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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탐구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의 두뇌를 스캔해보면 사람을 겁에 질리게 하는 원인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의 발견은 공포영화를 포함한 모든 영화의 제작 방식에 변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영화관에 누워 영화를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관에는 팝콘 파는 곳이 없다. 스크린은 작고 좌석도 불편하다. 좌석이라고 해봐야 벽과 5㎝ 정도의 여유밖에 없고 스크린은 얼굴의 수 ㎝ 앞에 놓여있어 불편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스크린에는 연쇄살인범을 다룬 선혈이 낭자한 공포영화 '더 포킵시 테잎스'가 상영 중이다.

사실 이곳은 영화관이 아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소재 뉴 로 마케팅 기업인 마인드 사인(Mind Sign)사의 기능성 자기 공명장치(fMRI) 내부다.

주로 의료용으로 쓰이는 fMRI는 뇌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영상화해 보여주는데 이 회사는 지난 3년간 fMRI를 활용,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들의 뇌신 경 반응을 측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통해 영화제작자들이 일반인들에게 더 강하게 어필하는 예고편을 제작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 회사처럼 인간의 무의식적 반응 등 두뇌 활동을 분석, 마케팅에 접목하는 뉴로 마케팅은 새로운 마케팅 분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커다란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각 개인의 fMRI 신호를 보면 특정 음료수나 정치인 등에 대한 선호도 파악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발표된바 있지만 이것이 틀렸음을 밝힌 연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인드사인의 창업자들은 자신들의 기술이 영화 예고편 제작에 더없이 유용하다고 강조한다. 이 회사의 데 빈 허바드 사장은 "영화 예고편에서 한 샷의 길이는 fMRI가 뇌 활동을 1회 스캔하는 속도와 거의 비슷한 평균 1~2초 정도"라며 "이 둘은 가히 완벽한 조합"이라고 밝혔다.

저서 바이올로지(Buyology)의 저자이자 뉴로 마케팅 전문가인 마틴 린드스트롬도 "편도체 등의 뇌 영역이 공포에 대해 반응하는 총량이나 뇌의 실행 및 기억을 관장하는 일명 '브로드만 제10영역'을 살펴보면 영화 예고편이 대중에게 강력한 감정적 교감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마인드사인을 위시한 몇몇 영화제작자들은 최근 들어 이 기술을 응용한다면 단순한 예고편 제작을 넘어 영화 전체를 편집하는데 있어 매우 강력한 자료이자 도구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영화 수익성 제고를 위한 과학적 도전

작년 말 독립영화 제작자인 피터 카츠는 TV 보도프로그램 '60분(60 Minutes)'에서 뉴로 마케팅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는 것을 시청했다. 그리고는 fMRI 스캔을 통해 자신의 신작 공포영화 '팝 스컬(Pop Skull)'을 분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증에 빠졌다.

결국 마인드사인의 허바드 사장을 찾아간 그는 fMRI로 뇌의 어느 부분을 스캔해야만 인간의 공포에 대해 알 수 있을지 논의했다. 이 때 거론된 부위가 바로 편도체였다. 많은 연구에 의해 편도체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반응, 특히 공포를 주관하는 뇌 영역임이 과학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fMRI로 편도체의 활동을 파악함으로서 피실험자가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뇌를 스캔하여 그 평균값을 낸다면 영화 속 어떤 요소가 편도체의 반응을 잘 이끌어내는지, 다시 말해 관객들의 공포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실시한 초기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숲 속에서 갑자기 악당이 튀어 나오는 모습보다는 벽을 따라 살해범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는 영상이 훨씬 강력한 편도체의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것. 이는 기존 상식은 물론 일반적인 영화제작 법칙과도 정반대의 결과였다.

몇 달 후 카츠는 유명 미스터리 스릴러'쿼런틴'의 감독이자 현재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제작 중인 호러스릴러 영화 '데블'의 감독을 맡고 있는 존도들과 드류도들 형제에게 이 같은 결과를 설명했다. 호기심이 생긴 도들 형제는 자신들의 공포영화 '더 포킵시 테잎스'의 한 장면을 빌려주고 영화의 공포감을 배가할 수 있도록 재편집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서두에 언급한 fMRI 실험도 다름 아닌 이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수익성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영화계에서 이러한 뉴로 마케팅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이를 잘 활용하면 제작사와 영화관들은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더 올릴 수도 있다.

사실 지금까지 영화계는 제작된 영화의 성공을 위해 소규모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 의존해야만 했다. 엄격히 선발한 수천명의 관객을 테스트베드 삼아 개봉 전의 영화를 보여주고 그 반응에 맞춰 영화의 최종 버전을 결정했다. 이들의 반응에 따라 영화 엔딩이나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내린 평가는 몸이 느낀 실질적·객관적 반응보다는 이성적·주관적 판단이 크게 작용할 소지가 크다. 마인드사인은 이를 과학적으로 객관화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아칸소대학 뇌영상 연구센터(BIRC)의 클린턴 킬 츠 소장은 "fMRI를 동원하면 관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포함, 제작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가감 없이 얻을 수 있다"며 "뇌영상 기술은 인간이 가진 편견과 선입견을 제거하고 진실만을 알려준다"고 강조한다.







주관적 판단을 객관화하라

이러한 기법은 과거에도 활용된 적이 있다. 지난 2007년 방영된 영국 ITV의 퀴즈쇼 '퀴즈 마니아(Quizmania)'라는 프로그램이 가장 대표적 사례다.



당시 다수의 테스트베드 그룹들은 하나같이 이 프로그램에 부정적 반응을 피력했다. 전체중 30%는 '끔찍하게 싫다' 는 최악의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ITV는 fMRI를 활용,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할 것이라는 증거를 찾아냈고 방영을 확정했다. 결과는 엄청난 히트로 돌아왔다.

도들 형제가 제공한 영상으로 돌아가 보자. 당초 이 2분짜리 영상은 fMRI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길이가 너무 짧고 신 전체가 하나의 고정된 샷으로 이루어져 있어 편집의 여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영상이 시작된 후 21초까지는 몸을 묶인 채 훌쩍훌쩍 우는 희생자의 모습만 나온다. 22초가 되어서야 살인자가 등장하지만 그나마 20초간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 마지막 순간에서야 살인이 일어나고 붉은 피가 화면에 보인다.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더 고칠 수 있을까.

fMRI 스캔 결과 피실험자들의 뇌는 전체적으로 흑백을 띄고 있지만 그 속에서 붉은색과 오렌지색 사각형들을 볼 수 있다. 이는 해당 부위가 다른 부위에 비해 활성화되면서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하고 있다는 의미다.

스캔 결과를 본 마인드사인의 연구자들은 도들 형제가 비교적 관객들의 공포감을 잘 끄집어냈다고 평가했다. 영상을 보는 내내 피실험자들의 편도체가 밝게 빛났던 것이다. 단지 편도체 외에 뇌의 다른 부분들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아 영화를 본 다음날까지 무서움이 지속되는 극도의 공포감 유발에는 실패한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연구자들은 2분짜리 이 영상에서 한 가지 편집안을 찾아냈다. 영상 16초 부분 직전에 시각, 청각, 뇌 실행, 개인적 의미부여 등에 관련된 영역의 활동이 증가했던 것. 이는 그 장면이 무서웠음은 물론 공포를 내면화하고, 영상의 내용을 일상생활과 연계시켜 강력히 반응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16초가 되는 순간 화면은 진한 살색에서 거친 녹색으로 바뀐다. 도들 형제가 희생자가 살해되는 순간의 긴장감 제고를 위해 일부러 녹색 필터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색조가 바뀌면서 피실험자들의 뇌는 오히려 긴장감이 풀어졌고 이후 몇 초 동안 뇌 활동이 급격히 저하됐다.

이를 근거로 연구팀은 녹색 필터를 제거하고 원래의 색조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장면의 공포감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허바드 사장은 "영화의 장면에 맞춰 뇌 스캔 영상을 늘어놓아보면 관객의 반응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fMRI의 힘을 빌려 필름을 재편집하는 방식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편집기술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고 있다.

카츠 역시 "피실험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지하면 특정 장면이 관객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정도만 알 수 있지만 fMRI는 어느 장면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알려주며 그 해결책 마련에 필요한 데이터도 제공해준다"고 덧붙였다. 카츠의 표현을 빌자면 기존 방법은 외과수술 시 벌목 용 도끼를, fMRI는 메스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3D 이후의 영화

그러나 공포영화 외의 다른 장르에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공포는 편도체의 활성화 여부를 통해 정확한 판별이 가능한 반면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fMRI 스캔 결과를 공포감보다 복잡한 인간의 감정과 연계시킬 만한 합리적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묘한 예술적 기교를 사용한 영화들은 뇌에 미치는 물리적 영향을 해석하는 작업도 힘들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복합장르의 경우 뇌의 여러 부분을 동시에 자극해 명확한 분석결과를 내놓기가 어렵다. 이와 관련 신경과학자들은 공포의 실체를 보다 확실하게 정의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뉴로 마케팅 전문가인 린드스트롬에 따르면 두려운 순간에 맞닥뜨린 상황보다는 그 순간이 예상될 때 더욱 큰 공포를 느낀다.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을 때보다 맞기 직전까지의 공포가 더 큰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바로 이 점에서 fMRI를 포함한 다양한 과학적 방법을 동원, 영화감독들이 공포영화에서 관객이 느끼는 공포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우스 캘리포니아대학(USC) 영화학교의 엔터테인먼트 기술센터(ETC) 데이비드 워트하이머 소장은 아예 fMRI를 3D를 이를 차세대 기술로 평가한다. 할리우드가 3D를 선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fMRI 또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효율적인 스토리 전달 도구로 채택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fMRI도 3D와 버금가능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 기술로 영화 제작과정 자체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감독들이 더 우수하고 무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영화제작자들은 분명 fMRI를 활용하고자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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