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품은 가공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크롬(Cr)을 통재로 깎아 제작, 일반 이어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음질을 선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다. 국내 출시 가격이 무려 269만 원이다.
일반 판매용으로는 국내 최고가의 이어폰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성능도 이 정도의 값어치를 할까.
수년 전만 해도 이어폰의 음질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어폰은 그저 새 IT기기를 구입했을 때 당연히 끼워주는 구성품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 MP3 플레이어, 아이패드 등 음향 출력 기능을 갖춘 모바일 기기들이 대중화되면서 이어폰에 대한 관심도 부쪽 올라갔다.
소리만 좋다면 1만 원짜리 일반 이어폰 10배의 값을 지불해도 상관없다는 전문가나 마니아층까지 생겨난 상태다. 그리고 이런 특정 고객을 겨냥한 회사들의 제품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파이널오디오디자인의 'FI-DC1601SC'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특별하고도 독특한 제품이다.
고가의 크롬 통째로 깎아 제작
파이널오디오디자인이라는 회사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유럽과 미주 지역의 음향기기 마니아들에게는 꽤 친숙한 회사다. 이 회사의 모토는 '원음과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내는 제품의 개발'이다.
때문에 제품의 소재는 물론 품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FI-DC1601SC'도 이런 모토 아래 개발된 이어폰이다. 이 제품의 소재는 크롬. 크롬은 다른 금속에 비해 광택과 내구성이 우수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고 가공도 어려워 합금과 도금용으로 많이 쓰이는 소재다.
하지만 이 제품은 세계 최초로 도금이 아닌 순도 100%에 육박하는 크롬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서 만들었다. 그렇잖아도 감쇠진동 특성이 가장 좋기로 소문난 크롬을 통째로 깎아 제작했으니 원음 재현성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또한 크롬은 쉽게 녹슬지 않기 때문에 장기간 사용해도 부식되거나 색상이 변하지 않는다. 충격에 의해 파손될 확률도 일반 이어폰에 비해 현저히 낮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심플한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투박하지는 않다. 오히려 원형 디자인에 크롬의 광택이 더해지며 은은한 고급스러움이 강조된 느낌이다. 액세서리보다는 심플하고 기능성을 중시하는 견고한 '장비'의 느낌이 강하다.
성능은 '100점 만점에 100점'
실제 성능 테스트를 위해 CD플레이어와 CD에서 직접 추출한 무손실 음악파일을 들어봤다. 테스트에는 브라운아이드 소울 '더블싱글 2집:Love Ballad', 이적 4집 '사랑', 글렌 굴드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 마빈 게이 'Theme from Trouble Man' 등 4장의 음반을 사용했다.
각 음반을 들어본 결과, 전반적으로 음원 분리가 확실하고 밸런스도 잘 맞았다. 그래서인지 처음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전혀 생소하지 않으며 한 음역대에 소리가 모이는 현상도 발생되지 않았다.
해상력과 공간감은 수준급으로 평가된다. 특히 각 음악 구성요소들의 생생함을 살려주는 해상력은 자연스레 엄지손가락이 치켜 들릴 만큼 대단했다.
일반 이어폰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작은 악기소리와 가느다란 화음, 희미한 퍼커션 반주도 포착해냈다. 지금까지 듣고 느꼈던 음반의 감상을 '재해석'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 비결은 바로 16㎜에 이르는 대형 드라이브 유닛에 있다. 이 유닛은 임피던스가 16옴에 이르며 출력도 108㏈로 높다. 때문에 볼륨을 최대로 키워도 소리가 갈라지거나 찢어지지 않고 최고 품질의 음향을 송출한다.
이 제품의 확실한 음원 분리력은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를 직접 듣는 것 같은 생동감을 줬다. 별도의 에이징을 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가히 최상의 품질이다. 아니 이 상태라면 에이징을 할 필요조차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착용감, 휴대성은 다소 불편
뿐만 아니라 중저음역대의 재생능력이 좋아 재즈, 소울 등의 음악을 들을 경우 보컬의 거친 듯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와 코러스 및 악기들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가 곁들여진 음악을 들을 때는 바로 옆에서 연주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피아노 반주로만 구성된 곡에서는 보컬의 생생한 목소리와 피아노의 선율이 그대로 귓속에 전해졌다.
또한 많은 이어폰들이 기기의 음장에 따라 소리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반면 이 제품은 어떤 음장으로 설정해도 본연의 특성을 잃지 않았다. 음장 중 재즈, 클래식, R&B, 발라드, 어쿠스틱, 포크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뿜어냈다.
다만 일반 이어폰에 비해 4배 이상 무거운 중량은 착용감과 휴대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음악에서는 최상의 성능을 보이지만 비트가 빠르고 강렬한 음악에서는 약간은 아쉬운 모습을 나타내는 것도 옥의 티다.
전체적으로 이 제품은 품질, 디자인, 성능까지 이어폰을 선택할 때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에서는 어느 한 곳 나무랄 데 없다. 269만 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지금까지 누구도 느껴보지 못한 이어폰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주머니 사정은 나중에 걱정해도 늦지 않는다.
글_ 이상문 IT칼럼니스트omegal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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