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종 기술이 바꾼 풍성한 식탁
종자라고 하면 누구나 씨앗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 98년 시행된 우리나라 종자 산업법에는 종자의 정의를 '증식용 또는 재배용으로 쓰이는 씨앗·버섯종균 또는 영양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곡물과 채소의 씨앗뿐만 아니라 버섯이나 영양번식을 하는 감자 등도 종자에 포함되는 것이다. 맛있고 풍성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꾸준히 종자를 개량해 왔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품종개량을 육종이라고 표현한다.
육종을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례로 논밭에 종자를 심은 뒤 자라난 작물 중 산출량이 많고 빛깔이 고운 개체가 있으면 먹지 않고 보관해 이듬해에 종자로 사용하는데 이를 '선발 육종'이라 한다.
또한 선발 육종에서 진일보하여 다른 곳에서 종자를 들여와 심는 '도입육종'이 있으며 멘델의 연구 이후에는 원하는 형질을 특정 종자에 집적시키는 '교배육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기법을 이용한 종자의 '형질전환법'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형질전환 방법은 동물, 식물, 미생물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도입해 종자를 만드는데 요즘 'GMO(유전자변혁유기체)'라 부르는 종자가 그것이다.
이 형질전환법은 많은 국민이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과학자들이 안전성 확보를 위해 다각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밖에도 방사선이나 화학약품을 처리하는 '돌연변이 육종법', 타가수정작물을 혼합해 종자를 만드는 '집단 육종법' 등이 있다.
지금은 총성 없는 종자전쟁시대
육종기술을 통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 메리트는 굶주림을 해소하고 인류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1971년 개발한 '통일벼'가 그 실례다. 통일벼는 일본벼, 중국벼, 국제쌀연구소(IRRI)의 벼를 교배해 만든 3원 교배종으로 보릿고개를 역사 속으로 묻어버린 일등공신이다.
현재 세계 농업 관련 종자시장 규모는 365억 달러에 이르며 각국 간에 '총성없는 종자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종자야말로 인간 삶의 원천이며 다양한 의약품, 신기능성 물질 등의 원료가 되어 미래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 자 국부창출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 이후 세계 각국이 자국자원의 보호를 강화하면서 종자자원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국제법으로서 보장받고자 했고 국제사회가 '자원 주권'을 인정하면서 토종자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밝히기 위한 경쟁이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사실 세계 종자자원 보유국 1위인 미국은 150년 전부터 식물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종자를 수집·보관해왔다. 우리나라도 미국보다는 100년 가량 늦었지만 지난 1974년 농촌진흥청에 종자관리실을 설치하고 시설을 확충하면서 유전자원의 수집·보존에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일본, 미국, 독일, 러시아 등 국외로 유출된 총 4천422점의 토종자원을 반환받는 등 재래종 및 야생종의 수집을 통해 2010년 1월 현재 27만2천 여점의 종자자원을 확보한 세계 6위의 유전자원 보유국이 됐다.
농민 잡는 종자 로열티
문제는 현재 국내 현실이 이러한 명성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식탁에 오르는 채소와 과일 중 우리나라 종자를 심어 재배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파프리카는 100% 네덜란드와 스위스 품종이고, 양파는 80%, 브로콜리는 95%, 양배추는 98%가 일본산이다. 과일의 경우 키위는 70%가 칠레와 뉴질랜드산, 토마토의 80%는 일본산 품종이다.
우리 식탁의 채소와 과일 중 60%를 외국 종자가 차지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우리는 외국에서 돈을 주고 종자를 사와 그 사용대가로 많은 로열티를 지불해야하는 실정이다.
또한 우리가 전시용이나 선물, 기념일마다 즐겨 사는 꽃도 외국에 로열티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장미는 유통되는 품종의 98% 정도가 외국산이다. 재배농가들은 묘목당 1천~2천원 정도를 장미 품종에 대한 로열티로 지급한다. 국내에서 자란 묘목이더라도 품종이 외국산이면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이처럼 해외에서 개발된 품종을 사용하기 위해 지불하는 로열티가 2006년 한 해에만 124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는 장미 76억3천만원, 난 27억 원, 국화 10억4천만원, 카네이션 5억5 천만원 등이다. 2008년에는 160억 원이 넘는 돈이 로열티로 나갔다.
농작물의 경우 2012년까지 전 작물로 확대되어 키위의 경우 한 해에 40억 원, 일본산이 많은 딸기는 한 해에 30억 원이 넘는 로열티가 지불될 예정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로열티 지급에 의한 생산비 증가를 견디지 못해 많은 농산물의 재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식량 예속국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소중하고 귀중한 우리 종자
전문가들은 올해 이후 전 세계적으로 2억톤 이상의 식량이 부족한 위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나 북한의 어린이들은 식량난에 따른 굶주림과 질병으로 매년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없어서는 안 될 식량의 생산을 위해 종자를 안전하게 보존하고 후세가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농부는 굶어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종자야말로 농사의 출발이며 한 해 농사의 성공여부는 종자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작은 텃밭일망정 감자 한 알, 고추 한 포기, 옥수수 한 알이라도 심어본 사람은 종자의 소중함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종자는 모든 농업의 핵심이자 한 나라 농업의 역사이다. 우리 주변에 비록 이름도 알지 못하는 나무와 꽃, 풀 한 포기라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글_ 박홍재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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