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 민족사관고등학교 2학년 손세욱, 1학년 서형주
비상구 위치를 알려주는 녹색 유도등. 화재 시에도 이 불빛이 잘 보일까. 혹시 자욱한 연기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비상시를 대비한 비상구 유도등이 오히려 긴급상황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다.
이 점에 주목해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발명품 '비상탈출용 손전등 겸용 문고리'를 세상에 내놓은 학생 발명가들이 있다. 바로 민족사관고등학교 2학년 손세욱, 1학년 서형주 군이다.
"새벽 2시가 되면 기숙사 전체의 불이 꺼져요. 불빛이라고는 비상구 유도등 밖에 없죠.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데 너무 희미한 거예요. 그 순간 기숙사에 불이 나면 학생들이 유도등을 보고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죠." 이번 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한 아이디어는 이처럼 손군의 평범한 일상 속 경험에서 비롯됐다. 불 꺼진 기숙사가 발명의 불씨를 당긴 것이다.
깊은 통찰에서 나온 발명의 씨앗
손군은 이어 "나라면 화재로 연기가 자욱한 실내에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봤다"며 "한 단계씩 깊게 통찰하다보니 문고리를 잡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군이 한 마디 더 거들었다. "세욱이형의 생각을 토대로 어떤 발명품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을 했어요. 그러던 중 비상구 유도등을 아예 문고리에 집어넣자고 제안했죠." 발광체를 내장, 스스로 빛을 내는 문고리라면 긴급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안전한 탈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발명 아이템이 결정되면서 팀 이름도 그에 걸맞게 지었다. 다름 아닌 '자체발광'이다. 두 사람의 발명품의 핵심은 건물 내에 화재나 기타 사고 가 일어났을 때 비상구의 문고리가 이를 감지해 내장된 전구를 켬으로써 손쉽게 탈출을 돕는 것이다.
비상상황을 인식하는 방법은 날씨, 조명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빛 반응센서 대신 전원 차단여부를 감지하는 릴레이 스위치를 적용했다.
특히 이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문고리를 돌리거나 뚜껑을 빼면 손전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량, 단순히 탈출로를 알려주는 것을 넘어 탈출 과정에 직접적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사고가 밤에 발생하면 어둠 때문에 자칫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문고리를 손전등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았어요." 손군의 설명이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런데 최초 탈출자가 문고리를 제거해버리면 그 뒤의 사람은 더 위험해지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제기하자 서 군이 입을 열었다. "문고리를 고정되는 부분과 분리되는 부분으로 설계하면 됩니다. 두 부분 모두에 전등을 넣으면 누군가가 손전등을 빼가더라도 유도등의 역할을 계속할 수 있어요."
발명을 향한 꾸준한 열정
공간이 넉넉지 않은 문고리에 전구와 각종 배선을 장착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물론 문고리의 크기를 키우면 해결되지만 그렇게 하면 평상시 사용에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문고리에 버튼식 뚜껑을 채용, 그 내부에 소형 손전등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 발명품의 최대 장점은 문고리라는 일상적 장치를 손전등 겸용 유도등으로 전환, 손쉽게 안전성을 배가할 수 있 다는 부분이다. 많은 건물들에 비상용으로 비치된 손전등 이 긴박한 상황에서는 사실상 별다른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두 사람은 아주 사소한 생각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그리고 생각의 덩어리를 모아 아이디어로 승화시키고 이를 구체화해 가치 있는 발명품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놨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한 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손군은 LG생활과학아이디어 공모전 입선, 한국 청소년 디자인 전람회 특선, HOBY 디자인공모전 장학금 수혜 등 기존에 여러 발명대회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서 군 역시 그동안 다양한 발명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발명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바뀌어가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일이죠.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발 명대회에 참가하며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과 교류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손군은 이렇게 대답하며 멋쩍게 웃었다.
꿈은 제각각이지만 열정은 하나
이들은 발명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더없이 믿음직한 동료지만 각자의 꿈은 다르다. 손군은 생물 과목에 관심이 많다. 때문에 현재 생물 올림피아드 도 준비 중이다.
"발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공학은 생명과학과 별개의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학교에 진학하면 생명과학과 의학을 융합한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이 두 가지가 만나 얼마나 큰 시너지를 낼지 너무 궁금해요." 서 군의 경우 공학도가 되고자 한다.
"지금은 물리에 관심이 가장 많지만 대학 전공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는 공학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까 싶어요. 물리로 기초를 단단히 쌓은 뒤에 공학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문제를 풀고 공식을 외우는 것 이외의 활동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되물었다.
대답은 명쾌했다. "그래서 발명을 하는 거예요. 이번 발명품에 들어간 부품 중 전자회로도 직접 제작했어요. 발명은 문제를 푸는 것 이상의 공학적 지식과 나름의 노하우를 익힐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현재 이들의 '비상탈출용 손전등 겸용 문고리'는 특허법률 사무소를 통해 특허 등록이 진행 중이다.
특허청의 심사를 거쳐 특허증이 나온나면 두 사람은 명실상부한 발명가가 된다.
서영진 기자 art juc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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