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는 먼 옛날부터 과학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일부에서는 단지 미신으로 치부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일부에서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도모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과학으로 보고 있다. 풍수지리는 과연 미신일까, 과학일까.
집터나 묏자리 심지어 사무실 책상 배치를 정할 때조차 우리는 습관적으로 위치나 방향을 따지곤 한다. 이는 자연환경에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며 그 법칙에 따라 길 한 곳과 흉한 곳을 나눌 수 있다는 전통적인 자연관, 즉 풍수지리에 오랫동안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 온 결과일 것이다.
자연이 개인의 길흉화복을 결정
풍수지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땅의 기운인지기(地氣)다. 땅에는 일정 경로를 따라 기가 흐르며 풍수지리는 바로 기가 충만한 '명당자리'를 찾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는 자연환경의 여러 요소가 중요한 작용을 하는 데 그 가운데서도 산(山), 수(水), 풍(風)이 대표적이다.
풍수 지리가들은 이 세 가지 요소가 음양오행의 성질을 담고 있어 만물의 삶과 죽음, 나아가 삼라만상의 흥망성쇠를 결정 짓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에 따라 땅은 길 한 곳과 흉한 곳으로 나뉜다. 길 한 곳에는 길한 산, 길한 물, 길 한 바람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과 물과 바람이 서로 조화를 이뤄 음양이 적절히 배합된 명지에서는 만물이 윤택하여 좋은 결실은 맺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풍수가들마다 내세우는 근거는 다양하다. 용맥(산의 정기)의 좋고 나쁨을 살펴 명당을 선별하는 간룡법, 바람의 흐름을 살펴 그것을 잡아두는 곳을 정하는 장풍법, 물의 흐름을 살펴 정기를 담고 있는 물이 머물 다가 빠져나가는 길지를 찾는 득수법, 산·물·바람 등의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혈자리에 해당하는 최고의 명당을 찾 는 정혈법, 산천의 형세를 인물 및 짐승의 형상에 유추하여 지세와 길흉을 판단하는 형국론 등이 그것이다.
언뜻 난해하게 보이지만 이 개념들의 출발점은 하나다.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와 유관하다. 집터를 구할 때 주변의 기와 자신의 기가 조화를 이뤄 안락함을 느낀다면 그곳이 좋은 집터며 부모의 산소에 누워서 편안함이 느껴지면 그 또한 좋은 묏자리가 된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런 내용들이 모두 풍수의 핵심 이론인 명당발복설(明堂 發福說)이나 동기감응설(同氣感應說)의 전제로 본다. 사람이 사는 터를 양기(陽基)라 하고 죽은 사람이 묻힌 묘를 음택(陰宅)이라 하여 좋은 양기에 살거나 좋은 음택에 조상을 묻으면 부귀를 누리고 자손이 번성해 행복해진다는 생각이다.
성, 궁궐부터 사무실, 행정관청까지
이 같은 풍수지리적 사고는 먼 옛날부터 있어왔다. 정확한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알려진 바로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 가 그 효시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유입됐다고 한다. 초기의 풍수지리는 단순히 자연 재해와 맹수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하지만 차츰 나라의 도읍을 정하고 성과 궁궐을 짓는 데로까지 범위가 확장됐다.
풍수지리에 대한 국내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는 신라 제4대 왕인 탈해왕이 왕좌에 등극하기 전 산에 올라 현월형(弦月形)의 택지(宅地)를 발견하고 속임수를 써서 그 택지를 빼앗으면서 후에 왕에 올랐다는 내용이 있다. 왕의 일화에까지 개입돼 있는 점으로 미뤄 풍수지리는 당시에 이미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특히 신라 말기에는 우리나라 풍수의 원조로 불리는 승려 도선이 있었다. 도선은 중국 당나라의 풍수를 국내에 처 음 전했으며 이를 세상을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봤다.
그의 저서 '도선비기' 에는 '지리는 쇠왕(衰旺)과 순역(順逆)이 있어 왕지(旺地)와 순지(順地)를 택해 거주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신라에 이어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풍수에 관한 원전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이후 고려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풍수를 수용, 그에 대 한 관심이 지극했다. 주로 왕도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양택(陽宅) 풍수가 크게 성행했다.
지기의 쇠왕에 따른 천도문제를 제기하는 토대가 되었는데, 묘청이 주도한 서경천도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어 유교 중심의 통치가 행해지면서 풍수지리는 국가적 대사의 결정보다는 가족주의와 효(孝) 사상을 기반으로 한 묏자리 선택에 더 큰 비중을 얻게 된다. 이후에도 풍수지리 사상은 계속 통용됐다.
단적인 예로,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전국 각지의 명당에 쇠말뚝을 박거나 조선왕조의 기를 끊는다는 이유로 경복궁의 시야를 가려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이러한 풍수지리적 사고는 오늘날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공장, 사무실, 행정관청 등 갖가지 입지 선정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풍수지리연합회측 자료에 의하면 현재 국내에서 풍수지리를 연구하며 활동하고 있는 풍수가도 전국적으로 약 30만명에 이를 정도다.
동서양 막론한 풍수지리 '붐'
풍수에 대한 관심은 나라 밖에서도 다르지 않다.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동양의 여러 나라들은 물론이고 세계적 웰빙코드와 발맞춰 최근에는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양권에서도 풍수지리에 입각한 건축과 인테리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홍콩. 오래 전부터 풍수를 거의 신앙시하고 있는 홍콩의 경우 건물이나 가구의 위치는 물론 택일, 작명 등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사안을 풍수가와 상의 하는 일이 빈번하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첨단 과학을 다루는 홍콩 응용과학기술연구소가 공금 일부를 풍수가의 자문비로 사용한 것이 드러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펑수이'(풍수의 중국식 발음)가 인기를 끌며 저택과 고층빌딩을 지을 때 풍수가들이 동원되고 있다.몇 년 전부터는 미국부동산중개인협회에서 매년 풍수지리에 대한 특별 세미나도 개최 중이며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을 개조하면서 풍수가에게 인테리어를 맡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풍수가들은 풍수지리를 더 이상 미신으로 격하하면 안 되며 전통과학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미래의 불확실성이 두드러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그 쓰임새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정말 풍수지리는 믿을만한 것일까. 자연이나 환경이 개인의 화복에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일까.
수맥이 흐르고 터가 나쁜 곳으로 이사를 한 뒤 갑작스레 사업이 어려워졌다거나 조상의 묏자리를 잘못 쓴 탓에 대가 끊겼다는 등의 이야기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 지만 이를 속 시원히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풍수지리는 땅의 기와 직결돼 있는 반면 기는 아직 과학적 영역에서 비껴서 있기 때문이다.
활발한 과학적 연구
이런 가운데 최근 몇 년 사이 풍수지리와 관련한 갖가지 연구들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미신을 넘어 과학적, 논리적으로 풍수지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다. 특히 조상의 묏자리가 자손의 화복을 좌우한다는 음택 풍수와 관련해 최근 행해진 몇몇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지난 2007년 영남대 대학원 응용전자학과 박채양 박사의 'SPSS로 분석한 입수(入首) 이상묘의 절(絶)자손율 변화'와 최주대 박사의 '비탈에 쓰인 묘와 후손 번성에 대한 SPSS 통계 분석'이 가장 대표적 연구다. 두 연구는 묘의 위치와 형상이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계학적으로 검증, 큰 관심을 끌었다. 박 박사와 최 박사는 전국 50개 가문의 17세기 이후 조성된 묘소 중 산봉우리 혹은 그 부근에 위치한 묘소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묘의 후손 번성 여부 규명을 위해 후손의 개체수 변화를 조사한 후 그 결과를 사회과학통계프로그램 SPSS로 분석했다.
이렇게 각 묘소의 5대손까지 총 2,800여명의 기혼 남성을 조사한 결과, 입수(묘의 꼬리)에 이상이 있는 묘소의 후 손은 정상묘의 후손에 비해 절자율, 절장자율, 절장손율, 절직계 장손율 등이 모두 높은 것을 확인했다. 평균 절자율은 정상묘가 5.7%였지만 입수에 이상이 있는 묘는 16.5%로 약 3배나 높았다.절장손율의 경우 각각 44.4%, 100%였다.
박 박사는 논문을 통해 "산봉우리에 묘를 써서 입수에 이상이 있으면 장자와 장손자에게 아들이 없을 확률이 높아지면서 5대 이내에 그 가문이 절손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며 "조상의 묏자리와 형상이 후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밝혔다.
최 박사 역시 묘소가 산비탈에 위치하고 경사도가 심할 수록 후손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묘의 경사가 15% 이하인 완경사 묘소는 자손이 평균 74명이었지만 경사 30% 이상의 급경사 묘소는 32명으로 절반 이하로 낮았다. 또 비탈에 있는 묘소의 절자율 등이 정상 묘소 보다 3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박사는 "기를 어떻게 이해하는 지가 풍수지리의 관건" 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자기파의 진동수, 진폭 등을 측정했을 때 길 한 곳은 주파수가 일정하게 나타나는 반면 흉한 곳은 높낮이가 심하다. '기자기파 측정'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단계지만 박 박사는 이것을 기의 존재를 입증하는 과학적 근거의 하나로 본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이런 결과는 분명 음택풍수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 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이는 어디까지 나 단편적인 통계학적 수치일 뿐이다. 미신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풍수지리는 여전히 믿거나 말거나와 같은 미스터리의 경계에 서 있다. 미신으로 단정할 수도, 과학이라 인정하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는 셈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풍수지리는 조상들의 생각과 경험이 반영된 사람과 자연의 친화를 추구하는 지혜로운 택지 선택 방법이라는 점이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인 배산임수 지형을 풍수지리에서 가장 이상적 명당으로 꼽는 점만 봐도 그렇다.
배산임수를 풍수지리학적으로 분석하면 집 뒤의 산은 집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이 생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춘다. 따라서 집 뒤의 산은 바람을 막아주고 집으로 들어온 생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또한 집 앞의 물은 산으로부터 흘러온 땅의 기를 모아 그것 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이 때문에 배산임수 지형은 산천의 생기를 북돋아 만물을 잘 자라도록 하는 명당이 된다.
이는 굳이 땅의 기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사람 이 살아가는 데 편안한 배치다. 산에서 땔감과 나물을 얻고, 하천의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삶을 영위하는데 많은 이득을 누릴 수 있다.
남향집도 마찬가지다.북반구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남향집은 겨울에는 햇빛을 많이 받아 따뜻하고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해 주택을 위한 최적의 방위다. 풍수지리를 믿지 않는 사람조차 집을 살 때 남향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많은 전문가들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기본으로 한 풍수지리의 기본모토가 무계획적인 도시설계에 따른 시민들의 불편을 예방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고 보고 있다. 풍수지리의 진실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적어도 귀신이나 UFO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