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상황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최근 허리케인을 없애겠다는 아이디어를 특허출원함으로서 인공적인 기후조절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과연 허리케인을 없애는 것이 과학기술적으로 가능하며,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립자이자 전 최고경영자(CEO)인 빌 게이츠가 최근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로 인공적인 수단으로 허리케 인을 없애겠다는 것.
허리케인은 대서양 서부에서 발생하는 열대저기압으로 아시아의 태풍, 인도양의 사이클론과 같은 폭풍의 일종이다. 연평균 출현 수는 약 10개 정도며, 매년 8~10월 사이에 발생한다. 풍속은 초속 34m 이상이다. 허리케인은 태풍보다 규모가 작지만 큰 것은 태풍에 필적하는 위력을 갖는다.
그 중에서도 지난 2005년 8월 23일 발생해 8 월 30일 소멸한 카트리나는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78m에 달하는 5급 허리케인으로 미국 남동부에 막대한 피해를 냈다. 허리케인은 급이 높을수록 강력한 것인데, 카트리나는 사망 1,836명·실종 705명·재산피해 81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허리케인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빌 게이츠가 내놓은 아이디어 역시 이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빌 게이츠의 아이디어
허리케인을 없애겠다는 빌 게이츠의 아이디어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허리케인을 비롯한 열대저기압의 발생 원리부터 알아야 한다. 열대저기압은 무풍대(無風帶)가 있는 적도를 제외한 남위, 북위 5도 이상의 열대해상에서 해면의 온도가 26~27℃ 이상일 때 발생한다.
이때 해수면 근처의 공기가 데워져 많은 수증기를 머금게 되고, 이 수증기의 잠열 (潛熱)로 상승기류가 발생하면서 구름이 생성된다. 잠열이란 증발과 응결에 의해 발생하는 열로써 물이 수면으로부터 증발할 때 열에너지가 수증기 속으로 들어가거나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힐 때 나타난다. 일명 숨어 있는 열이라고도 한다.
구름이 생성돼 비가 오기 시작하면 해수면의 공기가 상승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주변의 공기가 이곳으로 모이게 된다. 모여든 공기는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인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게 된다.
그리고 모여든 공기는 상승해 다시 바깥 쪽으로 흘러나는데, 그 양이 들어오는 공기의 양보다 많아지면 중심부는 공기가 희박해져 강한 열대저기압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허리케인을 비롯한 열대저기압의 발생 원인은 높은 수온으로 더워진 바다의 공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열대저기압이 발생하는 해역의 수온을 인공적으로 낮추면 허리케인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 봄직한 생각인데, 빌 게이츠 역시 여기에 착안했다. 빌 게이츠가 다른 12명의 동료와 함께 지난 1월 3일 미국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한 허리케인 예방 메커니즘은 이렇다.
우선 선단을 허리케인 발생 해역으로 보내 이 선단에 실린 해수 혼합장비로 온도가 낮은 심해의 물을 해수면으로 끌어 올린다. 이렇게 하면 해수면의 온도를 낮추고, 이를 통해 열대저기압 발생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해수를 온도로 구분하면 크게 3개의 층으로 나뉜다. 해수면에 가까운 쪽부터 혼합층, 수온약층, 그리고 심해층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혼합층은 햇빛과 바다 위에 있는 기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온도가 가장 높다.
반면 심해층은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깊은 물속이어서 온도가 항상 일정하다. 보통 심해층의 물은 위도나 기후에 상관 없이 4℃가량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낀 수온약층에서는 깊이에 따라 수온이 크게 변한다. 하지만 수온약층은 일종의 단열재 구실을 하기 때문에 심해층과 혼합층 사이의 온도교환과 물질교환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빌 게이츠는 바로 심해층의 물을 끌어와서 해수면의 온도를 낮추고, 이를 통해 허리케인 발생을 막겠다는 것이다.
실패한 과거의 사례
빌 게이츠 이전에도 발생을 막거나 방향을 바꾸는 등 허리케인 자체에 인위적인 통제를 가하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스톰퓨리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
지난 1962년부터 1983년까지 미국 정부에 의해 실시된 스톰퓨리 프로젝트의 골자는 허리케인이 발생하면 항공기를 날려 보내 요오드화은을 뿌려 힘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인공강우 방식을 응용한 것인데, 요오드화은은 노란색의 작은 분말 결정으로 감광성이 크고 자외선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메커니즘은 이렇다. 우선 허리케인의 눈 주변에 있는 구름 방벽, 즉 난층운에 인공 강우의 응결핵으로 쓰이는 요오드화은을 뿌리면 이것이 대기 중의 수분을 응결시켜 주변에 새로운 난층운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허리케인의 에너지원인 잠열이 그만큼 줄어들고 허리케인의 눈은 넓어진다. 그러면 허리케인의 회전속도가 줄어들어 세기 역시 약화된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여러 차례 허리케인 주변에 요오드화은을 살포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허리케인에는 굳이 요오드화은을 뿌리지 않아도 이미 구름을 만들기에 충분한 얼음 결정이 있다. 이 때문에 요오드화은을 뿌린 허리케인이나 그렇지 않은 허리케인이나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스톰퓨리 프로젝트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끝에 지난 1983년 중지됐지만 그 이후로도 허리케인을 잠재워 보겠다고 덤벼든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1998년 미국의 물리학자 버나드 이스트런드는 우주태양광 발전기술을 이용하면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 같은 대형 기상현상을 길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주태양광 발전이란 태양전지를 장착한 인공위성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이 같은 전기를 마이크로파로 변환시켜 지상으로 쏘아주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지구에서는 필요로 하는 전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트런드는 이 기술을 변형시켜 마이크로파를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의 특정 부분에 쏘아 열을 가하면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 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허리케인은 따듯하고 습기가 많은 상승 기류가 상공에 있는 차가운 공기층을 뚫고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상승한 공기는 주변 기온에 의해 점차 냉각되고 무거워지면서 일부는 주변부로 퍼져나가고, 일부는 허리 케인의 눈 쪽으로 하강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이때 생기는 하강기류를 허리케인 생성과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에너지 흐름으로 보고 있다. 이스트런드는 마이크로파를 허리케인 눈 주변의 하강기류에 쏘아주면 차가운 하강기류를 가열, 더 이상 하강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처럼 허리케인의 에너지 흐름을 차단하면 새로운 상승기류의 유입을 방해, 허리케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태양광 발전기술이 실용화되려면 아직도 20년은 더 있어야 한다.
지난 2005년에는 MIT의 과학자 모시 알라마로가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그의 방법은 수십 개의 제트엔진으로 허리케인이 다가올 바다에 소형 열대저기압을 여러 개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소형 열대저기압이 만들어지면 열을 빼앗긴 해수면은 식게 되고, 그곳으로 다가온 허리케인은 열을 공급받지 못해 위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허리 케인에 영향을 줄 만큼 많은 양의 열을 빼앗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올해는 아크론 대학의 유체역학 공학자인 아카디 레오노프가 허리케인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제트전투기를 초음속으로 비행, 소닉 붐을 일으켜 허리케인의 풍속을 약화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항공기가 초속 수십m로 부는 강풍 속에서 견뎌내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과연 허리케인을 약화시킬 만큼 충분한 소닉 붐을 발생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허리케인을 막기 위해 등장한 아이디어 가운데는 만화에나 나옴직한 것도 여러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다에 생선기름을 뿌리면 허리케인의 형성을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 생선기름막이 수증기의 증발을 막아 허리케인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예전부터 선원들이 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바다에 기름을 쏟아 부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인데, 정말 만화 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거대한 풍차를 세워 프로펠러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허리케인을 약화시키자는 주장도 있었다.
순기능도 많은 허리케인
빌 게이츠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포함해 이런저런 허리케인 예방 대책을 뜯어보면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허리케인을 비롯한 열대저기압은 인간에게 끼치는 피해만큼이나 순기능도 많다. 실제 열대저기압은 지구의 저위도 지방에 몰려있던 열에너지를 흡수해 고위도 지방으로 분산시킴으로서 지구 전체의 에너지 균형을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과거 공룡시대의 지구는 지금보다도 매우 더웠다. 현재 나타난 화석을 가지고 기후 모델을 작성해 보면 지구의 적도 부근은 연 평균 기온이 무려 40~50℃가 넘는 엄청나게 뜨거운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지역에서 생물이 살 수 있었던 것은 현재보다 열대저기압이 훨씬 강하고 빈번하게 발생해 더운 지역에 넘쳐나는 열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실제 퍼듀 대학의 매튜 후버 연구팀은 열대저기압이 지나간 해수의 상태를 연구한 결과 열대저기압이 바다 속을 뒤집어놓아 열기를 바다 속으로 빼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 열기는 해류를 통해 북극 등 다른 곳으로 분산되는 것도 알아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바다 속의 먹이사슬 균형도 맞춰졌다. 열대저기압이 지나간 곳에서는 깊은 수심에 살던 플랑크톤이 얕은 수심으로 올라오게 되는데, 이를 통해 적조 등 해수면의 부영양화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해양생태계 문제들이 상당부분 해결되는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에게 유익한 효과는 열대저기압이야말로 풍부한 민물자원의 공급처라는 사실이다. 열대저기압은 인간이 값비싼 담수화 설비를 갖고서 간신히 해내는 바닷물의 담수화 작업을 공짜로 해준 뒤 지상에 무료배달까지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사용하는 민물의 70%는 장마와 집중호우, 그리고 열대저기압을 통해 얻는 것이다. 결국 열대저기압은 지구의 냉각기 겸 정수기 역할을 해주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큰 셈이다.
빌 게이츠가 아닌 누군가가 미지의 신기술을 사용해 열대저기압을 완전히 사라지게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열대저기압이 불어오지 않는 대신 마실 물도 사라질 것이고, 열대지방의 평균 기온은 더욱 올라가 사람은 물론 동식물들도 살아가기 힘들게 될 것이다.
너무나 더워진 바다에 적조현상이 발생, 바다 속의 생태계가 만신창이가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열대저기압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할 것이다.
사실 심해수를 끌어와 해수면의 수온을 낮추겠다는 빌 게이츠의 방식은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혼합층과 심해층 간의 교류가 생기면 생태 균형 및 열에너지 균형이 깨질 우려가 있다.
또한 허리케인이 발생할 지역의 수온을 충분히 낮출 정도로 많은 심해수를 끌어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 것이다. 열대 저기압의 에너지는 나가사키 원폭의 적어도 1만 배가 넘는데, 그것을 막을 에너지는 어디에서 끌어올 것인가.
또한 에너지 사용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산화탄소 배출 등의 환경문제는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미국 정부가 스톰퓨리 프로젝트를 접은 것은 비효율성도 문제였지만 결국 이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열대저기압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로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고, 이것이 열대저기압의 생성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에서 인간이야말로 이 같은 문제의 주범일 수 있다.
심해수를 퍼와 허리케인을 막는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허리케인으로 인해 발생되는 피해를 줄이고, 더 나가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자금과 인력을 사용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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