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국내 연구팀이 암세포만 정확히 찾아 공격하는 암 치료제의 임상시험에 착수, 탁월한 효능을 입증함에 따라 암 정복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등 기존의 항암치료 기법은 암세포는 물론 주변의 정상세포까지 파괴함으로써 적지 않은 후유증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별다른 대안이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암 환자들이 부작용에 고통 받고 있다.
이에 최근 의료계는 암 치료제 개발에 있어 암세포만 공격해 사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얼마 전 국내 연구진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 그 상용화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NK세포로 인체 면역기능 이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세포치료연구센터 최인표 박사 연구팀의 항암면역세포 치료제가 바로 그 주인공. 연구팀은 서울 아산병원과 공동으로 현재 치료제 개발을 완료하고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항암 면역세포 치료는 인체에서 생성되는 천연 면역세포인 '자연살해(NK) 세포'를 활용한 암 치료술이다. NK세포는 암세포만 특이적으로 파괴하는 성질이 있어 이를 암환자에게 투여하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암세포를 사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방법은 인체의 면역기능을 이용하는 만큼 부작용이 적고, 수술 등으로는 치료하기 힘든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용성이 매우 높다.
구체적으로 인체의 면역기능 유지에 관여하는 세포에는 균을 잡아먹는 탐식구(포식세포)와 항체, 사이토카인 등 면역기능 물질을 분비하는 림프구로 구분된다. NK세포는 항체를 분비해 항원과 결합함으로써 탐식구의 능력을 높여주는 B세포, 여러 종류의 사이토카인을 분비하여 탐식구와 림프구의 증식을 촉진하는 T세포와 함께 림프구에 속한다.
림프구에서 NK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은 5~10%며 정상인의 경우 약 50~1,000억개의 NK세포를 보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암세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공격해 파괴하는 역할을 하지만 B세포, T세포 등 다른 면역세포의 기능조절에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지금까지의 NK세포 치료법은 대개 암 환자 본인의 자가 면역세포를 추출해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 박사 연구팀은 암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의 면역세포에 주목했다. 암 환자들은 이미 암 세포에 노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NK세포의 기능도 극히 저하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연구팀은 암 환자의 가족 등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정상인 공여자로부터 혈액을 채취, 줄기세포를 추출하여 분화시킨 뒤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최인표 박사는 "NK세포는 암세포의 발생, 증식, 전이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자가면역질환 등 각종 난치성 질병에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며 "면역거부반응이 거의 없어 수술, 항암제, 방사선 요법 등 기존 방법으로 치료하지 못한 말기 암 환자들의 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2014년 백혈병 치료제 출시
NK세포 치료를 위해서는 공여자의 체내에 줄기세포가 증가 하도록 하는 처치를 한 후 약 50ml 내외의 혈액을 채취해야 한다. 이 혈액의 줄기세포에서 암 치료제로 쓰일 NK세포를 분화시키고 증식하는 과정을 거쳐 치료제가 완성되는 것. 현재 최 박사 연구팀이 임상시험에 사용하는 치료제의 분화 및 증식에는 약 4주가 소요된다.
치료제로서 가치를 지니려면 증식을 통해 NK세포를 최소 1억개 이상 확보해야만 하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1~2회에 걸쳐 투약하게 된다. 특히 분화과정에서 각종 기작을 조절함으로써 특정 암이나 특정 환자에게 적합한 맞춤형 치료제를 만들 수도 있다.
최 박사는 "연구 초기에는 줄기세포 증식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포 분리와 첨가물 양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사용, 최적화된 세포 분화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또 "이 같은 방법으로 분화시키면 기존보다 약 10배 이상 많은 NK세포를 얻을 수 있어 치료에 적합한 농도 확보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효능은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안전성 확인을 주목적으로 실시된 임상 1상에서 실험에 참여했던 14명 환자들은 지난해 말 실험이 종료될 때까지 아무도 거부 반응이나 부작용을 일으키기 않았으며 증세도 상당히 호전됐다. 14명은 모두 현재 상용화된 항암제로는 치료효과를 볼 수 없거나 적극적 치료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한 백혈병 환자들이었다.
7개월 가량 진행된 임상 2상에는 20여명의 환자들이 참가하고 있다. 2차례 정도에 걸쳐 세포 투여량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으로 시험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연구팀은 오는 2011년까지 임상 2상을 마치고 제약사와의 협력을 통 해 3상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오는 2014년에는 백혈병을 포함하는 획기적 혈액암 치료 제가 출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 박사는 "NK세포 치료법 역시 암 완치제는 아니다"라며 "하지만 기존 방식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암을 치료할 수 있어 현행 50% 수준인 암 치료율을 약 60~70%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 박사는 향후 백혈병에 더해 간암, 위암, 폐암 등 다른 주요 암에도 효능을 발휘하는 치료제의 개발에 나서는 한편 면역세포 치료제와 유전자 치료제를 융합하는 연구도 병행한다는 복안이다.
대덕=구본혁기자 nbgk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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