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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우주환경 극복할 우주인 최후의 안전장치 우주복

우주는 그 어떤 장소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이다. 우주에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태양이 쏟아내는 엄청난 고열과 200~300℃를 넘나드는 일교차, 방사능의 피폭, 총알처럼 날아오는 미세 유성체 등 지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위협을 극복해야 한다. 우주복은 이러한 온갖 위험에서 우주인의 생명을 지켜주는 시발점이자 최후의 보루다.
자료제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인간이 우주공간에 맨 몸 그대로 노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공상과학 영화에서 자주 묘사되는 것처럼 몸이 갑자기 부풀어 올라 터진다거나, 순식간에 피가 끓어 증발하거나, 곧바로 얼어붙어 버리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실험결과에 의하면 변화는 생각보다 서서히 진행된다. 약 10초가 지나서야 피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15~20초 후 산소 부족으로 무의식 상태가 되며 1~2분 후에는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확인해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 1965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 연구 시설에서 발생한 사고다. 저압 실 안에서 테스트 중이던 우주복이 터져 사람이 진공상태에 노출됐는데 이 남자는 진공상태 노출된 후 약 15초 후에 의식을 잃었다. 이는 산소가 결핍된 혈액이 폐에서 뇌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같다.

사고 후 보고에 의하면 그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입 안의 수분이 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우주개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치명적 위험들을 극복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와 같은 극한의 우주환경을 극복하고 우주인의 생명을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가 있다. 바로 우주복이다.

전투기 조종복이 우주복의 전신

우주 최강국 미국을 기준으로 볼 때 우주복의 역사는 우주개발이 본격화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머큐리, 제미니, 아폴로 등의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가기 이전에도 군사적 목적을 위해 고(高) 고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파일럿들이 이미 우주복과 유사한 형태의 조종복을 착용하고 있었던 것.

실제로 미국 우주복의 효시는 한국 전쟁 이후 1950년대에 출현한 '마크 Ⅳ(Mark Ⅳ)'조종복이다. 이는 고고 도 전투기의 조종사들을 위한 일종의 부분 가압복으로 조종사들의 신체를 압박, 급격한 중력변화로 혈액 흐름이 갑자기 바뀌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후 가압식 조종석과 X-15 로켓엔진 비행기를 위한 완전한 가압복이 개발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자진 마크 Ⅳ는 지난 1958년 시작된 미국의 첫 번째 우주프로젝트 '머큐리'에 의해 다시 부활한다. 사람을 우주로 내보내기 위해선 우주선 내부의 압력강하로부터 승무원을 보호할 우주복이 필요했고 마크 Ⅳ를 그 모태로 삼아 이를 개발키로 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마크 Ⅳ와 X-15용 비행복을 놓고 검토했지만 가볍고 개량이 쉬운 마크 Ⅳ를 선택했다.

이렇게 탄생한 머큐리 우주복은 합성고무인 네오프렌으로 코팅한 나일론을 내피로 하여 알루미늄 도금 나일론을 바깥에 덧대어 제작됐다. 알루미늄 도금은 고열을 차단하고 반사하는 효과가 있다. 팔꿈치와 무릎에는 주름을 주어 구부리기 쉽도록 했지만 가압상태에서 팔과 다리를 굽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주복 공기를 채워 팽팽하게 가압하면 움직임에 상당한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경험자가 아니면 잘 이해되지 않겠지만 가압된 우주복은 돌처럼 딱딱해 웬만한 힘으로는 손목하나 까딱하기도 힘들 정도다. 우주인들이 평상시 머큐리 우주복을 가압하지 않은 상태로 입으면서 우주선의 감압에 대비한 백업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도 이러한 불편함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우주복으로의 산소 공급은 허리에 부착된 호스를 통해 이뤄졌으며 이 산소는 몸을 돌아 헬멧 우측의 배출구로 빠져나갈 때까지 체온을 식혀 주는 효과도 제공했다. 또한 헬멧의 왼쪽에는 통신 라인, 우측 다리에는 우주인의 의학적 정보를 우주선의 무선 데이터 전송장치로 보낼 수 있는 케이블이 달려 있었다.

비록 인류 최초의 우주인 자리는 러시아의 유리가가린에게 내줬지만 앨런 셰퍼드가 지난 1961년 미국인 최초로 탄도 비행에 성공하고 존 글렌이 1년 뒤 지구를 세 바퀴 도는 궤도비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머큐리 우주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구성과 활동성 높인 제미니 우주복

미국의 두 번째 우주개발 프로젝트 '제미니'는 아폴로 우주선을 활용한 유인 달 탐사가 목표였다. 따라서 승무원의 수가 2명으로 늘어나고 우주 유영, 랑데부, 도킹 등 새로운 기술들이 시도되면서 우주복도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량이 이뤄졌다.

제미니 우주복은 X-15 고고도 비행기의 조종복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제미니 우주선에 사용된 이후 U-2 정찰기, SR-71 블랙버드, 그리고 여타 우주왕복선 등에 다양한 모습으로 쓰였다. 이 우주복은 G3C, G4C 등으로 표시되는데 G는 제미니 프로그램, 숫자는 우주복의 버전, 그리고 C는 우주복 제작사를 나타낸다.

기본적으로 제미니 우주복은 머큐리 우주복에 비해 내구성이 강화됐고 움직임이 한층 자유로웠다. 이중 G3C는 가장 안쪽에 고무재질 층, 중간에 고정 층, 바깥쪽에 신소재 노맥스(Nomax) 섬유를 사용하는 등 총 6겹으로 구성됐다. 노맥스는 1960년대초 당시에는 가히 획기적인 첨단 소재였으며 열, 화학물질, 방사능에 대한 내구성이 뛰어났다.

헬멧은 완전 가압식이었고 장갑은 개량된 잠금 링으로 소매에 결속할 수 있도록 해 손목의 활동성을 높였다. 하지만 G3C 우주복은 첫 번째 제미니 비행에 단 한 차례 활용된 뒤 G4C에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G4C는 G3C와 외관은 같지만 마일라(Mylar) 소재 단열층을 추가, 120℃의 직사광선과 -120℃의 저온을 견딜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또 태양 차광막이 채용되는 등 우주선 외부 활동의 수행에 적합하게 개량됐다. 지난 1965년 제미니 4호의 승무원 에드워드 화이트가 이 G4C를 입고 미국인 최초로 우주유영에 성공한 바 있다.

G5C는 제미니 7호 때 등장했는데 당시 우주인들은 13일간 우주에 체류하며 인간이 달 탐사 기간 중 우주에서 생존이 가능한지를 실험했다. G5C 우주복에는 지퍼가 추가돼 우주에서 탈의와 착의의 편의성이 강화됐다. 때문에 우주인들은 발사, 랑데부, 귀환 등 위험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비행시간 동안 우주복을 벗고 비행복을 착용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때 우주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생의학적 실험을 통해 장기 우주비행에서 우주복 대신 비행복을 입는 편이 승무원의 정신적·육체적 안정에 효과적임이 증명됐다는 점이다. 이는 아폴로 7호 이후 지금까지 우주인들이 평상시에는 답답한 우주복을 벗고 편하게 선내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단초가 됐다.




달 탐사에 초점 맞춘 A7L

미국 우주개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아폴로 달 착륙 프로젝트는 커다란 비극과 함께 시작됐다. 지상에서 훈련을 받던 승무원 3명이 사령선 안에서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었던 것. 이를 계기로 'A7L'로 명명된 아폴로 우주복에는 불연성 재질의 겉감이 채택됐다.

이외에도 A7L 우주복은 달 탐사에 초점을 맞춘 탓에 새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풍화작용을 받지 않은 달의 날카로운 암석에 쉽게 찢어지지 않는 내구성, 태양광이 직접 내리쬐는 달 표면의 고온을 견뎌낼 고도의 내열성이 그것이다. 특히 달을 돌아다니며 샘플을 채취하고 실험 장비를 설치할 우주인들이 장시간 활동해도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게 가압상태에서도 편안한 활동성을 갖춰야 했다.



이에 아폴로 우주복은 기본적으로 TLSA(Torso Limb Suit Assembly)와 통합된 보호커버 레이어, 가압 헬멧, 가압 글러브, 그리고 여러 기기장치 등으로 구성됐으며 실외 활동 시에는 헬멧 위에 착용하는 차광면경과 월면 부츠 등이 추가됐다.

TLSA는 머리와 손만 빼고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감싼다. TLSA 우주복의 무릎, 손목, 어깨, 팔꿈치, 발목, 허벅지 부분에는 아코디언처럼 생긴 고무 재질의 주름을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이전 우주복보다 움직임의 자율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TLSA만 입고 있는 사진을 보면 아폴로 우주복이 우주인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만들어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아폴로의 우주인들이 토끼처럼 껑충껑충 뛰며 달 표면을 이동했음을 떠올리면 가압에 따른 이동상의 불편함이 완벽히 해소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TLSA 위에는 보호용 흰색 겉옷을 덧입어 선외 활동에서 발생가능한 온도저하를 방지하고 태양의 유해 광선을 차단했으며 작은 우주 파편과의 충돌에서 우주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엄청난 속도로 우주공간을 가르고 달 표면에 쏟아지는 소형 운석 입자들은 우주복을 뚫을 수도 있는 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선외 활동을 수행한 우주복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구멍 들이 뚫려 있는 경우를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아폴로 우주선은 달 궤도를 도는 사령선과 달착륙선으로 구성되면서 사령선에 남는 1명의 승무원과 착륙선에 탑승한 승무원 2명은 각기 우주복이 달랐다. 착륙선의 우주인들은 열과 소형 유성체에서 인체를 보호하는 7겹의 슈트(ITMG)를, 사령선의 우주인은 3겹짜리 선내 보호 슈트(IVCL)을 보호용 겉옷으로 착용했다.

덧붙여 선외 활동용 우주복에는 배낭처럼 등에 메는 휴대용 생명유지 장치도 추가 장착됐다. 이 장치에는 산소 공급장치, 우주복 내부압력 조절장치, 공기 중 산소추출 장치 등이 탑재되어 있었으며 냉각액을 순환시켜 우주복 내부온도를 조절하거나 비상상황에서 경보음을 송출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도 주요기능의 하나였다.

완전히 분리된 선내·선외 우주복

아폴로 프로젝트 이후 미국은 우주왕복선을 개발한다. 우주왕복선의 주요 임무는 국제 우주정거장(ISS)의 건설과 보수·관리를 위한 자재와 우주인의 수송이다.

이러한 우주왕복선용 우주복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하나있다. 선내 우주복과 선외 활동복이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이중 선내 우주복은 색상이 화초호박과 유사한 밝은 오렌지색이어서 펌프킨 슈트라고 불리는데 디자인은 제미니 우주복과 유사하다. 이 슈트는 내부에 열이 쌓일 수 있어 체온유지를 위한 냉각용 옷을 입는다. 옷 안쪽으로 플라스틱 튜브가 온몸을 감싸고돌면서 액체를 이용해 우주복 내부의 온도를 조절한다.

지난 1986년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 이전의 우주복은 부분가압 방식의 원피스 형태였다. 하지만 사고 이 후 NASA는 별도의 탈출시스템을 구축하고 완전 가압식의 우주복을 재도입했다. 우주복의 색을 오렌지색으로 한 것도 비상탈출 상황을 고려한 결과 다. 눈에 쉽게 띄어 구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주 왕복선용 선내 우주복은 지난 95년 도입된 ACES(Advanced Crew Escape Suit)로 등 뒤의 배낭에 낙하산과 1인용 구명보트, 비상 산소통 등 각종 생존장비들이 부착돼 있다.

선외 활동용 우주복은 하얗고 육중하게 생긴 EMU(Extravehicle Mobility Unit)다. 달 표면에서 주로 활용됐던 아폴로 우주복과 달리 EMU는 ISS 주위를 유영하며 ISS의 건설 및 보수임무에 적합하도록 제작됐다. 유영을 할 때는 다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리의 활동성은 고려되지 않았지만 손잡이를 잡고 이 동하면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해야 하 는 팔과 손을 위해서는 많은 요소가 도입됐다.

일례로 EMU용 장갑은 가압상황에서 적은 힘으로 물체를 잘 집을 수 있고 장시간 작업에 따른 피로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ISS의 차가운 손잡이를 잡으며 이동할 때 체온을 뺏기지 않도록 내부에 히터도 있다. 또한 EMU의 몸통과 두 팔의 연결부위에는 베어링을 부착, 가압상태에서 어깨와 팔의 움직임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돼 있고 하나의 사이즈로 제작되지만 우주인의 신체 사이즈에 따라 팔 길이를 선택해 조립할 수 있다. 완벽하게 착용한 EMU의 중량은 135kg에 이른다고 한다. EMU에는 또 안전고리와 케이블로 구성된 테더(tether)라는 연결선이 있어 우주선과 EMU를 연결할 수 있다. 실수로 ISS에서 튕겨져 나가도 우 주미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테더로 연결하지 못한 채 선외 작업을 해야 할 때는 배낭형 추진장치인 세이 퍼(SAFER, Simplified Aid For EVA Rescue)를 착용한다. 조이스틱으로 조종하는 세이퍼는 질소를 분출, 초속 3m의 속도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과 도전

이렇듯 우주복의 진화 역사를 돌아보면 우주탐사와 고산 등정이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 장소 모두 애당초 인간에게는 발길이 허락된 장소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개인적으로 지난 2004년 여름 파미르 고원에 위치한 해발 7,500m의 '무즈타그 아타'를 등반한 경험이 있는데 그 정도 높이에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가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밤중에 물 속 깊숙이 몸이 잠겨 들어가는 느낌에 몇 번이나 숨을 몰아쉬며 잠에서 깨어난 적도 있다. 당시 지독한 고소증세를 겪으면서 눈 덮인 설산은 절경이지만 인간을 쉽게 품으려 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검은 우주는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특수 제작된 우주복에 의존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래 전부터 우주를 동경하고 꿈꾸며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한 발 한 발 우리의 영역을 넓혀 왔다. 이것이 높은 산과 광대한 우주의 두 번째 공통점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 험한 곳을 향한 여정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어려움을 찾아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에서 안락함을 누리는 삶 대신 높은 산에 오르고, 더 깊은 우주 속으로 모험을 감행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과 동경, 그리고 도전이 때로는 산소와 물, 식량처럼 인간을 살아 숨 쉬게 하는 필수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글_고 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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