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운명은 물속에서 땅 위로 터전을 옮긴 조상들의 선택이자 생태계의 구성원 중 많은 종이 선택한 '양성 생식'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물속에서 살아가는 어류 중에는 양성 생식을 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스스로 성전환을 할 수 있는 종들이 있다.
그 종류만 무려 400여 종에 이른다. 이들은 성장하면서 수컷에서 암컷으로, 혹은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별을 전환한다.
붕어는 성장하면서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전환을 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때문에 몸길이가 3~4㎝인치 어일 때는 전체 개체수의 70% 이상이 수컷이지 만 6~7㎝ 정도로 자라면 수컷 비율이 40%로 줄어들며 다 자란 붕어에서는 수컷의 비율은 10% 미만까지 낮아진다.
이는 수컷이 암컷에 비해 환경적응력이 떨어지는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암컷을 만날 수 없는 수컷이 성을 전환해 처녀 생식으로 알을 부화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이 능력은 붕어가 개체수를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말미잘 속에서 생활하는 흰동가리도 마찬가지다.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흰동가리는 수컷보다 암컷이 크다. 이들은 텃세가 심해 자신의 새끼들도 몇 마리만 남기고는 모두 영역 밖으로 쫓아내지만 암컷이 죽으면 새끼를 쫓아내지 않고 부부의 연을 맺는다. 수컷이 암컷으로 성별을 바꾸고, 새끼 중에 가장 큰 수컷과 부부가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감성돔, 리본장어 등이 암컷으로 성을 바꾼다.
반대로 암컷이 수컷으로 성전환을 하는 어류는 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며 무리를 지어 번식하는 종에서 많이 보인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청소놀래기다. 이들은 수컷 한 마리가 여섯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수컷은 다른 수컷들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암컷을 보호한다.
하지만 수컷이 죽거나 사라지면 서열 1위의 암컷이 성을 바꾸기 시작한다. 단 1시간 정도면 외양이 변해 수컷 역할을 할 수 있고 3~4일이면 완벽한 수컷으로 알까지 수정 시킨다.
열대 바다에 사는 라이어 테일 또한 수컷 한 마리가 15~20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살다가 수컷이 사라지면 우두머리 암컷이 바로 성별을 전환해 수컷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종들은 암컷 생식기인 난소와 수컷 생식기인 정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암컷은 항상 수컷으로 성전환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수컷들끼리의 과다경쟁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젊은 수컷이 무리를 이끄는 강력한 수컷과 경쟁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이 점점 적어지기 때문에 아예 암컷으로 변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한다는 것이다. 결국 물고기들은 개체수 유지와 더 많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 성을 바꾼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왜 수중 생물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물이라는 환경과 물고기의 단순한 생식기관에 있다. 실제로 물은 체외수정을 하는 어류들의 정자와 난자의 건조를 막아준다. 따라서 암컷과 수컷 모두 생식기 가 육지 생물처럼 복잡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생식기의 변화가 쉽다는 얘기다. 게다가 어류의 원시생식세포는 수컷의 정소에 넣으면 정자로 성장하고, 암컷의 난소에 넣으면 난자로 성장하는 특징이 있어 성전환을 해도 특별한 무리가 없다.
글_김병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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