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안경 등 문명의 각종 이기(利器)도 이 같은 상황을 부채질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일반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각, 이른바 초감각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기존의 감각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특수한 인지기능, 즉 제6감(六感)의 존재도 거론되고 있다. 과학기술을 통해 초감각은 어떻게 얻어지며, 제6감은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 가능할까.
현대과학에서는 인간에게 5가지 감각이 있다고 말한다. 사물을 보는 시각, 소리를 듣는 청각, 냄새를 맡는 후각, 맛을 보는 미각, 그리고 압력·온도·질감을 느끼는 촉각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인간의 감각은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날과 같이 발전해 온 것이다. 감각이 시원찮은 생물이 먹이를 발견하거나 위협을 피하는 등 생존에 필수적인 행위를 제대로 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각은 생물 전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색을 구분하는 능력, 형체를 파악하는 능력 등 시각 부문의 섬세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같은 인간의 감각은 대형 포식동물에 비해 물리력이 뒤지는 인간이 오늘날까지 멸종하지 않고 생존하는데 필요충분조건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문명은 인간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시끄러운 소음과 헤드폰, 빛이 나는 모니터, 대기오염 등으로 인간의 감각 능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각종 안전장치가 마련된 도시에서 그냥저냥 살아가기에는 특별하게 감각이 뛰어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처럼 나빠진 감각을 보청기나 안경, 콘택트렌즈 등 문명의 이기로 보완해 가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의 잠재력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뛰어나다.
일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구(舊)일본 해군의 에이스 파일럿 사카이 사부로의 자서전 '대공의 사무라이'를 보면 당시 일본 전투 조종사들의 훈련내용이 나오는데, 거의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맨손으로 파리를 잡는가 하면 대낮에 육안으로 별을 보기도 한다.
이 같은 기록을 통해 당시 일본 전투 조종사들의 반사 신경, 시력, 균형감각 등이 일반인보다 월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카이 사부로 본인만 해도 시력이 2.5나 됐다고 한다. 이렇듯 일반인의 한계를 뛰어 넘는 감각, 이른바 초감각의 소유자들은 21 세기인 현대에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뛰어난 초감각의 소유자들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워터 디스트릭트는 1,900만 명에게 하루 57억ℓ의 물을 공급하는 미국에서 가장 큰 수돗물 공급업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28년 경력의 화학자 페기 모일란은 외부 대기와 완전히 격리된 실험실에서 코와 혀를 이용, 상수원의 수질을 체크한다.
일반적으로 상수원에 조류(藻類)가 증식하면 대사물질인 지오스민과 메틸이소보 르네올이 많이 생긴다. 지오스민은 수돗물에 흙냄새, 그리고 틸이소보르네올은 곰팡이 냄새를 증가시킨다. 모일란은 바로 코와 혀를 이용해 상수원 내의 이들 물질 증가를 정확히 알아낸다.
지난 2003년 상수원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물에서 나는 극미량의 탄내를 감지해 내기도 했다. 이는 첨단 분석 장비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1년 반 후에는 역시 첨단 분석 장비가 감지해 내지 못했던 수중 고형폐기물 정화용 폴리머 성분을 감지해 내기도 했다.
24년 경력의 전투 조종사인 미해군 대령 마크 허바드는 야간시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는 지난 2003년 4월 이라크 상공을 야간 비행하던 중 근처를 비행하던 아군 B-1 폭격기의 배기가스 항적을 발견하고 급히 조종간을 돌려 공중충돌을 모면했다.
청각이 뛰어난 사람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컴퓨터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루이 로사스 귀용은 지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정전이 발생하자 예비 발전기를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발전기의 소음 속에 묻힌 기름 도둑의 발소리를 정확히 듣고 도둑을 내쫓았다.
촉각도 빠질 수는 없다. 마사지사인 캐시 그루버는 뛰어난 촉각 능력을 사용해 환자의 피부를 만지기만 해도 환자의 건강한 부위와 병든 부위를 구분해 낼 수 있다. 그녀는 너무나도 촉각이 예민한 나머지 파리 한 마리만 앉아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다.
이처럼 지나치게 촉각이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특수담요도 시판되고 있다. 코지 캄사에서 제조한 이 담요는 섬유 속에 특수 플라스틱 구슬을 꿰매 넣은 것으로 무게가 13.5kg나 된다. 제조사의 주장에 의하면 이 무거운 담요는 전신에 걸쳐 완만하고 고르게 촉각을 압박함으로써 지나치게 예민한 사용자의 신경을 분산시키고 편하게 잠을 이루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초감각이 얻어지는 루트
일반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각, 즉 초감각은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몇가지 이론이 있다. 우선 타고난 소질 또는 감각의 노화가 매우 적기 때문에 이 같은 초감각을 갖게 된다는 이론이다.
갑상선 약 프로필티오우라실(상품명 안티로이드)을 먹었을 때 맛을 느끼는 여부는 전적으로 유전자에 따라 결정된다. 이 약을 투여했을 때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극도의 쓴맛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은 보통 미뢰가 달려있는 혀의 심상유두가 극도로 발달해 5가지 맛을 아주 잘 느낀다. 타고난 소질인 셈이다.
음식을 섭취할 때 인간이 느끼는 풍미 중 상당 부분은 음식의 향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프로필티오우라실에서 쓴맛을 느끼는 사람 정도는 돼야 음식이 가진 본래의 맛을 제대로 느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감각의 노화가 적은 것도 초감각을 얻게 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인간은 태어났을 때 최저 20헤르츠에서 최대 20킬로헤르츠까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성인기 초기에 급속도로 저하되며, 30대 중반이 되면 최대 13킬로헤르츠까지밖에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앞서 예를 든 귀용의 경우 현재 나이가 37세임에도 최대 18킬로헤르츠까지 들을 수 있다. 이는 그가 다른 사람보다 청각의 노화가 매우 적게 일어났다는 증거인 것이다.
또한 에스키모의 시력이 4.0이나 되는 것은 먼 곳을 많이 보는 등 그들의 생활 여건상 시력 감퇴가 문명인에 비해 현저히 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감각과 관련한 두 번째 이론은 자폐증 등 질병에 의해 감각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동물과학과 교수 인템플 그라딘은 지난 1950년대 자폐증을 앓은 후 극도로 감각이 예민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약간 까칠한 옷을 만지기만 해도 마치 거친 사포로 피부를 갈아내는 것처럼 또는 치과용 드릴이 신경을 건드릴 때처럼 고통스러웠다는 것.
그라딘은 자폐증으로 인해 시각령이 위치한 뇌후부의 뉴런이 과잉 발달, 이처럼 감각이 강화됐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는 훈련을 통해 감각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로체스터 대학의 뇌 인지과학 연구자인 다프네 베일비어는 비디오 게임을 함으로써 색 대비가 낮은 상황에서의 시력이 좋아지고 어지러운 배경에서 사물을 더욱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훈련을 통해 뇌 시각령의 기능을 증대, 시력 향상을 얻을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화학자 모일란의 경우도 후각과 미각을 증대시키기 위한 특별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비슷한 조건이라도 이 같은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분명 후각과 미각 면에서 뛰어났다. 이 같은 훈련을 개발하기에 따라서는 이른바 감각영재의 육성뿐만 아니라 감각이 많이 둔화된 사람들의 재활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뛰어난 감각을 지닌 감각 인재는 화장품, 식품, 교통, 디자인 등 사람들의 생활에 직결된 분야에서 훌륭하게 활동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의 혀가 지닌 보험가치가 무려 1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을 보면 초감각은 경제적 가치 또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제6감의 과학적 증명 시도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제6감이 바로 그것. 제6감은 기존의 감각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특수한 인지기능을 말한다. 이것은 동물에게서 확연히 관찰된다. 큰 배가 가라앉기 직전 배에 사는 쥐들이 먼저 도망쳐 물로 뛰어든다든지 지진이나 해일 등 큰 자연재해가 일어나기 직전 동물들이 모습을 감춘다든지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저격 당하기 6주 전 자신의 죽은 모습을 꿈에서 보았다고 한다. 뒤통수가 근질근질해 뒤돌아보니 누군가 자신을 죽일 듯 째려보고 있었다는 말도 했다. 산부인과에서 갓 태어난 아이들이 섞여 있을 경우 어머니는 5감은 물론 제6감까지 사용해 자기 자식을 다른 아이와 구분해 낸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제6감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가능한가 여부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간츠펠트 실험은 제6감에 대해 과학적인 증명 을 시도한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초심리학자 찰스 호노턴이 창안한 이 실험은 피험자의 모든 감각이 박탈된 상태에서 의식 변동 상태, 즉 꿈·잠·혼수 상태 등에서 의식이 근본적으로 바뀐 상태를 유도한다.
이 같은 방식은 동양 종교, 특히 불교의 선과 힌두교의 요가에서 외부의 감각 통로를 일체 차단하고 깊은 명상으로 잡념을 없애면 제6감이 잘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간츠펠트 실험은 세 사람으로 진행된다.
수신자는 방음된 방에 앉아서 시각과 청각의 흐트러짐을 방지하는 조치를 취한다. 이를 테면 눈에는 반으로 쪼갠 탁구공을 얹고, 귀에는 백색소음을 내는 이어폰을 꽂는다. 백색소음이란 모든 주파수 대역에서 동일한 에너지의 분포를 갖는 소리를 말하는 데, 일종의 소음 중화효과가 있다.
그리고 다른 방음된 방에 있는 송신자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임의로 선택된 영상을 보면서 그 영상을 수신자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후 수신자가 느낀 것을 보고하면 제3자가 기록한 뒤 결과를 평가 한다.
지난 1974년 간츠펠트 실험이 처음 제6감 연구에 도입된 이후 지난 2004년까지 세계 도처에서 같은 실험이 88차례 실시됐다. 그리고 총 3,245건의 전송 시도 중 송신자와 수신자의 영상이 일치하는 사례는 1,008건으로 32%의 적중률을 보여주었다. 간츠펠트 실험은 모든 실험 결과를 취합해 분석을 실시함으로써 제6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학계의 반발은 엄청났다. 실험 조건과 무작위성이 미흡하다 또는 이 결과로는 제6감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낼 수 없다는 것. 또한 이 같은 적중사례가 제6감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그 같은 반발과 지적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5감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기존 감각으로는 측정 불가능한 제6감이 실험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증거와 객관성, 합리성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현대과학은 인간의 5감으로 입증해 낼 수 없는 것은 깊숙이 다루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앞으로 제6감에 대한 완전한 과학적 증명이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 제6감을 증명해 낸다면 인간의 능력은 또 다른 차원으로 진보할 것이 분명하다. 감각은 타고난 무기가 없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핵심적 능력이니까 말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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