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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표지석] <53>중추부(中樞府)터
사회 사회일반 2019.09.22 17:04:12중추부(中樞府)는 특정한 관장사항과 소임이 없던 벼슬아치를 소속시켜 우대하던 조선시대의 기관으로 터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 건너편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 바닥에 있다. 조선 초기 중추원(中樞院)이 중추부의 전신이다. 중추원은 출납(出納)과 병기(兵機)·군정(軍政) 등의 업무를 보는 기관으로 그 역할이 중요했다. 그러나 소관 업무에 비해 많은 관원이 소속돼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구설수가 많았다. 이에 세조 때 중추 -
[역사의 향기/표지석] <52>사헌부(司憲府)터
사회 사회일반 2019.09.15 17:37:29사헌부는 조선시대 왕의 언행을 바로잡고 비리 관원을 탄핵하는 관청으로 터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너편에 남아 있다. 감찰기관인 사헌부는 고려시대의 사헌대(司憲臺)가 전신으로, 어사대(御史臺)· 금오대(金吾臺)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공민왕 때 사헌부로 개칭한 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이를 계승했다. 사헌부에서는 왕과 세자의 교육을 일정 부분 담당했다. 법률과 인사와 관련해서는 의정 -
[역사의 향기/표지석] <51>군기시(軍器寺)터
사회 사회일반 2019.09.08 17:18:54군기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병기(兵器)를 비롯한 군수물자의 제조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현재 국방부 산하 방위사업청과 같은 곳이다. 군기시 터 표지석은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과 한국프레스센터 사이에 있다. 군기시의 부속 시설로는 야로소(冶爐所)와 조갑소(造甲所), 대고(臺庫), 제조고(提調庫), 장인거소(匠人居所), 화약감조청(火藥監造廳), 궁전소(弓箭所) 등이 있었다. 태종 1년인 1401년에는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이 -
[역사의 향기/표지석] <50>광화문 월대(光化門 月臺 )터
사회 사회일반 2019.09.01 17:31:16월대는 궁궐의 정전(正殿)과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를 말하는 것으로 궁중의 각종 행사와 의식이 있을 때 사용됐다. ‘월대’라는 명칭은 ‘달을 바라보는 대’라는 뜻을 지닌 월견대(月見臺)에서 유래했다. 임금과 백성의 소통 장소로 통했던 경복궁 광화문 월대는 일제강점기 시절 없어졌으며 월대 터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설치돼 있다. 육조거리를 향해 뻗은 광화문 월대는 길 -
[역사의 향기/표지석] <49>대한천일은행본점(大韓天一銀行本店)터
사회 사회일반 2019.08.25 17:17:15‘대한천일은행’은 1899년 서울에 설립된 근대적 금융기관의 민족계 은행으로 그 터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 있다. 설립 초기 대한제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했다. 국고금 대여를 비롯해 황실과 고위층 인사들이 주로 이용하면서 일반은행이 아닌 특수은행의 성격을 띠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회계법인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治簿法)을 사용했다. 하지만 설립 당시 은행의 주요 출자자였던 실업인들은 황실과 고위층에게 특혜 -
[역사의 향기/표지석] <48>용동궁(龍洞宮)터
사회 사회일반 2019.08.18 17:26:13‘용동궁’은 조선 13대 임금 명종(明宗)의 아들 순회세자(順懷世子)가 살았던 곳으로 그 터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 조계사 후문 인근에 있다. 순회세자는 명종 6년인 1551년 출생했으며 어머니는 인순왕후(仁順王后)이다. 명종 12년인 1557년 세자로 책봉된 순회세자는 참봉을 지낸 황대임(黃大任)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았다. 그러나 황대임이 지속적인 복통을 호소하며 가례(왕실 가족의 혼례)를 1년 동안 미루자 딸은 후궁으로 -
[역사의 향기/표지석] <47>장예원(掌隸院)터
사회 사회일반 2019.08.11 17:10:41장예원(掌隷院)은 조선시대에 노비문서를 관리하고 노비 관련 소송을 담당하는 관청이다. 옛터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있다.태종 1년인 1401년 ‘형조도관’(刑曹都官)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됐고 세조 12년인 1466년 ‘변정원’(辨定院)으로 개칭된 후 세조 13년인 1467년 장예원으로 바뀌었다. 장예원은 형조(지금의 법무부) 산하 기관이었으며 주요 관원으로는 정3품인 판결사(判決事) 1명, 정5품인 사의(司議 -
[역사의 향기/표지석] <46>황성신문(皇城新聞)터
사회 사회일반 2019.08.04 17:35:10황성신문은 지난 1898년 9월5일 창간됐으며 신문사 터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지하철 1호선 종각역 5번 출구 앞에 있다. 황성신문은 당시 국내외 정세를 반영해 외세 침입에 대한 항쟁의 기치와 국민의 지식을 높이자는 취지로 제작됐다.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을 비롯해 그 이후 생겨난 대부분의 신문이 한글로 제작됐던 반면 황성신문은 한자를 주로 사용해 한학 지식층이 많이 구독했다. 황성신문은 1900년대 초 일본이 한국에 -
[역사의 향기/표지석] <45>전옥서(典獄署)터
사회 사회일반 2019.07.28 17:30:38‘전옥서’는 조선 시대 사법기관인 형조(刑曹)의 부설 기관으로 죄수를 다루는 곳이었다. 오늘날의 교도소와 같은 곳이다. 전옥서터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지하철 1호선 종각역 6번 출구 앞에 있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할 때 고려의 제도를 승계하면서 전옥서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관원이나 양반 출신 범죄자는 의금부(義禁府)에서 다뤘고, 전옥서는 주로 상민 출신 범죄자를 수감했다. 조선 시대 왕실은 의금부와 전옥서의 중 -
[역사의 향기/표지석] <44>경시서(京市署)터
사회 사회일반 2019.07.21 21:22:28경시서는 고려·조선시대에 물가를 조정하고 상거래(商去來)를 감독하던 관청으로 그 터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문 인근에 있다. 고려 때 수도인 개경의 시전(市廛)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조선으로 계승됐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대부분의 법률과 제도를 고려로부터 받아들여 경시서도 함께 이어진 것이다. 조선 초기 경시서는 물가 조정과 상인들의 부당행위 감독 및 세금을 거둬들이는 업무를 주로 했다. 이후 -
[역사의 향기/표지석] <43>좌포도청(左捕盜廳)터
사회 사회일반 2019.07.14 17:13:09조선 시대 치안과 소방업무를 맡았던 관청인 포도청(捕盜廳)은 한양(서울)에 우포도청(右捕盜廳)과 좌포도청(左捕盜廳)이 있었다. 좌포도청의 터 표지석은 서울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9번 출구 인근에 있다.좌포도청은 좌청(左廳), 좌변청(左邊廳), 좌포청(左捕廳) 등으로도 불렸으며 지휘관급으로 포도대장 1명, 종6품 종사관 3명, 부장 4명, 겸록부장 32명, 무료(無料)부장 26명, 가설(加設)부장 6명 등이 있었다. 좌포도 -
[역사의 향기/표지석] <42>우포도청(右捕盜廳)터
사회 사회일반 2019.07.07 17:35:56포도청(捕盜廳)은 조선시대 치안과 소방업무를 보던 관청으로 한양(서울)에 우포도청(右捕盜廳)과 좌포도청(左捕盜廳)이 있었다. 우포도청의 터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앞에 있다. 우포도청은 우청(右廳), 우변청(右邊廳), 우포청(右捕廳) 등으로도 불렸으며 지휘관급으로 포도대장 1명, 종6품 종사관 3명, 부장(部長) 4명, 겸록부장 32명, 무료(無料)부장 26명, 가설(加設)부장 6명 등이 있었다.서울의 서북부를 관할 -
[역사의 향기/표지석] <41> 혜민서(惠民署)터
사회 사회일반 2019.06.30 17:23:15‘혜민서’는 조선 시대 일반 백성의 진료와 의약(醫藥)관리, 의녀(醫女) 교습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터 표지석은 서울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 1번 출구 인근에 있다. 고려 시대 ‘혜민국(惠民局)’을 조선이 계승해 세조 12년인 1446년에 ‘혜민서’로 개칭했다. 인조 15년인 1637년에는 궁중에 의약품을 공급하는 관청 ‘전의감(典醫監)’에 잠시 흡수되기도 했으나 곧 복구됐으며 고종 19년인 1882년에 폐지됐다. 혜민서에 -
[역사의 향기/표지석] <40>제중원(濟衆院)터
사회 사회일반 2019.06.23 17:37:52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알렌이 고종의 후원을 받아 1885년 4월 설립한 ‘제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다.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내 잔디밭에 있다. 개원 당시 병원 이름은 ‘광혜원(廣惠院)’이었으며 문을 연 지 10여일 만에 ‘대중을 구제한다’는 뜻의 ‘제중원’으로 바뀌었다. 개원 직후 서울 장안에 “서양 사람이 귀에 고무줄(청진기)을 꽂고 진찰하는데 병을 잘 고친다”는 입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
[역사의 향기/표지석] <39>지석영(池錫永) 집터
사회 사회일반 2019.06.16 17:31:33의사이자 국어학자인 지석영(池錫永)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천연두로부터 구해낸 인물이다. 그가 살던 집터는 서울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인근 교동초등학교 정문 부근에 있다. 1855년 서울 낙원동에서 태어난 지석영은 어려서부터 서양의학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영국인 에드워드 제너의 천연두 예방법인 ‘종두법(種痘法)’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1876년 지석영은 스승 박영선이 일본에 수신사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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