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향기/표지석] <38>한성전보총국(漢城電報總局)터
사회 사회일반 2019.06.09 16:57:11우리나라 최초의 전신 도입 기관인 한성전보총국 터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다. 고종 22년인 1885년 청나라와 체결한 조청전선조약에 따라 한성전보총국이 세워졌다. 당시 전신시설은 청나라의 기기와 장비 등에 의해 가설돼 관련 기술자들도 대부분 청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최초의 전신은 서울~인천에 개통됐고 인천에는 분국이 설립됐다. 이후 평양·의주와도 전선이 연결돼 해당 지역에도 분국이 생겼고 한 -
[역사의 향기/표지석] <37>무교(武橋)터
사회 사회일반 2019.06.02 17:31:47무교(武橋)는 조선시대 한양(서울)의 정릉동천에 놓인 다리로 그 터는 서울 중구 서울시청 바로 뒤편에 있다. 조선시대에 군사무기를 포함한 군대물품을 제조·관리하던 군기시(軍器寺)라는 관청이 인근에 있어 원래 명칭은 ‘군기시교(軍器寺橋)’였다. 군기시는 지금의 서울시청 자리다. 조선시대에 군기시를 ‘무고(武庫)’라고 불러 그 앞에 놓인 다리의 이름이 ‘무교’가 됐고 ‘군기섯다리’ 또는 ‘군섯다리’ 등으로 불리 -
[역사의 향기/표지석] <36>소의문(昭義門)터
사회 사회일반 2019.05.26 17:58:29소의문은 조선 시대 사소문의 하나로 ‘서소문(西小門)’으로 불렸다. 그 터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 인근에 있다. 태조 5년인 1396년에 지어진 소의문은 강화(인천)로 향하는 관문인 동시에 광희문(光熙門)과 함께 시체를 성 밖으로 옮기는 관문의 역할을 했다. 소의문이 건립될 당시의 이름은 ‘소덕문(昭德門)’이었다. 이때 문에는 문루가 없었다. 그것은 인근의 돈의문과 숭례문이 더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을 -
[역사의 향기/표지석] <35>의영고(義盈庫)터
사회 사회일반 2019.05.19 17:05:15의영고(義盈庫)는 고려·조선시대 궁중에서 쓰는 기름·꿀·과일 등 출납을 관할하던 기관으로 그 터는 정부서울청사 뒤편에 있다. 고려 충렬왕 34년인 1308년에 설치된 의영고는 진상(進上)에 관련된 기관이어서 내자시·내섬시·사도시·사재감·사포서와 함께 공상육사(供上六司)로 불렸다. 고려시대 의영고 관원은 종5품 사(使), 종6품 부사(副使), 종7품 직장(直長), 종8품 주부(注簿) 등으로 구성됐다. 조선시대에는 호조 참 -
[역사의 향기/표지석] <34>양정의숙(養正義塾) 창학터
사회 사회일반 2019.05.12 17:08:25양정의숙(養正義塾)은 1905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사학으로 창학터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다. 엄주익이 세운 이 학교는 현재 양정고등학교와 양정중학교의 전신으로 설립 당시 법률학과와 경제학과가 있었다. 엄주익은 1904년 일본으로 건너가 근대화 문물을 견학·시찰하고 귀국한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선무가 교육의 보급이라고 생각해 양정의숙을 세웠다. 양정의숙은 일제강점기 체육부를 -
[역사의 향기/표지석] <33>유성룡 집터
사회 사회일반 2019.04.28 18:35:02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호서·호남·영남을 관장하는 삼도 도체찰사를 맡아 왜군을 막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의 집터 표지석은 서울 중구 인현동(옛이름 건천동) 서울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인근에 있다. 유성룡은 6세에 ‘대학’을 배우고 9세에 ‘논어’를 읽었으며 16세에 향시에 합격했을 정도로 매우 영특했다. 스승인 퇴계 이황은 유성룡에 대해 “이 청년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임진왜란 초기 -
[역사의 향기/표지석] <32>수진측량학교
사회 사회일반 2019.04.21 21:19:34수진측량학교(壽進測量學校)는 지난 1908년 한성(서울)에 설립돼 측량술을 가르치던 사립교육기관으로 학교터 표시석은 서울 종로구청 출입구 오른쪽 화단에 있다. 현재 종로구청이 있는 수송동의 옛 이름은 수진동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한민족 지도자들은 교육 구국운동을 전개했고 그 하나로 전국적으로 농업·공업·상업 등 실업교육을 담당하는 학교가 다수 설립됐다. 특히 공업 분야의 기술교육을 한 교육기관 중 -
[역사의 향기/표지석] <31>사포서(司圃署)
사회 사회일반 2019.04.14 17:54:22‘사포서’는 조선 시대 왕실의 채소밭과 과수원을 관리하던 관청으로 ‘사포서터’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청 인근에 있다. 조선 초 궁중과 제향에 쓸 채소를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침장고(沈藏庫)가 세조 12년인 1466년 사포서로 개칭됐다. 사포서 관원으로는 제조 1인, 사포 1인, 별제 2인, 별검 2인 등이 근무했고 숙종 30년인 1704년 직장 1인이 추가됐으며 이듬해 다시 봉사 1인을 뒀다. 경종 1년인 1712년에는 사포서에서 화 -
[역사의 향기/표지석] <30>사역원(司譯院)
사회 사회일반 2019.04.07 18:25:17사역원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외국어 통·번역을 맡아 보던 관청으로 ‘사역원터’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다. 고려 충렬왕 2년인 1276년 설립된 사역원은 조선시대로 이어졌고 한학(漢學·한어), 청학(淸學·여진어), 몽학(蒙學·몽고어), 왜학(倭學·일본어) 등 통·번역을 주로 다뤘다. 조선시대 외교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을 기본으로 중국과 일본·여진 등을 주로 상대했다. 사대교린의 업무는 예조와 승 -
[역사의 향기/표지석] <29>제용감( 濟用監)
사회 사회일반 2019.03.31 17:42:29‘제용감(濟用監)’은 조선 시대 궁중의 모시·마포 등 옷감 직조와 의복 제조 및 공급을 맡았던 관청으로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청 인근의 케이트윈타워 앞에 있다. 조선 초기까지 고려 시대 공양왕 때의 ‘제용고(濟用庫)’를 계승했지만 태종 9년인 1409년에 ‘제용감’으로 개칭했다. 세조 7년인 1461년 염색 등을 담당하는 도렴서와 합쳐졌고 고종 32년인 1905년에는 제용원(濟用院)으로 바뀌었다가 같은 해에 폐지됐다. 제용 -
[역사의 향기/표지석-조선 6조] <28>공조(工曹)
사회 사회일반 2019.03.24 17:33:00조선시대 중앙행정 기구 6조 중 하나인 ‘공조(工曹)’는 국가의 토목공사, 공예품 제작, 산림관리 등을 맡았던 곳으로 현재의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산업통상자원부 등과 같은 역할을 했다. ‘공조터’의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 인근 세종문화회관 앞에 있다. 공조는 ‘동관(冬官)’ ‘수부(水府)’ ‘예작(例作)’ ‘수례(修例)’ ‘공관(工官)’ 등의 별칭으로 불렸다. 수장은 판서(判書)로 정2품에 해당하며 현재 국토부· -
[역사의 향기/표지석-조선 6조] <27>형조(刑曹)
사회 사회일반 2019.03.17 17:56:36조선 시대 중앙행정기구인 6조의 하나인 ‘형조(刑曹)’는 사법과 범죄자의 형벌 집행 등을 맡아 보던 관청이다. 현재의 법무부다. ‘형조 터’의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의 세종문화회관 앞에 있다.형조는 ‘추관(秋官)’ ‘추조(秋曹)’ ‘이관(李官)’ ‘형관(刑官)’ ‘헌부(憲部)’ ‘법사(法司)’ 등의 별칭으로도 불렸으며 6조 가운데 서열은 다섯 번째였다. 일반 백성의 사법과 행형에 관한 일을 대부분 형조에서 -
[역사의 향기/표지석-조선 6조] <26>병조(兵曹)
사회 사회일반 2019.03.10 17:08:29조선 시대 중앙행정 기구 6조 중 하나인 ‘병조(兵曹)’는 군사와 국방에 관한 업무를 보던 곳으로 지금의 국방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병조터’의 표지석은 서울 광화문 외교부 청사 인근에 있다. 병조의 별칭은 ‘하관(夏官)’ ‘하관아문(夏官衙門)’ ‘병관(兵官)’ ‘서전(西銓)’ ‘기성(騎省)’ ‘기조(騎曹)’ ‘군부(軍部)’ ‘총부(摠部)’ 등이었다. 병조의 수장은 판서(判書)로 정2품에 해당하며 현재 국방부 장관과 -
[역사의 향기/표지석-조선 6조] <25>예조(禮曹)
사회 사회일반 2019.03.03 17:15:55조선시대 중앙행정기구 6조 중 하나인 ‘예조(禮曹)’는 지금의 외교부·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의 역할을 하던 곳으로 ‘예조터’ 표지석은 광화문이 보이는 정부서울청사 앞에 있다. 예조의 별칭은 ‘춘관(春官)’ ‘춘조(春曹)’ ‘남궁(南宮)’ ‘의조(儀曹)’ ‘예부(禮部)’ 등이었으며 이곳에서는 예악(禮樂)·제사(祭祀)·연회(宴會)·조회(朝會)·교빙(交聘)·학교(學校)·과거(科擧)의 일을 맡았다. 또 본연의 독자적 업 -
[역사의 향기/표지석] <24>삼일독립선언유적지
사회 사회일반 2019.02.24 17:05:50삼일독립선언유적지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9년 3월1일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으로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빌딩 앞에 있다. 원래 이곳은 조선의 임금 중종이 딸 순화공주를 위해 지은 순화궁 터였으나 매국노 이완용이 자신의 별장으로 꾸몄다. 1905년 일본이 을사늑약을 체결할 당시 이 조약에 찬성한 이완용·박제순·이지용·이근택·권중현 등 ‘을사오적’을 비롯해 이토 히로부미가 드나들면서
오늘의 핫토픽
이시간 주요 뉴스
영상 뉴스
서경스페셜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