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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네트워크 통해 과학적 전문성 갖춰야"

과학기술 강국 도약을 위한 언론의 역할과 위상

[창간기념 확대인터뷰 이기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최근 과학기술 강국 도약을 기치로 정부와 과학기술계의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국민들에게 과학기술 투자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고, 그 성과를 정확히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도 함께 커지고 있다.

서울경제 파퓰러 사이언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국내 과학기술계의 발전과 위상 강화를 꾀하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과기강국 도약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과 자질에 대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기준 회장의 고견을 들어봤다.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 언론의 근본적 역할과 존재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과학은 근본적으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과학기술은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것으로 대중과 국가의 성장이라는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결국 과학의 배경은 대중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은 바로 과학기술계의 성과물과 그 진정한 가치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이해시키는 가교와 같은 존재입니다. 과학에 있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에 언론은 과학적 진보를 대중과 공유하고 사회적 위험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 및 평가가 국민들에게 소통될 수 있도록 이어주는 통로가 돼야 합니다. 이렇게 과기계와 국민이 원활히 소통하며 국민들의 과학적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러한 사회와의 소통은 과학자 본연의 책무라 할 수 있지만 언론 역시 이 소통의 올바른 매개자로서 역할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과기계와 국민의 매개체로서 언론이 갖춰야할 기본적 자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언론은 대개 신속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 지만 과학을 기사화 할 때는 정확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 생각됩니다. 정확하지 않은 보도 하나가 자칫 사회 전체에 너무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언론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지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전문성이 부족한 전문가들이 분명히 있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전문성이 결여된 사람들이 전문직에 진출하기도 해 전문가의 말이라고 무조건 믿고 수긍하는 것은 언론의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언론과 기자들 스스로 전문가의 정확성을 판단할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최근 과학전문기자, 의학전문기자 등 전문기자들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 점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며 과학자의 '해답'을 독자들의 '의문'에 맞춰 풀어낼 수 있는 전문기자들이 더 많이 육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언론에게는 신속성도 배재할 수는 없는 만큼 정확성과 신속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언론이 자체적인 검증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인지요

그것은 아닙니다. 언론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자정 기능을 마련, 고의적·무의적 오류들을 잡아내 고 허위적 사실이나 함량 미달의 엉터리 성과들이 화제성으로 이슈화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과학은 변수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수학처럼 명확한 정답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과기계의 성과에 대한 절대적 정확성의 검증은 언론이나 대중의 몫은 아니며 학계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 전문가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학문적 문제는 학문사회에서 해결해야지 사법부나 정치권, 사회가 판단해서는 더 큰 혼란과 오류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8년의 광우병 파동이 그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당시 과총을 비롯한 여러 과학단체들이 적극적 공론의 장을 마련했었지만 사안이 과학적 진실을 떠나 사회정치적 이슈로 번지면서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바 있습니다. 작년 석면 탈크 파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소속 전문가들 중 석면 오염이 우려되는 의약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의견을 밝힌 사람은 단 1명 뿐이었지만 식약청은 언론보도로 민감해진 국민정서를 고려, 120개 제약사의 1,122개 의약품에 대한 판매와 유통을 금지했습니다. 과학적 사실과 다른 조치를 내렸기에 식약청은 해당 제약사를 처벌하기는 커녕 오히려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까지 하는 해프닝을 벌였습니다.

반대로 같은 해 일어난 멜라민 파동의 경우 학자들이 적극 나서야했던 사안이었지만 정치적이거나 민감한 이슈에 선뜻 식견 개진을 꺼리는 과기계의 풍토로 인해 과학적 진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사회적 혼란이 가중됐었습니다. 즉 과학자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언론은 진실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지적하신 것처럼 언론이 모든 과학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입니다

그 말에 동의합니다. 언론과 기자를 포함해 사실상 누구도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 100% 통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원천기술 부분은 잘 오픈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러합니다. 이에 언론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과기계 인사들과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 구축이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이 네트워크를 활용, 각 사안에 맞는 전문가들로부터 교차 검증 (cross checking)을 받는다면 기사 작성에 있어 한층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길을 물어 볼 때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물어볼수록 정확한 길을 찾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라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320여개의 학술단체를 포함, 전국 450여개 과학기술단체로 구성된 과총은 언론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과총은 언제든 요청이 있다면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성과 정확성에 치우치다보면 앞서 언급하신 대중성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또한 옳은 지적입니다. 과학기사를 아무리 전문적으로 신속 정확하게 보도했더라도 대중성을 잃는다면 의미가 반감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민들이 보지 않고, 이해하지 못 하는 보도로는 과기계와 국민을 소통시켜야 하는 언론의 궁극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아직 많은 언론과 과학기자들이 이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보도도 대중적 흥미를 고려한 기사, 다시 말해 재미있는 과학기사를 생산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일단 관심이 유발돼야 독자들이 과학을 공부하며 즐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회가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금방 잊어버리는 경향이 높습니다. 또한 지금은 대중들이 이미 인터넷을 통해 기본적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중요 이슈에 대해서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선 흥미적 요소를 함께 제공해줘야 합니다.



특히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기사가 난해하고 재미 없다는 인식이 많은 만큼 과학기사는 헤드라인에서부터 흥미 유발을 일으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신기한 과학기술을 재미있게 해설하여 소개하는 것이 이러한 대중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외와 국내의 과학언론에 차이점이 있는지요

해외와 비교할 때 과학보도를 위한 국내 언론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각 언론사의 과학보도 인력과 지면 비중에서 큰 차이가 발견됩니다. 일례로 교육과학기술부에 출입기자를 배치한 34개 언론사 중 과학부를 운용하고 있는 곳은 단 8곳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산업부, 경제부, 사회부 소속으로 과학 취재를 맡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지난 90년대에 과학부, 과학기술부, 과학환경부 등의 이름으로 존재했던 언론 부서들이 IMF 구조조정 시기를 겪으며 하나 둘씩 사라진 결과입니다. 이러한 과학부서의 약화는 곧바로 과학보도 분량의 감소로 이어져 현재 종합일간지들의 경우 대부분 주 1회 1개면의 과학면을 발행하거나 아예 별도 지면이 없는 곳도 있을 정도입니다.

덧붙여 과학담당 기자가 건강, 교육 등 다른 분야를 함께 맡고 있는 곳도 많습니다. 교육과 과학기술의 통합 부처 상황에서 과학기술이 메인을 차지하기 어렵듯 담당기자들 역시 교육 이슈에 비해 과학은 메인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향까지 일부 보입니다. 이러한 와중에도 과학전문기자들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과학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은 해외 전문기자들과의 역량 차이는 존재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현 시스템 속에서 국내 언론이 변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해야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첫 번째는 대중들과의 피드백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게재된 기사에 대해 전문가나 독자들이 항상 반론과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가 공식적으로 갖춰졌으면 합니다. 어떤 분야이건 피드백과 토론문화가 차단된다면 경쟁에서 도태되어 바른 길로 나아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피드백은 또 보도된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도 있고,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는 좋은 방안입니다.

이와 관련해 언론에도 옴부즈맨 제도가 도입됐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언론들은 기사에 오류가 발견되면 '정정합니다' 식의 정정보도로 처리해왔지만 이를 보다 적극적,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옴부즈맨이 도입된다면 대외적 신뢰성과 공정성을 배가할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사실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야 말로 너무나 흥미진진한 과학기사의 소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언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과총에서는 어떤 공조방안을 갖고 계십니까

먼저 과학분야별로 현재 어떤 변화가 전개되고 있는지, 또한 상대적으로 연구성과를 공유하기 어려운 기초과학·원천기술 분야에서는 어떤 성과들이 도출되고 있는지를 언론과 공유하기 위해 지난 2008년 3월부터 과총 소속 학회들과 언론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2008년 첫 간담회를 시작으로 지난해 세 차례의 만남이 있었고 올해에도 이미 세 번에 걸쳐 16개 학회와 언론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수치상의 실적으로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언론사나 학회 모두 '만남의 장'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양측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특히 과총은 이를 통해 산업화 기술성과와 비교해 언론에 잘 다뤄지고 있지 않은 기초과학분야의 성과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과총은 또 과학기술과 관련한 주요 사회적 이슈에 과학자들이 전문적인 의사를 표명할 수 있도록 언론과 공론의 장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계 원로로서 과기계 발전을 위해 언론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국내 과학기사들은 연구성과를 보도할 때 연구자 자체에 대한 부가 설명이 너무 없다고 느껴집니다. 연구자들이 자신의 성과에 자부심을 갖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이 부분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는 또 장기적으로 연구성과 실명제를 정착화 시키는 토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다른 연구자의 성과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 것이 마치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는데 실제 개발자를 적극적으로 알린다면 이러한 관행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지금의 언론은 과학적 성과 보도에 있어 과학기술적 배경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것이 결국 대중들의 이해도 하락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이기준 회장 프로필






학력_
1957.4~1961.3 서울대 화학공학과 학사,
1961.4~1964.8 서울대 화학공학과 석사,
1967.1~1971.8 미국 워싱턴대학교 대학원 화학공학과 박사,
2008.8_일봇 훗카이도대학 명예철학박사

경력_
1971~2003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 교수, 1976~1679 동남아공학교육협회 사무총장,
1981~1982 경제기획원 정책자문위원, 1981~1982 미국 미시간주립대 초빙교수,
1985~1989 서울대 중앙교육연구전산원장, 1989~1993 서울대 공과대학장,
1990~1993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사, 1991~1999 산업기술정보원 이사,
1992~1994 전국 공과대학장협의회장, 1994~1996 한국공학기술학회장,
1993~1997 한국유변학회장, 1994~1996 대통령 교육개혁위원회 위원,
1996~2004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1997~1999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1998~2002 서울대 총장, 1999~200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사,
2000~2002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 2001~2002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2001~2005 한국산업기술재단 초대 이사장, 2001~2003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상훈_
1996 국민훈장 목련장, 1978 대통령 표창, 1982 한국화학공학회 학술상,
2002 워싱턴대학 자랑스런 동문상, 2002 APRU 총장회의 공로상,
2003 청조근정 훈장

저서_
화학공학요론(공저), 반응공학(공저),
이동현상(공저), 공학기술복합시대(공저)
서울대가 변해야 교육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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