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로 여는 수요일]자화상 그리기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6.29 07:00:00- 김명옥 끙끙 앓는 날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는 저 여자 죽을 만큼 아파보면 삶이 가벼워지기도 한다는 저 여자 마음 아픈 날에는 시집을 덮고 돌아눕는 저 여자 눈물 나는 날은 가까이 보이기도 하는 저 여자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해서 저 여자 허공에 갇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저 여자 겹겹이 쌓인 시간의 껍질을 벗겨 여자를 발굴하는 작업 아직, 무엇이 더 남았냐고 내게 묻는 저 여자 어디로 달려 나가려는 것일까 아니면 -
[시로 여는 수요일] 손 씻는 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6.22 07:00:00- 류근왼손은 오른손을 씻고 오른손은 왼손을 씻는 법이다 손바닥은 손등을 씻고 손등은 손바닥이 데려가 입힌 때를 다른 편 손바닥에 기꺼이 맡기는 법이다 손에서 손까지의 거리 손바닥에서 손등까지의 거리 서로 마주치지 않으면 죽어도 씻을 수 없는 거리가 가슴 아래 같은 체온에 매달려 있다손바닥은 세상의 보물을 다 쓸어볼 수 있지만 제 손등만은 어루만질 수 없다. 서로 없으면 안 되지만 평생 다른 곳을 보아야 한다. -
[시로 여는 수요일]정지의 힘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6.15 07:00:00- 백무산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한 동안 멈추어 서서 뒤를 돌 -
[시로 여는 수요일]오늘 내게 제일 힘든 일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6.08 07:00:00- 손진은 늦점심을 먹으러 마주 보는 두 집 가운데 왼편 충효소머리국밥집으로 들어가는 일, 길가 의자에 앉아 빠안히 날 쳐다보는 황남순두부집 아주머니 눈길 넘어가는 일, 몇 해 전 남편 뇌졸중으로 보내고도 어쩔 수 없이 이십수 년째 장살 이어 가고 있는 희끗한 아주머니, 내 살갗에 옷자락에 달라붙는 아린 눈길 애써 떼어 내는 일, 지뢰를 밟은 걸 알아차린 병사가 그 발 떼어 놓지 못해 그곳의 공기 마구 구기듯, 가물거 -
[시로 여는 수요일]살구나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5.25 07:00:00쏙쏙 뼈가 쑤신다는 기별을 받고 고향에 갔다 검버섯 덕지덕지 핀 스레트 낡은 집이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아끼던 옷 주섬주섬 걸치고 병원 가면서도 에미 잘 있고 선이와 철이도 잘 있냐며 어머닌 가족이란 끈을 놓지 않는다 골밀도 검사를 위해 분홍 가운으로 갈아입은 어머니 “빛깔이 참 곱다 이게 공단이냐 다우다냐” 시집 갈 색시처럼 만져보고 비벼본다 그때 젊은 날의 푸른 물살이 주름 속으로 잠깐 흘렀을까 한때 -
[시로 여는 수요일]목욕탕에서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5.18 07:00:00- 남호섭 이주 노동자 세 사람 팬티 입은 채 목욕탕에 들어왔다 수영장에 온 사람들마냥 자기들끼리는 싱글벙글 냉탕 온탕 들락날락하는데 아무 말 못 하고 째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슈퍼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다 보여 주는 건 우리 손해고 다 못 씻는 건 지놈들 손해지 설날 앞둔 일요일 아침 뜨거운 김 피어오르는 목욕탕에서 한데 어울려 목욕을 한다 냉탕, 온탕이 깔깔 껄껄 웃는다. 바둑무늬 타일이 군데군데 이 빠진 -
[시로 여는 수요일]아픔과 깨달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5.11 07:00:00차창룡 오십견을 앓고 나서야 오십견의 아픔을 알았네 아파보지 않은 이가 남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았네 사람들은 남들의 고난을 보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내가 오십이 되어 오십견을 앓았듯이 불행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달라, 애써 부인하면서 가끔은 시궁창에서 피어난 개나리처럼 활짝 웃는 날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인생 뭐 별거 있어 오십견은 시간이 가면 낫 -
[시로 여는 수요일]낮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5.04 00:00:00- 신미나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훔치다 쌀벌레 같은 것이 만져졌다 검지로 찍어보니 엄마였다 나는 엄마를 잃어버릴까봐 골무 속에 넣었다 엄마는 자꾸만 밖으로 기어나왔다 엄마, 왜 이렇게 작아진 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 다음 생에서는 엄마로 태어나지 말아요 손가락으로 엄마를 찍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잠에서 깨어나 눈가를 문질렀다엄마의 치마폭이 성채였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외풍과 -
[시로 여는 수요일]등 푸른 생선이 등이 푸른 이유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4.27 07:00:00- 박순원 나는 ‘등 푸른 생선’이라는 말이 좋다 ‘등이 시퍼런’보다 푸른이 주는 안전한 느낌 약간 부드러우면서 밝고 건강한 느낌 고등어 꽁치 삼치 참치 방어 정어리 멸치 청어 연어 장어 전갱이 모두들 정겹다 특히 고등어 꽁치 멸치는 매일 만나는 오래된 친구들 같다 필수지방산 오메가-3 중 DHA와 EPA라는 성분을 알고부터 내가 잘 알고 지내던 친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것 같아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DHA와 EPA를 알 -
[시로 여는 수요일]꽃도둑의 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4.19 17:46:02- 김해자 자고 나면 갓 핀 꽃송이가 감쪽같이 없어지더니 밤새 금잔화 꽃숭어리만 뚝 따 먹고 가더니 좀 모자란 눔인가, 시 쓰는 눔 혹시 아닐랑가 서리태 콩잎보다 꽃을 좋아하다니 이눔 낯짝 좀 보자 해도 발자국만 남기더니 며칠 집 비운 새 앞집 어르신이 덫 놓고 널빤지에 친절하게도 써놓은 ‘고랭이 조심’에도 아랑곳없이 밤마다 코밑까지 다녀가더니 주야 맞교대 서로 얼굴 볼 일 없더니 어느 아침 꽃 우북한 데서 눈이 -
[시로 여는 수요일]봄날은 간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4.13 07:00:00- 구양숙 이렇듯 흐린 날엔 누가 문 앞에 와서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 보고 싶다고 꽃나무 아래라고 술 마시다가 목소리 보내오면 좋겠다 난리 난 듯 온 천지가 꽃이라도 아직은 니가 더 이쁘다고 거짓말도 해주면 좋겠다유독, 봄날은 간다. 가는 봄이 아쉬워 술을 싣고 전별 가던 옛사람들이 있었다. 지는 꽃마다 봄이 어디로 갔느냐고 묻다가, 뻐꾸기 우는 여름 숲으로 돌아오던 사람들이 있었다. 떨어진 꽃잎을 비단주머니 -
[시로 여는 수요일] 꽃장수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4.06 07:00:00- 곽재구 젊은 여자 약사가 할머니의 구부러진 등에 파스를 붙이는 모습을 낡은 손수레가 바라보고 있다 오매 시원허요 복 받으시오 손수레 위 서향 두 그루 라일락 세 그루 할머니가 손수레 끌고 오르막 동네 오르는 동안 햇살이 낡은 지붕들 위에 파스 한 장씩 붙여준다 가난한 집들의 뜰에서 할머니 등의 파스 냄새가 난다 낡은 손수레도 안심이 될 것이다. 구부러진 허리에 매달려 가는 마음 편치 않았을 것이다. 안간힘을 쓰 -
[시로 여는 수요일] 입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3.30 07:00:00- 이화은많이 아프신 듯 몸이 불편한 할머니 손을 할아버지가 꼭 잡고 걸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아껴가며 꼭 잡았다는 말을꼭 잠궜다로 고쳐 말한다 저 견고한 자물통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은행나무가 면사포 같은 결 고운 단풍잎을 골라 할머니 머리 위에 소복이 얹어 준다단발머리 나풀거리며 깡충깡충 뛰던 시절 있었을 것이다. 또각또각 구둣발소리 내며 도도하게 걷던 시절 있었으리라. 어느 눈부 -
[시로 여는 수요일] 도다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3.23 07:00:00쑥 향기를 제일 먼저 알아채는 건 늘 저승 문턱에 앉았다고 말하는 가사리 김 영감의 입맛 밭 가장자리 쑥 무리가 봄이요, 봄, 하며 목소리 높이자 화들짝 고개 드는 오랑캐꽃까지 봄소식 분분한데 지난봄 도다리쑥국의 달달함이 입속에 아른거린다 너무 오래 살았다고 그렁그렁 게거품 입가에 내뱉더니 닫은 입 열어 주는가 김 영감 낚싯대가 은근슬쩍 살맛을 낚아 올린다 도다리여저승 문턱에 앉은 김 영감이 쑥 향기를 먼저 맡 -
[시로 여는 수요일] 이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2.03.16 07:00:00- 이정록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으니 두부장수는 종을 흔들지 마시고 행상 트럭은 앰프를 꺼주시기 바랍니다 크게 써서 학교 담장에 붙이는 소사 아저씨 뒤통수에다가 담장 옆에 사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마디씩 날린다 공일날 운동장 한번 빌려준 적 있어 삼백육십오일 스물네 시간 울어대는 학교 종 한번 꺼달란 적 있어 학교 옆에 사는 사람은 두부도 먹지 말란 거여 꽁치며 갈치며 비린 것 한번 맛볼라치면 버스 타고 장터까지
오늘의 핫토픽
이시간 주요 뉴스
영상 뉴스
서경스페셜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