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공화국 한 한 병원 수술실. 미국 미네소타주 콜드 스프링에서 온 66세의 카렌 벨린이 소독된 수술포에 싸인 채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그녀가 받게 될 수술은 미국의 어떤 의사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수술은 바로 줄기세포 치료다. 그녀는 과민증 폐렴으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자신의 폐를 고치기 위해 플로리다주 보니타스프링스 소재 줄기세포 치료 기업인 레제노사이트 테라퓨틱 사에 무려 6만4,000달러(약 7,800만원)를 지불했다. 그리고 수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심장병전문의 헥터로 자리오 박사로 그는 카테터라 불리는 좁고 투명한 튜브를 환자의 다리 정맥에 삽입하는 것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이 튜브는 환자의 정맥을 따라 심장의 오른쪽으로 접근했고 이 과정은 X레이 영상을 통해 생생히 확인됐다. 카테터의 최종 목적지는 환자의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의 한 갈래였다.
카테터가 제 위치에 자리를 잡자로 자리오 박사는 주사기로 손을 뻗쳤다. 이 주사기에는 레제노사이트 테라퓨틱사가 추출한 벨린의 줄기세포 용액이 들어있으며 이스라엘에서 혈소판 성장인자와 혼합 배양된 뒤 항공기편으로 수술 몇 분 전에 도착했다.
로자리오 박사는 주사기를 카테터에 꼽고 줄기세포 용액 을 주입했다. 또한 곧바로 식염수를 추가 주입함으로서 줄기포가 확실히 폐혈관 속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했다.
이 수술이 광고에서처럼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녀의 줄기세포는 폐의 가스교환 담당 부위에서 새로운 세포로 자라게 될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들
수술이 있기 전 수개월간 로자리오 박사팀은 과민증 폐렴에 의해 망가진 벨린의 폐 조직 재건에 매진해야 했다. 이 질환은 먼지와 화학물질에 따른 알레르기 반응에 의해 유발되는 퇴행성 폐질환이다. 때문에 벨린은 그동안 하루에 무려 3ℓ의 고순도 산소를 흡입해야 했다.
당초 그녀의 상태를 검사한 미네소타 소재 마요클리닉의 의사들은 폐 이식만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말했다. 하지만 폐 이식술은 위험부담이 큰데다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에 벨린은 폐 이식에 자신의 삶을 걸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레제노사이트를 알게 된 것이 이때다. 이 회사의 화려한 브로슈어와 웹사이트에 게시된 환자들의 과장 섞인 추천사를 읽은 그녀는 결국 줄기세포 요법이야말로 자신의 폐질환 악화를 막고 건강을 되찾게 해줄 희망이라 여겼다.
아직 줄기세포요법의 효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효과가 있었다면 자신 역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유일한 걸림돌은 미국 정부가 줄기세포 치료술을 공식 승인하지 않고 있다는 것. 하지만 벨린은 몇 년이고 정부의 승인을 앉아서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이미 생명의 불꽃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미국을 위시한 각국의 난치병 환자들이 벨린과 동일한 결정을 내린다. 자국 정부의 규제를 우회하여 다양한 줄기세포 치료술을 받을 수 있는 타국으로 날아가 수술대에 몸을 뉘고 있는 것이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 현재 레제노사이트를 비롯해 독일의 X셀 센터, 중국의 베이케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이 같은 치료 루트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여럿 존재한다. 이들은 자가 유래 줄기세포 치료의 우월성을 선전하며 고객들을 모으고 있다. 자가 유래 줄기세포는 환자 자신의 혈액이나 골수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방식이다. 거부반응이나 종양 발생 등의 부작용 확률이 적어 타인 및 배아줄기세포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안전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문제는 과연 얼마나 더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이 줄기세포 치료법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FDA는 여타 의약품 및 치료술과 마찬가지로 줄기세포요법도 환자들에게 상품으로 판매(?)되기 전에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율성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FDA의 통제는 월권?
사실 FDA의 이러한 승인절차는 비효율적이거나 위험한 치료법에서 환자들을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5년 이상의 시간과 1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작업이다. 이를 생각하면 의사와 환자들의 해외 원정 시술이라는 빠르고 저렴한 해법을 모색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심장 전문의이자 레제노사이트의 창립자인 잔노스 그레코스 박사는 이러한 사람들 중에서도 선봉에 서 있다. 그는 벨린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심장 및 폐질환 환자들에게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줄기세포 치료술을 받도록 알선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줄기세포계의 이단아라 부르는 것과 관련해 FDA는 환자들의 치료 선택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며 해외의 실험데이터를 무시하면서 월권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골수이식이나 인공수정이 그렇듯 자가 유래 줄기세포도 FDA의 관리통제 영역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다시 수술실로 돌아가 보자. 1차 줄기세포 주입을 마친 의사들은 벨린의 나머지 줄기세포를 또 다른 폐혈관에 주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 때 벨린의 좌측 폐에서 공기 수포가 발견되며 의사들을 긴장시켰다. 자칫 수포를 잘못 건드리면 폐가 아예 파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시간 후 의사들은 아무런 사고 없이 벨린의 폐 6곳에 줄기세포를 성공적으로 주입하고 수술을 마쳤다.
회복실로 옮겨지는 벨린은 의식이 명료했으며 활기도 있었다. 전신마취를 하지 않은 그녀는 수술시간 내내 깨어있었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 목격했다.
회복실에서 그녀를 만난 레제노사이트의 그레코스 박사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폐질환 치료를 위해 자가 유래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환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벨린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축복받은 행운아가 된 기분이에요. TV에서는 먼 미래에나 가능해질 의술이라고 표현했던 줄기세포요법을 지금 받았는걸요."
방콕에서의 임상시험
그레코스 박사는 흔히 만나볼 수 있는 부류의 의사는 아니다. 평상시 외모를 보면 의사라기보다는 그가 부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사장 이미지가 훨씬 크다. 재생의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의 주인공이라는 인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지난 1997년 전통의학에서 큰 한계를 절감했다. 자신의 환자 중 한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의료사고 소송에 휘말렸던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환자의 가족들은 그가 관상동맥 바이패스 수술을 더 일찍 권했어야 했다고 주장 했고 보험사는 이를 받아들여 60만 달러에 합의를 봤다.
이런 경험을 하며 그는 의사 노릇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느꼈다. 환자에게 뭔가 도움을 주려고 해도 법률가와 정부관리들이 막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 그는 줄기세포에서 환자들의 삶을 혁신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희망의 빛을 봤다. 그것이 비록 정부의 규제를 위반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이에 지난 2006년 친구 이자 동료 레스토랑 운영자였던 네임 말로가 심장병 치료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레제노사이트의 창립을 결정했다.
40대 후반이었던 말로는 심장마비를 일으킨 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상태였다. 의사들은 심장을 이식받지 못 하면 생명을 유지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한 웹사이트를 보고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생명연장을 꾀하기로 마음먹었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테라바이테의 홈페이지였다. 이 회사는 방콕의 차오 피야 병원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알선해준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자사에서 채취한 226g의 혈액을 이스라엘로 가져가 성체줄기세포를 추출·배양하고 방콕에서 환자에게 수술하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이스라엘은 혈액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채취해 배양할 수 있는 전문기술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로서 테라바이테는 이 줄기세포를 환자에게 주입하면 새로운 혈관으로 자라나 죽어가던 근육세포를 살리고 세포의 성장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을 검토한 그레코스 박사는 큰 감명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골수이식을 제외한 자가 유래 줄기세포 치료는 초기 임상시험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테라바이테는 이미 '영국 혈액학 저널', '아시아 심혈관 및 흉부 연보' 등에 자가 유래 성체줄기세포 치료법 논문을 싣고 있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연구팀의 임상시험에서는 줄기세포 치료의 효과가 결정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던데 반해 테라바이테는 성체줄기세포의 탁월한 치료능력을 데이터로 제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심장협회(AHA)에 참석, 태국에서 실시한 초기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치료법 찾아 삼만리
줄기세포 치료를 받기 위해 떠난 원정 수술의 여정
미국에서는 상용 줄기세포 치료가 금지돼 있다. 때문에 카렌 벨린은 자가 유래 줄기세포 이식술을 받기 위해 주거지인 미네소타에서 플로리다를 거쳐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원정수술을 떠나야 했다. 그녀로부터 추출된 줄기세포는 이스라엘에서 재처리된 후 도미니카로 보내졌다.
불안감을 해소하다
물론 그레코스 박사도 테라바이테가 활용하는 성체줄기세포 보다는 배아줄기세포가 환자에게 필요한 조직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한층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치료효과에 대한 검증이 취약하다는 점이 한계였다. 당시에만 해도 미국에서 발표된 배아줄기세포 실험은 캘리포니아 소재 생명공학기업인 제론에서 실시한 것이 유일했다.
제론의 실험은 급성 척수 부상을 당한 환자들의 배아줄기세포 치료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관계당국이 배아줄기세포의 안전성을 문제 삼는 등의 이유로 계속 연기되고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직시한 그레코스 박사는 말로를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다만 아직은 줄기세포 치료에 일말의 불안감이 남아있었기에 말로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줄기세포 치료에 도움을 주겠네. 그런데 만일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즉시 치료를 멈췄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불안이 방콕 차오피아 병원에 도착 하면서 모두 해소됐다고 설명한다.
그곳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모두 의도했던 데로 회복되고 있었고 과거의 임상시험 결과도 훌륭했던 것. 2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줄기세포 이식 후 6개월 만에 21명의 환자에게 눈에 띄는 운동능력 향상이 나타났다.
6분 동안 걸을 수 있었던 거리가 치료전 보다 81m나 늘어났던 것. 40명의 심장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심장의 혈액순환 기능이 평균 20%이상 향상됐다.
말로의 시술 역시 성공적이었다. 수술 후 그의 상태는 크게 호전됐다. 심장이 1회 운동할 때 분출되는 혈액량, 즉 박 출계수가 수술전 30%에서 수술후 6개월 뒤 50%로 증진된 것이다.
그레코스 박사에 따르면 이러한 회복력은 분명 대단한 수준이다. 결국 말로의 전담의사는 그의 심장이 완벽히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진단했다. 현재도 말로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하루 8시간씩 일하며 정상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를 목도한 그레코스 박사가 줄기세포 치료에 한껏 매료된 것은 당연지사다. 심장전문의로서 그는 죽음에 임박한 환자를 도울 방법을 찾았고 숙련된 사업가로서는 누구도 건들이지 않고 있던 블루 오션 시장을 발견한 셈이었다.
쏟아지는 학계의 비난
주지하다시피 줄기세포 치료사업의 최대 걸림돌은 미국 내에서는 시술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이에 그는 테라바이테와 협력관계를 맺고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차용했다. 자신의 회사에서 환자와 상담을 한 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원정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었다. 도미니카의 의료당국은 치료목적의 성체줄기세포 사용을 공식 인정하고 지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의 추출과 배양은 테라바이테를 통해 이스라엘에서 시행했다.
또한 그레코스 박사는 테라바이테의 전문가들과 함께 직접 줄기세포 수술에 대한 교육과 실습을 받은 후 벨린의 주치의였던 로자리오 박사를 포함한 도미니카측 의사들에게 관련기술을 전수했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성체줄기세포요법의 이점을 알리는 무료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홍보에 돌입했다. 반응은 놀라웠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많은 환자들이 앞 다투어 시술을 받겠다고 서명했다. 레제노사이트는 이에 힘입어 올해 초까지 150 명의 환자를 치료했으며 이 중 80%의 건강상태가 호전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레제노사이트가 잘 나갈수록 의학계 권위자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 회사의 줄기세포 치료술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척수손상 치료의 가능성을 입증한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캠퍼스의 한스 커스테드 박사도 그중 한 사람. 그는 레제노사이트 등의 해외 원정 줄기세포 치료 알선기업들을 "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금전적 이득을 챙기는 곳일 뿐"이라고 혹평한다.
국제줄기세포연구협회(ISSCR)의 어빙 와이즈먼 회장도 지난해 CNN과의 인터뷰에서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는 학자가 있다는데 큰 실망과 충격을 느낀다"며 레제노사이트를 맹비난했다. 그는 태국에서 실시된 임상시험 또한 "어떤 공식기관도 이 연구를 감독 하지 못했다"며 연구결과의 진위에 의문을 던졌다.
환자의 치료가 우선
미국 줄기세포기업인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의 최고 과학기술 책임자인 로버트란자 박사 역시 태국 임상실험의 과학적 정확성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는 "이 실험은 비교적 안전한 제1단계 임상시험이었기에 그 결과만 가지고 줄기세포의 잠재적인 효능을 확실히 알기는 어렵다"며 "설령 환자의 상태에 차도가 있었더라도 이 연구는 무작위성이 없고, 대조군도 없어 뭐라고 결론을 내리기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란자 박사는 또 "실험 결과 의 신뢰성이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환자들이 어떤 치료를 받는지 인지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이라 지적하고 "환자들의 증상 개선은 어쩌면 실질적인 치료효과가 아닌 심리적 기대감이 작용한 일명 '플라세보 효과'의 산물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레코스 박사는 무덤덤한 반응이다. 자신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수행한 임상시험과 연구과정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해서 그런 것뿐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 2008년 한 대규모 심장학 콘퍼런스에서 자신이 발표한 내용을 설명했다. 20명의 심근증 환자에게 줄기세포 치료를 실시한 결과, 6개월 후 심장 박출계수가 20%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태국에서의 임상시험과거의 동일한 결과였다.
그레코스 박사는 언젠가 자신의 모든 실험 데이터를 공개하고 FDA의 승인을 공식 요청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논문을 쓰고 비싼 임상실험을 준비해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는 것보다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레코스 박사는 이에 대해 "제 환자의 대부분은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고 이들의 증상은 매우 절망적"이라며 "그냥 놔뒀다가는 모두 사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줄기세포는 약물? 신체의 일부?
이쯤에서 줄기세포와 FDA의 연관성을 한번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원래 FDA는 의약품을 규제·승인·관리하는 기관일 뿐 치료 행위 자체를 관리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환자의 신체로부터 얻은 조직들은 FDA의 승인 대상이 아니었으며 지금껏 의사가 원한다면 FDA를 포함한 정부의 간섭 없이 얼마든 치료에 사용해왔다. 혈관 우회로 술에 쓰이는 혈관, 피부이식에 쓰이는 피부들이 그 실례다. 특히 줄기세포도 골수라는 형태로 과거 수십 년간 제재 없이 환자들에게 자가 이식돼 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줄기세포가 FDA의 관리 대상이 됐을까. 이는 지난 2005년 FDA가 성장인자나 기타 혼합물에 의해 조작(?)된 자가 유래 줄기세포를 신체의 일부가 아닌 약물로 취급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논란 끝에 관철됐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정책 변경을 놓고 미 의회가 FDA 설립을 승인했을 때 의도했던 영역을 넘어서는 권한이라 판단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레코스 박사의 경우 이를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FDA에 압력을 가한 결과라는 이론을 펼치고 있다. 자가 유래 줄기세포를 약물로 취급한다면 장래에 창출될 막대한 이익을 제약회사들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포를 증식하거나 성장 혼합물을 첨가함으로서 줄기세포가 약물이 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이라며 "다국적 제약사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레코스 박사는 또 "우리는 세포를 성장시킬 뿐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세포에 변화를 가하지 않는다"며 "성장인자도 인체에서 자연적으로 생 성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학자와 의사들은 환자들이 비효율적이거나 위험한 줄기세포요법을 시술받지 않도록 하는 현 FDA의 규제시스템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관리 시스템이 없다면 의학적 지식이 없는 환자들 스스로 어떤 치료가 믿을 만한 지를 스스로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는 탓이다.
미국 글래드스톤 심장병연구소의 소장인 디팍 스리바스타바 박사에 의하면 줄기세포 치료의 결과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줄기세포요법을 시술받은 전 세계 환자들이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있는데 이들 대다수는 초기에는 증세 호전이 나타났지만 결국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고 불평을 호소한다는 전언이다.
이에 스리바스타바 박사는 "치료효능에 편견을 갖지 않은 공식기관이 치료를 승인해주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며 "그래야만 국민들이 더욱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홈페이지에 게재된 환자들의 감사편지와 동영상은 그저 눈속임일 뿐이며 다른 연구진들에 의해 효과가 검증되고 대조군을 이용한 임상시험으로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방식으로 줄기세포 치료의 효용성을 공인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가장 어려운 선택
하지만 이러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스리바스타바 박사는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들이 해외 원정 줄기세포 치료를 떠나는 현상도 십분 이해한다. FDA가 공인한 의술로는 0.1%의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린 결정까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자신이나 가족이 기존 치료법으로는 결코 고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직 공인되지는 않았지만 유일한 치료법일 수도 있는 줄기세포 치료를 선택 할까. 아니면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까.
아마도 경제적 요건이 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서슴없이 줄기세포 치료를 선택할 것이 자명하다. 바로 이것이 줄기세포 치료를 둘러싼 논란의 가장 큰 딜레마다. 줄기세포 치료는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그레코스 박사로부터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만족스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 정도로 줄기세포 치료가 유효하다는 것은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벨린의 경우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가족과 함께 요양생활을 하고 있다. 등이 쑤시는 경미한 후유증이 있었지만 몸 상태가 호전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러닝머신까지 타고 있다.
아직 벨린이 손주들과 함께 달리거나 수영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또한 그레코스 박사로부터 6개월 이후에는 증세 호전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줄기세포요법의 확고한 지지자가 됐다. 자신과 유사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치료과정을 담은 디지털 동영상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줄기세포 요법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학자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어떨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치료법으로는 살릴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죠. 하지만 저는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고, 저와 같은 치료를 받고 살아난 사람들과 얘기하고 있어요. 줄기세포 치료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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