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터넷은 전화망에 버금가는 세계적 정보기반이 됐다. 하지만 호스트 컴퓨터도 없고, 이를 관리하는 공식적인 조직도 없다. 그럼에도 인터넷 서비스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해저 케이블, 접속장비 등 인프라를 점검하고 수리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수심 1.6km 밑에 깔려 있는 총연장 80만km의 해저 케이블은 현재 인터넷 연결의 90%를 책임지고 있다. 만일 해저 케이블이 절단되거나 망가진다면 베를린이나 두바이 등 세계 각지에서 인터넷 대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지난 5년간 존 레니는 북대서양의 험난한 파도와 싸우며 네티즌들이 편하게 이메일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웨이브 센티널호의 수석 엔지니어인 그는 193cm의 키에 57살 먹은 친절한 스코틀랜드인이다. 웨이브 센티널은 영국의 수중시설 설치및 점검 회사인 글로벌 마린 시스템즈가 운영하는 여러 척의 선박 중 하나. 여러 지역의 바다를 다니면서 원격조종로봇으로 물 속 깊은 곳에 부설돼 있는 해저 케이블을 수리한다.
광섬유가 들어있는 소방호스 굵기의 해저 케이블은 바다 속 어디에나 뻗어 있으며, 빛의 속도로 대륙 간 전화나 인터넷을 연결해준다. 하지만 해저 케이블은 잘 망가진다. 그물이나 닻에 걸려 절단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아일랜드 해역이나 북해, 북대서양에서 해저 케이블이 절단되면 레니가 출동해 연결 해야 한다.
얼마 전 레니와 그의 동료들은 영국 남부의 콘월 해안으로부터 24km 떨어진 해역에서 12일을 보냈다. 수심 75m 밑에 깔려있는, 영국과 아일랜드를 잇는 해저 케이블의 끊어진 곳을 찾기 위해서다.
레니와 그의 동료들은 1일 2교대로 근무하며 중량 6톤, 가격 1,000만 달러짜리 원격조종로봇 비스트를 조종해 바위투성이 해저를 탐사했다. 비스트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근육질로 변신한 달착륙선처럼 생겼다. 1.6km의 수심에서도 활동하는 비스트는 캐터필러를 사용해 해저를 돌아다닌다. 또한 추진기를 사용하면 시속 3노트(5.6km)로 해저의 계곡 사이를 헤집고 다닐 수도 있다.
6명으로 이루어진 레니의 팀은 조이스틱으로 비스트를 조종하면서 소나와 비디오카메라, 금속 탐지기 등을 사용해 망가진 해저케이블을 찾아낸다. 하지만 바다 밑에서 해저 케이블을 뽑아내는 것은 야구장갑을 끼고 눈보라 속에서 실 한 가닥을 빼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특히 바닷물의 흐름이 강해 비스트가 해저 케이블 위에 정확히 머무르기도 어렵다. 해저의 가시거리는 0m에 가깝다. 해저 케이블을 간신히 찾아내도 길고 어려운 여러가지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레니에 따르면 흐릿한 동영상만을 보고 해저 케이블의 절단 부위를 신속 정확하게 찾아내 수면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에 문제가 생긴 것은 이것에 저인망이 걸리자 어부가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레니는 잘린 부위를 비스트로 찾아내 붙잡은 다음 잘린 부분을 깔끔하게 다듬어 수면으로 꺼내왔다. 그리고는 선박 위에서 해저 케이블의 수리 및 X레이 검사를 실시한 후 다시 바다 속으로 내려 보냈다. 레니는 해저 케이블을 고칠 때 마치 부러진 뼈를 고치는 의사처럼 모든 것을 제대로 연결하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해저 케이블을 고쳐도 축하할 시간은 없습니다. 해저 케이블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서 일을 빨리 해달라고 엄청 재촉하거든요. 물론 빨리 못 고치면 수입도 줄어들겠지만.” 사실 해저 케이블이 망가져도 네티즌들은 눈치 못 채는 경우가 많다. 기껏해야 유튜브 클립을 다운로드 받는 시간이 나노초 단위로 길어지는 정도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그 정도만으로도 해저 케이블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해저 케이블은 엄청나게 많은 곳을 이어주고 있다. 네트워크 지도를 보면 소형 그랜드 피아노의 내부를 보는 것 같다. 피아노 줄처럼 무수히 많은 해저 케이블이 바다 속에서 뻗어 나와 네티즌들이 다양한 사이트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중 몇 개의 해저 케이블이 끊어지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사고가 몇 번 있었다. 지난해 12월 19일. 지중해의 해저 케이블 3개가 끊어지자 중동 전역은 물론 동남아시아 일부지역의 인터넷에까지 문제가 생겼다. 이집트의 경우 네트워크의 최대 80%가 기능 마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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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 현황
해저 케이블이 많이 들어오는 나라일수록
인터넷 트래픽 많고 서비스 역시 빨라
해저 케이블이 많이 들어오는 나라일수록 인터넷 트래픽이 많고 서비스 역시 빠르다. 다시 말해 인터넷 트래픽이 많은 곳은 해저 케이블이 많이 깔린 북미, 북유럽, 그리고 아시아 일부 지역 사이라는 얘기다. 반면 서아프리카에는 해저 케이블이 하나뿐이다. 이 지도에 해저 케이블의 경로가 나타나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각 지역별 대역폭과 데이터 용량, 그리고 대형 해저 케이블이 들어오는 곳이 나와 있다.
해저 케이블을 수리해주지 않는다면 인터넷은 조금씩 느려지다가 언젠가는 끊길 것이다. 우선 사용할 수 있는 해저 케이블 수가 줄어들어 트래픽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면 특정 지역의 서비스에 장애가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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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와 기타 걸프지역 국가에서는 이메일과 웹페이지 접속에 혼란이 있었고, 멀리 말레이시아와 대만에서도 인터넷 서비스에 차질이 생겼다. 서구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인도의 수많은 외주기업들 역시 인터넷이 정상화될 때까지 구식 팩스를 사용해 보고서를 보내야 했다.
이 같은 사고는 올 1월과 2월에도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역에 따라 가정 및 회사의 인터넷 접속이 며칠씩 중단되곤 한다. 하지만 바로 이 같은 사고를 통해 인터넷의 숨겨진 문제점이 드러난다. 인터넷도 끊임없이 물리적인 유지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
레니와 같은 사람들이 해저 케이블을 수리해주지 않는다면 인터넷은 조금씩 느려지다가 언젠가는 끊길 것이다. 우선 사용할 수 있는 해저 케이블 수가 줄어들어 트래픽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면 중동에서처럼 특정 지역의 서비스 장애가 일어날 것이다.
결국 라인이 하나둘씩 끊기는 것과 비례해 미국의 산업은 외국의 외주기업들과 연락이 끊기게 되고, 국제 이메일 전송도 멈추며, 국제 금융거래 역시 위축될 것이다.
지구의 일부분에 한해서는 계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나라와 통신하는 수단으로서의 인터넷은 한낱 사무실에서나 볼 수 있는 근거리 통신망으로 위상이 축소될 것이다.
인터넷 트래픽 처리의 주역 Wi-Fi 핫스팟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무선인터넷 연결이 흔해지자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이 공기로 전달되는 것인 양 생각하게 됐다. 보통 사람들에게 인터넷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물어보면 우물쭈물 하다가 인공위성 또는 그 비슷한 것을 사용해 연결된다고 말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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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체 인터넷 트래픽 중 인공위성이 처리하는 비중은 10%도 안 된다. 인터넷
은 레니가 고치는 것과 같은 총연장 80만km의 해저 케이블을 통해 연결된다. 전 세계에는 이 같은 해저 케이블과 지상의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인터넷 교환소(IXP; Internet eXchange Point)가 수백개소나 있다. 이 인터넷 교환소를 거쳐 또다시 지상에 있는 총연장 수십만km의 케이블을 해야 비로소 각 가정과 회사에 인터넷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은 방대한 물리적 기반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복잡성과 취약성을 알고 나면 깜짝 놀랄 정도다.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주요 인프라 보호에 관한 자문을 해주는 폴 커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가 지구를 빙빙 돌아 전달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서 “전기통신 네트워크는 인터넷으로 진화했고, 인터넷이 깔린 곳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때 국가안보 및 본토안보협의회 위원이었으며, 현재는 굿 하버 컨설팅사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난해 여름 그루지야-러시아 전쟁 중 일어났던 것과 유사한 사이버 공격이 계속돼 신문과 방송의 머리기사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진 그루지야 정부와 언론 웹사이트에 대한 공격은 결국 그루지야 내부의 혼란을 유발하고 전쟁 대응을 지연시켜 러시아의 완승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인프라에 대한 물리적 공격은 더욱 파괴적이 될 것이다.
애틀랜타에 있는 정보보안회사 시큐어웍스의 위협정보부장인 돈 잭슨은 “인터넷에대한 물리적 공격이 일어날 가능성은 비교적적다”며 “하지만 일단 일어나면 그 파급력은 더욱 심하며 복구하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테러리스트들에게는 비교적 방어태세가 잘 갖춰져 있는 사이버 공격보다는 물리적 공격이 더욱 매력적인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금융생활, 상업 활동, 사회생활 대부분에서 인터넷에 대한 의존도가 큰 만큼이 같은 물리적 공격이 초래할 영향과 인터넷 접속 불능으로 생기는 피해는 막대할 것이다.
[사진 해설]
해외 사이트에는 어떻게 접속하나?
해저 케이블을 통해 데이터가 전달되기 때문에 더 긴 거리를 거치기는 하겠지만 컴퓨터만 있다면 런던, 뭄바이, 모나코에서도 똑같이 접속된다. 다만 런던에 있는 amazon.co.uk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미국 네트워크와 영국 네트워크가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는 곳을 거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터넷 교환소다. 뉴욕과 런던에 이 같은 인터넷 교환소가 있다.
1. IP주소 검색
파퓰러사이언스에 접속하기 위해 클릭하면 popsci.com의 IP주소를 검색하게 된다. IP주소는 0에서 255까지로 이루어진 숫자 4개의 조합인데, 인터넷이 연결된 기기라면 서버에서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무엇에든 다 달려있다. 이 숫자를 찾으려면 컴퓨터 운영체제(OS)에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도메인 이름변환이라는 과정을 거쳐여러 서버에 문의, popsci.com을 이루는 데이터가 저장된 서버의 IP주소를 찾아낸다. 모뎀은 이IP주소를 가지고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ISP)에 popsci.com으로 가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2. ISP가 연결 경로 찾아
ISP에는 비싸고 강력한 라우터와 컴퓨터가 있는데, 이것으로 네티즌과 파퓰러사이언스 IP주소를 잇는 수백 가지 길을 뚫게 된다. ISP는 보통 인터넷에 다중 연결을 시킨다. 데이터는 작은 패킷으로 분할되며, ISP의 라우터는 초당 수백만 건의 결정을 내려 각 패킷에 맞는 가장 저렴하고 신속한 경로를 찾게 된다.
3. 데이터 전달하는 네트워크
인터넷은 결국 수천 개의 작은 네트워크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단어다. 이 같은 작은 네트워크들이 있기 때문에 스위스 정부에서 오하이오 주립대학이나 파퓰러사이언스의 모회사인 보니어 코퍼레이션 사이에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보니어 코퍼레이션이 AT&T의 케이블과 라우터를 사용해 다른 곳과 인터넷 연결을 하려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ISP가 AT&T가 아닌 레벨3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통신회사를 이용하면 어떻게 될까. AT&T와 레벨3 커뮤니케이션 등의 통신회사들은 전국의 빌딩에 인터넷 교환용 케이블을 연결해 놓고 있는데, 이를 통해 타사의 네트워크에 데이터를 보낸다. 이것을 공공 동등접속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되지 않으면 인터넷은 잘 꾸며놓은 개인 정원의 모음일 뿐이다.
4. 모든 과정 0.5초도 안 걸려
popsci.com 연결 요청의 경우는 ISP의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파퓰러사이언스는 소프트웨어 업체인 아카마이를 이용해 동영상을 저장할 서버를 보관하고, 데이터의 이동거리를 줄이며, ISP에 들여야 할 시간과 돈을 절약한다. 하지만 어찌됐건 데이터는 아까와 비슷한 라우터와 케이블을 통해 네티즌에게 날아간다. 브라우저에서 이 데이터를 재조립해주면 그때서야 웹페이지가 보이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일어나는 데는 0.5초도 안 걸린다.
인터넷 사용을 가능케 해주는 복잡한 하드웨어와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에 대한 가이드 인터넷이 동영상이건 이메일이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빠르고 확실하게 전해주다 보니 이 같은 디지털 신호가 우리에게 도달하는 과정에는 별 관심이 없기 십상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주고받는 대부분의 정보는 케이블망을 통해 전달된다. 이 케이블망에는 해저 케이블을 비롯해 AT&T나 퀘스트커뮤니케이션스 같은 통신회사가 소유한 개별 네트워크, 그리고 스텔스커뮤니케이션즈, CRG웨스트 같은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ISP)가 운영하는 빌딩에 들어가고 나오는 케이블이 모두 포함된다. 라우터는 이 같은 네트워크를 달리는 데이터를 초당 수백만 비트씩 통제한다. 인터넷데이터센터(IDC)라는 건물에는 서버가 있는데, 이 서버는 영화나 웹사이트 등을 저장하고 구글 검색 같은 프로세스를 실행한다. 인터넷 속도는 데이터의 전송 거리와 데이터가 가는 경로에 있는 라우터 등의 숫자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인터넷 속도는 데이터가 가는 거리가 짧을수록 빨라진다. 이에 따라 ISP들은 가급적 빠른 네트워크, 그리고 인터넷 사용자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서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 제시된 인터넷 서비스 이용 경로에는 네티즌들이 클릭을 할 때마다 일어나는 과정이 묘사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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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인프라의 병목지점
올 1월과 2월 중동지역의 해저 케이블 3개가 48시간 사이에 차례차례 불통됐을 때 분석가들은 이를 고의적인 파괴공작으로 간주했다. 그렇게 본 이유는 이전에도 그 같은 상황과 똑같은 시나리오를 예상했었고, 이에 대처하는 훈련까지 했기 때문이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기술 및 대중정책 프로그램 부장이자 수석연구원인 제임스 루이스는 “냉전기간에는 해저 케이블의 보안에 큰 주의를 기울였다”고 말한다. 사실 해저 케이블은 미소 양 진영의 주요 군사 목표물이었다.
때문에 이것이 계획적으로 잘려나간다는 것은 곧 전면 전쟁이 있을 것이란 얘기나 다름 없었다. 1970년대 초반 미국은 소련의 해저 케이블을 성공리에 도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중동지역에서 벌어진 해저 케이블 절단은 고의가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19일 지중해의 해저 케이블 3개가 끊어진 것은 해저 지진활동에 의한 것이었고, 1월과 2월의 해저 케이블 절단 사고는 선박의 닻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에 따르면 올 1월과 2월의 해저 케이블 절단으로 미군 중부사령부와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간의 인터넷 연결이 방해를 받았다고 한다. 군사작전에서도 동영상과 데이터 전송은 매우 중요한데, 이 같은 데이터를 전송하려면 해저 케이블 같은 인터넷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신속히 인터넷 경로를 재설정해 이에 대처했지만 이 사고로 약점이 노출됐다. 중동지역은 인터넷 인프라가 빈약한 편이기 때문에 테러와 같은 물리적 공격에 취약하다. 이는 미국, 북유럽, 아시아 간의 인터넷 트래픽과 비교해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짧은, 그리고 몇 개 안되는 해저 케이블로 남유럽·오스트레일리아·중국· 일본 등과 인터넷 연결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해저 케이블이 하나만 끊어져도 바로 표시가 난다.
2개의 해저 케이블이 끊어지면 인터넷 이용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3개가
끊어졌는데도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ISP)들이 다른 곳으로 트래픽을 우회시키지 못하면 거의 재앙에 가까운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아시아 해안의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것. 사실 중동지역만이 인터넷 인프라의 병목구간은 아니다. 지난 2006년 12월 지진으로 남지나해의 루손 해협에서 대만과 필리핀을 잇던 해저 케이블이 끊어지자 이 지역의 전기통신 능력이 90%나 사라져 버렸다. 기본적인 서비스는 하루 이틀 만에 복구됐지만 해저 케이블의 수리에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가 운영을 멈춰 버리면 분명 안 좋은 일이 터집니다. 하지만 여기가 무너지면 그 피해는 전 세계에 미칠 것입니다.”
인터넷 유지관리 위한 노력
도버와 칼레 사이의 영불해협에 인류 최초의 해저 케이블이 가설된 것은 1850년이었다. 이 해저 케이블은 구리로 돼 있었으며, 구타페르카 나무에서 채취한 탄력 없는 고무를 씌워 방수처리를 했다. 말레이반도, 수마트라 섬, 보르네오 섬등에서 야생하는 구타페르카 나무의 각 부분에는 고무질을 함유한 유액이 저장돼 있다. 이 유액을 채취해 해저 케이블의 피복으로 쓴 것. 그리고 납추를 달아 해저에 머물러 있게 했다. 하지만 이 해저 케이블이 전보 내용을 전달한 기간은 3일밖에 되지 않았다.
프랑스 어부가 실수로 해저 케이블을 잘라 버렸기 때문. 광섬유가 쓰이는 현대의 해저 케이블은 신뢰성이 높고, 숫자도 많다. 현재 상시 가동되는 해저 케이블의 숫자는 250~300개 수준인데, 통신수요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해저 케이블이 필요해진 상태다. 통신전문 시장조사업체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중반에서 2008년 중반 사이 국제 인터넷 트래픽은 무려 53%나 늘었다. 영국의 수중시설 설치 및 점검 회사 글로벌 마린 시스템즈의 수석 엔지니어인 레니가 고친 해저 케이블 가운데 일부는 미국의 플로리다 주에 있는 마이애미로 향하는 것도있다.
이곳에서 하나로 합쳐진 해저 케이블은 플로리다의 옛 동해안 철도를 따라 매설 돼있다. 이 철도는 마이애미를 출발해 키웨스트까지 가는 것으로 지난 1935년 허리케인 이슬라모라다에 의해 파괴됐다. 동해안 철도는 일명 ‘바다 위의 철도’로도 불리는데, 이는 키웨스트까지 가는 동안 꽤 많은 다리와 육교를 통해 바다를 건너기 때
문이다. 이 철도를 따라 뻗어 있는 해저 케이블은 테레마크(Trremark) 본사가 있는 마이애미 중부에서 지상으로 나오게 된다.
테레마크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겸하는 인터넷 교환소(IPX)로 대표적인 인기예보가 나오면 30명의 기술자로 이루어진 필수요원이 본격적인 근무에 돌입한다.
이들은 허리케인이 물러갈 때까지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 있는 것과 같은 네트워크 운영 센터를 통해 모든 상태를 측정한다. 다른 인터넷 교환소와 마찬가지로 테레 마크 역시 인터넷 운영에 필수적이다. 때문에 이 건물의 벽은 시속 250km 풍속의 5급 허리케인에도 버틸 수 있는 두께인 18cm의 철근 콘크리트로 돼 있다. 또한 이곳 시설의 모든 제어는 극히 정밀하게 이루어지고, 회로의 습기 응축을 방지하며, 수천대의 서버를 냉각시키기 위한 모든 설비가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이곳의 월 전기요금은 63만 달러에 달하며, 비상시를 대비해 디젤발전기도 여러 대 갖추고 있다. 천재지변이 마이애미를 덮쳐 전기가 끊어질 경우에는 병원, 경찰서 같은 주요시설과 함께 최우선적으로 복구가 이루어진다.
이는 테레마크와 같은 인터넷 허브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매우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테레마크의 지역영업 부사장인 데릭 카데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가 운영을 멈춰 버리면 분명 안 좋은 일이 터집니다. 하지만 인터넷 허브가 무너지면 그 피해는 전 세계에 미칠 것입니다.”
인터넷은 스케일프리 네트워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수의 어떤 사람은 인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 안에서 불평등이 생긴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같은 네트워크에서는 작은 구성인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면 허브로 등극하게 된다. 그만큼 외형적인 위취보다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이를스케일프리(scale-free) 네트워크라고 한다.
이는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성장하는 조직을 보면 연결, 즉 네트워크가 몰리는 허브가 존재해 관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네트워크의 크기와 관계없이 어떤 인터넷 교환소는 연결 수가 적은 반면 테레마크와 같은 인터넷 교환소는 연결 수가 많다. 바로 인터넷 허브인 셈이다. 물론 인터넷 허브 하나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경우 다른 인터넷 허브가 그 임무를 대신 떠맡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개의 인터넷 허브가 동시에 작동되지 않으면 인터넷 네트워크 전체가 고립될 수도 있다. 노스이스턴 대학의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센터 소장인 앨버트 라스즐로 바라바시는 스케일프리 네트워크에 대한 여러 건의 초기 연구를 수행한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케일프리 네트워크의 주된 특징은 연결 수가 대단히 높은 허브 몇 개가 네트워크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를 없앤다고 네트워크 전체가 붕괴되지는 않겠지요. 다른 허브가 네트워크를 지탱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개의 허브를 없앤다면 엄청난 피해가 따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위협을 확실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바라바시의 말에 따르면 그런 방법은 없다. 스케일프리 네트워크의 속성 탓이다. 그는 이 같은 약점을 없앨수도 없고, 보완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인터넷 허브에 대규모 이상 사태가 벌어질 경우 유일한 대책은 사후 피해복구 뿐이라는 것. 그는 노스이스턴 대학의 물리천문학과 조교수 애들리슨 E. 모터가 실시한 연구를 거론했다.
이 연구에서는 재해가 발생한 지역 주변의 인터넷 허브를 선택적으로 작동 정지할
경우 더 큰 피해를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재해를 입은 인터넷 허브에 가장 가깝게 연결돼 있는 인터넷 허브의 작동을 정지시키면 피해가 네트워크 전체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바라바시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가 발생한 인터넷 허브 주변의 다른 인터넷 허브를 종료시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인터넷 교환소를 난공불락으로 만드는 것 이외에는 현실적인 대비책이 없는 셈이다.
천재지변이 덮쳐 전기가 끊어질 경우 인테넷 허브는 병원, 경찰서 같은 주요시설과 함께 최우선적으로 복구가 이루어 진다.
인터넷 최후의 날 시나리오
워싱턴 D.C.에서 남동쪽으로 96km 떨어진 버지니아 주 쿨페퍼에는 테레마크의 새로운 시설이 있다. 이곳은 워싱턴 D.C.에 핵공격이 가해진다고 해도 폭풍이 미치지 않는 거리에 있다. 3m 높이의 흙벽이 둘러싸고 있고, 경비원들이 주변을 순찰하고 있으며, 국방부 직원을 포함한 대(對) 테러요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루이스는 “냉전 이래 전기통신 허브에 대한 공격 위험성은 언제나 걱정거리였다”며 “이 때문에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이래 전기통신 허브는 핵공격도 막을 수 있도록 방호력을 갖추어 왔다”고 말한다.
애틀랜타에 있는 정보보안회사 시큐어웍스의 위협정보부장인 잭슨이 밤늦게까지 깨어있는 이유도 테레마크 같은 인터넷 허브에대한 공격을 막기 위해서다. 만남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직원들마저 모두 사망한다면 대재앙이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잭슨은 이렇게 말한다. “일이 잘못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두 가지의 하드웨어 장애만으로도 엄청난 문제가 연쇄적으로 벌어질 수 있으며, 그 문제는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복구해야 합니다.
만약 이곳의 직원 중에 대재앙이 닥치기 이틀 전 발을 다쳐 회사에 못 나오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차라리 행운아일 것입니다.”사이버 공격 및 물리적 공격을 모두 포함한 전면 공격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 할 정도의 공격 방식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 테러리스트들이 시설의 지휘통제소에 원격 접속할 수 있다면 발전기를 과열시켜 폭발시킬 수도 있다. 그러면 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추게 되고, 얼마 안 가 마더보드 타는 냄새가 만남의 방을 가득 채울 것이다.
이 같은 공격이 다수의 인터넷 허브에 대해 동시에 가해진다면 스케일프리 네트워크 원리에 따라 전체 인터넷은 불통이 될 수 있다. 물론 통계적으로 볼 때 이 같은 종류의 공격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시큐어웍스가 운영하는 감시제어 데이터 수집시스템(SCADA)의 주요 고액인 공공기관의 경우 지난해 9월 이후 매일 평균 2,332건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이중 지휘통제소를 노린 공격 비율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 같은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지난 2007년 3월에는 지휘통제소를 노린 공격이 성공을 거둔 적도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대형 디젤발전기가 사이버 공격을 당한 것이다. 해커들은 디젤발전기를 조작해 자폭을 시도했다.
이 한 번의 공격을 복구하는데 몇 개월이 걸렸다.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조기경보 네트워크인 인터넷 스톰 센터에서 사고처리관으로 일하면서 사이버 공격을 감지하기 위해 웹을 검색하는 정보보안 연구가 존 밤베넥은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 허브 2~3개에 문제가 생기면 그 다음에는 사람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태에 대처할 인력을 충분히 갖춰 놓은 곳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절대 노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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