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헤링은 영화에나 나올법한, 즉 엄청난 힘을 지닌 악당이 아니라 지질학자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지열발전을 위해 지하 5km의 암반에 높은 압력의 물을 주입한 것 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는 지열발전 대신 지진을 일으키고 말았다. 분석에 따르면 진앙은 지열발전을 위해 시추한 지점 근처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시 당국은 그에게 지진으로 파괴된 건물을 복구할 90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헤링은 지난해 12월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가 고의적으로 지진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가로 시추를 할 때는 5억 달러 규모의 재산피해를 몰고 올 가능성이 15%나 된다는 과학적 검토 끝에 지열발전을 위한 그의 시추는 중단됐다. 특히 이번 사례는 미국 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지열발전 계획이 정밀조사를 받는 계기가 됐다.
지열이란 지구 내부에서 지표면을 거쳐 외부로 유출되는 열을 말한다. 유출 형태는 열전도에 의한 것을 비롯해 가스, 열수, 그리고 화산분출물에 의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지열은 지구의 전 지표면에서 방출된다. 양은 지역적으로 크게 다르지만 화산지대에서 많이 방출된다.
일반적으로 지열은 지구 내부에 부존하는 방사성 물질이 자연 붕괴할 때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근원으로 한다. 다만 고온의 지구 중심부에서는 맨틀이 열절연작용을 하기 때문에 지열이 거의 지표면으로 방출되지 못한다.
지열발전은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발전에 비해 발전소의 규모는 작지만 경제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강점이며, 소규모 분산형의 로컬에너지 자원이라는 특색을 갖추고 있다.
사실 땅속으로부터 끌어올린 뜨거운 증기나 물은 엄밀한 의미에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아니다. 발전을 위해 빠져나가는 지열의 양이 땅속의 재충전 능력보다 크기 때문에 현재 열 저장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땅 속에서 뜨거운 증기나 물이 고갈되고 뜨거운 암반이 식으면 더 이상 열을 끌어올릴 수 없다. 하지만 지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인 만큼 시추하는 깊이에 따라 잠재력은 거의 무한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열로 발전을 하는 방식에는 천연의 증기를 그대로 쓰는 것, 열수를 쓰는 것, 증기 또는 열수로 끓는점이 낮은 다른 유체의 증기를 만들어 쓰는 것 등 3가지 방법이 있다. 이 가운데 재래식 지열발전은 주로 땅 속에서 나오는 천연 증기로 전기를 생산한다. 즉 고온의 증기를 얻으면 이것을 증기터빈에 유도하고, 고속으로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하에 증기가 없는 곳을 위해 GE는 EGS(Enhanced Geothermal System)라는 새로운 지열발전 공법을 개발했다.
이 공법은 지하 4~5km 아래에 있는 뜨거운 암반을 뚫은 다음 물을 쏘아 보내는 방식이다. 물이 암반 속으로 들어가면 뜨거운 열을 흡수하게 된다. 그 다음 엔지니어들은 펌프를 통해 뜨거워진 물을 지상으로 빼내고,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증기를 사용해 발전용 터빈을 돌리는 것이다. 증기의 온도는 대략 160~210℃ 정도며, 스위스·프랑스 등에서 이 공법을 이용한 지열발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특히 서부지역은 지하에 뜨거운 암반이 많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의 지열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한 해 동안만 하더라도 미국 에너지부는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지열발전 프로젝트에 1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배정했다.
하지만 지질학자들은 EGS 공법을 사용할 경우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지진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물이 단층에 주입되면 양쪽의 암반이 미끄러지면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단층이란 외부의 힘을 받은 지각이 두 개의 조각으로 끊어져 작게는 몇mm에서 크게는 몇 km까지 이동한 지질구조를 말한다.
이 같은 우려는 단층 위에 있는 바젤에서 곧바로 현실화됐다. 더욱이 이 때 발생한 지진은 실질적인 피해를 초래할 정도의 심각한 것이었다.
미국 지질조사국 지진피해 팀의 콜린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한다. "지진의 빈도와 규모는 펌프질을 하는 물의 양과 속도에 따라 다릅니다. 이에 따라 물의 양과 속도를 조절해 지진 발생을 최소화하는 게 핵심입니다."
당초 전문가들은 새로운 지열발전 공법에 의한 지진 규모는 충분히 용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여겼다고 스위스 지진학연구소의 도메니코 지아르디니는 말했다. 하지만 바젤의 사례로 인해 보다 엄격한 검증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와 윌리엄스는 EGS 공법의 경우 지진 위험이 적어야 성공이라고 여기게 됐다.
지아르디니는 이렇게 말한다. "거주지로부터 멀리 있는 지열발전 시설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진이 많이 일어났던 도시의 경우라면 EGS 공법으로 지열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미국 에너지부는 1억 달러의 예산 대부분을 캘리포니아, 아이다호, 네바다, 오리건 등의 시골지역에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EGS 공법의 이익은 포기하기에 너무 크다.
실제 미국 에너지부는 EGS 공법을 통해 미국 전력 수요의 10%를 감당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는 상태다. 이는 현재의 지열발전에 비해 무려 40배나 많은 전력량이다. 또한 지하 암반에서는 계속적으로 열이 나오기 때문에 전력도 계속 생산할 수 있다.
물론 지진 위험이 크지 않은 계획을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장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
헤링은 재판 후 이렇게 말했다. "공짜로 기술의 진보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라도 도전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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