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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INTERVIEW] 김영중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

창의성과 혁신성 겸비한 천연물 신약 연구의 개척자

페니실린, 아스피린, 모르핀. 이들은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세계적 의약품이다. 그런데 이들은 의학적으로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약리 활성 물질의 원천이 천연물이라는 것. 실제 페니실린은 푸른곰팡이,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모르핀은 양귀비가 원료다.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천연물에서 원료를 추출·합성하는 방식으로 개발된 신약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최근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의 치료제 타미플루도 그중 한 가지. 타미플루는 목련과 상록수의 열매인 팔각회향(八 角茴香)에 함유된 시킴산이라는 성분으로 합성한 물질이다.

서울대 약학대학 김영중 교수는 바로 국내 천연물 신약 연구를 이끌고 있는 생약학계의 개척자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과학자다.

김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타미플루와 같은 인류 보건에 기여하는 천연물 신약의 개발을 위해 국내 자생식물을 중심으로 천연물 속에 숨겨진 약리 물질을 찾아 작용기전을 규명하는데 모든 연구 열정을 쏟아 부었다.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생약학계의 대모로 불리지만 사실 김 교수도 자신이 생약 학자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고교 때는 물론 서울대 약대에 입학한 후에도 생약학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과 일리노이 대학에서의 석·박사를 할 시절에는 아예 약 학도 아닌 생화학을 전공했다.

그랬던 김 교수와 천연물의 첫 조우는 1978년 우연히 이뤄졌다. 박사 취득 후 서울대의 생약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 것. 김 교수는 "동맥경화의 원인 규명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는데, 천연물에서 분리한 고분자 물질을 혈관 결체조직의 대체물로 사용 했다"며 "이것이 기화가 돼 교수로 임용됐 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약학자로서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연구비, 연구시설 등 국내 연구기반이 정상적 연구를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미래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직접 해외 유학을 권유해야 했을 정도였다. 김 교수 역시 방학 때면 미국으로 날아가 연구를 했으며, 연구 시약과 재료를 얻어오기 위해 구걸도 마다 하지 않았다.

특히 김 교수는 연구환경 문제에 더해 자신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과도 맞서야 했다. 생약학 분야의 학문적 배경이 취약한 생약학자라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며 주변의 우려를 잠재웠다. 미국 유학시절 습득한 세포배양 기술을 천연물의 약효 규명에 적용, 국내 생약학 연구에 획기적 진전을 이끌어 낸 것.

김 교수는 "당시 약리 물질들은 동물실 험을 통해 약효를 확인했지만 천연물은 약리성분 추출량이 너무 적어 동물로는 검증이 어려웠다"며 "동물 대신 세포단위에서 실험하면 미량으로도 약효 규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판단은 주효했다. 김 교수의 시도는 천연물 연구에 첨단생명공학 기술을 접목 시킨 최초의 사례가 됐고, 국내외 천연물 신약 연구의 흐름을 바꿔놓는 단초로 작용했다. 최근 강조되고 있는 학문간 융합을 이미 수십 년 전에 몸소 실천한 것이다.

김 교수는 또 서울대에서는 처음으로 식물조직 배양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특정 식물에서 우수한 약리 성분을 찾아내더라도 이를 대량 배양해 공급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같은 일련의 연구 활동은 1970~80년 대의 평범한(?) 생약학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혁신 그 자체였다.

한번은 김 교수가 미국 뇌신경과학회에 서 논문을 발표하자 미국 국립보건원(NIH) 관계자가 직접 찾아와 연구비 신청을 권고 했을 정도였다. 김 교수는 이렇게 지난 1999 년부터 5년간 까다롭기로 유명한 NIH에서 20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김 교수는 "내 자신이 생약학 전공자가 아니었기에 통념에서 벗어나 창의적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며 "이 점에서 학문에도 틈새를 공략해 혁신을 꾀할 수 있는 일종의 이단 자들이 종종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노력으로 김 교수는 지금까지 다양한 천연물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KD501'이다. KD501은 단일 생약 추출물로 구성된 치매 치료용 천연물질로 현재 동물실험을 마치고 광동제약에서 임상 2상이 진행되고 있다. 생약학자로서 김 교수의 업적을 말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또 있다. 10여년의 노력 끝에 일궈낸 약초원이 바로 그것이다. 약초원은 쉽게 말해 약이 될 수 있는 식물들을 수집해 키우고 연구하는 장소다.

자연 상태의 약초는 기후·지형·계절에 따라 변화가 심하고 멸종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함으로서 식물 자원 보호, 생태계 복원을 꾀하고 표준화· 규격화 연구도 수행하는 것. 즉 약초원은 천연물 신약의 개발과 제품화를 위한 필수 기반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가 처음 약초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약대 학과장의 중임을 맡은 지난 1989년부터다. 서울대 약대 학과장은 부설 약초원의 원장을 겸직해야 했기 때문이 다. 문제는 이 약초원이 이름만 있을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학교에는 약초원을 위한 유휴 부지조차 없었다.

이에 김 교수가 찾아낸 돌파구는 정부 소유의 유휴지였다. 이를 활용하는 방안은 약초원에 대한 김 교수의 열의와 고민을 지켜봐왔던 한 서무직원의 아이디어였다. 현재 경기 일산의 4만㎡ 부지에 1,000여종의 초본식물을 확보하고 있는 서울대 약초원은 부지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뛰어 다닌 김 교수의 땀과 열정의 결실이다.

김 교수는 "일산 약초원 부지는 원래 3,300㎡에 불과했다"며 "전국에 조금씩 나뉘어져 있던 국유지를 찾아 약초원 주변의 사유지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지금의 규모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잡초 를 뽑고, 돌을 치우는 것은 물론 불법 점유자들의 이주를 설득하고 불법 묘를 이장하는 것 역시 김 교수의 몫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약초원은 역대 과학 관련 장관들이 모두 다녀갔을 만큼 이제는 서울대의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했다. 김 교수는 현재 경기 파주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20만 ㎡ 규모의 국유지를 찾아내 목본식물 수목원을 조성하고 있는 상태다.

김 교수는 "일반 신약과 달리 천연물 신약은 기본적으로 여러 성분이 함유된 추출물을 원료로 한다"며 "암을 비롯한 대다수 질병들은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약리작용을 하고 부작용까지 적은 천연물 신약의 효용성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생약학계의 개척자이자 혁신가로서 천연물과 함께 30여년을 살아온 김 교수가 정년을 2년 앞둔 지금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궁금해 하자'다. 김 교수는 "연구자는 시키는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사에 궁금증을 갖고 열정적으로 연구에 임해야 한다"며 "하나의 단초라도 잡히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신속하게 밀어붙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중 교수가 추천한 제5대 릴레이 인터뷰 주자는 서울대 수학교육과의 권오남 교수다. 김 교수는 권 교수가 이화여대에서 서울대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활동을 병행하는 모습이 동료 및 선·후배 과학기술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고 추천의 변을 밝혔다.




김영중 교수 프로필

1968 서울대 약대 학사
1970 미국 인디애나대학 석사
1976 미국 일리노이대학 박사
1978~현재 서울대 약대 교수
1989~현재 서울대 약대 약초원 원장
1996~1997 한국생약학회 회장
2003~2004 서울대 여교수협의회 회장
2005~현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부회장
2008~현재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사
2008~현재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감사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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