염수는 모두 제거됐다. 간호사인 다나 보워는 생체징후를 살폈다.

특히 8시간의 시술과정 가운데 환자가 체온으로 인한 쇼크 증세, 즉 알 수 없는 이유로 혈압이 급격히 저하되는 증세를 보이는지 살폈다. 바코의 체온이 37℃로 돌아오자 보워는 호흡 튜브를 제거하고 마취제와 진정제 투여를 중단했다.

심전도를 통해 살펴본 환자의 심박 리듬은 불규칙했다. 의료진은 환자의 심장이 멎어버리는 사태에 대비해 가족들에게 심장 이식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아직 환자의 뇌 상태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바코는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호흡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호흡 튜브를 끼웠다. 바코는 며칠 동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왔다 갔다 했다. 심지어 호흡 튜브를 떼어 내려고도 했다.

의사들은 그녀의 행동을 제지해야 했다. 결국 바코는 몇 시간씩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됐다. 처음 그녀는 자식들에게 말을 했지만 다음날에는 말한 내용을 잊어버렸다. 증세가 호전되면서 영구적인 뇌손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들은 환자에게서 호흡 튜브와 심장소생기를 제거했다. 그녀는 3주후 퇴원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서서히 알게 됐다. 바코는 자신이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쓰러졌더라면 그녀는 분명 죽었을 것이다. 바코는 “욕실이 라던가, 그 밖에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아벨라는 더 많은 의사들이 저체온 치료법 을 알게 되면 심장정지 환자들의 생존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과거 의사들은 심장정지를 일으켜 의학적으로 사망한지 1시간 이상 지난 환자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판단해 진료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벨라는 이렇게 말한다. “저체온 치료법은 생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고, 생존의 희망도 높이고 있습니다. 물론 죽은 사람은 확실히 죽은 것이지만 심장이 정지된 후에도 뇌와 심장, 그리고 다른 조직에서 수많은 생물학적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심장이 멎는다고 이들 조직이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흥미롭고 대단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진실입니다.”

아벨라는 이렇게 말한다. “저체온 치료법은 생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고, 생존의 희망도 높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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