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미국 매사추세츠 소재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해양포유류 전문 연구자인 마이클 무어 박사의 설명으로는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모든 포유류는 광견병에 걸릴 수 있다.
게다가 개 이외에도 박쥐, 코요테, 여우, 미국너구리 등은 가장 흔한 광견병 바이러스 보균동물이다. 이들에게 물려도 광견병이 옮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육상동물이다. 바다 깊은 곳에 사는 고래를 물어서 광견병을 전염시킬 개연성은 현실적으로 지극히 낮다. 이 점에서 사실상 이 질문의 핵심은 과연 육상동물이 고래를 물 수 있을까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무어 박사는 이에 대해 "지금껏 광견병에 걸린 고래에 대한 보고는 단 1건도 없었다"고 전제하면서도 "전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가 예로 든 한 가지 가능성은 광견병 바이러스 보균동물이 해안에서 쉬고 있는 바다표범을 물었을 때다. 바로 이 바다표범이 헤엄을 치다가 고래를 물게 된다면 고래에게 광견병이 전염될 수 있다는 것. 실제 지난 1980년 노르웨이의 스발바르제도에서 광견병에 걸린 고리무늬 바다표범이 포획돼 학계의 우려를 낳은바 있다.
무어 박사는 "10년 전부터 미국 매사추세츠 남동부 케이프코드의 코요테들이 하프 바다표범을 먹이로 삼기 시작했다"며 "적으나마 바다표범에 대한 광견병 전염 우려가 있어 직원들에게 예방주사 접종을 권했다"고 설명했다.
바다표범이 고래를 공격하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하지만 광견병에 걸린 동물은 평소와는 다른 엉뚱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단지 이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고래가 바다표범에 물린 뒤 광견병 증세를 보이려면 몇 년은 지나야 한다. 광견병이 발병되기 위해서는 물린 부위에 있는 바이러스가 뇌와 중추신경계까지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견병 바이러스는 신경계를 타고 하루에 이동하는 속도가 8~20㎜에 불과하다. 길이 15m의 고래가 꼬리를 물렸다면 증세가 나타나기까지 자그마치 2~5년은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일 고래가 광견병에 걸린다면 도대체 어떤 증상을 보일까.
미국 애틀랜타 소재 조지아 아쿠아리움의 그레고리 보사트 수석 수의사는 "입에서 거품이 나오겠지만 물속이라서 잘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고래에게도 광견병 바이러스는 중추신경이 제어하는 운동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로 인해 이상하게 헤엄을 치거나 아예 헤엄을 못 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보사트는 초음파를 활용한 고래의 반향정위(反響定位)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향정위란 동물이 스스로 소리를 내서 그것이 물체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음파(音波)를 받아 자세와 위치를 잡는 것을 말한다.
광견병의 또 다른 증세는 물을 두려워하는 공수(恐水) 증상이다. 이는 물에서 사는 고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증상일 것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고래가 종종 해안으로 뛰쳐나와 죽음을 맞는 것이 광견병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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