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본능 일깨워 창의성 계발
네덜란드 출신 역사가 요한 하위징하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규정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는 법률과 문학, 예술, 종교, 철학 등 인간이 추구해온 대부분의 지적 관념은 놀이가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놀이가 주는 즐거움과 흥겨움, 자유분방함이 사고의 폭을 넓혀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는 곧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의 창의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어린이의 창의성 배양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책무다. 그런데 창의성은 교과서나 학습지가 아닌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체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를 인지한 미국은 이미 1899년부터 어린이들의 창의성 계발(啓發)을 위한 체험식 어린이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1995년 개관한 삼성어린이박물관은 이처럼 정규교육에서 제공받지 못하는 체험 위주의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교와 구별되며 교육 이 목적이라는 점에서는 놀이시설과도 차별되는 비형식적인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개관 초기, 삼성어린이박물관은 보스턴 어린이 박물관에서 지원받은 전시물로 채워져 있었지만 연구개발을 통해 현재는 100여 개의 전시물을 모두 자체 제작해 운영한다.
매년 새롭고 창의적인 전시물 기획을 위해 아동학, 디자인, 교육학을 전공한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짜낸다. 심지어 완성된 전시물을 1 년에도 몇 번씩 수정하고 개선해 어린이들에게 가장 좋은 체험의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화정 삼성어린이박물관 학예연구실 실장은 "어린이의 창의력과 탐구심, 자기개발능력을 고르게 고취시킬 수 있는 전시물을 선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어린이박물관은 또 문화적, 사회적 유행에 맞는 전시 주제 선정을 위해 매년 관람객 대상의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일방적인 전시물 배치가 아닌 사용자 중심의 전시로 더욱 즐거운 체험학습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린이가 중심이 되는 박물관
일반 박물관은 전시물의 주제나 역사적 가치 등이 중시된다면 삼성어린이 박물관은 모든 초점이 어린이에 맞춰져 있다. 어린이가 전시물을 통해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체험 교육의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장 실장은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놀이지만 놀이의 궁극적 목적은 교육"이라며 "이를 위해 모든 전시장에 유아교육 전문가를 배치했다" 고 설명했다.
삼성어린이박물관은 특히 지난 15 년간의 노하우를 다른 박물관에 전수해주는 컨설턴트 역할도 하고 있다.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린이관을 지원했고 국립 청주박물관의 기획에도 참여했다. 이 외에 삼성 리움미술관과 함께 지난 4년간 전국 15개 박물관에서 어린이를 위한 순회 미술전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최근에는 다문화가 정과 외국인 등 나와 다른 사람들과 지혜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어린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다양성과 평화'라는 철학 전시도 열었다. 장 실장은 "체험식 어린이 박물관을 국내 최초로 세운 만큼 관련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영진 기자 artjuck@sed.co.kr
삼성어린이박물관 전시물 BEST 5
1. 우리집은 공사중
어린이들이 직접 벽돌을 쌓으며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기획된 전시물. 문, 창문 같은 집의 구성 요소도 마련해 어린이들이 집짓는 방법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2. 터치음악가
유아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멀티미디어 전시물이다. 이 중 '뮤직믹스'는 합주와 협주를 통해 음악성·감수성 발달에 도움을 주며 '나도 모차르트'는 미뉴에트 악보를 채우며 악보의 구성단위를 익히고 완성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3. 꿈의 상자
어린이가 직접 직업을 체험함으로써 미래의 직업을 찾아갈 수 있도록 꾸민 다중지능 이론에 기반을 둔 전시물. 직업 체험이 끝나면 이름과 직업이 새겨진 명함을 받아 볼 수 있어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설계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4. 워터엑스포Ⅱ
커다란 물놀이 테이블로 이루어진 전시물. 물길, 물펌프, 물대포 등을 통해 어린이들이 직접 물의 과학적 원리를 익힐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5. 생각연못
정서적 발달과 생각에 초점을 맞춘 전시물. 어린이가 자연스럽게 명상에 빠질 수 있도록 고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주변 사물과 자연을 관찰하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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