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그의 발명은 인류의 좀 더 낳은 삶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마치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을 맞아 싸운 스파르탄 300 결사대처럼 발명에 ‘혼’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세그웨이(segway)는 앞으로 몇 년 내 차량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1인용 단거리 이동수단이다. 한 사람이 서서 타며,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해서 전기모터로 구동된다. 배터리 사용시간은 2~6시간. 평균속도는 시속 13km며, 최고속도는 시속 19km. 24km까지 갈 수 있다.
미국 경찰은 이미 공항 내 보안업무에 활용하고 있으며,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공안업무에 활용됐다. 최근에는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하는 관광지나 골프장에서도 사용 이 늘어나고 있다. 세그웨이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두 바퀴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두발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가득한 세상에서 두 바퀴로 움직이는 이동수단이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그웨이를 움직이는 두 바퀴는 앞바퀴와 뒷바퀴가 아닌 왼쪽 바퀴와 오른 쪽 바퀴다.
균형을 잡아줄 보조바퀴도 없는 발판의 양쪽에 큼직한 두 바퀴가 있고, 발판에서 솟아 올라온 핸들이 있다. 의자가 장착된 세그웨이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기는 하지만 오로지 양쪽 바퀴로만 균형을 잡고 움직이는 게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두발 자전거나 오토바이는 가속이 붙으면 왼편이나 오른편으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아 달릴 수 있다. 그런데 양쪽으로만 바퀴가 달린 세그웨이가 앞뒤로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핵심 기술이다. 여기에는 자이로스코프라고 하는, 끊임없이 관성에 의한 중력의 이 동을 감지하는 센서와 두 바퀴의 전기모터를 작동시켜 균형을 유지시켜 주는 기술이 전제 돼 있다.
이 같은 기술 외에 세그웨이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 같은 이동 보조기구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발명가 딘 카멘(Dean Kamen)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보도에 올라가기 위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세그웨이를 개발했다.
그는 “인류는 오늘날 달에 사람을 보내고 해저탐사까지 할 수 있는데 휠체어를 보도 위로 끌어올리지도 못한단 말인가?”라며 자책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계단을 오르는 전동휠체어 아이봇(iBot)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세그웨이를 만들어 내게 됐다.
어린 로봇 공학자들을 위한 연설
“처음부터 다시 해봅시다. 이제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카멘은 뉴햄프셔 주 베드포드에 있는 자택 지하실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었다. 15cm 높이의 연단 위에서 자신의 연설 내용을 다듬고 있었던 것. 이는 자신이 20년 전에 설립한 비영리기구 FIRST의 고등학생 대상 로봇경진대회(FRC)가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FIRST는 ‘과학기술에 대한 영감과 인식을 위해’라는 뜻의 영어인 ‘For Inspiration and Recogni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의 약칭이다. 한마디로 FIRST는 아이들이 스포츠만큼이나 과학과 기술을 좋아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FIRST가 주관하는 대회는 로봇경진대회 이외에 3가지가 더 있다. 로봇경진대회와 유사한 테크 챌린지, 그리고 레고그룹에서 후원하는 레고 리그와 주니어 레고 리그가 그것. 로봇경진대회는 부품 키트를 사용, 6주 만에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지난 1992년 맨체스터 메모리얼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18회째를 맞고 있다. 자격은 과학기술에 관심이 있는 미국 전역의 고등학생인데, 브라질· 캐나다·멕시코·이슬라엘 등의 고등학생들도 참가한다. 대학생이나 관련기업 직원, 교사 등이 멘토로 참가할 수 있다.
이번 대회는 1,677개 팀 4만2,000명이 참가, 지난 2월 28일부터 4월 6일까지 43개 지역에서 예선과 결선을 벌였다. 그리고 4월 16 일부터 18일까지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조지 아 돔 구장에서 결승전을 치렀다. 종목은 매년 바뀌는데, 이번 대회는 공 던지는 로봇 만들기였다.
이 대회는 명예뿐만 아니라 무려 900만 달러에 달하는 장학금도 걸려 있다. 현재 카멘은 아버지인 유명 잡지 만화가 잭 카멘이 디자인한 빨강, 하양, 청색의 로고를 가진 FIRST를 운영하고 있다. 카멘은 43개 지역예선 참가자 전원에게 연설할 기회가 오자 너무나 좋아했다.
열정에 가득 찬 4만2,000명의 고등학생 앞에서 말할 기회가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카멘이라고 하더라도 분신술을 쓸 수는 없었다. 43개의 지역예선에 모두 참석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대신 비디오를 사용해 분신술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래서 카멘과 함께 FIRST를 이끌어가고 있는 우디 플라워즈까지 가세, 자신들의 메시지를 좀 더 완벽하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은행을 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 세 대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카멘은 지난 한 시 간 동안 이 대사를 열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그의 새된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한 세대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한 세대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결국 중얼거림 수준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카멘이 어린 로봇 공학자들에게 새로운 경지로 나가라고 용기를 주기 위해 하는 이 연설 은 일견 운동 팀의 선수들이 필드에 나가기 전 코치가 해주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단순히 사기를 북돋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카멘은 다재다능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장은 따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찍어내면 은행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 졸업장을 찍어낸다고 무식한 세대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돈을 찍어내는 건 대학 졸업장을 찍어내는 것만큼이나 무식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는 갈수록 대본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했고, 플라워즈는 그가 이야기의 핵심으로 돌아오게 하려 했다.
“제가 ‘인류는 세계의 진정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사람들 을 더욱 많이 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하지만 이제 시작해야 합니다’라고 말해야죠”하고 플라워즈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카멘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멘은 플라워즈의 말을 정정했다.
“우리는 이미 이 일을 18년 동안이나 해왔어요. 시작이라는 말을 쓸 단계는 아닙니다.” 수백 번의 교정 끝에 카멘은 만족감을 느낀 듯 했다. 그는 힘주어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날 이 세계에는 수많은 위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힘을 내 그 위기를 돌파하고, 의료기술을 발전시켜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기를 바랍니다. 그 해결책을 찾는데는 기술혁신이 큰 역할을 합니다. 현재의 금융위기 이전에도 우리의 경쟁력 은 이미 침체돼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 이 돈으로 돈을 벌거나 집이나 햄버거를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알아낸 과학 및 공학기술로 진짜 해결책을 제시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너무 적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 연구에 나서 기술혁신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각국 지도자들이 돈을 더 많이 찍어내면 은행은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 졸업장을 많이 찍어낸다고 해서 무식한 세대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연구는 힘든 일이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습니다.”
세그웨이를 개발해 낸 카멘이 하는 일은 발명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발명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이름을 남길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발명은 단순히 톱니바퀴와 회전운동을 하는 물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카멘이 하려는 일은 인류의 문화 전반을 개혁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출발점을 고등학생들의 두뇌로 잡고 있는 상태다.
로봇경진대회 6주전: 로봇경진대회 6주전, 즉 대회준비기간 첫날 뉴욕 브롱크스에서 온 모리스 고등학교 팀은 방금 주어진 과제에 이미 마음을 뺏긴 상태다. 이 팀의 이름은 2트레인. 모임을 갖기 위해 타야하는 지하철 노선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이번 대회 참가팀들은 공을 주워 상대방 로봇이 지니고 있는 바스켓 안에 던져 넣는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테니스 코트만한, 그리고 아이스링크만큼이나 미끄러운 경기장에서 해야 한다. 마찰이 적은 폴리머 표면은 지구 중력의 6분의 1밖에 안 되는 중력을 가진 달 표면에서 차량이 미끄러지는 효과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카멘과 대회 조직위원들 은 올해 대회 이름을 ‘루나시(Lunacy)’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회준비기간 3일째 되는 날. 팀장인 애덤 코헨은 로봇을 제작할 준비가 됐다. 20여 명의 학생들이 컬럼비아 공대의 기계조립공장에 모여 있었다. 체육관만한 크기의 공장에는 선반, 밀링머신, 그라인더, 컴퓨터수치제어 (CNC) 머신 등이 있었다. 학생들은 앞으로 6주간 이곳을 또 하나의 집으로 삼아 보낼 것이다.
코헨은 이미 ‘로봇도 감정이 있다’고 적힌 T셔츠와 공구벨트를 착용한 채 4개의 플라스틱 휠에서 베어링을 분리해내고 있었다. 다른 학생 대부분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고, 기계조립공장을 운영하는 엔지니어 밥 스타크는 좋은 아이디어를 짜낼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어떤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포탑에서 공 이 발사되게 하면 어떨까?” 그 때 또 다른 학생이 거들었다. “레이저를 쓰는 것도 좋아. 컴퓨터 마우스에 달린 레이저처럼. 레이저를 사용하면 가속을 측정할 수 있다고.” 오늘의 분위기는 비교적 느슨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이들은 로봇 제작에 필요한 부품 을 만들고, 코드를 작성하며, 전자기기를 연결하는데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자고, 작업대에 굴러다니는 피자조각을 먹으며 연명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
카멘은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10대 때 지하실을 공장으로 개조, 뉴욕 시 전역의 박물관과 호텔의 음향 및 조명 설비공사로 연간 6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자인데다 독서 장애자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유명 발명가들에게 흔했던 증상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똑같은 리바이스 청바지와 데님 소재 셔츠, 그리고 작업화 차림으로 30년 동안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또한 매일 밤 똑같은 2류 이탈리아 요리 체인점에서 저녁을 먹는다.
흥미롭게도 그는 양심적 대중문화 거부자로서 다른 영화는 일절 보지 않지만 스타워즈는 수십 번이나 감상했다. 그리고 그의 차고에는 ‘FIRST’라는 번호판이 달린 테슬라 로드스터의 14번째 생산 차량과 포르쉐 쿠페, 그리고 군용 허머가 주차돼 있다.
그는 격납고에 2대의 엔스트롬 헬리콥터도 가지고 있다. 그는 과급기를 사용해 480마력의 힘을 내는 이 3인승 헬리콥터를 사용, 사무실로 3분 만에 출근하거나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예를 들면 롱아일랜드에 있는 그의 섬 노스 덤플링을 돌아본다든지 할 때 이 헬리콥터를 사용하는 것. 이곳은 그가 1987년 자신만의 독립국가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선포한 3,700평짜리 섬이다.
카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크다. 하 지만 그는 그것을 싫어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 다. “요즘 밖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신 적 있나요? 뉴스 보신 적 있나요? 이 세상은 엉망진창입니다. 우리는 정신착란과 일시적인 쾌락의 노예가 되고 있어요.”
카멘이 앉아 있는 사무실의 건너편 벽에는 의자에 앉은 아인슈타인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는 노스 덤플링에 있는 등대를 찍은 항공사진이 있다. 그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문구가 걸려 있다.
“과학적 소양을 100% 갖춘 사회. 미국도 주변 나라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면 가능합니다.” 카멘은 자신이 신격화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만일 미국을 도덕적 자기도취 상태와 침체에서 걷어내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면 록 가수가 사람을 모으는 것처럼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통제하길 원한다. 자신의 여러 가지 면모 중 세상 사람들이 신경 써서 알아낼 가치가 있는 것만 알리고 싶어한다. 그가 22세이던 지난 1973년 발명한 착용 방식의 약물주입 펌프, 빈곤한 사람들을 위한 정수기 등 여러 가지 발명품들은 모두 인류의 발전을 위한 것들이다.
그리고 1982년 그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고용해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 데카 리서치 (Deka Research)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목적은 세상을 더욱 살기 좋게 하는 제품을 발명하는 것이다. 카멘이 말하는 ‘더욱 살기 좋게’라는 말의 정의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이는 인류가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멘은 70억 명에 달하는 인류의 기본적인 필요, 즉 물·전력·건강을 충족시키고 난 다음에야 돈을 벌 생각을 하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라이트 형제와 에디슨의 주된 목표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돈을 버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었습니다.” 카멘은 그가 새로 매입한, 데카 리서치에서 400m 정도 떨어진 섬유공장 빌딩의 맨 위 층을 돌아다니며 말을 이었다.
“그들은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고, 밤을 대낮같이 밝혀 줄 장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을 뿐입니다.” 물론 카멘도 돈을,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돈을 버는 것은 좋은 발명에 따라오는 부산물이지 결코 발명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는 그 원칙에 의거해 데카 리서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손익계산도 문제 삼지 않는 등 경제학 법칙은 보다 발전된 세계(?)로 보내 버리고 오직 물리학과 열역학 법칙만이 지배하는 이상적 발명 공간을 만들었다. 데카 리서치는 세상을 더욱 살기 좋게 해 주는 기계를 만드는 능력과 의지를 갖춘 매우 뛰어난 개혁자들의 이상하고 기묘한 세계다.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건 말 건 개의치 않는다. 이는 카멘 본인의 내면세계 를 밖으로 펼쳐놓은 것과 같다. 카멘과 함께 15년 동안 일한 제이슨 데머스는 이렇게 말한다. “데카 리서치는 그 자체로 걸작입니다. 혼자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함께하고 충분한 실력이 있는 300명을 모으면 뭐든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로봇경진대회 3주전: 2트레인 팀은 그들이 만든 로봇 탠탠(Tan Tan)의 시운전에 박차를 가했다. 탠탠은 1.5m 높이의 상자 모양으로 7,000달러어치의 제어장치, 기어, 모터,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의 집합체다. 마침 탠탠은 공장 한 곳에 누워 점검 및 조정을 받느라고 내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탠탠 주변에 몰려들어 앞으로 있을 대회에서 탠탠을 누가 조종할지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운전은 앞으로 1주일이 남았다. 넉넉한 청바지와 검은 후드 티를 입은 2학년생 스티브 토마슨은 이렇게 말했다.
“난 조종은 싫어. 너무 부담 돼. 사수라면 또 몰라도...” 로봇경진대회 규정에 따르면 사이드라인에서 2명의 조종사가 로봇을 조이스틱으로 조종하고, 3명 이상의 사수가 ‘월석’이라고 불리는 공을 상대 로봇의 바스켓에 쏘아 넣게 된다. 이 팀의 멘토이자 어린 시절 로봇경진대회에 참가했던 한스 하이티넨이 말했다.
“사수 들이 엄청난 양의 공을 던지게 되면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 토마슨은 다른 임무에 더 관심이 있었다. 바로 섭외 임무였다. 경기에서 같은 연합팀을 구성할 다른 팀을 섭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2분간의 매치에서는 각각 3개 팀으로 구성된 연합팀 2개가 서로 싸우게 되기 때문에 각 라운드마다 연합팀의 구성은 바뀌게 된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같은 팀 내의 동료뿐 아니라 경쟁 팀 선수들과도 긴밀하게 협동해야 한다.
실패한 것은 발명품이 아닌 세상
지난 1987년. 의사 윌리엄 머피는 죽으면서 역시 의사인 아들 윌리엄 머피 2세에게 가장 아끼던 노벨상을 유산으로 주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머피 2세는 이미 잘 나가는 의료기기 발명가였던 카멘의 집에 찾아왔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 중 카멘은 머피 2세의 어지러운 창고 속에 노벨상 수여증서가 상자에 넣어져 방치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노벨상은 아버지 머피가 빈혈치료법 개발로 1934년에 수여받은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카멘의 머릿속에는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는 이제껏 과학기술계의 영웅들을 잘못된 방식으로 기념해 오고 있다. 인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기리는 방식으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기념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영감을 고취시킬 기구도 필요하다.’
이 같은 카멘의 생각으로 지난 1989년 설립된 것이 바로 비영리기구 FIRST다. 카멘과 플라워즈가 만나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플라워즈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는 철학적 사랑에 빠졌지요.” 기계공학 교수인 플라워즈는 MIT에서 공학경진대회를 열었는데, 학교의 풋볼게임보다도 팬이 많았다.
두 사람은 이 공학경진대회를 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체육대회 스타일의 로봇경진대회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똘똘이들의 전미 대학스포츠협회(NCAA)인 셈이었다. 1992년 개최된 제1회 로봇경진대회 때 카멘은 제록스나 백스터 같은 회사에 대회 운영비를 내게 하는 한편 28개 학생 팀의 스폰서 노릇도 하게 했다.
여기에는 해당 기업 엔지니어의 자문도 포함된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별것 아닌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당시 MIT 내에서 열리던 그 어떤 대회보다 4배는 컸으며, 아이들 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995년 대회는 규모가 2배 이상 커졌으며, 이후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게 됐다.
“누군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10가지 소원을 빌고 싶은 게 저의 소원입니다’ 라고 말하는 게 똑똑한 아이죠. 저는 똑똑한 아이입니다. 저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FIRST의 여러 대회를 통해 키워낸 수천, 수만 명의 발명가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는 근 40년 동안 의료장비 개발에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이력을 쌓았다. 그가 만든 것 중에는 휴대형 인슐린 펌프, 이동식 투석기, 혁신적인 의수 등이 있다. 하지만 그가 해낸 더욱 중요한 업적은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려 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냉담했다. 지난 2001년 세그웨이가 등장하기 전 언론은 데카 리서치의 비밀연구소에서 1억 달러의 돈과 10년간의 시간을 들여 만든 발명품을 훔쳐보려고 난리였다. 하지만 정작 세그웨이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당혹해했다.
ABC방송의 여성 앵커 다이안 소여는 “고작 이거야?” 하는 반응까지 보였다. 세그웨이는 도시에서의 이동방식과 도시 설계정책을 바꾸기는커녕 끝없는 규제의 장애에 걸리고 판매고 역시 낮았다. 이 때문에 세그웨이는 한때의 신기한 물건 정도로 전락하기도 했다. 카멘은 계단을 오르고, 앉아있는 사용자를 선 사람의 키만큼 들어 올릴 수 있는 휠체어 아이봇이 세상과 소통하는 장애인들의 방식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실제 카멘은 아이봇 발명으로 미국 기술메달, 레멜 슨-MIT상, 하인츠상 등 미국의 가장 뛰어난 과학기술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보험회사들은 물론 미국 정부의 사회보장제도인 메디케어에서 조차 이 2만 6,000달러짜리 휠체어에 보험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봇을 생산하던 존슨 앤 존슨 사업부는 지난 1월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카멘은 이렇게 말했다. “그 때 저는 세상 누구보다도 큰 실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얼굴에 모래가 뿌려지더라도 갈 길은 가야 하는 법이죠.” 여러 차례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실패한 것은 그의 발명품이 아니라 발명품의 진가를 몰라준 세상이라는 것이다.
로봇 출품 10시간 전: “좋아. 전원을 넣어” 하고 하이티넨이 말하자 수석 프로그래머인 노아 클라인버그가 “예,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탠탠의 전선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았다. 시각은 오전 2시를 넘기고 있었다. 정오까지 로봇을 화물상자에 실어 뉴욕 지역예선으로 보낼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정적이 이는 가운데 똑딱거리는 시계소리가 귀를 멀게 할 것 같았다.
이 로봇은 이미 실전과 같은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주차장에 깔아놓은 미끄러운 폴리머 판 위에서 여러 시간 동안 시험주행을 했다. 탠탠은 아주 멋지지는 않았지만 시험주행 기간에는 필요한 때와 장소에서 대체로 잘 움직였다. 그런데 이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전원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은 로봇을 완전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 보았다. 시계는 계속 재깍거렸다. 한 시간 후에 하이티넨은 잠이 모자란 상태로 조립을 하던 학생들이 일부 모터의 배선을 거꾸로 연 결한 것을 알아냈다. 문제는 쉽게 풀렸다. 오전 3시 반. 모든 시스템이 작동됐다.
공을 쏘아 볼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탠탠 앞에 월석을 잔뜩 쏟아 밀어놓았다. 로봇의 아래쪽 벨트가 빠르게 돌아 공을 하나 둘씩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빨려 들어간 공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애덤 코헨이 현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군.”
해결사 많으면 해결되는 문제도 많아
언와인드 바는 맨체스터에 있는 카멘의 주요 활동 장소다. 이 바는 라이브 재즈 연주와 카 멘 자택 지하실의 와인에 필적할만한 와인들을 가지고 있다. 카멘이 그곳에 머물고 있던 12월의 어느 날 저녁. 카멘은 바의 구석에서 소리 없이 영상을 비추는 평면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잭슨빌 재규어와 휴스턴 텍산이 벌인 풋볼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고 홀린 듯이 있었다. “저렇게 몰려다니면서 공을 주고받으면 수백 만 달러가 생기는군. 정말 웃기는군. 이 나라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지 알겠어. 저렇게 공을 주고받고 하면...” 하와이 주지사 린다 링글이 걸어 온 전화 때문에 그의 중얼거림은 중단됐다.
그는 전화를 받으면서 0.5초 정도 기분 좋은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리고는 링글에서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 FIRST가 주관하는 대회를 후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멘은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카멘은 뉴햄프셔 주지사인 존 린치의 말을 링글에게 전했다. 린치는 뉴햄프셔가 모든 고등학교에 FIRST 주관 대회에 참여하는 팀을 창설하는 미국 최초의 주가 되게 해 달라고 말했다는 것.
한마디로 카멘은 하와이와 뉴 햄프셔 두 주 사이의 경쟁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 것이다. FIRST가 주관하는 대회를 고안한 미 해양경비대 사관학교의 공과대학장 빈스 윌친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카멘이 밥을 먹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느라고 말을 할 수 없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떠들거든요.”
카멘도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FIRST가 주관하는 대회에 대해 떠들어대 그들의 호의를 이끌어내고 시간 또는 자금지원을 얻어냈음을 인정한다. “저와 같은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그들의 에너지를 모두 빨아들여 FIRST가 주관하는 대회에 투입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카멘은 자신의 무모하기까지 한 열정을 굳이 감추려들지 않는다. 매년 봄 그는 애틀랜타의 조지아 돔 구장에 수천 명의 학생들이 로봇경진대회 결승전을 치루기 위해 모이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는 그들 중 한 명이 장차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는 것을 상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수의 법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과의 확률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공식은 간단하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수록 해결되는 문제의 수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가 추산하기로는 FIRST가 주관한 각종 대회에 참가한 인원은 100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지난해 MIT 입학생 가운데 10%가 FIRST 주관의 각종 대회에 참가한 인원이었다. 특히 지난 2005년 브랜디스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FIRST가 주관한 각종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대학 진학률과 졸업률,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FIRST가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에 비해 졸업 후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비율이 2배, 공학 분야에 종사하는 비율은 4배나 높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멘에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다. FIRST가 주관하는 각종 대회는 단순 한 과학경진대회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슈퍼볼과 경쟁이 가능한 규모로 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워즈는 이렇게 말한다. “딘은 항상 우리가 미국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고 말을 하지요. 하지만 FIRST가 주관한 첫 로봇경진대회가 끝났을 때의 실적을 보고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실제 첫 로봇경진대회의 실적은 카멘을 만족시킬 수준이 아니었다. 그 후 18년이 지난 후에도 FIRST가 주관하는 대회를 모든 고등학교가 아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FIRST가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하는 고등학교의 비율은 미국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카멘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FIRST가 주관하는 각종 대회가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제 간신히 껍질을 건드린 정도로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아직도 FIRST가 뭐고, 여기서 주관하는 대회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아마도 이는 타협을 모르는 카멘의 성격이 만들어낸 소산인지도 모른다. 그가 경멸하는 공 주고받기놀이, 즉 풋볼게임이 대중문화를 더욱 크게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지도 모른다. FIRST가 주관하는 대회의 운영진 가운데 대회를 더욱 재미있게 끌고 가려는 생각을 가진 동료 발명가 그렉 하퍼는 이렇게 말한다.
“풋볼게임이 인기가 좋은 것은 경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있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FIRST가 주관하는 대회가 지금처럼 해서는 대중적인 스포츠가 될 수 없지요. FIRST가 주관하는 대회를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하게 된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같은 저의 생각에는 카멘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FIRST가 주관하는 대회의 경우 스탠드를 메우는 것은 참가 팀 선수들과 학부모, 선생님, 스폰서, 그리고 각 팀의 멘토 말고는 거의 없다.
그리고 그들조차 경기 상황을 알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대회 규칙이 나 로봇 디자인은 매년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바뀌지 않는 점수 체계와 연합팀 체계는 그것으로 특허를 받아도 될 만큼 너무나 복잡하고 특이한 것이다. 대회 설계위원회는 항상 고민에 빠져 있다. 매년 똑같은 내용의 대회를 치르면 팬들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FIRST가 주관하는 대회의 질을 희생해 가면서 인기와 규모를 늘리면 미래의 발명가들을 자극할 충분한 자극제가 될 수 있을까. FIRST는 이 같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 즉 완벽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이상적인 공학자, 과학자, 발명가들을 양성해낼 수 있는 대회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보기에 그럴싸하지만 실행하기는 힘든 해결책을 낼 수도 있다. 어쩌면 카멘은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뉴욕 지역예선 대회일: 첫 2분간의 경기는 매우 격렬했다. 경기장에 나온 6대의 로봇들은 1분 전 사이드라인에 서 있을 때만 해도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뚜렷하게 구분이 가능할 만큼 개성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덩치가 로봇 몸체만한 바스켓을 등에 하나씩 지고 나니 로봇들을 전혀 분간할 수 없게 돼 버렸다.
로봇들이 지고 다니는 바스켓 위로는 수 십 개의 오렌지색, 분홍색, 그리고 자주색의 월석들이 날아다녔다. 대부분은 상대방 로봇의 바스켓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지만 그 공들은 로봇의 밑바닥으로 빨려 들어가 다시 상대 로봇에게 던져졌다.
극소수의 공이 상대 로봇의 바스켓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점수는 로봇에 따라 2점에 서 15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잠시 동안 2트레인의 로봇이 미친 듯이 공을 주워 모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붉은 색으로 적힌 참가번호 395번으로 식별 가능했다.
벌써 6개 정도는 발사기에 장전되고 있었다. 몇m 떨어진 아크릴 유리벽 뒤에서 로봇을 조종하는 클라인버그는 로봇을 돌격시켜 상대방 로봇에 갖다 박은 다음 상대 로봇의 바스켓 안에 가진 공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그의 조종으로 스코어보드상의 점수가 확 늘자 관중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2트레인이 속한 연합팀은 이 경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이 팀은 앞으로 2주 내에 필라델피아로가서 지역결선을 위한 또 다른 싸움을 벌여야 한다.
두려운 것은 오직 시간뿐
카멘의 삶에는 그의 위대한 사명을 이루는데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는 그의 자택도 마찬가지다. 그의 자택에 있는 육각형 모양의 미로 속을 여행하다보면 과학기술이 수 백년 간 이룬 진보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는 3층 건물 높이의 증기기관과 손으로 크랭크를 돌려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이 엘리베이터는 영화 ‘스팅’의 세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한 고전음악이 들어있는 월리처 주크박스, 그의 아이봇과 빼다 박은 19세기 방식의 목제 휠체어도 있다. 월리처 주크박스는 지난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유행했던 것이다.
이밖에 비행 시뮬레이터와 체스 두는 로봇도 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줄을 지어 끝없이 찾아오는 손님과 직원 가족의 휴양을 위해 5성 호텔 수준의 리조트도 갖고 있다. 이곳에는 실 내수영장, 목욕탕, 사우나, 테니스 코트, 그리고 조명이 들어오는 야구장까지 있다.
하지만 정작 카멘 본인은 이 같은 시설을 거의 이용해 보지 않았다. 올해로 58세인 그는 30년 동안 휴가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자신의 영웅인 아인슈타인이 휴가를 즐겼다는 소문이 돌면 그때서야 휴가를 떠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카멘은 자신도 휴가를 즐겼다고 주장한다.
“저는 언제나 휴가 중이었습니다. 슬링샷을 만들다가 중도에 그만둔 채 스털링 엔진을 만들고, 스털링 엔진을 만들다가 거기서 벗어나 의수를 만들며,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FIRST가 주관하는 대회를 조직하는 것이 저에게는 모두 휴가입니다. 휴가라는 것이 외딴 섬에 가서 하루 종일 드러누워 있는 것이라면 저는 그런 휴가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서 일주일쯤 자리를 비워도 좋다면 저는 휴가를 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포기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너무 중요해 단 일분일초도 낭비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카멘이 모자랄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시간뿐이다. 이 때문에 그는 단 하루도 쉬지 못한다. 그는 너무 지쳐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일한다. 그는 와인을 잔뜩 마시고도 밤늦게까지 일한다. 그는 타협을 모르는 설교자이자 외판원이며, 사상가다.
따라서 카멘은 고된 일을 마치고 와서도 휴가를 떠나지 않는다. 삼나무로 된 패널 속에서 숙성되는 수천 병의 오래된 와인이 있는 와인 저장고에 있으면 카멘은 이길 수 없는 공포, 이룰 수 없는 꿈, 그리고 강박관념에 가깝게 죽음을 경계하는 평범한 사람이 된다.
얼마 전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아까운 줄 모르고 살기 때문에 평화롭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제게 남은 시간을 신경쓰며 지내고 있어요. 제게 남은 시간은 유한한데 이 세계를 고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요. 그 모든 일을 끝낼 충분한 시간이 없다면...”
마침 무디 블루스를 연주하던 런던 심포니의 연주 소리가 끊기고 침묵이 흘렀다. 카멘은 침묵을 깨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손짓을 해가면서 말을 이었다. “나도 죽음을 이길 수는 없어요. 나는 종교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믿음이 있어요. 우리가 시작 한 일을 아이들이 이어받을 것이라는 믿음이지요.”
필라델피아 지역결선 대회일: 드디어 2트레인 팀이 필라델피아에 싸우러 왔다. 이들은 토너먼트 제3일에 이미 3승 무패의 전적을 올리고 있었고, 탠탠은 이번 대회에서 최다 득점을 기록한 로봇이 됐다. 심한 경우 상대방 로봇을 67점 차로 따돌리기도 하며 확실한 우승후보가 돼갔다.
탠탠이 큰 타격을 입고 영구적인 손상을 입지 않는다면 말이겠지만. 경기장에서 공을 빨아들이는 로봇 하체의 컨베이어 시스템은 지난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미끄러운 폴리머 경기장 때문에 로봇끼리 범퍼카처럼 충돌 하면서 그 충격이 이미 휘어진 금속제 축을 더욱 휘게 하고 벨트의 정렬상태도 흐트러지게 했다.
팀원들은 로봇의 금속제 축을 두 번이나 교체했지만 이제 더 이상 예비부품이 없다. “당시 우리가 가진 도구라고는 쇠톱과 드라이버, 그리고 그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지친 머리밖에 없었지요.” 팀장 코헨의 말이다.
그 순간 3학년생 가브리엘 루이즈가 맨손과 무릎만 사용해 휘어진 금속제 축을 곧게 펴서 팀이 몇 라운드는 더 싸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장에 있을 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봇이 굴러가게 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장난 로봇을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팀원들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고치고 또 고친 끝에 그들의 로봇은 다시 경기장으로 나왔다. 코헨은 팀에 4년간 있으면서 이만큼 힘들게 일해 본 적이 없었다. 지역결선에서 2트레인 팀이 속한 연합팀은 토너먼트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2개 팀이 속한 연합팀과 맞붙었다.
탠탠은 계속 적의 공격을 받았고 그 때마다 코헨과 루이즈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경기 종료 15초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점수는 64대 64였다. 경기장에서, 사이드라인에서, 스탠드에서 모두가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쏴라! 쏴라! 쏴라!” 시간이 다 됐지만 스코어보드가 고장나 불이 꺼졌다. 승패를 가리기 힘든 아슬아슬한 접전이었다. 1분간의 침묵이 흐르고 스코어보드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82대 74로 브롱크스 출신의 2트레인 팀이 속한 연합팀은 지역 결선의 승리자가 됐다. 다음에 갈 곳은 애틀랜타다. 그 다음은 또 어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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