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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안전의 첨병 가상현실 도로주행 시뮬레이터

교통사고는 개인과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다. 하지만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년 늘고 있는 교통사고 발생률을 보면 자동차가 존재하는 한 이의 근절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이처럼 최초의 자동차가 만들어진 이래 수백 년간 거듭돼 온 교통사고와의 전쟁에서 인간의 승리를 이끌어 낼 신무기를 개발했다. 첨단 가상현실 도로주행 시뮬레이터 ‘K-로드’가 그 주인공. 건설기술연구원은 이 K-로드를 활용, 운전자 중심의 도로환경을 구현함으로서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전년대비 1,100여건이 늘어난 21만5,800여건으로 집계됐다. 이 사고로 5,870명이 숨졌으며, 33만8,96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같은 교통사고는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다.

도로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보험금 지급, 노동력 상실 등 교통사고로 야기된 사회적 비용이 무려 11조원에 달했다. 정부 와 사회단체들이 왜 교통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문제는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교통사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책을 찾지 못했다는 것. 법적 처벌 수준의 강화, 안전시설의 확충, 운전자의 안전의식 제고, 자동차의 안전성능 향상 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예방책들이 동원되고 있지만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매년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상태다. 과연 교통사고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것일까. 현재로서는 완 벽한 근절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교통사고의 원인이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인간, 자동차, 도로환경이라는 3대 요인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그 단초가 도로환경의 개선에 있다고 말한다. 도로환경이 교통사고 3대 요인의 연결고리이자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무리 안전교육을 실시해도 과속운전 사고는 사라지지 않지만 과속차량이 많은 도로에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면 즉각적인 사고예방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최근 이 같은 점에 착안, 교통사고 발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쾌적한 주행환경까지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돼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도로연구실의 김종민 박사 연구팀이 주창한 인간 중심적 도로환경 설계기법이 그것이다.

인간 중심적 도로환경 설계

인간 중심적 도로환경 설계란 신규 도로를 건설할 때 설계 단계부터 도로의 구조는 물론 과속 단속 카메라, 노면 미끄럼 방지 포장 등 안전시설의 설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운전자의 차량운행 행태를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운전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운전패턴을 보이는지를 감안해 도로를 설계하면 도로 자체의 안전성이 극대화되면서 획기적인 교통사고 예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판단이다. 이와 반대로 운전자의 운전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도로는 자칫 안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수년전까지 국내에서 허용됐던 국도 노면의 가상 과속방지턱 설치가 지금은 금지된 것이 이를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김 박사는 “노면에 무늬만 그려놓은 가짜 과속 방지턱도 실제 과속방지턱과 동일하게 운전자의 급제동을 유발, 사고의 원인이 되면서 법규가 바뀌었다”며 “운전자의 습성을 감안 하지 않은 안전시설은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인간중심의 안전도로 설계를 위해 김 박사는 얼마전 막강한 무기를 하나 확보했다. 가상현실 도로주행 시뮬레이터 ‘K-로드(K-ROADS)’가 그 주인공. 김 박사 연구팀이 5년간의 연구를 거쳐 최근 개발을 완료한 K-로드는 현존하는 도로나 미지의 가상도로를 온라인상에서 3차원 입체영상으로 재현, 마치 현실처럼 도로주행 실험을 할 수 있는 장비다.

전투기 조종사를 교육 할 때 쓰는 비행 시뮬레이터의 자동차 버전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상하좌우와 전후방으로 움직이는 모션 시스템 위에 아예 실물 자동차를 올려놓았다는 것. 이 때문에 K-로드의 운전자는 실제 운전을 할 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자동차를 몰며 가상도로를 주행 할 수 있다.

이렇게 일반 운전자들에게 향후 건설될 도로에 대한 사전 주행 테스트를 실시함으로서 교통안전에 위협이 되는 요인들을 미리 파악하는 한편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 해 각 구간별로 최적의 사고예방 효과를 발휘하는 안전시설물들을 찾아내는 것이 연구팀의 목표다.

노면의 미세 진동까지 재현



물론 K-로드는 국내 최초의 도로주행 시뮬레이터는 아니다. 이미 국내에는 국민대, 성균관대, 자동차부품연구원, 현대자동차 등 에서 8대의 도로주행 시뮬레이터가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시뮬레이터는 신차 개발이나 운전자의 운전기술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K-로드는 안전한 도로설계를 핵심가치로 삼고 있다는데 근본적 차이가 있다. 일례로 고령 운전자를 연구할 경우 기존 시뮬레이터는 이들의 운전 행태를 분석, 안전운전 가이드라인 마련에 활용되지만 K- 로드는 고령자를 위해 도로환경을 어떻게 개선·보강해야하는지를 찾아내는 식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사고예방에 더 도움이 될지 는 익히 짐작이 가능하다.

이 역할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K- 로드는 기능과 성능, 디자인 면에서 한층 세밀한 설계가 이뤄졌다. 가장 큰 특징은 국내 유일의 10축 모션 시스템을 채용했다는 것. 실제 일반 시뮬레이터는 언덕길, 내리막길, 코너링 등의 큰 움직임에 반응하는 6축 모션 시스템만이 차량을 받치고 있지만 K-로 드는 각 바퀴마다 미세 진동을 담당하는 축이 하나씩 더 있다. 이로 인해 평지를 주행할 때 노면의 작은 떨림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운전자의 시각을 실시간 추적하는 고글형 안구운동측 정기와 뇌파, 심전도 등을 체크하는 생체신호측정기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주행 느낌만으로는 현실과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K-로드는 영상시스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차량의 전방향을 감싸는 360° 원형 스크린에 XGA급(1024×768) 고해상도 의 프로젝터 8대로 빈틈없이 입체영상을 투사, 운전자의 몰입감을 깨는 사각지대가 전혀 없다. 특히 차량 전면부의 스크린에는 풀 HD급(1920×1080) 프로젝터 1대를 추가 투입함으로서 영상의 선명도를 배가했다. 여타 시뮬레이터들과 달리 시뮬레이터 멀미의 유발을 최소화했다는 것도 K-로드의 특징이다. 시뮬레이터 멀미는 3D영화 등 입체영상을 볼 때 흔히 나타나는 증세로서 눈의 시각정보와 인체가 느끼는 감각정보 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시각기관은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보내지만 감각기관은 정지해 있다는 상반된 정보를 보내면서 두뇌가 혼돈에 빠지는 것. 연구팀은 영상의 입체감이 스크린 앞쪽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뒤쪽에서만 표현되도록 해 시각적 충격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유럽식 회전 교차로 도입

이 같은 K-로드의 효용성은 이미 시제품 모델을 활용한 기초연구를 통해 몇몇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내면서 대내외적인 공인을 받은 상태다. 구체적으로 지난 2005년 연구팀은 긴 직선형 내리막 도로와 짧은 곡선형 도로가 연결되는 지점에서 어떤 노면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 같은 형태의 도로는 대개 운전자의 주행부담을 가중시켜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당시 연구팀은 전북 진안군 인근의 국도 4km를 가상도로로 제작한 뒤 K-로드로 주행실험을 실시했는데, 가상 과속방지턱 앞에 노면 미끄럼 방지 포장을 하는 것이 급제동을 유발하지 않고 가장 안전하게 감속 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같은 해 20~70대의 피(被)실험자 들을 대상으로 도로표지판의 판독성 실험을 실시, 하나의 표지판에 6개의 지명을 표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 2006년에는 길이 10.962km로 국내 최장 터널로 등극하게 될 인제터널의 설계도를 입수해 안전시설의 효용성을 평가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황록색 내벽 디자인 이 청록색보다 안정적 주행을 유도할 수 있고, 터널용 안내전광판(VMS)을 설치하는 것이 운전자의 집중력을 높인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그리고 중앙선의 LED 시선유도 시설이 안전운전에 도움이 되지만 한국도로공사의 설계안보다는 설치 간격을 조금 넓힐 필요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얼마 전부터는 국도의 가상 과속방지턱 을 대체할 감속유도차선의 효용성을 연구 중에 있으며, 당진 IC 인근 도로를 대상으로 안개 낀 도로에서의 차간거리 안내시스 템 연구도 진행 중인 상황이다. 김 박사는 “K-로드의 연구결과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소규모 연구를 탈피,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국토해양부, 한국도로공사의 정식 과제를 획득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기회가 된다면 신호등 없이 운전자들이 자율적으로 교차로를 통과하는 유럽식 회전교차로의 국내 도입 타당성 을 검증해보고자 한다”며 “성급한 국내 운전자들의 특성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K-로드로 이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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