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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동차 카르마의 도전

[미래의 자동차] 상용화

피스커 오토모티브의 '카르마(Karma)'는 프리우스 보다 친환경적이고 람보르기니만큼 화끈한 전기자동차다. 카르마가 출시되면 전기자동차에 대한 세간의 인식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 회사의 직원 외에는 누구도 이 차량을 운전해본 사람이 없다. 소문만 무성할 뿐 실체는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 과연 피스커는 카르마를 통해 운전자들을 전기자동차의 매력에 빠뜨릴 수 있을까. 아니면 상용화에 실패해 허풍선이로 남게 될까.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의 평범한 사무용 건물. 주차장에서 차량 한 대가 빠져나와 도로에 올라선다.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자 넓은 가로수 길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단 한 번의 기어조작으로 최고 속도에 도달, 주변의 모든 차량을 앞지르자 사람들이 놀라운 눈으로 쳐다본다. 도대체 저 차는 뭐지?

전장과 전폭이 눈에 띄게 크고, 지면에 닿을 듯 낮은 차체를 가진 이 차량은 신생기업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사운을 걸고 개발 중인 스포츠카 타입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 자동차 '카르마'다.

피스커의 설명에 따르면 카르마는 전장이 벤츠 CLS와 유사하고 전폭은 BMW 7시리즈, 전고는 포르쉐911 정도 된다. 차량의 천정에는 태양전지 패널이 부착돼 있어 연간 320㎞에 이르는 추가 전력을 공급하며 트렁크는 골프가방 2개를 수납할 수 있을 만큼 넓다.

전기모터가 주 동력원, 260마력 4기통 가솔린엔진이 보조 동력원이 되므로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 특유의 엔진 소음은 없다. 다만 운전자의 주행감을 높여주기 위해 별도의 스피커가 F1 레이싱카와 우주선의 중간쯤 될 것으로 느껴지는 엔진음을 내준다.

업계에서는 이런 카르마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 로 부르며 친환경 고급 대형차 시대를 열어젖힐 주역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피스커 오토모티브도카르마가 이 같은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헨릭 피스커 역시 "카르마는 이제껏 봐왔던 어떤 차보다도 섹시하고 도발적"이라는 말로 자랑스러움을 표명했다.







아마도 이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구심이 남는다. 피스커의 직원 외에는 아직까지 카르마를 직접 운전 해본 사람이 없어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정확히 말해 단 1명이 있기는 했다. 작년 12월 코펜하겐 기후대책회의에 참석한 덴마크 왕세자에게 카르마가 제공되면서 그의 운전사가 손맛을 봤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피스커에는 주행가능한 시제품이 7 대 있지만 모터쇼에 출품됐을 때를 제외하면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모터쇼에서도 몇 차례의 저속주행 시범만 보여 제 성능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 피스커의 계획상 양산형 카르마가 대리점에 공급될 시점이 이제 7개월 밖에 남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다. 필자 또한 수주일 동안 카르마의 시험주행 장면을 포착하려 애썼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 회사의 홍보 담당자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카르마를 공개할 준비가 안 된 것뿐입니다. 비밀이 경쟁사들에게 누설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회사측의 설명 외에는 성능 정보가 거의 없음에 도 불구하고 8만8,000달러(약 1억원)나 하는 카르마를 구매 하겠다는 선주문 대기자가 무려 1,600명이나 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현상의 진원이 카르마의 설계자이자 피스커 오토모티브의 수장인 헨릭 피스커의 명성에 있다고 본다.

그는 영화 '007 언리미티드'에 등장하는 BMW Z8과 애스턴 마틴의 DB9 및 밴티지 V8을 디자인하며 자동차 설계의 신으로 불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기대감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미 정부와 벤처캐피탈이 각각 5억 2,900만 달러와 3억 달러라는 거금을 신생기업에 지원한 것도 그의 능력을 믿어서였다.

그러나 이번 비밀주의 전략은 카르마의 발매시기 연기와 맞물리며 피스커 오토모티브라는 회사의 이미지에 상처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카르마의 고객 인도일이 당초 작년 4/4 분기에서 올해 9월로 연기됐다가 올해 하반기로 재 연기되면서 성공적 런칭에 회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 인도일이 또 다시 연기되지는 않더라도 지금 구매 주문을 하는 고객들은 내년 봄 이전에는 차량을 받지 못할 개연성이 큰 상태다.






친환경과 멋을 겸비하라

올해는 피스커 오토모티브는 물론 여타 자동차메이커들에게도 새 시대가 열리는 해다. 향후 12개월 동안 카르마를 포함, 다수의 전기자동차와 차세대 하이브리드카의 출시가 예정돼 있어 전기가 자동차 동력원의 주류로 부상할 것이 예견되는 탓이다.

실제로 닛산 리프가 올해 12월 일본 시판을 목표로 지난달 사전예약에 들어갔다. 리프는 실내공간이 넓고 중량이 가벼우면서도 가격은 혼다의 시 빅 정도로 저렴하다는 게 메리트다. GM이 사운을 걸고 있는 쉐비 볼트도 올 가을 출시되며 4/4분기에는 코다의 EV 세단이 세상에 나온다.

이들 전기자동차의 최대 특징은 친환경성과 연료비 절감이다. 하지만 이는 일부 소비자들이 느끼기에는 약이자 독이기도 하다. 이 두 요인을 강화하면서 자동차의 주요 구매기준 중 하나였던 멋들어진 디자인이 약화되고 있는 것. 이는 자칫 전기자동차의 확산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성능과 섹시함이 묻어나는 전기자동차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테슬라 모터스가 그 대표주자다. 이 회사의 전기자동차 로드스터는 10만9,000 달러라는 적지 않은 가격에도 극도로 스포티한 디자인과 단 3.9초 만에 시속 96㎞로 가속할 수 있는 막강 성능을 앞세워 2년 여간 1,000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포르쉐가 올 초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콘셉트카 '918 스파이더'도 이러한 트랜드의 산물이며 아우디, 벤츠, BMW 등의 기업들도 멋진 외관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전기자동차 및 하이 브리드카를 개발 중이다. 테슬라의 수석 디자이너인 프란츠 판 홀츠하우젠은 "엔진, 배기가스, 연료탱크가 없는 전기자동차가 굳이 기존의 자동차와 똑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다"며 "차량의 주행과 관련 없는 모든 부분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대중에게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자동차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주인공은 단연 카르마다. 이 카르마는 종종 미국 자동차 업계의 운명을 건 10억 달러짜리 도박으로 비견된다. 아무것도 없었던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맨손으로 개발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포브스는 헨릭 피스커를 표지모델로 삼았는데 그의 회사인 피스커 오토모티브를 '미래의 디트로이트'라 칭하기도 했다. 카르마의 판매를 담당하는 한 임원도 "헨릭 피스커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핵심인물이 되어가고 있다"며 "본인조차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모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대에 부응하듯 헨릭 피스커는 이미 카르마의 차기모델까지 생각해 놓았다. 암호명 '니나(Nina)'로 불리는 이 모델은 카르마보다 한층 저렴한 4도어 차량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카르마를 연간 1만5,000대 공급한 후 그 여세를 몰아 10 만대의 니나를 판매한다는 목표다.

문제는 이처럼 야심찬 계획과 달리 아직껏 카르마의 발매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피스커 오토모티브는 거대 자동차기업을 포함, 지금껏 누구도 제대로 완성해내지 못한 신기술을 적용하려는 중이다. 이 회사가 취하고 있는 극도의 비밀유지 전략이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례로 일부 전문가들은 피스커와 함께 카르마의 동력 전달장치를 개발한 무명기업 퀀텀퓨얼시스템즈(QFSTW)의 능력에 미심쩍은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카르마의 배터리 공급업체가 3번이나 바뀐 것도 께름칙한 부분이다. 특히 회사의 규모상 작은 사고도 프로젝트 전체에 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높다. 이때는 투자자와 고객이 등을 돌릴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이를 놓고 한 전기자동차 업체의 엔지니어는 "하루 평균 750건 정도의 휘발유자동차 화재가 일어나고 있지만 카르마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분명 주요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될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카르마와 어그레서

물론 헨릭 피스커는 존경받는 자동차 설계자이며 카르마의 시제품도 더없이 매력적이다. 정부로부터 5억 달러가 넘는 지원도 받았다.

하지만 카르마가 과연 미래 전기자동차의 전형이 될지, 과거에 폐기됐던 개념을 재차 손 본 것에 불과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카르마를 가까이서 살펴봤던 한 자동차기업의 임원은 "차량 외관은 누구나 그릴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차의 내면, 즉 동력전달장치"라며 "아직도 카르마의 그것을 제 눈으로 확인한 사람이 없다"고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어빈에 위치한 피스커 오토모티브에 가면 카르마의 프로토타입 모델이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지만 지문인식 보안시스템을 거쳐 연구실로 진입하면 상용모델 개발을 위한 점토 모형과 1대의 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또 눈에 띄는 차량이 2대 더 있다. 하나는 지난해 발표된 하드톱 컨버터블 형태의 신모델 '카르마 선셋(Sunset)'이며 다른 하나는 아직 미공개 된 그 후속모델이다.

후속모델의 경우 방수포에 쌓여있어 정확한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전체적 윤곽으로 볼 때 SUV나 크로스오버 쯤으로 판단된다.

당연히 헨릭 피스커는 방수폭 속의 본모습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단지 다음과 같은 말로 질문을 피해 갔다. "우리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발표하면 꼭 다른 회사들이 모방하곤 합니다. 그 친구들이 우리보다 앞서도록 놔둘 수는 없죠."

카르마라는 명칭은 인도 말로 업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차량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활용됐던 어그레서(Aggressor)라는 차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어그레서는 퀀텀퓨얼시스템즈가 지난 2004년 특수부대의 임무에 최적화해 개발한 군용 스텔스 하이브리드카다. 수소연료전지와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모터를 사용, 소음과 열 발생 이 거의 없어 적진 후방에 공수부대와 함께 투입되는 식의 작전에 유용하다.

당시 퀀텀은 미 육군과 1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고 1대의 시제품을 개발, 납품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인 앨런 니즈위키에 의하면 육군은 시제품을 반납하지 않으려 했을 만큼 성능에 너무 만족해했다. 그렇지만 어그레서는 대량생산되지는 못했다. 구동시스템의 동력 제공을 위해 상당한 크기의 배터리 팩이 요구됐고 1회 배터리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전기모터에 더해 백업 용 엔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피스커와 퀀텀의 만남은 후일 퀀텀이 이 시스템을 개량해 'Q 드라이브'를 내놓은 뒤에야 이뤄졌다. Q 드라이브는 235kg·m의 토크와 리터당 34㎞의 고 연비를 구현, 누구라도 탐낼 법한 수준의 성능을 발휘했다.

결국 2007년의 어느날 니즈위키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자신의 회사에서 헨릭 피스커와 그의 파트너인 버나드 쾰러에게 어그레서의 영상을 보여줬고 두 사람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헨릭 피스커는 또 길이가 길고, 높이는 낮으며, 폭이 넓은 Q 드라이브 시스템이 자신의 디자인 감각과도 완벽히 들어맞는다고 판단했다.




역사에 남는 전기자동차

그의 디자인 감각은 덴마크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에 형성됐다. 식구들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가던 중 마세라티 스포츠카가 자신을 추월하던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이때부터 그는 수업시간에도 노트 필기 대신 자동차를 그리는 시간이 많아졌고 졸업 후 스위스의 디자인 학교에 진학하면서 스포츠카의 설계에 온 생애를 바치게 됐다.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관심은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토요타의 프리우스를 운전하는 모습을 본 것이 단초가 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자동차도 구입할 수 있었던 그가 왜 프리우스를 선택했는지를 깨달으며 하이브리드카의 영향력을 실감한 것이다.

또한 모나코의 알베르트 2세 왕자가 자신의 한정판 최고급 승용차 앞에서 사진 찍기를 거부했을 때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알베르트 2세는 지금까지도 오직 친환경자동차 앞에서만 촬영을 허락하고 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헨릭 피스커는 유가상승이나 지구 온난화가 자신의 역작들을 역사 속에 묻어버리지 않을지 두려움을 느꼈다. 피스커의 말이다. "10년이나 20년 후 우리 아이들이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닐지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기술력의 부족으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색상과 디자인의 통근용 전기자동차를 타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아마도 이 차들은 엔진출력이 20마력에 불과하고 최고속도는 60㎞밖에 되지 않아 아예 모델명조차 불필요하게 될지 모릅니다. 저는 이 같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 않으며 앞으로도 강력한 힘과 주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차들이 도로를 질주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2008년 1월 디트로이트 국제오토 쇼에서 데뷔한 카르마는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의 카르마는 외관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개념적으로만 정립된 콘셉트모델이었지만 큰 뉴스거리가 됐다. 사람들이 전기자동차에 대해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 즉 작고 약하다는 생각을 철저하게 부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헨릭 피스커는 "여타 전기자동차 메이커들처럼 카르마가 '작고 느리며 멀리 가지도 못하지만 친환경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며 "도로 위의 그 어떤 차와도 혼동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차를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헨릭 피스커는 이 시제품의 개발을 위해 500만 달러의 자금을 소진했고 상용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 때 손을 내민 사람이 실리콘 밸리의 벤처캐피털인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KPCB)의 경영 파트너를 맡고 있는 레이 레인이었다. 오라클의 최고운 영책임자(COO)를 지냈던 그는 테슬라 모터스, 코다, 앱테라 등 유수의 전기자동차 업체들과 그 업체들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피스커 오토모티브의 계획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전기자동차 메이커들은 충분한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차체를 작고 가볍게 하는 방법을 택했던 반면 피스커 오토모티브는 긴 주행거리를 보장하는 강력한 엔진을 탑재하고도 실용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멋진 외관 디자인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레인은 당시를 회상하며 "카르마를 소유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예측해보려 했지만 어떤 문제도 찾을 수 없었다"며 "헨릭 피스커처럼 자신의 물건을 사라고 대놓고 요구하지 않으면서 강한 흡인력을 갖춘 사람은 처음 봤다"고 밝혔다.





카르마의 내부와 주행성능

현재 피스커 오토모티브는 카르마의 세부제원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확인 가능한 정보들을 끼워 맞춰 양산모델의 보닛 내부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기술들이 접목될지를 예측하고 있다.

일단 모터쇼에 나온 모습을 감안하면 카르마는 외형이 꽤 크다. 전장은 5m 정도며 중량은 2,633㎏이나 된다. 이는 롤스로이스의 고스트(Ghost) 모델보다 무거운 것으로서 스포츠모드와 전기식 무소음 모드 등 카르마의 듀얼모드 시스템이 중량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또 2기의 전기모터가 차량 후미에 배치돼 있고 백업용 2ℓ급 GM 에코텍 가솔린엔진은 전방에 위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실내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돌출부위에 들어있다. 바로 이 배터리의 힘으로 카르마는 평시주행에서 배터리 재충전 없이 대다수 미국인들의 일일 주행거리인 80㎞를 달릴 수 있다.

백업 엔진은 배터리가 완전히 소진되면 구동되지만 일반 하이브리드카와 달리 가솔린엔진이 바퀴를 직접 구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전기모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기로 쓰인다. 100% 전기자동차와 달리 카르마는 가끔씩 주유소에 들러 휘발유를 넣기만 하면 전기 재충전 없이도 무제한 주행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배터리를 완충 하고 휘발유도 가득 채워 넣었다면 주행거리가 최대 483㎞나 된다.

특히 카르마는 무거운 중량에도 불구하고 앞뒤의 균형이 잘 맞는다. 연료탱크가 작은 이점을 살려 헨릭 피스커가 차량 후미를 짧고 스포티하게 설계한 결과다. 그는 또 전기모터와 차동 장치를 직접 연결시킴으로서 카르마가 단 한 번의 기어 조작만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52㎞까지 가속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가솔린엔진을 사용하면 순식간에 시속 200㎞까지 가속된다.

듀얼 모드 중 어떤 모드로 주행할지는 핸들 왼쪽에 구비된 스틱을 조작해 선택된다. 스포츠모드에서는 강력한 파워가 나와 언덕 하나쯤은 가뿐하게 넘으며 스텔스 모드로 도 불리는 전기식 무소음 모드에서는 독일의 베를린, 하노버, 쾰른 등 배출가스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의 차량은 진입할 수 없는 도시에서도 운행이 가능하다.

카르마는 미국 시장만을 노리고 개발된 전기자동차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수출전망을 밝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헨릭 피스커에 따르면 피스커 오토모티브는 생산된 카르마의 60%를 해외 수출할 계획이다.

핸들의 우측에 부착된 또 다른 스틱을 조작하면 자체 발전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회생 브레이크 장치를 3단계로 제어할 수 있다. 1단계는 도심 주행, 2단계는 산악주행, 3단계는 긴 내리막길용이다. 3단계를 사용하면 최소 16㎞를 주행할 수 있는 전력을 충전할 수 있다.

현재 피스커 오토모티브는 카르마의 제작과 관련한 상당부분을 외주 제작에 의존하는 사업모델을 운용하고 있다. 에어컨디셔닝 시스템을 포함, 약 200가지의 부품을 외 주 제작사로부터 원가로 도입한다. 심지어 차량의 시트도 외주 제작품이다. 헨릭 피스커의 파트너인 쾰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직접 시트를 설계·제작할 능력이 있지만 이는 2,000만 달러나 소요되는 작업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포르쉐의 카이맨 모델을 생산 중인 발메트 오토모티브에게 카르마의 조립·판매권을 넘겨 핀란드 시장을 공략키로 한 것도 이처럼 비용대비 효율을 감안한 결정이다.





럭셔리 전기자동차에 대한 회의론

하지만 카르마에서는 콘셉트카 이상의 양산형 자동차 같은 느낌은 느껴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문의 걸쇠는 전기식 무 소음 시스템을 채택했고 지붕에는 태양전지 패널이 있는 등 조금씩 뜯어보면 세부사양이 꽤 사치(?)스럽다. 여기에 에코 치크(Eco-Chic)라는 값비싼 옵션도 제공된다. 이를 선택하면 시트는 천연섬유, 대시보드는 합성가죽인 울트라스웨이드로 제작된다. 또한 2007년의 캘리포니아 산불 현장에 서 수거한 목재로 내부인테리어를 한다.

옵션가격만 무려 7,500달러나 되지만 엄격한 채식주의 자인 비건(vegan)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옵션이다. 비건은 육식은 물론 동물과 관련된 제품까지 사용을 거부, 시트나 내부 장식 등에 천연가죽을 사용한 자동차를 구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최신 기술을 적용, 운전석이 놀랍도록 간소하다. 차 내의 모든 장치와 시스템이 대시보드에 채용된 10.2인치 터치스크린으로 통제돼 대시보드에서 볼 수 있는 버튼은 글러브 박스와 도어록, 그리고 긴급 주·정차 시에 점멸되는 경고등 조작용 스위치 3개뿐이다. 기어도 전진, 중립, 후진 등 단 3개로 간단하다.

좌석은 성인 4명이 탑승하기에 충분하며 시트 역시 큰 편에 속한다. 차량 실내의 중심을 관통하는 배터리 수납부로 인해 뒷좌석 공간의 활용성이 다소 제한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특히 다부진 외관에 비해 공기저항계수는 0.31에 불과하다. 프리우스의 0.25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이렇듯 카르마는 매우 매력적인 자동차다. 시제품 앞에만 서 있어도 남자의 질주본능이 되살아날 정도다.

굳이 문제를 지적하자면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들어 키가 180㎝ 이상의 장신들이 운전석에 앉으면 갑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폭스바겐이나 혼다의 차량에 적응되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카르마는 차체가 과도하게 낮고, 길며, 넓다는 선입견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의 세제 혜택 7,500달러를 감안해도 대당가격이 8만7,900달러나 되는 카르마가 시장에서 성공 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GM의 전 회장이었던 로버트 스템펠도 카르마와 같은 럭셔리 전기자동차에 대해 회의적 입장이 다. 그는 "고가 전기자동차는 시장규모가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전기자동차가 실용성을 갖도록 만들려면 다 수가 구입 가능한 가격으로 공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헨렉 피스커도 이런 지적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대중을 상대로 한 대량판매 시장을 공략하려면 상식적이고 따분해야한다는 생각에는 반대한다. 피스커의 차기모델인 니나가 그 방증이다. 패밀리 세단으로 디자인된 니나의 가격은 4만7,000달러로 범용성을 갖췄다. 이 니나의 생산을 위해 피스커 오토모티브는 GM의 델라웨어 공장을 1,800만 달러에 매입, 리모델링할 예정이다.






피스커와 테슬라… 경쟁자와 동반자

헨릭 피스커의 야망과는 다르겠지만 럭셔리 친환경 자동차 시장을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독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의 기업들 다수가 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최대 경쟁자라 할 수 있는 테슬라 모터스의 경우 피스커와 마찬가지로 미 에너지부(DOE)로부터 4억 6,500만달러를 지원받은 바 있다. 이 회사는 현재 4도어 세단 '모델 S'를 독자 개발 중이다.

정부자금 10억 달러가 하이엔드 급전기자동차 시장의 선구자가 되려하는 이 두 기업에게 투자된 것이다. 어쨌든 이들 기업들이 경쟁해야 하는 고급 전기자동차 시장은 매우 작다. 테슬라 모터스가 지난 2007년 모델 S의 설계를 의뢰했던 기업이 헨릭 피스커가 운영하는 피스커 코치필드라는 사실을 알면 업계가 얼마나 좁고 작은지 실감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테슬라가 모델 S의 디자인을 받아든 지 몇 달 후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카르마의 콘셉트 모델을 들고 모터쇼에 나타났던 것이다. 당시 카르마를 본 테슬라의 임직원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르마와 모델 S의 설계가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테슬라는 헨릭 피스커를 기업비밀 누설 혐의로 고소했고 법원은 피스커에게 테슬러측에 100만 달러 상당의 사용료와 소송비용을 내라고 판결했다.

이후 테슬라는 일본기업 마쯔다의 스타 디자이너였던 프란츠 판 홀츠하우젠을 영입, 피스커와의 대립각을 분명히 세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사는 최대 경쟁자이자 최고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양사 모두 신규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점에서 힘을 합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싶어 한다. 시장이 커져야만 두 회사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한 임원은 "테슬라는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피스커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음은 물론이다.

현재 양사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는 상류층 시장을 개척해내면 규모의 경제가 창출되며 가격 인하가 유도돼 대중화가 이뤄진다는 이론이다. 처음에는 너무 고가여서 서민들의 구매가 불가능 했던 LCD TV가 현재는 많은 가정에 보급되고 있는 것도 이 효과로 설명된다.

문제는 LCD TV와 력셔리 전기자동차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 LCD TV는 건실한 대기업의 작품이었던 반면 럭셔리 전기자동차는 이 한 가지 아이템에 사운이 걸려있고, 대다수 자금을 투자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신생 기업의 제품에 불과하다.

여기서 발현되는 불안감은 이곳저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먼저 DOE는 피스커 오토모티브에 대한 자금지원 조건으로 1억5,000만 달러를 자체 조달하라고 했다. 이 회사가 리튬 이온 배터리 업체인 A123 시스템즈에 배터리 공급을 맡기고 2,300만 달러를 투자 받은 근원이 이것이다.

그러나 다른 배터리 제조사 에너델은 투자요청을 거절했다. 에너델의 모기업인 에너원의 CEO 찰스 가센하이머는 올 1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 전기자동차 콘퍼런스를 통해 "피스커의 가치를 판단해본 결과, 투자 불가 결정을 내렸다"며 "전기자동차 산업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높은 위험이 있다"고 말해 좌중을 침묵속에 빠뜨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피스커의 파트너인 퀀텀퓨얼시스템즈에 대한 주요 의문들도 많이 남아있다. 이 회사는 자신이 개발한 Q 드라이브 시스템을 바탕으로 카르마의 배터리, 인버터, 모터, 제동시스템 등을 조화시키는 핵심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데 Q 드라이브가 알려진 것만큼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퀀텀은 이에 대해 금명간 모든 의문이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GM의 픽업트럭 2대에 Q 드라이브를 장착, 1년 이상 캘리포니아에서 비밀리에 주행시험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피스커 오토모티브의 버나드 쾰러도 "아무도 모르고 있기는 해도 우리는 이미 Q 드라이브로 수천 km의 주행시험을 마쳤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는 카르마의 시제품 탑승 요청 때와 같이 Q 드라이브의 테스트 차량에 대한 탑승 요청도 정중히 거절했다.






코다가 선택한 길

주지하다시피 전기자동차 시대의 개막과 부흥이 피스커와 테슬라의 손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이들 과는 다른 방법, 다시 말해 저렴하고 상용성 높은 모델로 전기자동차 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피스 커, 테슬라와 유사한 신생기업 중에서는 코다가 가장 눈에 띈다.

피스커와 코다의 가장 다른 점은 코다의 경우 시제품 탑승을 전혀 꺼려하지 않는다는 것. 탑승의사를 표명하자마자 이 회사의 케빈 크징거 CEO는 미쓰비시가 만든 차대를 개조해 만든 시제품 세단에 앉을 수 있도록 해줬다.

카르마와 달리 이 세단의 외관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 자동차와 별다를 바 없다. 007 영화의 제임스 본드가 타는 첨단 자동차나 슈퍼카의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다. 크징거 CEO가 스스로 "헨릭 피스커가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던지며 화를 낼 만큼 평범한 자동차"라고 평가할 정도다. 코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 전기자동차를 약 3만 달러에 판매 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동차"라며 "조용하고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고 저렴한 자동차"라고 밝혔다. 벤처캐피털 KPCB의 레이 레인도 "코다의 세단은 정말 평범한 차"라며 "하지만 바로 이 점이 가장 큰 특징일지도 모른다"고 피력했다.

코다가 자신의 전기자동차에서 가장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배터리다. 이 회사가 전자부품업체인 새턴 일렉트로닉스에서 고에너지 밀도를 가진 리튬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하던 엔지니어들이 창립한 회사임을 안다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자부심을 표현하듯 크징거는 알루미늄으로 포장된 배터리 셀을 허공에 휘두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배터리는 자동차 사고가 나더라도 연기를 내뿜지 않습니다. 화재나 폭발을 일으킬 위험은 훨씬 낮지요."

피스커나 테슬라와 비교해 코다는 매우 가난한 회사다. 벤처캐피탈에서 8,000만 달러를 지원받았을 뿐 정부 지원은 일절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징거에 따르면 코다의 전기자동차 세단은 구동력 제어시스템과 에어백 제어시스템을 정밀튜닝하는 작업을 제외하면 거의 완성 단계다.

튜닝이 완료되면 중국 하얼빈의 하페이(合飛)자동차에서 차량을 조립, 미국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올해 4/4분기와 내년 말 사이에 총 1만6,000대를 공급할 계획이다. 또한 판매망 구축을 위해 캘리포니아의 부유한 지역 4곳에 별도의 대리점도 개설할 방침이다.

이대로라면 코다가 시장에 입성한 지 2년이 지나서야 피스커나 테슬라의 중저가 모델이 출시된다는 얘기다. 코다 세단과 카르마만을 놓고 보면 과연 어떤 모델이 미래의 자동차에 근접해 있을까. 이 의문은 미래의 자동차도 지금처럼 우리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모습을 할지, 아니면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눈부신 외관이 기능성에 묻혀 사라져갈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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