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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우리 춤춰요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6.02 06:00:00이순화 쓸쓸하다는 말 대신에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우리 춤춰요 그대를 멀리 두고 나는 여기서 스치는 바람과 춤춰요 떠도는 공기와 춤춰요 두 팔과 두 다리와 쓸쓸한 저녁과 춤춰요 찻잔과 연필과 식탁 위 시든 꽃잎과 나는 벌써 이렇게 취해 있는 걸요 어둠이 발등을 두 무릎을 적시기 전에 또 하루가 저물어 서쪽 별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기 전에 모든 추락하는 것에 손을 얹어 춤춰요 그대를 멀리 두고 나는 여기서 내 긴 머 -
[시로 여는 수요일] 모란의 연(緣)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5.26 06:00:00류시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몇 번이나 당신 집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선 것을 이 모란이 안다 겹겹의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당신은 본 적 없겠지만 가끔 내 심장은 바닥에 떨어진 모란의 붉은 잎이다 돌 위에 흩어져서도 사흘은 더 눈이 아픈 우리 둘만이 아는 봄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란으로부터 멀리 있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당신으로 인해 스무 날 하고도 몇 날 불탄 적이 있다는 것을 불 -
[시로 여는 수요일] 맨발로 걸어보면 알 수 있는 것들 2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5.12 06:00:00최 영 맨발로 걸어보면 알 수 있다 나무들이 신발을 신지 않고 땅 속을 천천히 걷고 있다는 것을 맨발로 걸어보면 알 수 있다 꽃, 나비, 새, 바람, 하늘도 맨발이라는 것을 맨발로 걸어보면 알 수 있다 인간들만 신발을 신었다는 것을 꽃집에 가보면 알 수 있다. 꽃과 나무들이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을. 값싼 플라스틱 신발부터 고급 세라믹 신발을 신은 식물들이 화사한 여행을 꿈꾸고 있다. 아직 걸음이 서툴러 외발로 서 있지 -
[시로 여는 수요일] 우리나라 어머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5.05 06:00:00김준태 우리나라 어머니는 당신 입맛 따로 없네! 시고, 짜고, 맵고, 달고, 쓴맛 가리지 않으시네 자식새끼 키우다 보면 신 것 좋아한 놈이 있고 짠 것 좋아한 놈이 있어 매운 것 좋아한 놈 있어 단 것 좋아한 놈이 있고 쓴 것 좋아한 놈이 있어 우리나라 어머니는 당신 입맛 따로 없네! 진 밥 무른 밥도 자식들 입맛에 맞추네 자식새끼 다섯이면 다섯 입맛 맞춰 주고 자식새끼 열 놈이면 열 놈 입맛 맞춰 사시네.다른 나라 어머니 -
[시로 여는 수요일] 들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4.28 06:10:00김혜수 꽃구경 나온 아낙이 무덤자락에 다급한 들똥을 눈다 뒤를 온통 들킨 들킨 줄도 모르는 이승이 저승을 향해 허연 볼기짝 치켜들고 끙끙댄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 끝에 찍힌 물음표를 닮은 황금색 들똥 갓 지은 밥처럼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며 무덤 한쪽을 뜨듯하게 데운다 간만에 친목회 대절버스 타고 꽃구경 나와 들똥을 누는 저 아낙도 누군가 내지른 물음표다 질문에 화답하듯 숲이 내지른 철쭉이며 산벚꽃이며 산수유 -
[시로 여는 수요일] 사월 비빔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4.20 11:16:57박남수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햇살이야 얼마든지 목련잎으로 한 스푼 넣으렴. 새순이야 얼마든지 다래순, 찔레순 연두 연두하게 넣으렴. 나른한 오후엔 춤추는 수양버들 가지도 잠잠하게 해줄 -
[시로 여는 수요일] 니나노 난실로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4.14 05:40:00송진권 아니요 조금만 더 울고 갈게요 당신 먼저 가요 지금 나는 그때 내가 아니고 내 노래도 그때 부르던 노래가 아니죠 나를 살지 못해 나는 내가 아니었어요 당신도 그리웠던 당신이 아니었어요 신발 벗어 물에 띄우고 그림자 벗어 꽃 핀 나무에 걸어두고 꽃 꺾어 채에 달고 북 치며 가요 니나노 난실로 내가 돌아가요 명사십리 해당화는 벌써 다 졌어요 마량리 동백꽃도 다 떨어지구요 이 몸을 해가지고 내가 가요 니나노 난실 -
[시로 여는 수요일] 흰 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4.07 05:30:00공광규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이팝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또 다 못 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 앉고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아까시나무 가지에 앉다가 그래도 남은 눈은 찔레나무 가지에 앉는다.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만 알고 성긴 -
[시로 여는 수요일] 늦은 후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3.31 05:50:00박현 문어는 닮아감이 두렵지 않아 옆에 선 이 생명의 은인 삼는다 검어졌다 희어졌다 빛이 바래도 제 본성 잃지 않고 의연히 산다 산사 가는 길가의 크고 작은 돌 나무를 건너뛰는 다람쥐 놈도 제 몫을 감당하고 당당히 산다 도무지 나란 인사 저만 못하여 나는 나일 뿐임을 자꾸 잊는다 내가 걸은 걸음 끝 남은 흔적이 얼마나 빛나는지 알려 않은 채 키 크고 번질번질한 사람 꼭 짚어 남의 빈주먹 크다고 부러워 운다 나는 나일 -
[시로 여는 수요일] 소의 입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3.24 05:40:00허영자 아픔을 머금은 내 흰 피는 모두 어디로 흘러갔나? 우유라는 이름으로 불고기 육회 산적 너비아니 육포 장조림 떡갈비… 갈비탕 설렁탕 곰탕 내장탕 족탕 꼬리탕 사골탕… 스테이크 스튜 로스트 커틀릿 햄버그… 목심 등심 안심 채끝 우둔살 설도 사태 갈비 양지머리 앞다릿살 안창살 부챗살 살치살 업진살 토시살 치마살 제비추리 모두 인간들이 내 살과 뼈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고 입맛대로 조각조각 내 몸에 붙여준 이름 -
[시로 여는 수요일] 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3.17 05:50:00이관묵 너는 땅바닥이니라 엎드려 읽어야 할 삶이니라 일어나거라 네 힘으로 걸어가라 네 자신에게 넘어지고 네 자신에게서 일어서라 스스로에게 부축 받고 스스로에게 일어서라 스스로에게 당당히 맞서라 언제나 상대는 너 자신, 너는 네 자신이 동지인 동시에 적! 걸어라 너의 언어에게 다가가 구원 받아라 너의 언어로 쓰러지고 너의 언어로 태어나라 들어가 기도하라 너 자신에게 발생하고 너 자신을 발간하라 너에게서 깨어나 -
[시로 여는 수요일] 봄 처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3.10 00:05:30- 고진하 미수가 다 된 어머니가 오늘은 봄 처녀가 되셨다 뒷짐 지고 개울가로 산보 나가셨다가 서너 줌 뜯어온 초록빛 돌나물이 까만 비닐봉지 속에서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쇠귀에 경 읽기란 말은 가는귀먹은 어머니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눈까지 침침하다 하시면서 못 보고 못 듣는 게 없으시다 돌나물 뜯다가 마른 풀섶에 놓인 종달새 알 몇 개를 보고 행여 누가 슬쩍 해갈까 봐 마른 풀로 꼭꼭 숨겨주고 오셨단다 잘하셨다고 -
[시로 여는 수요일] 프르제발스키를 복제한 이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3.03 05:40:00이경 그들은 벌써 몇백 년 전에 멸종되었다 야생의 말 몽골초원 후스타이 국립공원에서 얼핏 뒷모습을 들킨 프르제발스키는 달아난 말의 후손 순혈의 계보는 멸종 위기를 자초한다 더럽혀야 할 때 더럽히지 못하는 순수는 위험하다 강하고 지혜로운 자 멸종하는 생물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자유롭고 우아한 털 빛깔과 낙천적 기질을 가졌으며 두려움이나 질투심이나 공격성이 없다는 점이다 굴종하거나 군림하지 않으며 싸움을 싫어 -
[시로 여는 수요일] 당신이라는 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2.24 05:40:00나호열 양산 천성산 노천암 능인 스님은 개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다 스무 첩 밥상을 아낌없이 산객에게 내놓듯이 잡수세요 개에게 공손히 말씀하신다 선방에 앉아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싸우든 말든 쌍욕 앞에 들어붙은 개에게 어서 잡수세요 강진 주작산 마루턱 칠십 톤이 넘는 흔들바위는 눈곱만한 받침돌 하나 때문에 흔들릴지언정 구르지 않는다 개에게 공손히 공양을 바치는 마음과 무거운 업보를 홀로 견디고 있는 작은 -
[시로 여는 수요일] 옆걸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02.17 05:17:00이정록 전깃줄에 새 두 마리 한 마리가 다가가면 다른 한 마리 옆걸음으로 물러 선다 서로 밀고 당긴다 먼 산 바라보며 깃이나 추스르는 척 땅바닥 굽어보며 부리나 다듬는 척 삐친 게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거다 작은 눈망울에 앞산 나무 이파리 가득하고 새털구름 한 올 한 올 하늘 너머 눈 시려도 작은 몸 가득 콩당콩당 제 짝 생각뿐이다 사랑은 옆걸음으로 다가서는 것, 측근이라는 말이 집적집적 치근거리는 몸짓이 이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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