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모든 건물에는 이 비상구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시판이 내부 곳곳에 부착돼 있으며, 언제 발생할지 모를 대피상황에 대비해 주야간을 막론하고 항상 불이 켜져 있다. 특히 비상구 표시판은 배터리나 자가 발전기 등 별도의 전력원과 연결돼 있어 건물 전체의 전력이 끊어졌을 경우에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모든 비상구 표시판이 눈에 잘 띠지 않는 녹색으로 돼 있다는 사실이다. 도로 중앙선, 어린이 운송차량, 위험물질, 차량속도제한, 공사지역 등 사람들의 주의를 끌거나 경고의 의미를 담은 표시들은 노란색이나 빨간색을 사용하는 것이 정석인데 왜 굳이 녹색을 선택한 것일까.
이는 인간의 눈 구조와 관련이 있다. 실제 우리가 색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눈의 망막에 있는 추상세포와 간상세포라는 시세포 때문이다. 이중 추상세포는 160여 가지의 색을 구분할 수는 있지만 밝은 곳에서만 작용하며, 간상세포는 이보다는 훨씬 적은 색 구분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두운 곳에서 작용한다.
즉 위급한 상황에서는 대개 정전사고가 동반된다는 점에서 비상구 표시등은 추상세포보다는 간상세포의 능력에 초점을 맞춰 색상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간상세포에는 로돕신(rhodopsin)이라는 단백질이 있어 빛의 파장이 500나노미터(㎚)인 녹색광은 잘 흡수하는 반면 적색광은 흡수율이 낮다.
평소에 눈에 잘 띄던 빨간색도 어두운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 같은 눈의 구조로 인해 위급한 상황에서 탈출로를 알려주는 비상구의 표지판은 적색이나 노란색이 아닌 녹색으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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