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또한 2000년 이후 이상홍수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상태다. 최근 이 같은 이상홍수의 위험지역을 예측하고 최적의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지역 맞춤형 이상홍수 방어시스템이 개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여름 대한민국은 물 폭탄을 맞았다. 지난 1940년 이후 70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의 폭우가 쏟아지며 전국 13개 시·도를 물바다로 만든 것.
서울은 7월 1~2주 동안 무려 553㎜의 비가 내렸고, 부산은 기상관측 이래 처음으로 시간당 강우량이 90㎜에 달하기도 했다. 이번 폭우로 전국에서 10명의 인명피해와 2,302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의 복구를 위해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총 6,791억 원이라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이처럼 예년 수준을 크게 웃도는 극한 강우나 국지성 집중호우가 우리나라를 물의 국가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 해지고 있다. 피해가 발생할 때 마다 하천의 제방을 높이고 빗물 펌프장을 확충하는 등 다각적 수해방지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이상홍수로부터 국민의 인명과 재산을 온전히 지켜내기에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이상홍수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원인이다. 지구온난화가 극단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상 홍수의 발생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달 국토연구원이 정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제시한 2050년 한반도의 미래상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와 가뭄, 지진과 같은 대형 자연재해가 지금보다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바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이상홍수로부터 전 국토를 철벽 방어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많은 어 려움이 있다는 것. 홍수를 막겠다고 모든 강과 하천에 댐을 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상기후 및 이상홍수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분석과 위험도 평가를 통해 이상홍수 위험지역을 선별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최적의 홍수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상기후 대비 시설기준 강화연구단의 김병식 박사 연구팀은 최근 미래의 이상홍수에 대비한 지리정보시스템 (GIS) 기반의 '지역 맞춤형 이상홍수 방어시 스템'을 개발, 주목을 받고 있다.
구멍 뚫린 이상홍수 방어시스템
김 박사 연구팀의 지역 맞춤형 이상홍수 방어시스템은 기존 시스템과 달리 각 세부 지역별로 위험성 분석이 가능하고, 그 결과에 맞춤화된 이상홍수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게 최대 특징이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뜻밖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 국내 치수사업 계획 수립의 기준이 되고 있는 홍수피해잠재능(PFD) 지수는 이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다.
PFD 지수는 단위 구역별로 치수의 특성을 파악하고, 치수 투자의 우선순위를 산정 하는데 활용돼 왔다. 하지만 전국을 단 103 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있어 유역 단위의 대규모 치수종합계획 수립이 가능했을 뿐 특정지역에 대한 대책 마련에는 실효성이 없었다. 권역 단위가 너무 커 하나의 권역에 여러 행정구역이 포함돼 있거나 지형적·수 문학적 환경이 다른 지역이 함께 묶여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동일한 하천변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도 그 위치가 하천의 상류인지 하류인지, 좌측인지 우측인지에 따라 이상홍 수의 위험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하지만 PFD 지수로는 이의 구분이 불가능했 다"고 밝혔다.
또한 PFD 지수는 광범위한 권역의 위험도를 단순히 매우 위험, 위험, 안전, 매우 안 전 등 4개 등급으로만 분류하고 있다. 게다가 각 위험도 별로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에 대한 기본적 가이드 라인조차 없다. A지역은 위험하니 알아서 대책을 세우고, B지역은 안전하니 안심해도 된다는 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는 PFD 지수가 있더라도 각 지역별 이상홍수 대책 수립은 일선 공무원들이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 나 직접 자료를 찾아보는 등의 수작업(?) 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위험도를 모르는 만큼 불 필요하게 과도한 홍수방지 시설을 갖추거 나 안이하게 대응해 막을 수 있었던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홍수 자체가 매우 정량화하기 힘든 재해라고는 해도 우 나라가 유달리 사전예방보다 사후약방문 쓰기에 급급했던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상 기존 PFD 지수는 이상홍수 예 방자료로 쓰기에 너무나 역부족인 셈이다. 즉 언제, 어디서 비가 샐지 모르는 구멍 뚫린 우산과도 같은 것.
30㎡ 단위의 세분화된 정보 제공
김 박사 연구팀의 지역 맞춤형 이상홍수 방어시스템은 이 같은 현재의 이상홍수 방어 체계가 지닌 한계를 모두 개선한 선진국 모델이다. 정식 명칭은 '지리정보시스템 기반의 선택적 홍수방어 의사결정 시스템'.
이 시스템의 핵심은 PFD 지수를 대체할 새로운 위험성 평가 툴인 이상홍수취약성지수(EFVI)다. PFD 지수가 광역화된 권역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지수는 한층 세부적으로 이상홍수에 대한 위험성 분석을 제공한다. 분석이 가능한 최소 권역 단위가 놀랍게도 30㎡(30m×30m)다.
PFD 지수가 '서울은 이상홍수에 안전하 고 강원도는 위험하다'는 정도를 알려주는 것이라면 EFVI는 동·읍·면 단위는 물론 전국의 모든 주택을 각각 독립적으로 분석 할 수 있는 수준이라 고 이해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각 권역들의 위험성은 기상 학적 취약성, 수문·지형학적 취약성, 사회· 경제학적 취약성, 홍수방어 취약성 등 4개 분야의 36개 세부지표에 의해 평가된다.
PFD 지수의 세부지표가 10여개 남짓한 것 임을 감안하면 EFVI의 분석 정확도가 얼마나 높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PFD 지수와 비교해 특징적인 부분은 사회·경제학적 취약성이다. 실제 EFVI에서는 주민의 고령화, 재정 능력, 교육 수준이나 소방서, 병원 같은 응급시설의 숫자까지 위험성 평가에 동원하고 있다.
일견 이들과 이상홍수 위험성은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김 박사는 "예를 들자면 노령 인구가 많은 지역은 대피 속도가 늦어져 위험도가 높아지고 재정 능력은 신속한 피해 복구 능력과 직결돼 위험도가 낮아진다"며 "응급시설의 숫자, 유해시설의 존재 유무 역시 위험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 명했다.
그렇다면 EFVI가 사용하는 지리정보에는 국내에 현존하는 모든 수해방지시설과 주택, 건물들이 빠짐없이 들어있다는 것일까. 그렇다. 김 박사는 "분석의 정확성을 기 하기 위해 국토해양부와 소방방재청이 보유하고 있는 최신 데이터를 동시에 적용, 1:1,000 비율의 지도로 재현했다"며 "이 두 기관의 정보를 통합해 지리정보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위험 분석에서 대책까지 원스톱 서비스
지역 맞춤형 이상홍수 방어시스템은 이렇게 평가된 위험성을 총 10개 등급으로 분류해 알려준다. 특히 사용자는 이 결과를 앞서 언급한 4개 분야별 취약성에 기반한 입체적이고 직관적인 그래픽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단순히 '위험하다', '안전하다'가 아니라 어느 지역이, 어떤 이유로, 얼마나 이상홍수의 위험에 처해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김 박사는 이를 학교의 성적표에 비유한다. 기존 방식이 학생의 실력을 1등급, 2등 급 순으로 나누는 것이라면 지역 맞춤형 이상홍수 방어시스템은 학생별로 각 과목의 점수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성적표와 같 다는 것. 김 박사는 "반에서 1등인 학생이라도 영어 점수는 낮을 수 있고, 꼴등도 국어는 잘 할 수 있다"며 "어떤 과목을 못하는지 모른다면 실력 향상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 했다.
지역 맞춤형 이상홍수 방어시스템이 제공하는 메리트는 또 있다. 분석된 위험성에 근거해 어떤 치수 대책을 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실시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시스템 상에서 사용자가 홍수방어 방안을 선택, 최적의 치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기 때문 이다.
사용자는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댐·제 방·하천 계류·유수지·펌프장 등 10개의 대안 중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시뮬레이션으로 즉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치수 대책 수립 담당자의 편의 증진을 위해 해당지역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었 던 해외의 치수 사례도 볼 수 있다. 한마디 로 이상홍수의 위험성 분석에서 대책 수립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원스톱 서비스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으로 누릴 수 있는 메리트는 지대하다. 국가적으로는 이상홍수 위험지역을 정확히 파악해 치수설비 도입의 우선순위를 선정할 수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최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치수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각 지자체들도 개별적으로 취약성을 검토할 수 있어 지역 특성을 고려한 이상홍수 방어전략 수립에 획기적 진전을 꾀할 수 있다.
물론 가장 큰 이득은 국내 이상홍수 방 어시스템을 사후대응에서 사전예방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김 박사는 "지역 맞춤형 이상홍수 방어시스템은 홍수로부터 방어해야할 지역과 피해를 최소화시킬 지역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준다"며 "제방 중심의 홍수대책에서 진일보해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과적 방재 행정 구현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부산에서 실증 테스트 추진
김 박사 연구팀은 이미 기본적인 파일럿 스터디를 거쳐 이 같은 시스템의 효용성을 확인한 상태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감 등 5 대강과 안성천 등을 시뮬레이션 했는데 시스템의 특성상 농촌보다는 도시, 그중에서도 거대 복합도시에서 가장 큰 효용성을 발휘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와 관련, 시뮬레이션에서는 몇몇 의외의 결과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일례로 다른 지역의 이상홍수 취약성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던 반면 강원도의 취약성은 크게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도의 경우 전통적으로 홍수 피해가 잦았던 탓에 수해방지 시설들이 보강된게 이 같은 결과의 원인이 라는 게 김 박사의 판단이다.
김 박사는 서울과 관련해서는 "홍수방어 시설은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중요한 시설들이 다수 밀집해 있기 때문에 위험성이 적다고는 할 수 다"며 "한번 피해가 발생 하면 막대한 재산피해가 예상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또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상홍수로부터 큰 타격을 받을 개연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았다. 이들 지역은 위험성은 높은데 비해 아직까지 큰 피해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적절한 치수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김 박사 연구팀은 지역 맞춤형 이상 홍수 방어시스템의 실질적인 효과를 확인 하기 위해 부산시와 실증실험 추진을 협의 중에 있다. 부산은 노후화된 도심과 신시 가지가 공존하고 있고, 인구밀도가 높다. 또 한 바다, 하천, 산 등 다양한 자연재해 유발 요소를 보유하고 있어 최적의 시범지역이 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생각이다.
김 박사는 "이제는 제방이 무너져서 발생하는 홍수는 거의 없다"며 "댐, 제방을 활 용한 구조적 대응보다는 선진국들처럼 비구조적 대책을 적절히 조합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어 "이상홍수는 국가도 예 측하기 어려운 만큼 무조건 나라가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라며 "대피로를 미리 파악해 놓거나 뉴스에 귀를 기울이는 등 개인들도 평상시에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준비를 스스로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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