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공장은 41개에 이르고,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만 17개의 공장이 있다. 전 세계 81개 지역에 판매회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토요타는 최근 액셀러레이터 패달 결함이 확인되며 대규모 리콜 사태를 맞았다. 위기에 처한 것은 토요타 뿐만이 아니다.
토요타 친환경기술의 간판이자 자랑인 프리우스마저 제동장치의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집단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토요타와 프리우스 모두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지난 1997년 처음 출시된 이후 탁월한 연비와 효율성을 인정받아 무려 160만대가 판매됐다.
특히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앞 다투어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프리우스가 출시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열풍도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듯 잘 나가던 토요타의 얼굴마담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제동장치에서 안전상의 결함이 발견되면서 토요타의 미국 발 대량 리콜 사태에 동참하게 된 것. 본사 로비에 전시돼 있을 만큼 토요타의 자부심이었던 프리우스가 오히려 토요타의 명성에 흠집을 내 는데 적지 않은 힘을 보탠 셈이다.
물론 토요타를 난국에 몰아넣은 책임이 전적으로 프리우스에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프리우스는 여타 차량과는 다르다. 유가상승,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에 기반한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를 정확히 예견해 자동차업계의 판도를 바꿔 놓은 모델이라는 점에서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토요타나 고객 모두에게 큰 충격이 되고 있다.
양산형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는 세계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란 동력원으로 내연 기관과 전기모터를 동시에 사용하는 차량. 2가지의 동력장치가 차량 구동에 기여하는 비중에 따라 직렬식, 병렬식, 혼합식으로 구분된다.
먼저 직렬식은 전기모터가 구동력을 100% 제공하는 방식이다. 내연 기관은 오직 전기모터를 돌이기 위해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의 용도로만 쓰인다. 내연 기관의 비중이 낮은 만큼 환경적 측면에서는 가장 우수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병렬식은 내연기관과 전기모터 모두에서 구동력을 제공받는다. 저속에서는 전기모터만 사용되다가 가속하거나 고속으로 주행하면 내연기관이 함께 작동된다. 직렬식에 비해 큰 엔진이 필요하고 배출가스도 많다는 게 단점이며, 변속기 장착이 요구돼 제조원가 역시 올라간다.
혼합식의 경우 병렬식을 발전시킨 모델이다. 기본 구성은 병렬식과 유사하지만 제동을 할 때의 손실되는 물리적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 배터리에 저장하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높다. 또한 발전용과 구동용 전기모터가 별도로 있어 가속 성능도 뛰어나다. 현재 프리우스를 비롯한 대다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혼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듯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2개의 동력원이 있어 어떤 동력을 사용할지를 주행조건에 맞춰 적시에 바꿔줘야 한다. 이를 일일이 수동 조작하기는 어렵고 주행 중 사고의 위험성도 있어 프리우스에는 컴퓨터 제어식 전자 제어장치가 채용돼 있다.
이 같은 하이브리드 시스템 덕분에 프리우스는 연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연비가 뛰어나다는 얘기다. 또한 내연 기관의 힘이 필요 없을 때 구동을 정지시킴으로서 배기가스 속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촉매변환장치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파워와 연비, 친환경성 겸비
일반적으로 전기를 동력원으로 하는 차량은 고속주행에 약점이 있다. 하지만 프리우스는 아니다.
고속주행 때 에너지 효율을 갉아 먹는 주범은 차량의 중량과 공기저항인데, 프리우스는 미국 내에서 출시된 동급차량 중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한다. 공기저항도 비교적 낮다. 또한 고속주행에서는 내연 기관과 전기모터가 힘을 합쳐 기존 휘발유 자동차 못지않은 파워를 낸다.
연비의 우수성과 친환경성도 이미 입증된 상태다. 미국 환경보호청의 측정 결과 2010년형 프리우스의 연비는 도심 주행에서 ℓ당 21.73㎞, 고속도로에서는 ℓ당 20.4㎞를 기록했다. 이는 2009년 현재 미국에서 출시된 자동차 중 최고 연비다. 이 기록을 넘어선 것은 단종 된 혼다의 수동 변속식 하이브리드 자동차 인사이트 밖에 없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역시 매우 양호한 수준이다. 영국 교통성의 측정에 따르면 3세대 프리우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당 89g 에 불과하다. BMW가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대항마로 내세운 클린디젤 자동차 미니쿠퍼 D의 이산화탄소 배출량만 해도 ㎞당 104g에 달한다.
또한 포드의 저(低) 이산화탄소 배출 차량 인 피에스타에 코네틱이 ㎞당 98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리우스의 우세가 쉽게 확인된다. 당시 테스트에서 프리우스에 비교 우위를 점한 것은 벤츠의 2인승 경차 스마트 포투가 유일했다. 이 차량은 현존하는 가장 작은 상용차로 불린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프리우스를 놓고 스모그 생성과 유독물질 배출량 면에서 미국 내 가장 깨끗한 차량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 같은 결과들에 기반한 것이다.
이처럼 파워와 연비, 친환경이라는 삼박자를 겸비한 프리우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비관적이었던 당시의 분위기를 깨고 소비자들의 폭발적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는 토요타가 GM을 꺾고 세계 제1위의 판매고를 올리는 발판이 됐다. 실제 지난 2007년 토요타가 판매한 900만대 이상의 차량 중 74만여 대가 프리우스였다.
바닥매트가 불러온 리콜사태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토요타 천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토요타와 프리우스에 어두운 구름이 밀려들었다. 토요타의 다수 모델에서 품질 결함이 잇따라 불거져 나왔고, 이것이 작금의 대량 리콜 사태를 불러 온 것. 시작은 우스우리만치 사소한 부분에서 불거졌다. 다름 아닌 차량 바닥에 까는 매트.
지난 2007년 9월 26일 토요타는 자사의 캠리 모델과 렉서스 ES 350 모델에서 5만5,000대 분량의 고무매트를 회수했다. 이 매트가 제멋대로 앞으로 움직이면 액셀러레이터 페달에서 발을 떼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 (NHTSA)의 조사 때문이었다.
2년 뒤 이 지적은 현실이 됐다. 지난 2009년 8월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서 임대된 ES 350 차량이 시속 190㎞의 속도로 다른 차량과 충돌, 일가족 4명이 모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 차량의 운전자는 고속도로 순찰 경관이었고, 911에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지만 결국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사고 직전까지의 급박한 상황이 녹음된 이 경관의 911 전화 육성은 인터넷상에 떠돌면서 토요타에 대한 미국인들의 감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이 공개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사고 차량은 액셀러레이터 페달이 매트에 걸려 눌려진 상태로 고정돼 있었다. 특히 이 매트는 ES 350이 아닌 렉서스의 SUV 모델 RX 400h의 것이었다. 그나마도 제대로 고정조차 돼 있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또 한 제동장치 분석 결과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제동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추가 조사를 통해 이와 유사한 사례가 더 확인되자 토요타는 결국 지난해 11월 결함을 인정하고 차량 380만대를 리콜 했다. 그리고 비상시 브레이크를 세게 밟으면 엔진이 무조건 공회전 상태가 되는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시스템을 추가 설치했다. 여기에는 2004~2009년 사이에 생산된 프리우스도 포함돼 있다.
액셀페달의 부가장치도 결함
이 여파가 사그라지기도 전인 올해 1월 21일 토요타는 다시 리콜을 해야 했다. 이번에는 매트가 없음에도 액셀러레이터 페달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문제가 발견됐다. 당시 토요타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전제 하면서도 "페달 시스템의 노후 및 특정 조건 하에서는 원위치로 돌아오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최악의 경우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며 결함을 인정했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도 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때는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차량을 정지시킬 것을 권고했다. 프리우스는 해당되지 않았지만 이번 리콜로 미국에서만 230 만대, 유럽과 중국에서도 각각 180만대와 7만5,000대가 수리를 받았다.
액셀러레이터 페달은 원래 브레이크 케이블과 같은 기계적 시스템으로 엔진과 직접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전자식 제어장치 도입이 확산되면서 지금은 페달도 전자식으로 바뀌었다. 전위차계 또는 센서가 페달에 가해진 압력을 인식, 제어장치에 전기신호를 보내 엔진 출력을 조절하는 것. 이 때문에 페달을 원위치로 되돌려주는 스프링이 감당해야 하는 압력 및 마찰력도 그만큼 줄어든다.
문제는 기계식 페달의 작동감에 익숙한 사람의 경우 필요 이상의 힘으로 페달을 밟을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전자 식 페달 메이커들은 기계식 페달의 마찰감을 재현하는 부가장치를 채용하고 있다. 토요타 역시 나일론 4와 6, 또는 황화폴리페닐렌 소재의 부가장치를 사용했는데, 이 부가장치가 말썽이었다.
토요타는 부가장치가 자주 사용됐을 때는 마찰력이 필요 이상으로 커져 페달의 리턴이 느리게 이뤄지거나 아예 눌린 채로 고정되는 현상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프리우스에 드리워진 그림자
토요타의 명예 실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2주 밖에 되지 않은 지난 2월 3일.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은 2010년형 프리우스를 보유한 미국 운전자 102명과 일본 운전자 14명이 제동장치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해왔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일본 국토교통성도 프리우스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이에 토요타는 일본 내에서만 77건의 프리우스 제동장치 관련 불만이 접수됐음을 시인했다. 드디어 토요타의 자존심이었던 프리우스에까지 리콜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다음 날인 2월 4일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은 조사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브레이크를 밟을 때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프리스우의 회생 브레이크에 약간의 작동지연이 발생, 제동거리가 길어진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토요타도 이 같은 현상의 존재를 인정했다. 프리우스가 가솔린 엔진용 유압브레이크와 전기모터용 회생 브레이크를 동시 구동하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오류가 일어나 브레이크의 잠김방지장치(ABS)가 제대로 동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월 8일에는 2010년 1월 말 이 전 생산된 프리우스와 기타 2개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제동장치 소프트웨어 리콜을 발표했다. 이 조치로 미국 13만3,000대, 유럽 5만2,000대의 프리우스가 리콜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토요타가 장장 2년여에 걸쳐 미국 내에서만 600만대, 세계적으로 850만대라는 천문학적(?) 리콜을 기록하자 미국 연방법원은 토요타의 불법행위 조사에 들어갔고, 토요타의 토요타 아키오 사장이 청문회에 출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프리우스 구매자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토요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리콜 사태의 근본적 원인
사실 이번 사태로 토요타가 걱정하는 것은 리콜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이 아니다. 그동안 '품질의 토요타'라고 불렸을 만큼 수십 년간 쌓아온, '안전한 자동차'라는 이미지의 실추가 더욱 가슴 아픈 것이다. 떨어진 이미지로 인해 판매 감소가 가속화·장기화되면 자칫 복구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토요타의 품질우선 경영이 이토록 붕괴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토요타가 이익 제고를 위해 무리수를 두었음을 첫 번째로 지적한다.
현재 토요타의 자동차의 생산량은 연간 1,000만대가 넘는다. 이만한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 토요타는 2000년 이래 생산시설을 2배 가까이 확충했고,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생산기지에서 생산 대수를 3배나 늘렸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 제고를 위한 원가절감을 과도하게 추진하면서 하청업체 쥐어짜기, 살인적인 업무량, 저질 부품과 설계의 채용, 비정규직 및 사외인력 대거 채용 등 품질 향상과 상반되는 행동을 하게 됐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도 미 하원 청문회에서 "전통적으로 도요타의 우선순위는 첫째가 안전이고, 두 번째가 품질이며, 그 다음이 외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이 같은 우선순위가 혼선을 빚었다"고 덧붙였다.
아마도 토요타의 현실은 자동차의 설계와 생산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 망각한데 따른 죄과일지도 모른다. 토요타가 잇단 사과성명에서 밝혔던 대로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작금의 시련을 극복해낼지 아니면 여기서 무릎을 꿇고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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