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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먼 완벽한 군인, 지뢰의 공포

지뢰는 완벽에 가까운 군인이다. 일단 매설해 놓으면 밥을 먹이지 않아도, 옷을 입혀주지 않아도, 잠을 재워주지 않아도, 월급을 주지 않아도 경계임무를 완벽히 수행한다.

게다가 살상구역 내에 들어온 적은 확실히 제거한다. 그것도 무려 수십 년 동안이나. 한 가지 결점이 있다면 아군과 적군,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이렇듯 완벽하지만 눈이 먼 장님 군인이기에 지뢰는 그 어떤 무기보다 무섭다.


지난 10월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대인지뢰가 등장했다. 전쟁터가 아닌 국회에 지뢰를 가져 온 장본인은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그는 강원도 고성에서 1시간 만에 18개의 지뢰를 발견했다며 M-3 대인지뢰를 들고 왔다.

당시 조 의원은 “민간인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지역도 이 정도인데 비무장지대(DMZ) 내부에 만들고 있는 평화누리길은 어떨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평화누리길은 강화도에서 고성까지 이어지는 DMZ 내부의 자전거 트레킹 코스로 사실상 우리나라의 주요 지뢰 밀집지대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이번 해프닝(?)은 우리나라가 전쟁을 잠시 멈춘 정전 국가이며 지뢰로부터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사건이다. 실제로 남한 지역에는 한국전쟁 이후 무려 100 만 발의 대인지뢰가 매설됐다. 이는 국토 면적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휴전선과 민통선 일대에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다수의 지뢰가 매설됐고 남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추가 매설이 이뤄졌다. 알려진 바로는 DMZ 40만발을 필두로 민통선 이북 38만발, 민통선 이남 5만 7,000발, 그리고 39개 후방지역에 군부대 시설 방어를 위해 6만여 발 이 땅 속에 묻혀있다.

심지어 서울 우면산, 부산 장산 등에도 한때 지뢰지대가 있었는데 완벽히 제거되지 못한 지뢰들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피아(彼我) 구분 없이 누구나 공격

지뢰의 가장 큰 무서움은 피아(彼我)를 전혀 구분치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 군과 적군을 무시하고 지뢰를 밟는 사람은 누구나 적으로 간주, 살상대상이 된다. 같은 이유로 군인과 민간인 역시 구분하지 않는다.

그나마 이 정도라면 괜찮다. 일반인 입장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지뢰가 처음 매설된 위치에 머물지 않고 이동을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물론 스스로 위치이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폭우, 홍수, 하천 범람, 산사태 등 지면이 물리적으로 파헤쳐지는 재해가 발생할 경우 원위치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군사지역이나 지뢰 매설 지역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지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매년 여름 홍수가 나면 군부대 인근에 매설됐거나 탄약고에 보관돼 있던 지뢰가 유실되며 하천을 따라 민간인 지역까지 떠내려가는 사고가 발생하고는 한다.

작년 여름에는 북한 군 탄약고가 홍수 침수 피해를 입어 목함지뢰 170여 발이 남한으로 내려 왔다. 지난 7월 이 중 한 발이 폭발, 2 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낸 바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우리나라 국민 중 지뢰로부터 안전하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지뢰는 지상 또는 땅 속에 매설돼 있다가 특정 하중을 받아 폭발하는 살상 무기를 말한다. 개중에는 압력해제식, 인계철선식, 원격조종식 지뢰도 있다.

신관을 사용하는 현대적 형태의 지뢰는 19세기 후반 미국 남북전쟁 즈음 등장했다. 또한 이때는 적 기관차의 격파를 위한 대형 지뢰도 개발됐는데 이것이 현대전차 지뢰의 원형이 됐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폭약 대신 독가스를 터뜨리는 화학지뢰가 출현했고 특정 방향으로 폭발력을 집중시키는 지향성 지뢰, 핵병기를 사용한 핵 지뢰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뢰, 그중에서도 인명사고를 일으킨 대인지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간만큼 긴 지뢰의 수명

먼저 M-2 도약지뢰를 꼽을 수 있다. 이는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지뢰로 압력해제 및 인계철선식으로 작동되며 1.3~3.6㎏ 이상의 하중이 걸리면 격발된다.

특히 격발시에는 살상력 배가를 위해 지뢰 본체가 땅 속에서 1.8 ~2.7m 상공으로 튀어 올라 폭발한다. TNT 154g이 충전돼 있으며 살상 반경은 50~100m 정도다.

이런 구식 지뢰가 아직도 위협이 되 는 것은 그만큼 지뢰의 수명이 길다는 의미와 같다. 금속제 지뢰는 보통 50년 이상 수명을 유지하며 부식의 우려가 없는 플라스틱제 지뢰의 경우 이론상 그 수명이 무한에 가깝다. 지뢰를 말할 때 M-7 대인/대전차 지뢰도 빼놓을 수 없다.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쓰였던 것으로 원래는 대 전차지뢰지만 60~110kg의 압력에 작동해 사람이 밟아도 격발될 수 있다. 1.62㎏의 테트릴 폭약이 충전된 이 지뢰를 건설용 중장비가 밟아 파괴된 사고사례가 있다.

지뢰를 밟은 사람의 무릎 아래를 절단시킨다 하여 일명 발목지뢰라 불리는 M-14대인지뢰는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지뢰 사고의 최대 유발자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의 지뢰피해자 48명 중 32명이 이 지뢰에 당했다. 사고 빈도가 그만큼 높지만 먼저 발견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본체가 플라스틱이라 금속탐지기에 잡히지 않으며 중량 100g(테트릴 29g), 직경 56㎜, 높이 40㎜의 초소형이어서 육안으로 찾기도 곤란하다. 격발은 9 ~ 16㎏을 받았을 때 이뤄진다.

굳이 발목만 자르도록 설계한 것은 부상자가 발생하면 이동 및 보호를 위해 병사 1~2명을 더 투입해야 해 적의 전투력 손실을 배가할 수 있어서다. M-2 도약지뢰의 후속모델인 M-16 도약지뢰도 우리나라에서 위협이 되는 지뢰의 하나다. TNT 182g이 충전돼 있는데 압력해제 및 인계철선식으로 격발되며 격발압력은 1.6~3.6㎏이다.

격발시 지면에서 90㎝ 위로 떠올라 공중폭발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여름 폭발사고를 일으킨 북한 제대인 목함지뢰를 들 수 있다. 이 지뢰는 구 소련의 PMD 계열 목함지뢰를 복제한 제품으로 목제로 본체를 제작, 탐지의 어려움은 있지만 부식이 빨라 5~7년이면 수명을 다한다.

내부에는 TNT 200g이 들어 있으며 1.4~4.5㎏의 압력에 폭발한다. 참고로 영화에 자주 나오는 지뢰, 다시말해 처음 밟았을 때는 터지지 않 고 발을 떼었을 때 터지는 지뢰는 사실상 존재치 않는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굳이 적에게 지뢰를 해체할 기회를 줄 군대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군견 지뢰, 핵 지뢰, 헬리콥터 지뢰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 지뢰의 개발사를 돌이켜 보면 참으로 특이한 지뢰들이 많다. 이중 가장 독특한 것으로는 개의 등에 부착해 적의 목표물을 폭파하는 개 지뢰를 들 수 있다.





이의 활용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국가는 구 소련이었다. 소련은 지난 1930년대부터 적 전차나 진지에 돌격하도록 군견을 훈련시킨 뒤 등에 중량 10㎏의 고성능 지뢰를 결속시켜 일종의 자살 특공대처럼 사용했다.

개 지뢰는 소련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밀리던 지난 1941년과 1942년에 걸쳐 대량 사용됐지만 행동을 예측키 어려운 동물의 특성상 운용상의 문제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개가 목표물 대신 주인에게 돌아와 자폭한다거나 아예 다른 곳으로 도망을 쳐 버리는 경우 말이다.

따라서 개 지뢰의 전과 또한 미미할 수밖에 없었고 전황이 소련측에 유리하게 전개되던 1943년 이후 거의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개 지뢰는 소련 외에도 일본, 미국, 베트남 등에서 소수나마 사용됐으며 이슬람권에서는 이에 착안해 당나귀 지뢰도 개발됐었다.

핵 지뢰는 미국과 구 소련의 전면적 핵전쟁 위험이 상존하던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미국은 MADM이라는 핵 지뢰를 1960년대에 개발, 1986년까지 생산했고 이를 사람이 메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소형화한 SADM도 개발했다. 유사 시 서유럽으로 진격해 올 소련 군의 대규모 기계화 부대를 저지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중량 180㎏의 MADM은 내부에 W45 핵탄두를 탑재하고 있으며 폭발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보이에 필적하는 최대 15kt에 달한다. SADM은 2인 도 수운반이 가능하도록 중량을 68㎏까지 줄이고 직경도 40㎝로 소형화됐다. 흔히 핵배낭이라고 불린다.



최대폭발력은 10kt이며 특전요원이 휴대한 채 적의 후방 목표물에 침투, 지뢰를 매설한 후 시한 기폭장치를 작동시키고 탈출하는 방식으로 운용될 예정이었다. 덧붙여 미국과 러시아가 이미 서류가방 사이즈의 6kt급 핵 지뢰를 개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사람이 아닌 헬리콥터를 사냥하는 대(對) 헬리콥터 지뢰의 경우 음향 센서와 레이더로 적 헬리콥터의 접근을 감지, 헬리콥터가 약 200m의 유효살상 거리 내에 들어왔을 때 격발된다.

이 지뢰는 ‘먼로-노이만 효과’를 이용한 성형작약 탄두를 사용, 격발시 폭풍과 파편을 일정한 방향으로 쏟아내 헬리콥터를 격추한다. 대표적인 모델로 불 가리아제 AHM와 러시아제 PMN 계열 지뢰가 있다.

미래의 스마트 지뢰

하지만 이들 지뢰도 지뢰의 태생적 한계인 무차별성은 해소하지 못했다. 이에 미국 등 군사강국들은 미래의 지뢰로서 표적 식별 능력을 갖춘 지능형 지뢰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매트릭스시스템, 스파이더시스템이 바로 이런 지뢰의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다. 이중 매트릭스시스템은 병사가 노트북 컴퓨터와 상황인식 센서를 통해 기존의 M-18 클레이모어 대인지뢰나 M-5 폭동진압지뢰의 격발을 제어하는 원격조종식 대인지뢰 제어 기술이다.

아군 병사가 센서 등을 통해 지뢰 매설지역을 감시하고 있다가 적이 접근하면 격발하고 아군일 경우 격발하지 않는 것. 지난 2005년에는 미군이 이 시스템을 이라크에 실전 투입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펜타곤은 이를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ATK/텍스트론시스템즈가 연구 개발한 스파이더 시스템은 이보다 한 단계 더 진보된 체계다. 병사가 원격 조종으로 살상용, 또는 비살상용 지뢰를 격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지뢰의 장전과 해제까지 가능하다. 이 기술의 개발로 지뢰는 그동안 뒤따라다녔던 멍텅구리 무기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스파이더 시스템은 적을 탐지하고 공격하는 탐지 및 살상 장치, 즉 지뢰 본체와 이를 무선 원격조종하는 원격 조종기로 구성돼 있다. 탐지 및 살상 장치를 매설한 후 부착된 탐지장비를 작동시키면 탐지장비에 적이 발견됐을 때 이를 원격조종기에 알린다.

운용병은 수신한 적 발견 신호를 전장 정보 시스템으로 얻은 전장 상황과 대조, 적이라고 판단되면 격발하게 된다. 또한 원격 장전·해제 기능을 활용, 지뢰지대에 아군이 통과하거나 전쟁이 완료된 뒤 원격지에서 장전을 해제할 수 있으며 전장에 상황에 맞춰 전체 지뢰의 일부만 장전하거나 해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은 이러한 첨단 지뢰로 M-16 대인지뢰를 대체한 후 그동안 조인하지 않았던 오타와 협약에도 가입할 예정이다. 지난 1997년 12월 조인돼 현재까지 156개국이 비준을 완료한 대인지뢰 금지협약인 오타와 협약은 원격조종식 지뢰는 규제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와 유사한 체계를 개발할 예정이다. 지뢰는 수백 년간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살상하는 병기로 악명을 떨쳐 왔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지뢰조차 안전한(?) 병기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해마다 발생하는 지뢰 사고와 국제적 압력에 의해 기존의 멍텅구리 지뢰를 퇴출시키고 지능형 지뢰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정확한 위치 파악조차 안 되는 지뢰를 무수히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글_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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