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분뇨는 오랫동안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왔다. 만만치 않은 처리비용 탓에 농지나 하천, 바다에 무단 투기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가축분뇨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가축분뇨로 친환경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되며 가축분뇨 자체가 축산폐수를 환경적으로 처리하고 온실가스까지 줄일 수 있는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국내에서도 이 같은 가축분뇨 에너지화 시설이 건설돼 주목을 받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의 '축산바이오가스생산시설(SCB-M)'이 바로 그 주인공. 이 시설은 가축분뇨로 전기에너지와 퇴비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한국형 축산 바이오가스 시스템'이다.
전력와 퇴비를 동시에
지난해 9월 준공된 SCB-M은 국내 환경에 최적화된 농가형 바이오가스 생산시스템을 표방하고 있다. 돼지 분뇨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원료로 바이오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부산물인 소화폐액은 액체 비료(물거름)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돼지 분뇨의 메탄가스로 발전을 하고, 찌꺼기로 비료를 만드는 것이라 이해하면 된다.
참고로 돼지 분뇨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가축분뇨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지난해의 경우에도 국내 가축 분뇨 발생량 4,370만톤 가운데 돼지 분뇨가 38%(1,671만톤)를 차지했다.
SCB-M은 크게 분뇨를 발효시키는 '소화조'와 톱밥과 왕겨를 쌓아 만든 '퇴비단'으로 구성된다. 그 세부공정은 이렇다. 먼저 콘크리트로 밀폐된 소화 조에 분뇨를 채워 넣으면 이를 먹이로 삼는 혐기성 미생물들이 생성되고 가수분해와 산 생성 단계를 거쳐 연료로 활용 가능한 메탄가스가 생성된다. 분뇨를 먹고 살아가는 미생물들의 호흡을 통해 바이오가스가 만들어지는 것. SCB-M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국립축산과학원 조승희 박사는 "분뇨가 우리에게는 지저분한 배설물에 불과하지만 특정 미생물들에게는 맛있는 먹이가 된다'며 "이 과정은 인체가 음식을 소화시키는 과정과 거의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미생물들이 뿜어내는 바이오 가스를 그대로 태워 발전을 하는 것은 아니다. 원료가스에 함유된 메탄의 비중은 약 60~70%며 나머지 대부분은 이산화탄소가 차지한다. 또한 황화수소, 수은 등의 불순물도 미량 포함돼 있다. 때문에 SCB-M은 별도의 탈황, 탈수 공정을 거쳐 여타 성분들을 제거 하고 고농도의 메탄만 추출해 가스저장조에 저장하게 된다.
이렇게 포집된 메탄을 30kWh급 혼 소형(Duel-Fuel type) 발전기나 열풍기에 공급하면 우리에게 유용한 전기 에너지나 열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다. 현재 국립축산과학원 내에 설치된 SCB-M 파일럿 플랜트에서는 연구원 내에서 기르는 1,500~2,000마리의 돼지로부터 하루 평균 10톤의 분뇨를 공급받아 88.4N㎥의 메탄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평균 300㎾의 전력을 생산한다. 이 정도면 약 30여 농가가 사용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메탄은 또 태우지 않고 그 자체로 도 이용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천연 가스버스의 연료로 사용될 수 있는데, 공해물질 배출이 거의 없고 열효율이 우수한 연료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 (LNG)의 주성분이 바로 메탄이기 때문이다.
10톤의 분뇨가 300㎾의 전기로
기술한 바와 같이 이렇게 메탄가스를 추출하고 남은 소화폐액은 퇴비로 전환된다. 이를 위해 소화 조 바로 옆에 톱밥과 왕겨의 이중층으로 이뤄진 퇴비단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 소화폐액을 넣으면 톱밥과 왕겨를 지나며 찌꺼기가 걸러지고 깨끗한(?) 침출수를 얻을 수 있는데 이 침출수로 액체 비료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액체 비료는 진한 갈색을 띠며 악취가 없다. 때문에 물과 양분을 필요로 하는 모든 곳, 다시 말해 농경지를 비롯해 산림, 간척지, 골프장 등에 두루 이용될 수 있다.
조 박사는 "액체 비료에서 악취가 나지 않는 것은 퇴비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호기성 미생물들의 유기물 분해과정 때문"이라며 "이같은 산화과정에서 소화폐액의 화학결합이 깨져 냄새가 제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도 아직은 이 과정에 관여하는 미생물의 정체를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이는 매우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운영된 가축분뇨 에너지화 시설들 중에는 악취 때문에 실패를 본 경우가 적지 않은 탓이다.
조 박사는 "악취는 한 두 개가 아닌 여러 물질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므로 현재로서는 악취를 원천적으로 완벽히 제거했다고는 볼 수 없다"며 "지금까지 총 26가지 물질이 악취 제거에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보다 정확한 메커니즘 파악에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악취 제거와 함께 또 다른 SCB-M의 특징은 공정 중 퇴비단 내부에서 발생하는 자체열로 소화 조의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소화단은 중온 미생물들이 활동하기 좋도록 온도를 35℃ 정도로 유지해 주는 일이 관건인데 퇴비단이 이에 필요한 열에너지의 공 급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조 박사에 따르면 퇴비단은 호기 발효에 의한 유기물 분해과정에서 내부열이 발생, 약 45~65℃의 온도를 지닌다.
이 덕분에 시스템의 운용에 소요되는 열에너지가 최소화되며 동절기에도 따로 온도 유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기온에 관계없이 항상 안정적 바이 오가스 생산능력이 확보되는 것. 현재 조 박사팀은 바이오가스 생산량 증대방안을 연구 중이다. 조 박사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섭취하는 양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생산량 증대를 꾀하려면 칼로리에 주목해야 한다"며 "높은 칼로리의 유기물, 즉 진한 농도의 유기 물을 섭취하도록 할 수 있다면 동일한 양의 유기물로도 더 많은 바이오가스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 순환농업의 실현 수단
SCB-M은 2년여의 연구가 일단락되는 내년부터 일반 농가 보급이 진행될 계획이다. 일단은 비용상의 문제를 감안, 돼지 2,000마리급 사육농가가 그 대상이 된다. 조 박사는 보통의 에너지화 시설 건설 시 가축분뇨 1톤당 7,000만원 가량의 설치비가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10톤 규모인 SCB-M의 경우 약 7억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연구팀은 아직은 경제성을 논할 단계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경제성은 향후 여러 실험을 거쳐 생산량 증대를 꾀한 이후에 논의할 부분이라는 것. 오히려 조 박사는 이보다는 자연 순환농업의 실현 수단으로서 SCB-M이 갖는 가치에 더 주목한다.
실제로 SCB-M은 곡물과 과실, 야채를 먹고 자란 돼지의 분뇨로 퇴비를 만들고 이를 다시 곡물 등을 키우는 데 투입함으로써 자원의 낭비가 없는 순환구조를 이룩할 수 있다. 현재 SCB-M을 통해 만들어진 액 비는 다양한 사료작물과 벼, 채소, 과수, 꽃 등 각 작물의 시비량에 맞춰 비료 성분인 질소(N), 인(P), 칼륨(K)의 함량을 조절해 제공되는데 이는 기존 화학비료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다. 일례로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SCB-M에서 생산된 액체 비료로 사과나무·배나무 등을 재배한 결과, 화학비료 사용시와 비교해 생산량이 사과는 6%, 배는 8%나 증가했다.
이러한 성과에 더해 연구팀은 SCB-M이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됐다는 점을 들어 향후 표준화된 공정이 마련되면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걱정스러운 점은 아직도 SCB-M과 같은 시설을 혐오시설로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이다. 하지만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다. 지난 1992년 체결된 런던협약에 의거, 오는 2012년부터 가축분뇨의 해양투기가 전면 금지되기 때문이다. 결국 SCB-M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친환경 에너지도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에 우리 정부도 오는 2013년까지 자원화 시설을 144개소, 에너지화 시설을 15개소로 확대해 가축분뇨 자원 화 90%를 달성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또한 작년 9월에는 가축분뇨 에 너지화 실행계획을 세우고 올해 들어서는 가축분뇨 바이오가스 시범사업을 확대 추진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유기성 폐자원 재생 에너지로
해외의 경우 가축분뇨 자원화·에너지 화 공정 시스템은 우리나라보다 한 걸음 앞서 있는 상태다. 특히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오래 전부터 가축분뇨를 포함한 다양한 유기성 폐자원을 재생 에너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광범위하게 연구해 왔다.
예를들어 독일은 무려 50년 전부터 바이오가스 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해 현재는 농가가 가축 사육을 통한 수익 보다 바이오가스 생산으로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을 정도다. 덴마크 또한 20여년 전부터 정부의 지원 아래 바이오가스 기술이 보급돼 바이오가스를 전기 생산뿐만 아니라 도시가스와 자동차 연료로 활발히 이용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환경에 대 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비료 생산을 통한 수익 창출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9월 초 농촌진흥청에서 주최한 '가축분뇨 이용 바이오가스 생산의 산업화 방안' 심포지엄에서 소개된 덴마크의 혐기소화 조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이 같은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리 뉴 에너지A/S에서 개발한 이 시설의 경우 바이오가스로 전기를 생산함과 더불어 박테리아를 활용, 탈황공정 중 황화수소에서 황(S) 성분을 추출함으 로써 황까지 비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호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이오 가스 기술이 하수처리와 음식물 가공업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 설비는 빅토리아 주 베리뱅크 양돈장에 설치된 바이 오가스 설비로서 호주 퀸즈랜드 주 정부연구소의 알랜 스컬만 박사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1만5,000마리의 돼지 분뇨를 이용해 매일 1,700㎥의 바이오가스가 생산된다. 또한 부산물로 얻어지는 고형물을 30ℓ 포장 퇴비로 만드는데 판매량이 연간 10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가축분뇨를 이용한 자원화 및 에너지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그동안 더럽게만 여겼던 가축분뇨가 환경보호, 에너지난 해소, 농촌경제 부흥이라는 일석삼조의 신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그야말로 똥이 돈이 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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