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인물관계, 무리한 상황설정, 그리고 자극적인 장면 등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의미하는 것. 그렇다면 당연히 시청자의 항의가 이어지고, 이에 따라 드라마의 방영 횟수가 늘어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은 올라가고 방송사는 방영 횟수를 고무줄처럼 늘린다. 이는 막장 드라마와 방송광고 수입이 함수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TV) 드라마란 TV를 매체로 하는 방송극을 말한다. 초기에는 TV 드라마와 TV 영화가 엄격히 구분됐다. 즉 스튜디오에서 생방송되는 것을 TV 드라마라고 하고, 필름에 수록해 편집과정을 거치는 것을 TV 영화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스튜디오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편집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돼 TV 드라마와 TV 영화의 구분은 거의 없어졌다.
TV 드라마는 영화와 라디오에 이어 등장했다. 하지만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란 간단하지 않다. TV가 생기기 이전의 무대극, 영화, 라디오 등의 요소를 모두 배합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장르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 내에 특정한 장소에서 창조되는 연기예술이란 점에서는 무대극이지만 카메라에 의해 촬영돼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한다는 점에서는 영화적이다. 그리고 전파에 실려 각 가정에 전달된다는 점에서는 라디오의 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TV 드라마를 무대극과 영화의 중간에 위치하는 장르라고도 말한다. 영화는 시각에 호소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고 있으며, 청각적인 것은 보조적인 위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무대극은 시각에 호소하기보다는 청각에 호소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으며, TV 드라마는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에 같은 비중을 둔다.
최근 영화는 TV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화면의 스펙터클에 무게를 둔다. 박진감 넘치는 극적 감동을 안겨주려는 것. 반면 TV 드라마는 안방의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여러 가지 제약과 협소한 화면 테두리 속에서 극적인 감동을 효과적으로 자아내게 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협소한 화면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청각적인 비중을 늘리는 경향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화면에 비치는 인물상은 실제보다 크게도 하고 작게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음성이나 효과음은 실제 그대로 구사해서 박진감을 더해 주는 방법을 쓴다. 이것이 시청자에게 현실감을 안겨줘 암시적인 효과를 거두고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작은 화면의 결함을 감쪽같이 보완한다.
TV 드라마의 또 하나의 특성은 친근감을 갖게 한다는 데 있다. 무대극이나 영화는 극장과 같은 특수 분위기를 필수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공연되는 극은 허구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TV 드라마는 동시성과 조화를 이루어서 그 사건들이 마치 현실적으로 어디에선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현장감을 갖게 한다. 지금까지는 남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지던 대상들을 브라운관을 통해 바로 옆의 일처럼 대할 수 있어 심리적으로 친근감을 갖게 해준다는 얘기다.
막장 드라마는 필연적 산물
방송광고란 광고를 목적으로 하는 방송 내용물. 인쇄광고와 더불어 광고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TV 방송광고와 라디오 방송광고로 대별된다. 일반적으로 커머셜 메시지(CM)라고 하는데, TV 방송 광고에 한 해 커머셜 필름(CF)이라고도 한다.
방송광고는 인쇄광고에 비해 표현방법과 전달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호소력이 강하다. 또한 시청자의 의식과 감각에 깊게 작용해 인간의 욕구와 생활양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와 함께 반복 호소가 쉽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광고를 위한 수단으로서 효과적이다.
그런데 TV 시청자에게 있어 방송광고는 참으로 골칫거리다. 드라마의 결정적 순간을 자르고 등장하는 방송광고는 얄밉기까지 하다. 그나마 리모컨이 있어 다행이다. 드라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꾹 눌러 채널을 바꾸고, 방송광고를 피해 이리저리 채널을 바꿔가며 볼만한 프로그램을 찾으면 되니까 말이다. 한 마디로 리모컨이 없으면 왠지 허전하고 불안한 것이다.
그렇지만 방송광고가 그렇게 성가시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값싸게 TV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즉 광고주가 시청자를 대신해서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비용을 지불해 주고 있는 것.
사실 방송사의 최대 고객은 시청자나 프로그램 유통업자가 아니다. 광고주다. 방송사는 늘 시청자를 위한다고 말하는데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같은 현실적 조건 때문이다. 시청자의 비난은 잠시 참고 지나가면 되지만 광고주의 비위를 거스르면 당장 광고수입을 걱정해야 한다.
물론 방송사와 광고주의 거래에서 시청자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는 방송사와 광고주 사이의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광고주들은 늘 시청자의 동향을 살핀다.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어떤 부류의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가에 따라 광고의 가격이 결정된다. 즉 프로그램의 질보다는 시청자의 양과 부류가 최대 관심사라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은 방송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시청자들이 품위 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선호한다면 방송사는 고민을 한결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중적이다. 유익한 프로그램보다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는다. 저질방송을 비난하지만 보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를 끌어 모으는 것은 고품격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개그맨의 우스꽝스런 몸짓과 드라마의 파격적인 가족관계라는 것.
방송사는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한 시청률 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선정적인 화면을 구성해야 한다. 막장 드라마는 방송사 사람들이 유별나게 사악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같은 시장구조의 필연적 산물인 것이다.
막장 드라마란 얽히고설킨 인물관계, 무리한 상황설정, 자극적인 장면 등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말한다. 또한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한 에피소드가 수십 분에 한 번씩 벌어지곤 하는 비현실적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인기 드라마의 고무줄 연장
우리나라의 TV 방송광고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방송사가 광고주를 상대로 직접 방송광고 시간을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고주가 TV에 방송광고를 싣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방송광고공사를 찾아가야 한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방송광고 시간을 위탁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TV 방송광고는 프로그램 광고, 토막 광고, 자막 광고로 나뉜다. 이 가운데 프로그램 광고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과 끝난 후 방송되는 것으로 흔히 전(前)CM과 후(後)CM으로 부른다. 프로그램 광고는 전체 프로그램 시간의 100분의 10으로 정해져 있으며, 개별 방송광고의 판매 단위는 15초다.
토막 광고는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나가는 방송광고로 20초 방송광고 3개, 30초 방송광고 1개로 구성된다. 그리고 자막 광고는 화면 하단에 회사와 제품의 글씨가 있는 방송광고로 판매단위는 10초다.
한국방송광고공사는 지난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방송사간 지나친 경쟁을 막고 자본의 영향을 차단 한다는 명분에서 설립됐다.
이에 따라 한국방송광고공사는 방송광고 시간의 단가 인상을 억제하는 한편 인기 프로그램과 지역방송사의 프로그램 및 비인기 프로그램의 방송광고 시간을 연계해 판매했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오른다고 방송광고 시간의 단가를 더 높이지 않는 대신 팔리지 않는 프로그램의 방송광고 시간을 적절한 가격에 팔아준 것이다. 이로 인해 방송광고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억제, 방송사간 균형발전에 기여해 왔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한국방송광고공사는 지난 2000년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 판매 제도를 도입하면서 부분적으로 시청률이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단가책정 과정에 시청률과 관련된 지수를 포함시켰고, 인기 프로그램에 대한 특별가격 판매, 순서지정 판매, 선매제 등을 도입했다.
그렇다면 아이리스나 선덕여왕 같은 인기 드라마가 벌어들이는 광고수입은 얼마나 될까. 프로그램 광고는 전체 프로그램 시간의 10%로 정해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60분짜리 드라마의 경우 최대 6분까지 방송광고를 할 수 있다. 그리고 프로그램 광고는 15초 단위로 판매되기 때문에 24개의 방송광고를 할 수 있다.
인기 드라마의 경우 일반 단가책정 기준과는 별도로 시청률에 연동하는 특별가격을 적용한다. 최근 한 드라마의 방송광고 단가는 시청률에 따라 15초당 1,300만~1,500만 원이었다. 24개의 방송광고가 모두 판매될 경우 한 회당 3억1,000만~3억6,000만 원의 광고수입이 확보되는 셈이다.
20회로 마무리된 아이리스의 경우 60억 원 이상, 62회로 종영한 선덕여왕은 무려 200억 원 내외의 광고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방송광고 단가를 유지하고 완판 됐을 경우를 가정 한 산술상의 수치다. 여기에다 재방영분이나 케이블 방영분에 대한 광고수입, 해외 판매 등을 포함하면 콘텐츠 상품의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기 드라마마다 막판에 가서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는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한 회 광고수입이 수억 원에 달하는 드라마를 연장하는 것은 적어도 경제적 관점에서는 합리적이다.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그만한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엄청난 비용이 드는 탓이다. 시청자들은 질질 끈다고 투정하면서도 TV 앞에 앉을 것이고, 타 매체의 비판은 시기어린 질투쯤으로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초읽기 들어간 미디어렙 도입
그런데 지난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만 방송광고 시간의 판매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한 방송법 및 시행령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한국방송광고공사만으로 한정한 것은 직업수행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본 것. 한 마디로 방송광고 시간의 판매대행 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복수의 사업자를 허용하라는 것이다.
정치권은 현행 규정의 잠정적 적용 시한인 지난해 말까지 논의를 거듭했지만 결국 법 개정에는 실패했다. 이에 따라 현재는 방송사가 직접 방송광고 시간을 판매하거나 제3의 사업자가 판매대행을 하더라도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어쨌든 새로운 방송광고 시간 판매대행사, 즉 미디어렙의 등장은 초읽기에 들어섰다. 방송 광고 시간 판매시장의 경쟁 도입이 방송의 오락화와 중소 방송사의 경영위기를 초래할지 아니면 방송광고 시간 판매시장의 확대를 통한 미디어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 지켜 볼 일이다.
글_ 박성철 한국전파진흥원 책임연구원 scp0314@gmail.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