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화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다. 무수한 문명의 이기들과 생활용품들이 화학의 힘에 의해 탄생했고 우리는 매일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는 최근 지구촌 전체의 화두가 된 녹색성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을 친환경적으로 바꿔주는 과학기술, 그것이 바로 화학이다. 총 3회에 걸쳐 이 같은 녹색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 본다.
엔진 성능과 연비 제고의 첨병
1. 엔진오일 첨가용 엔진보호제
엔진은 자동차의 성능을 결정짓는 핵이다. 엔진이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수록 차량의 성능도 달라진다. 엔진오일에 첨가해 사용하는 엔진보호제는 이러한 엔진의 실력 발휘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존재다.
엔진 마모의 주 원인으로 지적되는 초기 시동 시의 마찰과 마모를 막아 엔진의 성능 개선 및 수명연장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진이 식어있는 초기 시동 상태에서는 엔진오일이 윤활제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엔진 마모가 이 때 발생한다.
하지만 과거의 엔진보호제들은 고온의 엔진 내부에서 분해돼 금속을 부식시키고 대기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침적에 의해 엔진오일의 경로를 막는 것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화학연구원 산업바이오화학 연구센터 정근우 박사팀은 이 같은 점에 주목하고 3년여의 연구개발을 거쳐 대기오염과 마찰 마모 특성을 개선한 신개념 엔진보호제 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정 박사는 지난 1984년부터 윤활유 개발에 착수, 국내외에 약 20여건의 특허를 출원ㆍ등록한 엔진보호제 분야의 전문가로 정 박사팀이 개발한 엔진보호제는 엔진 내부에 보호막을 형성하고 엔진오일의 윤활성을 높여 내마모성 향상을 꾀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엔진오일 교환과 상관없 이 오일에 첨가하면 초기시동에서의 마찰ㆍ마모를 막아 준다. 그 결과 1.4 마력의 엔진출력 증강을 비롯해 연료 절감 4.2%, 소음 감소 54%, 내마모도 증진 33.85% 등 엔진 효율 전반의 개선이 가능하다.
연구팀은 기존 엔진오일 첨가제의 주원료로 쓰였던 인(P) 화합물 대신 유기몰리브덴 화합물(AOMC)에 주목했다. 정 박사는 "인 화합물은 내마모성이 좋은 반면 배기가스 점화장치 촉매의 성능을 저하시킨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이의 해결을 위해 산화방지제를 첨가한 유기몰리브덴 화합물을 사용했다" 고 밝혔다.
엔진오일만 사용했을 때와 첨가제를 넣은 엔진오일을 비교실험한 데이터에서도 이번 엔진첨가제의 우수성은 증명된다. 전자의 경우 최대 7,000㎞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해야하는 반면 후자에서는 1만㎞까지 물의 없이 주행해 효율이 약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폐 엔진오일 발생량을 대폭 줄일 수 있어 탁월한 환경적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정 박사는 "이 엔진보호제는 오일의 점도특성, 마찰계수, 저온 유동성, 산화안정성, 고온열 안정성 등을 극대화시켜준다"며 "1,700만 대 이상의 자동차 등록대수를 보이는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적지 않은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 기술은 2억 5,000만원의 정액기술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차량용 윤활유 전문기업 불스원에 기술 이전돼 '불스파워'라는 제품으로 상용화된 상태며 오너드라이버들을 중심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정 박사는 "자동차, 전자, 조선산 업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춰 나 가려면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화 학산업에서의 원천기술 확보가 중요 하다"며 "향후 바이오 부산물인 글리 세롤을 활용한 엔진첨가제와 부식방 지제 연구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라 고 덧붙였다.
대덕=구본혁기자 nbgkoo@sed.co.kr
유ㆍ무기물 화학 결합, 첨단 신소재 개발
2. 기능성 표면처리용 하이브리드 화학소재
최근 산업경쟁의 패러다임이 완제품보다는 소재 중심으로 전환되며 소재 원천기술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화학소재는 일상생활은 물론 디스플레이ㆍ휴대폰ㆍ반도체ㆍ자동차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성능과 품질, 가격경쟁력을 결정하는 원천으로 작용한다.
화학소재란 원유, 석탄, 천연가스, 바이오 물질 등을 기초원료로 하여 화학반응을 통해 합성된 소재를 말하는데 장기간의 연구와 막대 한 투자비가 요구되지만 기술개발에 성공할 경우 막대한 고부가가치가 창출된다.
그 가치에 따라 세계시장 석권도 가능하다. 이렇듯 중요한 분야인 만큼 화학소재 기술에서 앞서 있는 선진국 들은 특허, 표준 등으로 철옹성을 쌓고 독과점적 지배력을 행사하며 후발주자들의 신규 진입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의 경우 첨단 화학소재 대부분을 사실상 일본을 위시한 해외수입에 전량 의존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기업들은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고도 수익의 많은 부분을 해외기업에 사용료로 지불, 주인의 주머니만 불려주는 '재주넘는 곰'으로 전락할 우려가 큰 것.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국내 연구팀에 의해 주목할 만한 성과가 도출됐다.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소재연구단 소자재료연구센터 석상일 박사 연구팀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유기물과 무기물을 화학적으로 결합,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용한 물성을 지닌 무' ·유기 하이브리드 화학소재 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이 기술은 단순히 유기물과 무기물의 장점을 융합하는 것을 넘어 신소재에 내부식성, 스크래치 내구성, 자외선 및 적외선 차단성이라는 추가적 물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산업적 가치가 크다.
또한 기존 기술보다 훨씬 작은 수 나노미터급으로 소재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그 효용성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석 박사는 "이는 광기능성, 전자기 기능성 유기물과 무기물을 하이 브리드화하여 새로운 복합 기능성 소재를 개발하는 기반이 된다"며 "자동차, 빌딩, 주택 등의 표면에 코팅해 내구성 향상과 에너지 절약 효과를 내는 신소재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의 개발을 위해 졸.겔 공정을 적용했다. 졸-겔 공정은 무기물과 유기물을 새 물성을 가진 하이브리드 소재로 만들 수 있는 기법으로서 유ㆍ무기물 혼합용액의 미세 구조를 반응시간, 온도, 농도 등의 조건에 따 라 제어할 수 있다.
유기물의 유연성과 무기물 의 화학적 안정성, 강도 등의 장점은 극대화하 면서 유기물의 낮은 내열성, 무기물의 높은 취성 등의 단점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소재를 설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연구진은 이 기술을 활용, 고가의 염료 대신 저가의 무기반도체 나노입자용 원료 를 사용해 유기태양전지의 전도성 고분자와 효 과적으로 결합하는 고효율 차세대 태양전지 제조 원천기술을 개발한 상태다.
또 반지, 귀걸 이 등의 내부식성과 스크래치 내구성을 높여 주는 코팅제 기술 등을 민간업체에 기술이전 해 1억원 이상의 기술료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대덕=구본혁기자 nbgkoo@sed.co.kr
화학은 물과 기름도 섞이게 한다
3. 환경친화적 비이온 계면활성제
샴푸, 세제, 치약, 화장품, 잉크, 농약. 이들에게 공통 적으로 함유된 화학물질은 무 엇일까. 정답은 계면활성제다. 계면활성제는 계면(界面), 즉 서로 혼합되지 않는 물질들의 경 계면을 무너뜨려 하나의 물질 로 묶어주는 화합물을 말한다.
친수성과 친유성을 모두 겸비해 물과 기름처럼 절대로 섞이지 않는 물질도 계면활성제의 힘을 빌면 어느새 일심동 체가 된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계면활성제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화장품과 세제.
화장품은 주성분이 물과 기름이기 때문에 계면활 성제의 도움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며 세제의 경우 세정력의 원천이 계면활성제이므로 세제가 곧 계면활성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종류는 음이온, 양이온, 양쪽이온, 비이온으로 구분되는데 비이온 계면 활성제가 환경적 독성이나 피부 자극이 적어 관련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0년대 초만 해도 비이온 계면활성제의 주축은 석 유화학 부산물인 노닐페놀계였다. 이는 대표적인 환경호르몬(내분비 계 장애물질)으로 환경은 물론 인간에게도 극히 유해한 성분이다.
게다가 당시의 노닐페놀계 계면활성제는 세정 등에 작용하는 유효성분 이 27~45%에 불과하다는 치명적 한계까지 지니고 있었다. 샴푸를 예로 들면 10g으로 머리를 감았을 때 최대 7.3g이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버려졌다는 얘기다.
한국화학연구원 그린화학연구단의 김형록 박사는 "계면활성제는 계면활성 성분의 작용범위(중합도 분포)를 최대한 좁혀야 주방세제, 샴푸, 화장품 유화제 등 용도에 맞춰 최적 효과를 발휘하는 제품을 설 계할 수 있다"며 "하지만 당시 국내 기술력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고 설명했다.
가정용 세제임에 도 음식물 제거에 효과적인 계면활성 성분은 50% 미만이고 나머지는 샴푸 등 다른 용도에서 필요한 성분으로 채워진 것이다. 지금도 이런 상황이 계속 되고 있을까. 물론 아니다.
이 같은 현실에 주목한 화학연 김 박사팀이 계면활성제 전문 기업 동남합성과 공동으로 두 가지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친 환경 비이온 계면활성제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
독일, 일본, 미국에 이어 세계 4번째로 개발된 이 기술은 노닐페놀 계 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혼합금속 산화물 촉매를 통해 좁은 중합도 분포를 구현, 유효성분 함량이 55~71%에 이른다.
김 박사는 "실험 결과, 이 기술로 생산한 계면활성제는 세정력·유화 력·표면장력 저하능·생분해성 등에서 기존 고급제품보다도 월등한 우위를 보였다"며 "분말세제로 만들 경우 사용량을 20% 줄여도 동등 이상의 세정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현재 동남합성에 의해 상용화돼 유명 화장품기업 A사의 고급 샴푸와 화장품 등의 재료로 공급되고 있으며 국내 제품의 고급화 와 차별화, 계면활성제 사용량 감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화학부 문 장영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7년부터는 우리나라 에서도 노닐페놀 사용이 중단되면서 기술적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상태다. 김 박사는 "아주 작은 기술적 변화로도 세상을 바꾸는 원천이 되는 것이 바로 화학 소재 기술"이라며 "앞으로도 사회적 스트레스를 줄이 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영역들을 찾아 연구 역량을 집중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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