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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한국인像] <44>안중근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7.02 16:48:31안중근(1879~1910)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적장을 사살했다”고 했다. 현재 대한민국 국방부는 육군본부 지휘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부른다. 그가 언급한 적장은 지난 1909년 10월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만난 이토 히로부미다. 앞서 1907년 일제의 대한제국군 강제 해산 이후 한국은 일본과 전쟁상태에 돌입했다. 대상은 일제의 군인이나 관리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42> 전봉준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6.18 16:02:37동학농민운동은 곧 전봉준(1855~1895)을 의미할 만큼 그의 역할은 핵심이다. 원래 그는 농민이자 훈장 등을 하는 고부(지금의 전북 정읍) 유지였다. 지난 1890년대 초에 동학에 들어갔고 곧 지역책임자가 된다. 그가 전 세계를 뒤흔든 이 혁명의 중심이 된 것은 전적으로 국가의 탄압 때문이었다. 고부민란이나 재봉기, 일본군과의 전투 등은 모두 민중의 뜻에 반한 왕조권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진행된 것이다. 당시에는 대부분 실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41> 명성황후 민아영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6.11 17:39:15명성황후 민아영(1851~1895년)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이다. 외세를 끌어들이고 외척정치로 조선을 망하게 했거나 또는 줄다리기 외교로 독립을 유지하고 흔들리는 국정의 중심을 잡았다. 나이 16살에 왕비가 됐지만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외척정치의 굴레에 휘말린다. 정치는 국왕(고종)보다는 국왕의 아버지(대원군)와 왕비의 대립으로 전개된다. 결국 그녀는 시해당하고 조선의 운명도 결정됐다. 민중의 깨우침과 조직적 활동만이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40> 김정호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6.04 17:02:19조선 후기 상공업의 성장은 지리 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키웠다. 김정호(1804~1866년 추정)가 제작한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의 3대 지도와 ‘여도비지’ ‘대동지지’ 등의 지리서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조선은 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년)’를 만든 지도 강국이다. 김정호는 이들을 정교화하고 특히, 대중적으로 보급했다. 지난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9> 정약용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5.28 17:45:29서울시는 ‘신(新)목민심서’를 발행하고 있다. 최근 ‘청렴’을 주제로 3편까지 나왔다.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에서 따온 이름이다. ‘목민(牧民)’은 전근대적 사고다. 목축에서 보듯 주체와 객체의 차이를 전제한다. 그의 사상이 근대적이면서도 전근대적이라는 방증이다. 기본적으로 사대부 세계관이다. 근대성은 교조주의로 흐른 조선 후기 상황에 개혁의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개혁 기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8> 정조 이산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5.21 20:36:21한국사에서 ‘대왕’으로 불리는 사람은 두 명이다. 광개토대왕(또는 광개토태왕)과 세종대왕이다. 조선 22대 국왕인 정조 이산(1752~1800)도 ‘정조대왕’으로 칭하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의 약점은 시대 상황이다. 앞선 두 명은 시대의 전성기를 의미했다. 하지만 정조의 경우 자신의 치세는 그럭저럭 잘했지만 결국 조선의 쇠퇴기로 이어졌다. 정조 이후 외척의 세도정치가 부패해지며 100년 만에 조선은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7> 박연(벨테브레이)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5.14 18:09:07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을 걷다 보면 특이하게 생긴 동상과 만날 수 있다. ‘박연(朴淵·1595~?)’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조선에 귀화한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다. 서양인으로는 최초의 귀화자로 평가된다. 1627년 일본 나가사키를 향하던 그의 배가 풍랑으로 제주도에 표착했다. 조선은 그를 훈련도감에 배치해 무기를 제조하는 일을 맡겼다. 병자호란에 참전하기도 했다. 조선 여자와 결혼하고 여생도 여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6> 임경업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5.07 18:12:39두 달 만에 패전으로 끝난 병자호란이지만 조선에 ‘영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의주 백마산성을 굳게 지킨 임경업(1594~1646)이 대표적이다. 1636년 12월 청나라 대군은 조선군이 지키고 있던 산성들을 피해 곧바로 한양으로 진격한다. 전략이 문제였던 것이다. 임경업은 이후 ‘친명배청파’로 몰리면서 안으로는 질시를, 밖으로는 의혹을 사게 된다. 명군으로 청군과의 전쟁에 동원됐지만 명나라가 망하면서 포로가 되고 국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5> 인조와 서흔남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4.23 17:43:54지난 1636년 12월9일(음력) 청나라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넜다. 병자호란이다. 청군 기마대는 얼어붙은 강들을 건너 14일에 서울에 도달했다. 인조는 혼비백산했다. 사서에는 “피난 중 청 군사가 들이닥쳐 위기에 처했을 때 마침 근처에 있던 나무꾼 서흔남이 달려와 임금을 등에 업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고 씌어 있다. 전쟁은 이듬해 1월30일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면서 끝났다. 전략적 오판에, 강경파와 온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4> 허준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4.16 17:55:23“통즉불통(通卽不痛), 불통즉통(不通卽痛).”허준(1539~1615)의 ‘동의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원래는 질병의 치료와 관련됐지만 세상만사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이치다. ‘동의보감’은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의학서로 평가된다. 책의 편찬은 임진왜란이라는 한민족 역사상 최대의 재난의 여파다. 전쟁과 기아·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허준은 의사로 할 수 있는 최대의 공헌을 했다. ‘동의보감’은 1613년 완성된다.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3> 사명대사 유정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4.09 17:29:41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일본에서 연락이 왔다. 며칠 전까지 죽자 살자 싸우던 사이인데 대화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일. 그때 나온 의견이 민간인을 보내자는 것이다. 양반관료 외에 민간인은 승려밖에 없었다. 일본인들을 압도할 학식과 덕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등장한 이유다. 1604년 바다를 건너가 일본 정부와 국교재개를 위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16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2> 권율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4.02 18:07:04준비된 자의 대기만성. 권율(1537~1599)을 말함이다. 배경은 좋았다. 영의정의 아들로 ‘금수저’다. 시작은 별로였다. 45세에 급제했으니 상당히 늦은 출발이다. 성적도 중간 정도인 병과(11~33등)였다. 의주목사였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전라도 광주목사로 부임한다. 당시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였으니 한참 밑이다. 하지만 전쟁 과정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이치·웅치 전투에서 승리해 전라도를 보위하고 3대 대첩 중 하나인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1> 곽재우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3.26 17:54:001592년 4월14일(음력)에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곧이어 22일 곽재우(1552~1617)는 경상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킨다. 곽재우는 앞서 1585년 과거에 급제했지만 내용 일부가 국왕의 뜻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무효가 됐다. 하지만 그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최초의 의병장이 된다. 의의는 두 가지. 먼저 이로써 우리 역사에서 ‘의병’은 일반명사가 됐다. 유럽이나 중국의 게릴라·민병과 구별되는 사실상 정규군 부대였다. 의병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30> 이순신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3.19 18:19:37임진왜란이 있었기에 이순신(1545~1598)이 있었고 이순신이 있었기에 왜란 이후의 조선이 있었다. 조선이 전쟁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순신의 발탁도 그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하기 1년여 전인 1591년 2월 정읍현감(종6품)이던 이순신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정3품)로 파격 승진한다. 유성룡의 적극적인 추천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 깜짝 인사에 반대했지만 다급한 임금 선조는 밀어붙인다.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했을 때 -
[역사의 향기/한국인像] <29> 이이
문화·스포츠 라이프 2017.03.12 18:06:32정도전에 이어 조선의 설계자로 나선 사람은 율곡 이이(1536~1584)다. 정도전이 고려의 적폐를 청산하고 조선을 열었다면 이이는 안정화에 몰두했다. 조선이 건국되고 200년이 지나면서 훈구파 기득권 세력에 의한 국정문란이 극에 달했다. 이이는 사상적인 면에서 성리학을 철저히 적용한다. 이론 면에서 이황과의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대동법·10만양병설 등 사회개혁에도 집중했다. 훈구파가 축출되고 신진 사림이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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