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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11> 삼성동토성 유적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5.29 19:21:54COEX를 지나 영동대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다소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서쪽에는 경기고등학교가 있고 동쪽에는 현대아이파크 등 아파트와 주택들이 보인다. 경기고와 이들 아파트들을 아우르는 이곳이 한성백제의 수도 한성을 방어던 '삼성동토성'자리다. 왕성인 풍납토성을 중심으로 광의의 한성은 강남구 일부와 송파구ㆍ강동구ㆍ하남시를 포괄하는 지역이었고 그 경계가 이곳이었다. 자연구릉에 성을 쌓고 아래로는 평야를, -
[역사의 향기] <10> 풍납토성 동명묘 유적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5.22 17:44:03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에는 백제가 국가 제사를 지낸 공간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유적이 있다. 백제가 건국된 첫해인 온조왕 1년(기원전 18년)에 동명왕묘(東明王廟)를 세웠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는데 바로 이 곳으로 추정된다. 그럴 경우 하늘에 제사 지낸 공간으론 서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됐다. 동명왕은 백제를 포함한 범부여계의 시조다. 즉 부여의 창업자(동명)와 고구려 창업자(주몽, 후에 동명성왕으로 추존)를 함께 -
[역사의 향기] <9> 석촌동 고분군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5.15 17:58:55서울에서 백제의 영광스러운 흔적을 찾으려면 송파구 석촌동으로 가면 된다.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도성이라면 그 남쪽에 있는 석촌동은 당시의 공동묘지 구역에 해당한다. 1916년 조사에서는 돌무덤 23기와 흙무덤 66기 등 총 89기가 존재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도시개발에 밀려 그 중 많은 수가 건물과 도로 아래로 사라지고 지금은 '석촌동 고분군'안에 겨우 8기만 남아 있다.사진 오른쪽에서 사각형 기단형식의 돌무지무 -
[역사의 향기] <8> 송파구 몽촌토성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5.08 17:40:59만주에서 내려온 온조 집단이 처음 정착한 곳은 풍납토성 지역이었다. 풍납토성을 중심으로 지금의 송파구ㆍ강동구 땅은 한 국가의 도읍이 될 만큼 넓었다. 하지만 전쟁이 빈번해지면서 평지 도성으로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었다. 후발주자인 백제는 인근 국가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다. 방어 필요성에 나온 것이 2중 도성체제다. 평시에는 풍납토성에 거주하더라도 전시에는 대피할 수 있게 '산성'을 만들었다. 지금의 올림픽공원 -
[역사의 향기] <7> 풍납토성 성벽 유적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5.01 18:34:44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을 들어서면 거대한 흙벽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바로 풍납토성 성벽의 단면이다. 한성백제 시대의 토성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풍납토성에서 직접 떼 온 것이다.밑변 길이는 43m, 높이는 11m로 왼쪽이 성 안쪽이고 오른쪽이 바깥쪽이다. '1차'가 처음 쌓은 성벽이고 '2차' '3차'가 이후 증축한 부분이다. 교란층은 성벽이 무너지면서 위에서 흘러내린 흙이 쌓인 층을 말한다. 지금은 없어져 -
[역사의 향기] <6> 송파구 풍납토성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4.24 17:52:41멸망한 국가가 모두 그렇겠지만 660년 이후 백제사는 특히 홀대 받았다. 그나마 두 번째, 세 번째 수도였던 웅진(공주)와 사비(부여)는 '흔적'이라도 보이지만 한성(서울)은 말 그대로 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성백제의 도성 위치를 두고서도 그동안 경기 하남설과 충남 천안설 등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풍납토성 내에서 청동제 초두(손잡이가 있는 세발 달린 솥) 등의 각종 유물이 쏟아지고 궁궐 유적도 발견되면서 풍납 -
[역사의 향기] <5> 송파구 한성백제 도성 유적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4.17 18:06:07서울 지역이 한 국가의 도읍으로 된 것은 백제가 처음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부여ㆍ고구려 유민인 온조 집단이 기원전 18년 지금의 송파구서 창업하고 국호를 '백제'라 했다. 이후 웅진ㆍ사비 시대와 대비해 이때를 한성백제라 부른다. 토지가 비옥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서울은 국가 수도에 적합한 땅이다. 하지만 백제가 수립된 기원 전후까지 이곳은 별로 주목 받지 못했다. 당시 한반도의 양대 세 -
[역사의 향기] <4> 고척동 청동기시대 고인돌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4.10 17:46:59한반도에는 전세계에 존재하는 고인돌의 절반가량인 4만여기가 있다. 그중 고창ㆍ화순ㆍ강화의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돼 있다. 이에 비해 서울 지역 고인돌은 규모나 숫자 면에서 미미하다. 1980년대까지 대략 40여기가 존재했다고 하는데 도시개발 과정에서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대부분 소형이라서 보통의 바위덩어리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구로구 고척동 고인돌의 경우 덮개돌 크기가 1.90×1.05×0.28m에 불과한 -
[역사의 향기] <3> 인류의 최초 발명품 '토기'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4.03 18:00:59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에 들어서면 입구에 어른 키만한 토기 모형 네 개가 서 있다. 유적 관람객들이 흘깃 쳐다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토기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물 가운데 하나다. 토기는 인류의 첫 혁신적 발명품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토기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석기 같은 돌멩이처럼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 불에 타서 단단해진 점토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점토를 용기 모 -
[역사의 향기] <2> 암사동 신석기 유적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3.27 17:56:42약 1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온난해졌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한강변에 모였는데 이는 생선뿐만 아니라 사냥거리 동물들과 식물성 식량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곡물 재배라는 생산활동도 시작됐다. 기술발전이 이뤄져 뗀석기가 간석기로 진화하고 토기도 발명됐다. 더 이상 이동할 필요 없이 한 곳에 눌러살면서 정착마을도 등장했다. 1925년 서울에 대홍수가 발생하면서 강동구 암사동에서 다량의 유물 -
[역사의 향기] <1> 면목동 구석기 유물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3.03.20 17:49:50석양이 중랑천을 붉게 물들일 무렵 아이 손을 잡거나 등짐을 짊어진 한 무리 사람들이 아차산 서쪽 기슭에 도착했다. 뒤로 바람을 막고 짐승도 잡을 수 있는 산들이, 앞으로는 강을 끼고 들판이 펼쳐져 살기에 적당했다. 그들은 여기에 거주하기로 결심했다. 수도 서울 역사의 시작이다.1967년 중랑구 면목동 면목고등학교 인근 택지개발 공사장에서 황용훈 교수 등 경희대박물관 팀에 의해 구석기시대 석기들이 발견됐다. 연대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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