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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야구의 과학 : 1점을 위한 힘과 속도, 타이밍의 앙상블

[스포츠 과학은 살아있다]

스포츠 강국은 과학기술 강국이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 용품은 물론 경기분석에서 피지컬 트레이닝, 정신력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도움을 받아 땀과 열정을 쏟아야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스포츠에서 과학을 빼면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선수들이 취하는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과학의 원리가 숨어 있다. 파퓰러 사이언스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공동으로 스포츠 속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을 들여다 본다. 이번호에는 지난호에 이어 야구, 배드빈턴, 당구의 과학을 파헤쳐 봤다.
-공동기획: 한국과학창의재단

야구는 타이밍의 경기다. 타이밍에 의해 홈런과 아웃, 안타와 병살, 허슬 플레이와 본 헤드 플레이가 구분된다. 특히 타자는 투수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 숙명적 머리싸움을 벌인다. 찰나의 순간에 직구,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등 구질을 가려내고 정확한 스윙 타이밍을 잡는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또한 원하는 공이 오면 파워 실린 타격으로 공을 최대한 멀리 보내야 하며 주자가 돼서는 득점 확률을 높이기 위해 도루 타이밍을 잡아 전력으로 베이스를 훔쳐야 한다. 결국 야구는 타이밍으로 시작해 타이밍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선구안은 동체시력과 정비례

투수가 던진 시속 135㎞ 이상의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시간은 약 0.4초. 눈을 한 번 깜빡이기도 힘든 시간이다. 그나마 타자에게는 이 순간마저도 온전히 구질 분석에 쓸 수 없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을 본 직후 0.175~0.2초 사이에 스윙 예비 동작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타자에게는 0.2초 남짓한 시간만 남아 있다. 이 순간에 타자는 날아오는 공의 궤적을 보고 구질을 판단, 스윙을 조정해야 한다.

도대체 타자는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구질, 구속, 궤적을 판단해 최적의 스윙 타이밍을 잡는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선구안에 숨어 있다. 선구안은 날아오는 공의 구질을 파악, 타격 여부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선구안이 좋아야 타격 타이밍도 좋아지며 그만큼 안타도 많이 칠 수 있다.

이러한 선구안은 동체시력에 의해 좌우된다. 최규정 체육과학연구원(KISS) 스포츠과학연구실장은 "공을 잘 고르려면 타격하는 순간까지 날아오는 공에서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한다"며 "이는 기본적으로 시력 자체가 좋아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움직이는 공을 집중력 있게 보는 동체시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민타자 이승엽(요미우리)은 10여년 전 삼성스포츠과학지원실이 실시한 동체시력 테스트에서 0.1초 후 사라지는 숫자를 6자리까지 정확히 읽어낸 바 있다. 측정 선수 중 최상위권이며 일반인들의 평균 3자리와 비교해 2배 많은 수치다.

양안 시력이 모두 2.0인 것으로 유명한 양준혁(삼성) 역시 7년 전 실험에서 이승엽과 함께 A급 동체시력 소유자로 확인됐다. 그가 홈런(351개), 안타(2,318개), 2루타(458개), 타점(1,389개), 사사구(1,380개) 등 선구안과 타격의 정확성을 상징하는 모든 지표에서 개인통산 최고기록 보유자가 될 수 있었던 근원에 남다른 동체시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 실장은 "동체시력에 더해 날아오는 공의 주변 공간까지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주변시력이 겸비되면 선구안에 있어 더할 나위가 없다"며 "측정해보지는 못했지만 이승엽, 양준혁 선수는 주변시력 또한 최고 수준일 것"이라고 밝혔다.






탄도 35도, 2,000rpm 역회전 줘야 홈런

선구안을 바탕으로 정확한 타이밍에 타격을 하려면 사실상 눈과 두뇌, 몸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배트의 스윙시간을 감안할 때 타자는 공의 구질을 파악한 뒤 0.025~0.05초 내에 뇌가 시신경에서 전달받은 신호에 근거해 근육에 명령을 내려 스윙이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타는커녕 공을 맞히기도 어렵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대개 투수가공을 던진 후 0.25~0.3초만에 배트를 휘두른다.

이때 남들보다 스윙속도가 빠르면 훨씬 유리하다. 더 오랜 시간 구질을 확인할 시간을 벌어 타격 이밍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것. 이에 타자들은 온몸을 뒤쪽으로 비틀었다가 앞으로 회전하며 어깨와 허리의 힘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방식으로 스윙속도를 극대화 시킨다.

송주호 KISS 스포츠과학연구실 선임연구원은 "허리와 어깨를 동시에 사용하면 스윙속도가 빨라져 타격타이밍에 맞춰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스윙속도는 민첩성, 스윙 자세 등에 따라 타자마다 다르다. 그로 인한 장단점도 제각각이다. 때문에 프로선수들은 상황에 맞춰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배트를 선택해 사용한다.

최 연구실장은 "예를 들어 롯데의 이대호 선수처럼 큰 체구의 홈런타자들은 힘이 좋은 대신 스윙속도가 느린 경우가 있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강속구 투수가 나오면 평상시보다 다소 가벼운 배트를 사용, 스윙속도를 높인다"고 밝혔다.

한편 홈런을 위한 가장 이상적 조건은 타격 후 공이 지면 과 35도 탄도로 초속 47m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야 하며 볼에 2,000rpm(초당 33.3회)의 역회전이 걸렸을 때다. 따라서 홈런을 치려면 야구공 중앙에서 1㎝ 아래를 배트의 스위트 스폿에 맞추는 것이 최적이다.






도루 성공은 이론상 불가능의 영역

타자가 안타를 치거나 사사구로 출루한 후에는 주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투수와 타이밍 싸움을 벌인다. 다름 아닌 도루를 하기 위함이다. 도루의 성패가 갈리는 것은 3.3~3.5초 사이.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 미트로 들어갈 때까지 약 1.2초, 포수가 2루로 송구하는 시간이 약 2초, 그리고 송구를 받은 2루수 혹은 유격수가 주자를 태그하는 데 0.2~0.3초가 소요된다. 결국 이보다 더 빨리 베이스를 훔쳐야 대도(大盜)의 명성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100m를 11초에 달리는 선수가 1루에서 2루까지 27.4m를 뛰는 데 약 3.13초가 걸린다는 것. 예비동작을 포함하면 그 시간은 3.6초 이상이 된다. 축구에서 페널티킥을 막아야 하는 골키퍼처럼 주자의 도루 성공률도 이론상 제 로인 셈이다.

하지만 주자에게는 이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줄 묘책이 있다. 2루 쪽으로 미리 2~3m 가량 다가서 있는 리드가 그것이다. 리드 폭 90㎝마다 약 0.1초의 시간단축 효과가 있어 3m를 리드한다면 0.32초 정도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프로야구에서 도루 성공률이 평균 60% 이상 유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 연구실장은 "다만 1루 제가 빠른 좌완 수를 상대할 경우 평상시보다 리드 폭을 줄여야해 도루 성공률이 약 5% 이상 하락한다"며 "반대로 좌완은 3루 도루 저지 능력에서 우완보다 뒤쳐진다"고 밝혔다.

도루 타이밍은 투수의 투구 자세에 맞춰 포착하는 게 상례다. 이론적으로는 투구 시 최선행 동작인 어깨를 보고 뛰면 확률을 높일 수 있으며 현역 선수들은 발뒤꿈치, 무릎 등의 움직임을 기준삼아 타이밍을 잡기도 한다. 송선임연구원은 "일반적 생각과 달리 실전에서는 주력보다 투구 자세를 읽고 순간적인 타이밍 포착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도루를 더 잘한다"며 "투수가 느린 변화구를 던지는 타이밍을 잡으면 성공률을 한층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영진 기자 artjuck@sed.co.kr







야구 배트는 무게 제한이 없다?!





세계 각국의 야구위원회는 야구 경기의 정의, 시설, 공, 배트, 글러브 등 제반 경기 규칙을 정해놓고 있다. 이 규칙들은 거의 유사하거나 동일하다. 배트에 관련된 규격은 재질, 형태, 직경, 길이, 색상 등에 관한 것이다.

우선 배트의 재질은 겉면(결)이 고른 하나의 나무로만 만들어야 한다. 다른 나무를 접합시켜 제작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형태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전체가 둥근형이다. 직경은 7㎝(2.75인치) 이하여야 하며 길이는 106.8㎝(42인치)가 상한선이다. 그리고 배트의 색상은 담황색, 다갈색, 검정색 중 하나를 사용해야 한다.

배트 무게를 조정하기 위해 배트의 앞부분인 선단(先端)을 도려낸 커프트 배트(cupped bat)의 경우 깊이 2.5㎝ 이하, 지름 2.5~5.1㎝ 내에서만 선단을 제거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배트에 관한 다양한 규정 중에 배트의 무게에 대한 별도의 규격은 전혀 없다는 게 그것이다. 배트 무게는 타격 시 야구공 비거리와 직결되는 요소며, 홈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이는 배트의 운동량을 알면 수긍이 된다.

실제로 배트의 운동량은 배트의 질량과 배트 스윙속도의 곱으로 얻어진다. 배트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스윙속도가 빠를수록 비거리가 늘어나는 것. 그런데 무조건 무게가 무거운 배트를 쓴다고 해서 장타를 날리지는 못한다. 무게가 무거운 배트를 쓰면 그만큼 스윙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최종 운동량도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거운 배트는 일종의 '양날의 칼'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배트의 무게를 굳이 규격화하지 않은 이유다. 결국 좋은 타격을 하려면 중량감 있는 배트 보다는 자신의 체력특성에 맞는 적절한 무게의 배트를 선택해야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이러한 최적의 배트 중량을 찾기 위해 지난 1920년대부터 반복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최근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세계기록을 달성한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 선수 역시 이를 위해 투수의 주력 구종이 강속구인지, 변화구 인지에 따라 930~950g 사이에서 배트의 중량을 바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_최규정 체육과학연구원 스포츠과학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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