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스페인의 산업기술체험관, 예술과 만나다

산업기술체험관 운용의 기본 목적은 산업기술문화 진흥이다. 하지만 21세기 융합의 시대에서 산업기술체험관은 산업기술·문화 예술·교육의 허브라는 사회적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여기에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현실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그렇다. 스페인의 발렌시아에 있는 ‘예술과 과학도시(CAC)’가 대표적 사례다. CAC는 산업기술체험관인 프린시페 펠리페 과학박물관을 중심으로 오페라하우스, 아쿠아리움, 아이맥스관 등을 2km에 걸쳐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방식으로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한 곳에서 산업기술과 문화예술, 교육, 오락, 레저를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발렌시아는 물론 스페인을 대표하는 랜드 마크가 된 것. 이에 힘입어 프린시페 펠리페는 매년 270만 명이 찾는 세계적 산업기술체험관으로 부상했다.

특히 CAC는 모든 건물과 주변 환경을 예술작품 수준으로 설계, 발렌시아 최고의 관광명소로 떠오르며 지난해에만 무려 2억 440만 유로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에 녹아든 산업기술

‘꺅~꺅~’.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귀신이 라도 본 듯 단체로 비명을 질러댄다. 하지만 머지않아 비명은 쾌활한 웃음소리로 바뀐 다.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마치 이를 알고 있었다는 듯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 앞에 있는 무언가에 빠져 친구들과 웃고 떠들기 바쁘다.

언뜻 놀이동산의 주말 풍경처럼 보이는 이곳은 지난 2000년 11월 스페인 발렌시아에 개관한 프린시페 펠리페 과학박물관이다. 4개 층 4만2,000㎡에 이르는 전시장 어느 곳을 가든 이처럼 즐거움에 가득 찬 비명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왜 이곳이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 기술체험관으로 지목받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실제 프린시페 펠리페는 ‘만지지 않고 느끼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는 것을 금지한다(Forbidden not to touch, not to feel, not to think)는 3금 원칙에 따라 120개 주제, 2,500여종의 전시물 대부분이 체감형 전시물로 구성돼 있다.

우주비행사가 돼 국제우주정거장(ISS)으 로 떠나는 전 과정을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는 우주왕복선 시뮬레이터와 영화 매트릭스의 360° 촬영기법을 직접 찍어보는 매트릭스 촬영장은 관람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대표적 전시물이다.

또한 생활용품에 숨겨진 기술적 원리를 체감하는 안락한 삶 전시장, 담배·술·의약품·마약 등의 제조과정과 오남용의 폐해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약물중독 전시장도 항상 인파로 북적인다.

홍보 책임자인 루시아 마르티네즈는 “체험은 가능한 흥미로워야 하지만 이 체험이 산업기술에 대한 창의적 사고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3금 원칙의 지향점”이라며 “체험 이 생각으로 연계돼야 산업기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도 자연스럽게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개관 이후 8년간 총 2,200만 명, 지난해에만 무려 280만 명이 프린시페 펠리페를 찾아 산업기술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75년 전통에 빛나는 시카고 과학산업관의 연평균 관람객이 200만 명임을 감안할 때 실로 놀라운 결실이다.







그런데 이 같은 눈부신 성공이 체험형 전시물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마르티네즈는 그 해답은 산업기술체험관 밖에 있다며 2층의 야외 테라스를 지목했다. 실제 테라스에 나서면 ‘예술과 과학도시(CAC)’의 그림 같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프린시페 펠리페가 CAC의 일원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마르티네즈는 “CAC는 다수의 문화, 예술, 전시공간을 한 장소에 융합시킨 발렌시아 내의 또 다른 도시”라며 “CAC 전체가 발렌시아의 랜드 마크로 부상하면서 프린시페 펠리페의 성 공을 이끄는 근간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투리아 강의 기적



CAC는 1990년대 초 발렌시아가 이곳을 스페인을 선도하는 미래 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한 도시혁신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한 곳에서 산업기술, 과학, 예술, 교육, 오락, 레저를 모두 즐길 수 있는 복합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게 프로젝트의 핵심.

현재 CAC는 프린시페 펠리페를 정중앙에 놓고 아이맥스영화관 겸 천문관인 ‘헤미 스페릭’, 오페라하우스인 ‘레이나 소피아 예술궁전’, 아쿠아리움인 ‘오셔노그라픽’, 주차장 겸 야외정원인 ‘움브르콜로’, 그리고 다목적 컨벤션센터인 ‘아고라(올해 11월 준공 예정)’ 등 5개 건물이 좌우 2km에 걸쳐 포진해 있다.

산업기술을 몸체로 하고 예술문화 공간들이 날개가 돼 비상하고 있는 형상이다. 특히 각 건물들과 주변 조경은 현대 건축 의 거장으로 불리는 발렌시아 출신의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 트라바와 마드리드 출신의 펠릭스 칸델라가 맡아 CAC 전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환상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BMW, 아우디, 벤츠 등 세계적 자동차 기업들 대부분이 한번 이상 CAC를 배경으로 신 모델의 화보촬영을 했으며 GE, 다우케미컬 등 유명 기업들의 CF 및 카탈로그 촬영 섭외 요청도 줄을 잇고 있을 정도다.

최근 스페인의 한 시장조사기관이 실시 한 설문조사에서는 스페인 국민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장소 1위로 CAC가 꼽히기도 했다. CAC의 총괄 운영책임자인 조르제 벨라는 “CAC의 융합 효과가 본격화된 2003년 이후 CAC를 찾은 국내외 방문객이 7,500만 명을 상회한다”며 “CAC는 이제 발렌시아를 넘어 스페인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고 강조했다.

사실 CAC가 들어선 투리아 강 유역은 원래 발렌시아 최대의 황무지였다. 강물은 말라 바닥을 드러냈고 주변에는 집한 채, 건물 하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밀려드는 관람객을 맞아들이기 위해 호텔, 상가, 빌딩들이 주변에 빼곡히 들어서며 CAC의 명칭에 걸맞은 신도시가 형성됐다.

땅값도 발렌시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CAC가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투리아강의 기적’을 일으킨 셈이다. 이 같은 CAC의 비상이 프린시페 펠리페 의 성장에 기폭제가 됐음은 물론이다. 마르티네즈도 “산업기술체험관 관람객 중 다수가 원래는 아쿠아리움이나 천문관 손님들”이라며 “CAC를 구성하는 각 건물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상호간 관람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막대한 관광수입 유발

CAC가 전 세계 산업기술체험관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산업기술계 전문가들은 프린시페 펠리페를 축으로 한 CAC가 도시의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산업 기술체험관의 신(新) 모델을 확립했다는 것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실제 발렌시아는 CAC 건립 이전까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이은 스페인 제3의 도시에 불과했다. 시내 중심가에 100여년 이상 된 건물이 즐비하고 18세기 네오클래식 양식의 투우장을 보유하고 있다고는 해도 별 달리 내세울 것도, 주목받을 것도 없는 평범한 도시였던 것.

하지만 지금 발렌시아는 지난 1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일군 도시로 인정받고 있다. 도시의 이미지는 미래 지향적으로 바뀌었으며, 지명도 또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위협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프린시페 펠리페를 중심으로 한 CAC의 힘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대단한 수준이다. CAC 건설 과정에서 4만여 개가 넘는 신규 일자리의 창출과 고용유지가 이루어졌다.

또한 CAC 주변에서만 지난 5년간 5,000 여개 이상의 신규 주소가 만들어지는 등 주변지역의 개발도 활발히 진행돼 지역경제가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 국내외 관광객들의 방문까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글로벌 경제 한파가 무색할 정도다.

총괄 운영책임자인 벨라는 “CAC의 자체 조사결과 지난해에만 CAC로 인해 관광객들이 발렌시아에서 지출한 돈이 2억440만 유로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숙박, 요식, 교통, 레저산업의 수입을 망라한 것이지만 발렌시아 지역경제의 조력자로서 CAC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의 경 우 산업기술체험관의 운용은 지역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며 “프린시페 펠리페를 축으로 한 CAC는 산업기술체험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도시들에게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페인 발렌시아 =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