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인간 생물학적 자원의 상품화

인류는 유사 이래로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상품화해 왔다. 과거에는 노예제도로 노동력을 상품화했고, 근현대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통해 심미적으로 뛰어난 외모를 상품화했다.

그리고 생명공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서는 신장, 심장, 간, 각막, 뼈, 피부 등 인간의 몸에 있는 모든 생물학적 자원에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매겨놓았다. 하지만 그 이익은 정작 몸의 소유주에게 돌아가지도 않는다. 의사, 생물학자, 그리고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것.

인간이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과학연구와 의학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수탈당한다면 지난 계몽주의 시대를 통해 간신히 얻은 존엄성과 자유라는 가치마저 도로 빼앗길지 모른다.


인간의 가격은 어느 정도나 될까. '인간에 대한 완전연구'라는 저서를 쓴 B. A. 하워드는 인간의 몸을 이루는 물질이 다음과 같다고 주장했다.

*물 38ℓ
*비누 7장에 해당하는 지방
*9,000개의 연필심을 만들 수 있는 탄소
*2,200개의 성냥을 만들 수 있는 인
*중간 크기의 못을 만들 수 있는 철분
*닭장 1개를 하얗게 칠할 수 있는 칼슘
*극미량의 코발트, 요오드, 아연, 구리, 몰리브덴, 티타늄, 몰리브덴


이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5,000~6,000원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인간의 가치를 설명할 때조차 조자룡 헌 창 쓰듯 하워드의 주장을 인용한다. 인간의 가격에 대해 이처럼 비관적 느낌을 들게 하는 하워드의 주장은 과연 맞는 것일까.

사실 억대를 호가하는 고급 승용차도 원자재 가격만 따지면 몇 푼 안 된다. 정확한 가격은 그때의 시세에 따라 들쭉날쭉하지만 누구나 50만~100만 원 이하의 돈만 있으면 승용차 한 대를 만들 수 있는 원자재, 즉 철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고급 승용차가 같은 무게의 철보다 수백 배 비싼 이유는 이를 정밀하게 가공, 고객이 원하는 성능을 갖춘 '상품'으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제작원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승용차 한 대의 효용은 같은 무게의 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크다. 하워드는 인간의 가격을 따질 때 이 같은 점을 무시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철이라는 원자재를 가공해 만들어진 승용차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 역시 유전자라는 설계도를 통해 만들어진 부가가치 높은 '제품'이다. 인간은 육체를 이용해 노동을 할 수 있으며, 이외의 여러 가지 일도 할 수 있다. 지능·학습능력·언어구사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새로 배우는 것은 물론 읽고, 쓰며, 말할 수도 있다.

배운 것을 토대로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똑같은 인간을 생산해 내는 기능 역시 보유하고 있다. 수명 또한 길어서 천재지변, 질병, 사고 등을 당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60~70년은 사용이 가능하다. 이런 인간의 가격이 5,000~6,000원이라면 너무 싼 것 아닌가.

노예제도를 통한 인간의 상품화

인간의 몸을 상품화하려는 시도는 유사 이래 지속돼 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예제도. 노예제도가 사라진 것은 극히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경이며, 모든 나라에서 노예제도를 불법화한 오늘날에도 일부 국가에서는 암암리에 현대판 노예가 존재하고 있다.

노예란 물건과 마찬가지로 소유를 당하고, 돈으로 사고 팔 수 있 으며, 마음대로 일을 시킬 수 있는 인간을 말한다. 엄밀히 말해 노예제도의 전성기 당시 대부분의 노예 소유주들은 노예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축과 노예의 차이점은 가축이 동물이고 노예는 인간이라는 점이 아니었다. 가축은 말을 할 수 없는 동물이고, 노예는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게 노예 소유주들의 생각이었던 것.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그리스인보다 열등한 인종은 노예로 써도 아무 도덕적 하자가 없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물론 노예의 권리로 초점을 맞추면 시대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났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의 노예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었고, 재산을 보유할 권리도 있었으며, 이렇게 모은 재산을 사용해 자유민 신분을 획득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의 흑인 노예는 돈으로 자유민 신분을 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노예는 어느 정도의 상품적 가치를 갖고 있었을까. 서기 1세기 로마제국의 경우 일반적인 노예는 당시 화폐 단위로 500~1,500 데나리우스, 포도농사에 숙련된 노예는 2,000 데나리우스 정도였다.

그리고 노래를 잘 부르는 여자 노예는 4,000 데나리우스, 예쁘고 젊은 여자 노예는 6,000 데나리우스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로마 시민의 연평균 소득이 500~1,000 데나리우스 정도였다고 하니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노예는 의외로 고가품이었던 셈이다.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에서도 노예의 가격은 비쌌다. 기원전 1세기 중국 한나라에서 노예의 가격은 1명 당 1만전이었는데, 이 역시 당시 서민의 연평균 소득과 맞먹는 액수였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노예의 가격은 1명 당 200~500 드라크마 사이였다. 당시 아테네 서민의 연평균 소득은 300 드라크마.

이렇게 비싼 노예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획득함으로써 자국의 산업과 부를 신장시키기 위한 노예 강탈 전쟁은 과거 전쟁의 주된 양상 중 하나였다. 게다가 노예는 다른 상품과 달리 사오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끌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투자도 필요했다. 기본적인 의식주 제공은 물론 다치거나 병이 들어 노동력이 저하되지 않도록 소유주의 세심한 주의가 요구됐던 것.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시대를 그린 예술작품을 보면 포악한 노예 소유주가 노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노예를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던 당대의 가치관으로 보더라도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남의 노예를 죽인 사람은 살인죄에 해당하는 형벌까지는 아니더라도 고가의 재산을 파괴한 데 따른 중형을 선고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노예에게는 어떤 종류의 노동도 시킬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섹스에 관련된 것도 포함돼 있다. 구약성경에도 노예 소유주와 여성 노예 간의 섹스에 관련된 규정, 그리고 여성 노예와 결혼하고자 하는 노예 소유주를 위한 절차 등이 명시돼 있다. 예쁜 여자 노예일수록 비싸게 팔렸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노예제도는 19세기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계몽주의 사상의 전파로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던 계급 제도가 힘을 잃고, 기계가 인간의 노동 중 상당 부분을 떠맡게 됐기 때문이다. 기계는 노예에 비해 생산효율이 월등했으며, 비용 면에서도 경제적이었다.

이렇듯 노예에 의존해 산업을 꾸려나가던 사회가 기계화된 공업사회로 바뀌어 나가는 과정에서 무력충돌까지 일어난 게 바로 미국의 남북전쟁이다.

당시 미국의 남부는 노예 노동력에 의존한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하지만 이미 공업사회로 돌입한 북부는 노예가 필요 없었을 뿐더러 풍부한 공산품을 소비할 새로운 시장이 필요, 남부에 노예제도 폐지를 요구한 것.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해방돼 비교적 윤택한 자영농민으로 전환되면 그만큼 남부에도 북부의 공산품을 소비할 시장이 생긴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노예 해방으로 인한 농업 생산비용 상승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남부는 미합중국을 탈퇴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남북전쟁은 4년간의 격전 끝에 남부의 패전으로 끝이 났다. 이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노예 노동력이 필요 없게 됐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했다.

노예제도 이후의 인간 상품화

노예제도가 몰락했다고 해서 인간, 특히 몸의 상품화가 종식됐다고 볼 수 있을까. 한 걸음 더 나가 인간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경제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인간의 상품화는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으며, 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오른 가격으로 얻는 이익은 몸의 소유주가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노예제도가 붕괴된 이후 나타난 몸의 상품화는 얼마든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바로 20세기 초반부터 부각된, 스타 시스템을 주축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물론 이전에도 곡마단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별로 큰돈이 벌리는 것도 아니었고, 종사자들에게 명예를 안겨주는 것도 아니었다.

미미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오늘날과 같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은 영상 및 음향 기록매체의 비약적 발전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대중들의 판타지를 먹고 산다. 사회에서는 '광대'로 무시당할지언정 무대에 오르는 사람은 출중한 외모와 목소리, 그리고 뛰어난 연기력을 통해 대중들의 판타지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문과 방송, 영화관 등 대중매체의 비약적 발전은 과거 공연 장소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들의 모습을 전국, 아니 전 세계로까지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들의 몸이 갖는 파급력의 크기와 범위를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늘려놓은 계기가 됐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들이 이 같은 '블루오션'의 진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화가 발명되고 10여 년 정도 지나 미국에는 스타 시스템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이는 영화의 출연자를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홍보와 영업의 중심축으로 격상시켜 놓고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써먹던 시스템의 중심에는 언제나 종사자들의 심미적으로 뛰어난 외모, 즉 몸이라는 상품이 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구축된 이후 현대의 대중들은 스타들의 멋진 몸을 소비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 화보집, 그리고 음반을 소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과 동일해지려고 한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미국의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소비해 주는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팔린 엘비스 관련 상품의 수익은 무려 5,500만 달러나 된다. 스타가 사망한 후에도 계속 수익이 나올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노예제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수지 맞는 몸 장사인 셈이다.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 상품화

엘비스 관련 상품 중에서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의 DNA를 첨가해 만든 향수다. 이 향수는 유명인의 DNA를 첨가한 향수를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 마이 DNA 프래그런스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이 회사는 인간의 머리카락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이용해 향수를 제작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유명인들의 DNA를 사용해 그들의 독특한 체취를 재현하는 것. 엘비스뿐만 아니라 마릴린 먼로, 나폴레옹, 그리고 영국 국왕 에드워드 4세의 향수도 만들어 팔고 있다.

별난 상술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이 같은 마케팅 전략에서 인간의 몸을 상품화하는 무서운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유전공학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DNA로 대표되는 인간 몸의 내면적 부분까지 상품화가 가능해졌다는 것.

과거 노예제도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인간 몸의 외면적 부분, 그러니까 인간이 가진 노동력이나 심미적 아름다움을 중시했다. 하지만 생명공학시대의 상품화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DNA는 말할 것도 없고 혈액, 호르몬, 장기, 뼈, 정자, 난자, 심지어는 배 설물과 암세포까지 상품적 가치를 지니게 됐다.

이는 생명공학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이 같은 생물학적 자원이 생명유지와 건강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상품화될 수 있는 요인을 근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

인간 생물학적 자원의 상품화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우선 혈액의 상품화 사례부터 보자. 예전에도 매혈이라고 해서 자신의 피를 암거래, 돈을 버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혈액의 구성성분이 밝혀지면서 일부 특이한 혈액은 금값이 되기도 한다.

지난 1983년 사망한 혈우병 환자 테드 슬래빈이 대표적 케이스. 그는 수혈을 통해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는데, 이로 인해 슬래빈의 혈액은 간염 바이러스에 대해 높은 수준의 항체를 보유하게 됐다. 그리고 이 항체는 간염 진단 키트 생산에 활용할 수 있었다.

슬래빈은 자신의 병원비를 조달하기 위해 간염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혈액을 팔거나 무상으로 공급했다. 그의 혈액은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하는 데도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 나중에는 자신과 같은 특이한 혈액 특성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혈액을 수집해 판매하는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유가가 크게 올랐다고 하는 현재조차도 석유는 배럴당 7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특이 혈액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이다. 이를 통해 불멸화된 세포주 개발 및 각종 의약품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멸화된 세포주란 세포주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늙지 않고 무한히 분열해 영원불멸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신장과 같은 장기 또한 상품화된다. 해당 지역의 경제 사정에 따라 그리고 해당 지역의 장기매매 합법화 여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1만 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심장, 간, 각막, 뼈, 피부 등 몸의 여러 장기와 조직도 의료용과 연구용으로 비싸게 팔린다. 예를 들면 뇌막은 피부이식에 쓰이는 약물로 전환할 수 있으며, 허벅지 근육의 얇은 막은 피부복원 수술용으로 쓸 수 있다.

세포 또한 엄청나게 비싼 상품이 될 수 있다. 정자나 난자 같은 생식세포가 좋은 예다. 미국의 경우 정자 제공자에게는 100달러 이상, 난자 제공자에게는 3,000~5,000달러의 보수가 주어진다. 생식세포는 연구 및 불임치료 목적으로 쓰인다.

사회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의 생식세포일수록 비싸게 팔려나간다. 실제 지난 1999년 어느 부유한 부부는 키가 크고 똑똑한 아이비리그 여대생의 난자를 무려 5만 달러에 사겠다는 광고를 냈다. 같은 해 사진작가 론 해리스는 미녀 모델 8명의 난자를 경매에 내놓은 사례도 있다. 경매 가격은 1만5,000달러부터 시작됐다.

신생아에게서 나오는 탯줄 혈액, 즉 제대혈 역시 요즘에는 큰 상품적 가치를 갖는다. 과거에는 탯줄이 의료폐기물로 간주돼 그냥 버려졌다.

하지만 이 탯줄 속의 혈액에 줄기세포가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제대혈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골수에 비해 면역거부반응도 덜 나타나기 때문이다.





논란 불러일으키는 유전자 특허

몸 조직의 상품성을 엄청나게 높여 놓은 것은 몸 조직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DNA의 발견과 이의 이용이었다. DNA는 자연에 존재하는 2종류의 핵산 가운데 디옥시리보오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전자의 본체를 이룬다. DNA의 염기 서열은 사람마다 다른데, 손톱과 머리카락은 물론 배설물 속에도 존재한다. 즉 어떤 부분의 세포를 채취하더라도 유전정보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지난 1990년에는 이 같은 DNA의 염기 서열을 파악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실시됐다. 이는 인간의 DNA를 이루고 있는 30억 개의 염기 서열을 파악해 정보를 해석하는 것으로 2003년 4월 12일 완료됐다. 당초에는 이 같은 DNA 연구로 특정한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파악, 예방과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됐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관련법 개정으로 유전자 연구자는 자신이 발견한 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얻을 수 있게 됐다. 특허를 얻게 되면 이후 20년 동안 그 유전자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유전자 특허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가 됐다. 암젠사는 신장병 환자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에리스로포이에틴 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냈는데, 유전공학적 치료법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이 특허의 가치는 연간 15억 달러가 넘는다.

또한 유방암 유전자를 발견한 마크 스콜닉은 미리어드 지네틱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유방암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냈다. 이 특허 때문에 미리어드 지네틱스의 허가 없이는 유방암 유전자의 변이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으며, 유방암에 대한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하거나 사용할 수도 없다. 물론 특허 사용료를 마음대로 책정할 수도 있다. 현재 미국 특허청은 무려 수천 건의 인간 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내준 상태다.

이 같은 유전자 특허는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간이 발명한 것이 아닌 발견한 것에 불과한 자연물이나 과학적 법칙에 특허를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 물론 현재의 미국 특허법에서도 자연물에 대한 특허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게놈 상태에서 분리된 유전자에 대해서는 특허를 인정하고 있다.

사실 미국 베일러 대학이 유럽에 낸 특허출원 신청서를 보면 유전자 특허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대학은 젖에서 약품을 생산하도록 유전적으로 조작된 암소를 만드는 과정을 특허출원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전적으로 조작된 인간 여성에 대한 권리도 주장한 것.

이 대학에 따르면 앞으로 인간에 대해서도 특허출원이 가능하다는 판결이 나올지 모르고, 그런 일이 생길 경우 자신들의 특허권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특허 대상에 인간 여성을 포함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유전자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 자체에 대해 특허를 주장한 것이다. 이는 과거 노예를 매매의 대상으로 여겼던 사고방식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무서운 주장이다.

인간 상품화에 대한 윤리적 논란

원래 모든 기술은 자연 상태의 물건을 인간에게 유용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자연 상태의 원목은 그냥 나무일 뿐이지만 기술을 사용해 가공, 가구를 만들어내면 인간에게 보다 유용해지고 상품가치 또한 높아지는 것.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이라는 자원의 가격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올랐다. 실제 노예의 가격은 평범한 사람의 1년 소득 정도였다. 하지만 생명공학 기술이라는 관점을 통해 본 인간의 몸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1인당 수천만 달러, 즉 평범한 샐러리맨이 수백~수천 년은 일해야 벌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생물학적 자원에 대한 상품화를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생명공학 연구는 인간의 생명연장에 직결된다는 특성상 비용, 기술, 시간 면에서 고도의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그리고 이 같은 비싼 비용을 보충해주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생물학적 자원은 분명 어느 정도 상품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같은 인간의 생물학적 자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실종자를 찾고 범죄를 수사하는 등 여러 가지 공익적 활동의 효과를 높인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자원의 사용을 둘러싼 행태를 보면 그에 따르는 효용과는 별도로 윤리적 타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미리어드 지네틱스의 경우에서도 나타나듯이 인간의 생물학적 자원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기업의 총수는 대부분 의사나 생물학자 출신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문적 지식을 이용해 인간의 생물학적 자원이 커다란 경제적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기업을 설립했다.

그들은 치료, 교육, 연구 등의 명목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자원을 마음껏 이용했다. 그것도 거의 무료로 채취할 수 있는 자신들의 지위를 악용, 도덕적 해이를 저지른 경우가 많다. 환자나 유족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목적을 밝히지 않은 채 몸에서 여러 가지 값나가는 조직과 물질을 수집하는 것은 물론 이들 제공자에게는 경제적 보상을 해주지 않은 경우가 태반인 것.

이 같은 도덕적 해이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지난 1990년대에 있었던 존 무어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무어는 털세포 백혈병 환자였는데, 캘리포니아 대학병원에서 비장 제거수술을 받고 완치됐다.

하지만 무어의 담당 의사였던 데이비드 골디 박사는 완치 이후에도 그에게 혈액과 기타 조직 샘플을 제공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골디 박사는 이것이 무어에게 꼭 필요한 검사의 일환이며, 다른 병원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무어가 변호사를 통해 조사한 결과 골디 박사는 자신의 혈액을 착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탈세포 백혈병 환자였던 무어의 혈액 속에는 인간 T세포 백혈병 바이러스를 막는 특이하고 귀한 바이러스 항체가 있었던 것.

골디 박사는 계속적인 검사를 통해 채취한 무어의 혈액에서 특이 항체 세포주를 배양, 특허를 냈다. 그리고 모세포주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특허권을 생명공학회사에 매각했다.

즉 골디 박사는 무어에게 혈액 및 조직 채취의 목적을 속였을뿐 아니라 이렇게 획득한 혈액과 조직을 사용해 환자 모르게 특허를 내고 금전적인 이익까지 챙긴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동안 무어에게는 단돈 1달러도 주지 않았다.





인간 생물학적 자원에 대한 착취

무어의 경우는 뒤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졌으니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원 미상자나 세계 오지의 부족들을 대상으로 과학연구를 빙자한 혈액, 유전자, 조직 채취가 자행되고 있다.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부검 또는 해부용으로 사용되는 시체도 마찬가지다. 배설물에서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 세포 어디에나 있는 DNA의 특성 때문에 이 같은 작업은 훨씬 용이해졌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채 몸의 일부를 엉뚱한 용도로 이용당하는 것이다.

이렇듯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인간 생물학적 자원을 착취하고, 그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각한 기술적 결함도 안고 있다.

우선 신원 미상의 제공자로부터 받은 조직이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다. AIDS 환자로부터 수혈 받은 피를 제대로 된 성분검사 없이 다른 환자에게 투여, AIDS에 걸리게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헌혈의 경우는 혈액 제공자의 신원이나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신원 미상의 제공자로부터 차마 대놓고 밝힐 수 없는 방식으로 구한 조직의 경우 어떠한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 독일의 제약회사 브라운은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구한 인간 뇌의 경질막으로 리어듀러라는 약품을 만들어 팔았다. 이 약품은 신경외과에서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이 약품을 투약 받은 환자들 가운데 43명이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약품의 원료가 됐던 뇌 경질막에 문제가 있었고, 비정상적인 획득체계로 인해 이 같은 문제를 걸러낼 수도 없었던 것.

유전자에 대한 독점적 이용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비싼 사용료를 요구하는 유전자 특허 때문에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개인이나 연구단체가 해당 유전자의 검사 및 연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유전자 관련 질병을 앓고 있는 개인의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다른 연구단체의 연구 또한 방해, 관련 연구를 오히려 지체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유전자 특허의 효용성을 최대한 뽑아내고자 타당성이 부족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자사의 유전자 검사를 장려하고 그 비용을 환자로부터 뜯어내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 몸이 그 본연의 존엄성과 인격성을 상실한 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만 여겨지는 문제를 극복하려면 그에 맞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기업과 연구기관들은 타당한 절차에 따라 제공된 조직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그렇게 얻은 연구 성과는 특정 기업이나 연구기관의 이득만이 아닌 공공복리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 자원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값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를 다룸에 있어 적절한 윤리적, 기술적 표준을 확립하지 못하고 무제한적인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생명공학 기술은 언젠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생명공학에서 다루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