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교육과 과학기술 부처의 통합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과학기술 부문의 추동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의 진단이다. 과거 과학기술부 산하에는 26개의 대표적인 이공계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있었다. 지금 13개 연구기관은 기초과학을 다룬다는 이유로 교육과학기술부, 나머지 13개 연구기관은 돈 버는 기술을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지식경제부에 편재돼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이끌어 온 연구기관들은 이처럼 뿔뿔이 흩어져 주무부처의 변방에 머물고 있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는 위기국면에 처한 연구기관들의 확실한 자리매김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을 가다'라는 시리즈를 마련, 운영해 오고 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연구기관들의 목표, 전략, 활동, 그리고 성과를 알려 과학기술 입국의 꿈과 취지를 되살리고자 한다. -편집자 註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는 국제 컴퓨터 통신망 으로 이제는 정보화 사회의 핵심 축이 된 상태다. 그런데 이 같은 인터넷의 발전을 견인한 웹브라우저는 기초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지원을 통해 개발됐다. 그 만큼 정부차원의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 연구 지원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은 국가의 미래경쟁력 확보를 위해 일찍부터 대규모 연구재단을 운용하고 있 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물론 일본의 학술진흥회, 독일의 연구협회가 바로 그것.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경쟁을 벌여 우위를 차지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이루려면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 연구와 여기에서 파생되는 응용기술이 필요 하다. 또한 지식정보사회를 맞아 연구 부문 간 융·복합도 필요하다. 바로 이 같은 필요성에 의해 지난 6월 출범한 것이 한국연구재단이다.
한국연구재단은 기존의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 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등 3개 연구지원 기관이 통합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연구지원 전문기관이다. 지난 1977년 설립된 한국과학재단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량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1년 출범한 한국학술 진흥재단은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를 포함한 전학문 영역에 대한 학술활동 지원에 기여해왔다. 그리고 2003년 설립된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은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협력 기반을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일부 비슷한 연구에 지원이 중복되면서 국가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대두됐고,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한국연구재단이 출범하게 된다. 즉 3개 기관의 유사기능을 통합하고, 효율성을 기반으로 일관된 지원 및 운용 시스템을 갖추도록 한다는 것.
3개 기관이 통합하게 됨에 따라 덩치도 커졌다. 실제 한국연구재단의 올해 예산은 2조6,081억 원에 달하는데, 이는 정부 R&D 예산의 21%에 해당하는 규모다. 2012년에는 예산 규모가 4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예산은 5조5,000억 원, 일본 학술진흥회는 2조300억 원, 그리고 독일 연구협회는 1조6,000억 원 규모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연구재 단은 이제 세계적 연구지원 기관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풍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실탄'이 확보 됨에 따라 과거에는 손대지 못했던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에도 과감히 나설 수 있게 됐다.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연구의 경우 장기적인 지원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과학기술 연구 풍토에서는 당장의 연구결과를 필요로 하는 연구과제에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연구재단의 올해 예산을 학문 분야별로 보면 과학기술 2조738억 원(79.5%), 인문사회 2,107억 원 (8.1%), 그리고 공통분야 3,236억 원(12.4%)이다.
과학 기술 분야의 예산은 3개 기관 통합 이전에 비해 소폭 증가한 상태지만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 연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이 분야의 예산이 크게 늘었다. 실제 기초과학 연구 지원에 6,449억 원, 그리고 원천기술 연구에 2,912억 원이 배정됐다.
한국연구재단은 오는 2012년까지 과학기술 분야의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 연구 지원 비율을 최대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 같은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 연구에 대한 지원 확대는 박찬모 이사장의 자유롭고 도전적인 연구 지원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연구가 가능한 풍토를 만들겠다"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연구자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 고 말했다.
물론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 연구에 대한 지원 확대가 반드시 노벨상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박 이사장은 "과학자의 한사람으로써 노벨상 수상이 연구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열심히 연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상을 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한국연구재단의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 연구 지원 확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지 노벨상을 목적으로 연구 과제를 배분 하거나 지원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3개 기관이 통합했기 때문에 이 같은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의 물리적 통합이 아닌 화학적 통합이 필요한 상태다. 이를 위해 박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5E 원칙을 제시했다.
5E란 탁월성(Exellence), 형평성(Equity), 효율성(Efficiency), 전문성(Expertise), 그리고 소통성(Exchange)이다. 서로 다른 조직에서 일했던 구성원들 이지만 5E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면 조직 운영의 선진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박 이사장의 생각이다.
일부에서는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 연구의 지원 확대가 '나눠먹기'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한국연구재단의 반응을 절대 'NO'다. 박 이사장은 "과학기술 연구에는 안배가 있을 수 없으며, 더욱이 나눠먹기는 금기"라면서 "5E에서의 형평성도 필요로 하는 연구에 균형 있게 예산을 지원 하겠다는 의미이지 결코 안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통합으로 조직이 비대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박 이사장은 손사레를 친다. 실제 한국연구재단은 20~30%에 달했던 통합 전 기관들의 간부 비율을 15% 수준으로 낮추었다. 또한 간부 비율의 축소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는 업무공백을 차단하고 연구예산 관리의 효율화를 위해 연구사업 관리 전문가(PM; Program Manage) 제도를 도입했다.
PM제도는 한국연구재단이 연구비를 지원하는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PM으로 선임하고, PM들에게 연구기획에서부터 연구과제 선정, 연구과정 관리까지의 전체 프로세스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 이렇게 하면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가장 필요로 하는 연구 과제를 기획 및 선정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해당 분야에서 직접 연구를 수행했던 전문가들이 PM 역할을 함으로써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물론 잘못된 관행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한국연구재단의 판단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각 학문 분야별로 20명의 상근 PM을 영입했고, 약 280명의 비상근 PM을 전문위원 형태로 두었기 때문에 국내 모든 학문 영역에 걸쳐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덕=강재윤기자 hama9806@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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