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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화 촉진한 요리

현재 지구상에는 매우 많은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다. 이미 알려진 것만 해도 동물은 120만 종, 식물은 50만 종에 달한다. 물론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도 상당한 수로 추산된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상태, 즉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한 것일까.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최근 인간의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요리가 진화를 촉진했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요리야말로 인간을 지배종족으로 만든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가리켜 흔히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인간은 확실히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여러 가지 특성을 지녔다. 지능이 고도로 발달해 불을 사용할 줄 알고, 도구를 쓸 수 있으며, 고등한 언어도 구사할 수 있다. 인간은 이 같은 지적 능력에 힘입어 타고난 물리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정복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거에는 원숭이와 다를 바 없던 인간이 어떻게 이 같은 능력을 획득하게 됐는지, 즉 진화의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성적 매력이 진화를 일으켰다는 설도 있고, 유전자 보전에 가장 적절한 개체가 살아남아 진화를 이루었다는 유전자 결정론적 시각도 있다. 개중에는 외계인 등 우주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인간의 진화를 가속화시켰다는 소설 같은 설도 있다.

이처럼 인간의 진화를 촉발시켰다고 판단되는 여러 요소 중에서 요리라는 요소에 주목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왜 요리에 주목한 것일까.

풍미를 추구하는 인간

분명 인간의 취식 행위는 다른 동물에 비해 남다른 면이 있다. 아직까지도 동물의 언어를 만족스럽게 해석할 길이 없는 만큼 동물이 먹이의 맛에 대해 가진 생각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볼 때 인간만큼 먹이의 영양뿐 아니라 맛, 엄밀히 말하면 후각과 미각이 합쳐진 풍미를 중시하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매달리는 동물은 찾기 드물다. 대부분의 동물은 초식동물이건 육식동물이건 대체로 먹이를 그냥 잡아 먹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거의 예외 없이 굽거나 찌거나 삶는 등 어떤 형태로든 요리를 해서 먹는다. 요리를 할 때 이런저런 양념을 넣어 새로운 맛을 더하기도 한다. 더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기존의 요리나 요리법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맛있는 것을 찾아 이른바 맛집 순례를 하기도 한다.

이 같은 모습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비춰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려 받아 마땅한 행동으로까지 인식되는 것도 인간 사회의 모습이다.

또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가족, 친구, 연인 간 친목을 형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행위로까지 여겨질 만큼 인간은 취식 행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단순히 생명 연장을 위한 양분 섭취 행위 이상의 의미를 적용하고 있는 것.

인간이나 동물이나 먹어야 사는 것은 다 똑같다. 사실 인간 역시 동물처럼 날 음식을 먹어도 생존 자체에는 별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인간의 식습관은 유독 각종 장치와 기법을 사용해 미각과 후각을 고의적으로 자극시키고 만족시키는 유별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식습관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 즉 인간에게만 있는 요리 문화에 인간 진화의 비밀이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 볼 만하다. 이 때문에 여러 연구자들은 이 같은 의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를 해왔다. 그런 연구자 가운데는 미국 하버드 대학의 영장류 학자인 리처드 랭햄 교수도 있다.

원숭이도 요리한 것 좋아해

랭햄 교수는 수십 년간 자연 상태와 포획 상태의 원숭이를 연구하며 그 행동을 관찰했다.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원숭이도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요리된 음식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랭햄 교수 연구팀은 애틀랜타의 여크스 영장류 센터, 독일의 라이프치히 동물원, 그리고 콩고의 침포웅가 침팬지 보호구역 등에서 원숭이들에게 각각 익힌 상태와 익히지 않은 상태의 고기, 감자, 고구마, 당근, 사과를 주었다.

그때마다 원숭이들은 언제나 익힌 음식을 먼저 집어 먹었다. 원숭이들은 익히지 않은 음식도 먹기는 했지만 익힌 음식보다 선호하지는 않았다. 이는 원숭이와 다를 바 없던 초기 인류 역시 날 음식보다는 요리된 음식을 선호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해 준다.

그렇다면 초기 인류는 왜 요리된 음식을 선호하게 됐을까. 간단히 말해 그것이 더 맛있을뿐더러 영양학적으로도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 대학의 식품 영양학자인 마이크 기들리는 요리를 통해 식품이 가지고 있는 맛과 향기가 잘 발산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요리한 음식이 날 음식에 비해 맛있다고 느끼게 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요리를 함으로써 향기가 난다는 점이 중요한데, 인간의 풍미 감각을 이루는 후각과 미각 중 후각이 미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잘 발달돼 있어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음식물을 가열하면 이른바 메일라드 반응이 나타난다. 이 반응을 통해 색이 갈색으로 변하고 좋은 냄새가 나게 되는 것이다.

오븐에서 빵을 구울 때가 대표적이다. 이때 빵은 갈색으로 변하면서 구수한 맛을 내게 되는데, 음식의 향과 맛을 좋게 해주는 이 같은 효과 때문에 식품회사들은 과자·칩·빵·시리얼 등을 구울 때 메일라드 반응을 조리비법으로 이용해 왔다.

메일라드 반응은 모든 식품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데,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갈변화 현상이라고도 한다. 지난 1912년 프랑스의 과학자 메일라드가 처음으로 발견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에너지 섭취의 효율화와 진화

랭햄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요리는 지금으로부터 180만 년 전의 초기 인류가 불 위에 실수로 음식을 떨어뜨리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야말로 우연히 시작된 것인데, 이는 음식의 질을 높여 인간의 체형 변화를 일으켰다고 한다. 즉 요리야말로 인간을 지배종족으로 만든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요리를 통해 음식물의 에너지를 보다 쉽게 섭취할 수 있게 된 초기 인류는 사고와 발명에 투자할 시간이 많아졌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는 대신 여자가 요리를 하는 등 사회적 노동 분업을 더욱 철저히 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복잡화된 사회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날 음식은 쓰고, 섬유질이 많으며,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먹어도 거북한 느낌을 준다. 또한 이 같은 음식을 씹어 소화시키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반면 요리를 하면 음식이 연해지고, 음식의 물리적 구조가 위의 소화액이 스며들기 유리하게 변화된다. 즉 음식을 씹고 소화시키는 데 에너지가 덜 들도록 변하기 때문에 그만큼 몸에 흡수되는 영양분을 쉽게 높일 수 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류가 진화해 오면서 전반적인 체형이나 두뇌의 용적은 점점 커진 반면 내장의 길이나 용적, 턱과 치아의 크기 등 음식의 섭취와 흡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의 크기는 줄어들었다. 요리를 함으로써 예전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작아져 기능이 저하돼도 상관이 없게 된 것이다.

기들리 교수의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요리를 통해 음식의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공복감도 빨리 돌아와 체격 증가를 돕는다는 것이다.

즉 음식을 요리하면 음식이 영양분을 내놓는 시간이 짧아지고, 에너지를 대단히 신속하게 대량으로 방출하게 된다. 인간은 이 에너지를 신속히 흡수하고 재차 공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의 식욕은 왕성해지고 그만큼 많은 잉여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나타났다. 소화 흡수가 쉽도록 요리하고 가공한 사료를 6개월 동안 먹은 쥐는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사료를 먹은 쥐보다 몸무게가 30%나 더 나갔다.

인간은 이렇게 축적된 잉여 에너지를 사용해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성을 높이고, 한 걸음 더 나가 더욱 큰 체형과 두뇌를 갖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이렇게 발달된 두뇌를 이용해 언어의 발달, 도구의 제작 및 사용 등 인간만의 특징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요리를 하게 됨으로써 인류는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을 섭취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날로 먹기는 어려웠던 식물뿌리나 덩이줄기 등을 쉽게 섭취할 수 있어 3대 영양소 가운데 하나인 탄수화물을 효율적으로 섭취하게 된 것이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탄수화물은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에게 있어 가장 빠르게 쓰일 수 있는 에너지 저장원이다. 실제 탄수화물 중 포도당은 고등동물의 혈액 내에서 순환하는 당으로 세포에 의해 흡수, 산화돼 대사과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또 다른 탄수화물인 글리코겐은 포도당 분자가 가지는 사슬형태로 고등동물의 간과 근육에 저장돼 스트레스를 받거나 근육 활동이 일어나면 포도당으로 분해돼 사용된다. 이 같은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할 수 있게 된 것이 인간의 힘과 체격, 그리고 지능을 늘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요리는 위험한 식품을 안전하게 먹게 해 주는 효과도 있다. 많은 식물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독성화합물을 만들어낸다. 이것들의 맛은 보통 떫거나 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떫거나 쓴 맛을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독성화합물을 피하기 위한 진화의 소산이다.

하지만 음식을 익히는 과정에서 가수분해 반응이 일어나 독성화합물이 분해돼 독성이 없는 분자로 바뀐다. 또한 요리 과정에서 음식물에 붙어있는 유해 미생물이나 이들이 분비한 독소도 파괴된다.

우연히 시작된 최초의 요리

아마도 인간 조상들은 처음에 불을 다루는 법부터 익혔을 것이다. 그 다음 난방용으로 때던 불에 우연히 음식이 닿게 됐을 것이다. 음식이 불에 닿아 요리되면 좋은 향기가 나는 만큼 그 이후에는 의도적으로 음식을 불에 구워 먹게 됐을 것이다. 이는 랭햄 교수 이론의 큰 줄기다.

물론 랭햄 교수의 이론은 개연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해 입증하기 어렵다. 100만년 이상 과거에 불을 피운 자리는 잘 보존되지 않기 때문에 언제부터 요리가 시작됐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설령 당시의 불 피운 자리가 발굴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과연 의도적인 발화였는지, 아니면 자연 상태에서 얻은 불을 이용하는 정도였는지 명확히 규명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아들레이드 식음료연구센터의 센터장인 로저 하덴 박사는 요리가 인간의 진화와 발달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초기 인류는 깜부기불이나 재 속에 음식을 묻어 천천히 요리하는 법도 익혔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천천히 요리된 음식이 불에 바로 구운 것보다 더욱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됐을 것이라고 하덴 박사는 말한다.

얼마 안 있어 원시적인 화덕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원시시대의 화덕 구조는 불 주변에 나무토막이나 돌 등의 받침을 놓고, 그 받침 위에 음식을 올려놓아 굽는 구조였다. 캠프파이어에서 음식을 굽는 것보다 약간 더 진화한 단계인 셈.

초기 인류가 각 대륙으로 퍼져나감에 따라 요리 기술도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전파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날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알려진 중동지방에도 요리 기술이 전파되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9,000년 전의 공용 흙화덕이 출토되기도 한다.

현재 인류는 먹이사슬의 최고 단계에 올라 있어 먹지 못하는 동식물이 거의 없다. 그리고 상당수의 인간들은 오늘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하던 수준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아직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는 아마도 선사시대 때부터 진화와 생존을 위해 전해 내려온 본성의 일부일 것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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