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는 전설 속에 존재하는 흡혈귀.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새로운 콘텐츠 아이콘으로 부상하며 마치 실재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멸의 존재로 알려져 있는 뱀파이어는 정말 존재할까? 과학의 눈으로 뱀파이어에 대한 궁금증을 파헤쳐 본다.
뱀파이어(Vampire, 흡혈귀)의 가장 큰 매력은 젊음을 유지한 채 영생한다는 것이다. 영화 '트와일라잇(Twilight)'과 속편인 '뉴 문(New Moon)'의 남자 주인공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는 고교생의 외모를 간직한 채 무려 108년을 살아온 뱀파이어.
그는 지적인 이미지에 섹시한 외모, 정의감, 그리고 배려 깊은 심성의 소유자다. 게다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완벽한 육체적 능력으로 인해 전 세계 젊은 여성들의 이상형이 된 상태다.
사실 뱀파이어에 매료된 사람들은 단지 젊은 여성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른바 뉴 문 엄마로 불리는 중년 아줌마 팬들의 열기 또한 뜨거운 것.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 같은 뉴 문 엄마들을 겨냥한 각종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뱀파이어 열풍은 비단 영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보더스나 반스앤노블 같은 대형서점은 1년 전 부터 트와일라잇과 뉴 문의 특별코너를 마련해 놓고 원작소설 세트와 DVD, 캐릭터 상품을 판매해 왔다. 음반가게에서도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사운드트랙 음반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으며, 신문 가판대에는 출연 배우들이 표지에 등장한 각종 잡지들이 진열됐다.
국내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뉴 문은 개봉 첫 주에만 전국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극장가를 평정하고 있다. 또한 각종 미디어에는 로버트 패틴슨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전 세계는 뱀파이어에 대한 관심을 넘어 일종의 신드롬에 휩싸이고 있는 셈이다.
뱀파이어, 그들은 누구인가
뱀파이어는 늑대인간, 몽마(夢魔), 그리고 악마 등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선 늑대인간과 비교해보면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물론 인육을 먹느냐 아니면 피를 빠느냐의 차이가 있다. 뱀파이어는 죽은 자로서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다. 그리고 몽마나 악마와 비교하면 원래 인간이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다. 뱀파이어는 죽은 인간의 시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뱀파이어는 터키어의 우베르(uber; 마녀)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세르비아어의 뱀피르(vempi; 날지 않는 사람), 폴란드어의 우피오르(upior; 날개 달린 망령)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뱀파이어는 원래 인간이었기 때문에 외견상으로는 인간과 차이가 없다. 다만 손톱이 길고 흉측하게 구부러져 있으며, 피부는 팽팽하고 창백한 것으로 묘사된다. 게다가 입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
아일랜드의 작가 브람 스토커가 저술한 '드라큘라'에서는 그림자가 없거나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특성도 나온다. 또한 낮에는 자신의 관 속에 들어가서 자고, 밤이 되면 일어나 사람을 죽여 그 피를 빨아 마신다. 물론 집 안으로 숨어들어가 자고 있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경우도 있다.
피를 빨린 희생자는 죽은 다음 뱀파이어로 부활,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떠돌아다니게 된다. 만일 시체가 뱀파이어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시체의 목을 절단해야 한다.
또는 입속에 화폐를 넣거나 시체를 관 속에 넣을 때 밑을 보게 하고 자물쇠 등으로 뚜껑을 열지 못하게 해야 한다. 특히 뱀파이어는 마늘을 싫어하기 때문에 입속에 마늘을 넣어야 한다는 말도 전해진다.
마늘은 뱀파이어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문이나 창문에 마늘을 걸어놓거나 문질러 놓으면 그곳을 통해 집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 뱀파이어 퇴치와 관련해서는 산사나무로 만든 말뚝으로 심장을 꿰뚫어 버리는 방법도 알려져 있다. 들장미나무나 물푸레나무, 백양나무로 말뚝을 만들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새빨갛게 달구어진 쇠말뚝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인 퇴치수단이 아니라고 한다. 단순히 뱀파이어를 무덤에 못 박아 놓는 의미밖에 없다는 것. 존재 자체를 말살하기 위해서는 목을 잘라야 하지만 가장 효과가 확실한 것은 뱀파이어를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뱀파이어를 없애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 관한 것인데,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그 같은 존재라는 얘기다.
뱀파이어는 피를 빨기 위해서만 인간 앞에 출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살아 있는 인간과 성교, 아이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는 '담피르'라고 불리며 뱀파이어를 죽이는 능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담피르도 일단 죽으면 뱀파이어가 된다. 이밖에 토요일에 태어난 사람은 뱀파이어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뱀파이어의 특이한 능력으로는 우선 변신 능력을 들 수 있다. 늑대·쥐·고양이·개구리 등으로 변신할 수 있으며, 크기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 능력 덕분에 어떤 곳에도 침투할 수 있으며, 자신의 무덤을 파헤치지 않고도 관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또한 뱀파이어는 늙지 않는 영원불멸의 존재로 알려져 있다. 시체이기 때문에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은 당연한지 모른다. 하지만 시체라면 당연히 발생해야 할 부패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무덤을 파헤쳐 보면 뱀파이어는 살아 잠들어 있는 것 같은 상태로 관속에 누워 있다고 한다.
전설속의 뱀파이어 탄생 배경
뱀파이어 신드롬을 주도하고 있는 뉴 문에 이어 지난해 12월 3일에는 뱀파이어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는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카운테스'도 개봉됐다.
바토리는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무려 600명의 처녀들을 납치, 피로 목욕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녀는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의 모델이기도 하다. 이 끔찍한 실화는 타인의 피를 빨아들여 젊음을 유지하는 뱀파이어 전설의 원형이 됐다.
15세기 루마니아의 영주 블라드 체페슈(1431~1476년)도 뱀파이어의 원형이 된다. 잔혹한 성품의 그는 전쟁에서 잡아온 포로를 산 채로 꼬챙이에 찔러 죽이는 것을 즐기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인류 학자 폴 바버는 '뱀파이어, 부활과 죽음'이라는 책을 통해 뱀파이어 전설의 탄생 비밀을 파헤친다. 그에 따르면 뱀파이어에 대한 첫 기록은 중세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질병이나 가뭄처럼 이해하기 힘든 불행이 마을을 덮치게 된다. 과학이 기상현상이나 질병에 대해 올바른 설명을 하기 이전의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원인불명의 불행을 모두 뱀파이어 탓으로 돌리게 된다. 한마디로 뱀파이어를 탓하는 게 불행을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던 것.
당시 사람들은 누군가 저주를 퍼부었기 때문에 불행이 자신들의 마을에 왔고, 저주를 퍼부은 사람은 최근에 사망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 쳐보고 깜짝 놀라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입술에 피가 묻어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죽은 자가 되살아나 산 자를 흡혈한 것일까. 이는 무지와 미신이 융합된 오해 때문이다. 겨울에 매장되거나 잘 밀봉된 관의 경우 부패가 수주, 혹은 수개월 이상 지체된다. 이후 내부 장기가 부풀어 오르면 혈액이 입술 쪽으로 몰리게 되고, 마치 죽은 사람이 흡혈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
현재 시신의 부패과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세시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뱀파이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됐다는 게 바버의 주장이다.
지난해 3월 이탈리아 피렌체 대학의 인류 학자 마테오 보리니는 베네치아의 라자레토 누오보 섬의 무덤에서 입에 작은 벽돌이 물려 있는 여성 유골을 발견했다. 시신의 입에 작은 벽돌을 넣었다는 것은 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
광견병과 포르피린증 환자 가설
또 다른 과학자들은 광견병과 포르피린증 환자들에 의해 뱀파이어의 존재가 사실로 굳어졌다는 이론을 내놓고 있다. 실제 스페인의 뇌 과학자인 고메즈 알폰소 박사는 지난 1998년 9월 '뱀파이어 전설을 설명할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뱀파이어와 광견병 환자의 유사점을 거론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광견병 바이러스는 개의 침 속에 섞여 있다가 물린 상처를 통해 인간의 체내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는 신경계에 침범, 각종 이상증세를 나타내게 한다. 자극에 매우 민감해져 물, 빛, 냄새, 그리고 거울을 싫어하고 피하게 되는 게 바로 그것. 이는 빛을 두려워하며 마늘 냄새를 싫어하는 뱀파이어의 특성과 비슷하다.
특히 공수병(恐水病)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광견병 환자는 물을 싫어하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성수(聖水)가 뱀파이어를 쫓는다는 설정이다. 뱀파이어가 밤에 활동하며 주로 이성을 공격한다는 설정 역시 광견병 환자들과 무관치 않다. 일반적으로 광견병 환자는 신경계의 이상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다니며 과도한 성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포르피린증도 뱀파이어 전설을 낳은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포르피린증은 유전적인 이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혈액 질환으로 3만 명 중 1명꼴로 발병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는 헤모글로빈을 주요 성분으로 하고 있는데, 포르피린은 헤모글로빈 합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다. 그런데 포르피린에 이상이 생겨 헤모글로빈을 합성하지 못하고 포르피린 전구체가 그냥 몸에 쌓이게 돼 이상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포르피린증이다.
미국의 행동과학자 스티브 후안은 그의 저서 '뇌의 기막힌 발견'에서 포르피린증 환자가 예전부터 전해지는 뱀파이어와 외형 및 위험 요소에서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일단 포르피린증이 발병하면 간 기능 이상과 함께 복통, 빈혈이 생긴다. 또한 혈액이 제대로 생성되지 않아 피의 양이 줄어들고 창백해지게 된다. 이와 함께 소변이 딸기주스처럼 붉게 나오기도 하고 햇빛에 대한 과민반응을 일으켜 일광 아래에서는 피부에 수포가 생기거나 벗겨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잇몸이 약해져 송곳니가 두드러져 보이 는 환자도 생긴다.
햇빛을 두려워하고 뾰족한 송곳니를 가진 창백한 포르피린증 환자들은 바로 뱀파이어의 인상착의와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이 질병은 혈액의 이상 및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환자들은 정상적인 피를 마시면 복통과 구토도 진정되고, 햇빛에 대한 과민반응도 덜해진다고 믿었다.
오늘날의 포르피린증 환자들은 발달된 의학 덕분에 주사를 통해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중세시대에는 주사를 통한 혈액 주입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다량의 혈액을 마시는 방법만이 필요한 헤모글로빈을 수급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다량의 혈액을 섭취한다고 해도 실제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헤모글로빈이 위벽을 통과해 혈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해도 그 양이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르피린증 환자들은 유일한 치료법인 혈액 섭취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그들은 뱀파이어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근친간의 결혼이 통상적이었던 중세 유럽은 유전 질환의 발병 환경으로 더없이 적합했기 때문에 포르피린증은 더욱 창궐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뱀파이어로 취급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어 외부와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가 뱀파이어의 근원지가 됐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유전공학으로 만드는 뱀파이어(?)
지난해 일부 과학자들은 유전공학을 이용해 뱀파이어를 탄생시키고, 이를 할로윈데이 때 공개한다는 다소 황당한 계획을 발표했다. 해프닝으로 그치기는 했지만 이들은 흡혈박쥐의 진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과연 유전공학적으로 뱀파이어를 탄생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미국 와이오밍 대학의 유전학 연구팀은 "아메리카 열대지방에 사는 흡혈박쥐는 2,600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다"며 "유전적 증거에 따르면 포유류의 기생충을 주식으로 하던 박쥐가 점점 흡혈박쥐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흡혈박쥐는 암수가 함께 살며, 날이 어두워지면 은신처를 떠나 지상 1m 상공을 난다. 보통 말·당나귀·소의 피를 빨아먹는데, 동물은 습격당하고 있는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흡혈박쥐의 흡혈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연구팀에 따르면 흡혈박쥐는 날카롭고 돌출된 앞니를 가지고 있다. 혀는 홈통처럼 생겼는데, 이 때문에 흡혈을 할 때는 피를 빨 필요 없이 모세관 현상에 의해 자연스럽게 입안으로 피가 흘러들어오게 된다.
모세관 현상이란 액체 속에 폭이 좁고 긴 관을 넣었을 때 관 내부의 액체 표면이 외부의 표면보다 높거나 낮아지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액체의 응집력, 그리고 관과 액체 사이의 부착력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식물의 뿌리에서 무기양분과 물을 흡수하는 것도 모세관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흡혈박쥐의 침에서는 피가 엉기는 것을 방지하는 PA 단백질이 분비돼 희생물의 피가 굳지 않게 한다. 연구팀은 "흡혈박쥐의 PA 단백질 유전자는 비(非) 흡혈박쥐의 단백질 유전자와 상당한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시카고필드뮤지엄의 동물학 연구팀 역시 "PA 단백질 유전자로의 변화가 흡혈박쥐로 진화하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전공학자들은 최근 생명공학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박쥐 게놈 연구를 통해 박쥐가 흡혈박쥐로 진화하게 된 비밀을 밝혀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진화의 비밀을 통해 뱀파이어를 탄생시키는 것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존재하는 것 불가능
뱀파이어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는 물리학자들의 관심도 높다. 최근 미국의 언익스플레인드-미스터리 온라인 판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때 뱀파이어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연구논문을 게재해 관심을 끌었다.
뱀파이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논문의 주인공들은 미국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 물리학과의 코스타스 에프 티미우 교수와 소항 간디 교수.
이들은 지난 2007년 '영화 속 공상 대(對) 물리학적 현실'이란 기고문을 통해 뱀파이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증명의 주안점은 바로 인구 문제.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를 먹고 살며 피를 빨린 인간은 뱀파이어가 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
에프티미우 교수 연구팀은 "뱀파이어 전설의 창안자는 기본적인 수학 지식이 없는 게 분명하다"며 "등비수열의 기본원리만 적용해도 뱀파이어가 존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전설을 참고로 최초의 뱀파이어가 1600년 1월 1일 출현한 것으로 가정했다. 당시 지구촌의 인구는 5억3,687만911명. 뱀파이어가 한 달에 한 번 흡혈한다고 가정하면 1600년 2월 1일에는 2명의 뱀파이어와 인간 5억3,687만910명이 존재하게 된다.
재차 한 달 뒤인 3월 1일에는 4명, 4월 1일에는 8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증가하면 결국 2년 6개월, 즉 30개월 만에 지구촌의 인간은 모두 뱀파이어가 된다. 따라서 더 이상 뱀파이어가 흡혈할 사람이 없게 되기 때문에 뱀파이어의 존재 자체는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들 학자는 인간 원리(a nth ropic principle)를 인용하며 주장을 끝낸다. 인간 원리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공식이다. 즉 인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뱀파이어는 있을 수 없으며, 반대로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면 인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뱀파이어, 매력적인 문화 콘텐츠
뱀파이어는 현대 대중문화에서 가장 매력 있는 콘텐츠 가운데 하나다. 피를 빨아먹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심을 자극한다. 뱀파이어가 십자가, 마늘, 쇠말뚝 같은 것에 무너지는 설정은 인간의 실존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또한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상황은 존재의 비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때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적이고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무려 600명의 처녀들을 납치해 피로 목욕을 한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잔인한 집착, 그리고 전쟁에서 잡아 온 포로를 산 채로 꼬챙이에 찔러 죽이는 것을 즐기던 블라드 체페슈의 잔혹성은 당시의 대중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힘들었다. 대신 대중들은 이 같은 비현실적 상황을 뱀파이어의 책임으로 돌렸다는 얘기다.
브람 스토커가 소설 드라큘라를 써낸 이후 무섭고도 신비로운 뱀파이어의 텍스트는 수많은 소설과 영화로 변주됐다. 지난 1950년대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드라큘라 영화가 미녀의 목덜미를 깨무는 성적인 코드의 흡혈귀를 창조한 이래 뱀파이어는 사랑엔 약한 존재(게리 올드먼 주연의 드라큘라)로, 실존적 고민을 하는 존재(뱀파이어와의 인터뷰)로, 그리고 인간을 위해 종족을 사냥하는 존재(블레이드)로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대중을 매혹시킬 수 있는 새로운 얘깃거리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뉴 문은 뱀파이어라는 전설이 가공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새로운 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증명에 의해 영원불멸의 뱀파이어는 존재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음이 드러났다. 뱀파이어의 존재를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뱀파이어는 단지 대중에게 어필하는 히어로 콘텐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정기수기자 guyer7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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