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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한양도성] <48> 인왕산 치마바위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7.17 11:26:51한양도성이 지나가는 인왕산 정상 바로 아래 바위를 ‘치마바위’라고 부른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전처인 단경왕후 신씨가 자신의 연분홍 치마를 펼쳐놓았다는 곳이다. 중종은 신수근의 딸과 혼인했는데 연산군의 심복이었던 그는 반정 과정에서 역적으로 처단된다. 역적의 딸이라는 이유로 신씨도 쫓겨났다. 신씨가 중종이 자신을 생각하도록 바위에 치마를 걸어놓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애틋함은 일제시대에 변질됐다.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47>선바위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7.10 10:37:15한양도성 인왕산 구간을 오르다 보면 성곽 밖으로 기괴한 바위가 보인다. 모습은 장삼을 입은 스님이다. 그래서 불교풍으로 ‘선바위(禪巖)’라고 부른다.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여기서 천일기도를 수행했다고 한다.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선바위 위치로 논쟁한 것은 더 유명하다. 무학대사는 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반대로 정도전은 밖에 두려 했다. 불교에 대한 입장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계의 결단으로 성곽은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46> 인왕산구간 성곽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7.03 18:35:31바위투성이의 인왕산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다. 치마바위·선바위·기차바위 등 이름들도 정겹다. 한양도성 순성(巡城·성곽 따라 돌기)은 인왕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강북삼성병원 뒤쪽의 서대문 터에서 윤동주문학관·창의문까지 4㎞ 정도 거리로 일반적으로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전경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왕산이 여전히 낯선 이유는 아픈 현대사 때문이다. 1968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45> 인왕산·북악산, 조선 건국때 한양도성 '主山' 다툼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6.26 12:39:15한양도성 성곽은 서울 4대산의 능선을 이은 것이다. 북악산(해발 342m)·낙산(124m)·남산(270m)·인왕산(339m)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핵심은 북악산과 인왕산이다. 한양도성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중심역할을 할 주산(主山)의 위치를 두고 북악산과 인왕산이 경쟁을 한다. 인왕산을 주장하는 측은 한양의 풍수지리를 이유로 든다. 주산의 옆으로 좌청룡·우백호가 위치하는 데 서열상 좌청룡이 우위에 있어 더 높아야 한다.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44> 딜쿠샤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6.19 18:46:34서울 종로구 행촌동에는 ‘딜쿠샤’라는 건물이 있다. 1923년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가 지었으며 이름은 힌두어의 ‘매혹, 기쁨’의 의미다. 앨버트 테일러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통신사 특파원으로서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됐다. 정치적으로는 제국주의 수탈을 상징한다. 국운이 쇠퇴하던 조선은 1895년 미국에 평안북도 운산의 금광채굴권을 넘긴다. 앨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43> 홍난파 가옥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6.12 12:52:09서울 서대문(터)에서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600m 정도 올라가면 이국풍 주택이 나온다. 주위는 아파트 공사로 소음과 먼지가 심하지만 이 집만은 덩굴과 꽃들로 덮여 아름답다. 사진의 홍난파(1897~1941) 가옥이다. 홍난파가 이 집에서 지낸 것은 그의 말년인 1935년에서 1941년까지. 홍난파는 ‘봉선화’ ‘고향의 봄’ 등과 같은 국민가곡의 작곡가다. 다만 이 집만으로 볼 때는 아쉬운 점이 많다. 친일행위와의 관련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42>경교장, 김구 선생의 恨이 서려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5.29 13:24:44서대문(돈의문) 터 바로 옆 강북삼성병원 안쪽에 해방정국의 중요한 유적인 ‘경교장(京橋莊)’이 있다. 김구가 귀국한 후 지난 1949년 6월 암살될 때까지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한 곳이다. 부근에 경기도와 이어진 ‘경교’라는 다리가 있어 이름 붙었다고 한다. 원래는 ‘죽첨장’으로 금광 개발로 일제강점기 한때 3대 부자이던 친일 인사 최창학이 1938년 지은 건물이다. 건축 당시에는 전체면적 5,267㎡(1,583평)의 대저택이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41> 돈의문터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5.22 18:20:01‘신문로’ ‘새문안교회’ 등의 지명이 있다. 모두 ‘돈의문(敦義門·서대문)’과 관계된 말이다. 조선의 도읍 한양은 동서 축, 즉 종로 거리를 축으로 해 만들어졌다. 동서의 끝은 동대문과 서대문이다. 동대문은 처음 세워진 후 변함이 없다. 반면 서대문은 많은 굴곡을 겪었다. 한양도성이 처음 건설된 1396년에는 사직단 부근에 있었는데 성곽 개축 과정에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안내푯말을 보면 ‘1422~1915’라고 적혀 있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40>옛 프랑스공사관 머릿돌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5.15 13:19:47서울의 최고 관광코스를 꼽으라면 중구 정동을 빼놓을 수 없다. 덕수궁 돌담길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근현대 유적들을 보고 걷노라면 누구나 낭만에 젖는다. 아쉽게도 이런 정동의 분위기는 조선왕조의 쇠퇴와 함께 시작됐다. 외국인들의 거류지가 정동에 형성되면서 해외 건축물들이 잇따라 들어선 것이다. 1883년 옛 미국 공사관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래로 영국·러시아·프랑스 등의 공관이 뒤를 이었고 교회·학교·주택 등도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39> 대한문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5.08 17:40:37덕수궁 ‘대한문(大漢門)’이 지난 1906년 세워졌기 때문에 한자가 ‘대한제국(혹은 대한민국)’과 같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히 다르다. 경복궁 광화문 등 기존 궁궐 정문에 모두 ‘화(化)’가 들어간 것과도 차이가 있다. 조선의 이념이 사라진 시대의 작품이다. 대한문은 원래 서울광장 부근에 있었다. 1914년 광화문과 남대문을 잇는 태평로가 일제에 의해 뚫리면서 덕수궁의 축소와 함께 대한문도 뒤로 물러났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38> 대한제국군 전투지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5.01 18:30:45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대한상공회의소 옆에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대한제국군 서울시가 전투지’라는 푯말이 서 있다. 별다른 유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달랑 푯말 하나뿐이다. 대한제국군이 지난 1907년 일제의 군대해산령에 맞서 봉기한 곳이다. 그해 8월1일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하자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였다. 한양도성을 따라 현재의 대한상공회의소·퍼시픽타워·부영빌딩 등은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37> 서소문 터, 언론사 주차장 앞 표석만 남아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4.24 09:26:25한양도성의 4대문·4소문 등 8개 성문 가운데 ‘서소문(소덕문)’이 가장 홀대받고 있다. 서소문공원이나 서소문아파트 등은 유명하지만 정작 서소문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도성의 원래 성문 가운데 서대문과 서소문 2개만 현재까지 복원되지 못했다. 서대문 터에는 다양한 안내자료라도 있지만 서소문 터는 중앙일보라는 한 언론사의 주차장 앞에 사진과 같이 표석만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다. 조선 초기부터 서소문 밖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36> 대한상공회의소 옆 성벽
문화·스포츠 문화 2016.04.17 17:37:53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대한상공회의소 옆으로 높이 3m의 성벽이 200m가량 이어진 것을 만날 수 있다. 일부만 한양도성의 원래 성돌이고 대부분 새로 쌓았다. 평지구간에서 이 정도라도 존재하는 곳은 여기뿐이다. 대한제국을 강탈한 일제는 한양도성을 대대적으로 헐어낸다. 그리고 다른 건물들을 세우고 이를 ‘근대화’라고 불렀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역에는 1915년 ‘남대문 공립심상소학교’가 들어섰다. 한양도성이 조선·대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35> 칠패시장터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4.10 14:29:20남대문에서 서쪽으로 칠패로를 따라가다 보면 염천교사거리 한 귀퉁이에 ‘칠패(七牌)시장터’ 표석이 있다. 옹기 위에 고무신이 한 짝 올려진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조선 시대 종로·이현과 함께 한양(서울)의 3대 시장인 칠패시장이 있던 자리다. 칠패시장은 이후 남대문시장으로 발전했다. 조선 시대에 한양도성은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의 3군부가 분담해 방어했는데 그중 어영청의 일곱 번째 구역(7패)이라는 의미에서 시 -
[역사의 향기/한양도성] <34>남대문(숭례문)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6.04.03 13:52:37서울 남대문(숭례문)광장에 서면 자신이 언덕 위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북으로 서울시청, 남으로 서울역 방향 모두 내리막길이다. 한양도성 성곽은 청계천이 흐르는 서울 도심 분지를 둘러싼 능선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과거 성곽은 지금의 대한상공회의소·남대문시장 남쪽으로 지나갔다. 광복 후 서울이 성곽의 도시라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지난 2008년 이전까지 남대문은 성문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시내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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