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개원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177석을 앞세운 더불어민주당이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등의 도입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할 채비를 갖추며 반기업 법안 제출을 예고했다.
재계에서는 정치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영위기 극복에 전력을 다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기는커녕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를 늘리는 일에만 몰두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토론회’를 열고 상법 개정안 발의를 위한 의견 수렴에 돌입했다. 박 의원은 상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한 가운데 토론회 의견 수렴을 거쳐 이달 초에 상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박 의원은 “사외이사가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출돼 사실상 이사회 제도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는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현행 제도는 부적격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제재하거나 해임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모자회사 관계에서 자회사 이사의 위법행위로 모회사가 손해를 입는 상황 △대표소송제가 활발하게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 △회사 정관으로 집중투표제 실시 배제 문제 △전자투표제의 기업 선택 사항 등의 문제도 거론했다.
결국 177석의 의석수를 앞세워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의 내용을 상법 개정안에 담아 법제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남국 변호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는 다중대표소송제와 다중장부열람권 도입, 대표소송제 개선, 집중투표제 의무화, 전자투표제 및 서면투표제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면서 “법무부가 다중대표소송제와 다중장부열람권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만들기로 했지만 아직 국회에 법무부안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서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에 대해 30%로 확대하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상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변호사는 “제도의 실효성과 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 피출자회사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정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고 제안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예상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서면축사를 통해 “기업지배구조의 질적 개선과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상법 개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를 공격했던 것처럼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현행 기업 지배구조 관련 제도는 선진국 수준이거나 그 이상인 상태”라며 “해외에서도 입법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제도를 섣불리 도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집중투표제의 경우 투기자본 등 특정 세력이 지지하는 이사 선임을 용이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로 선임된 이사가 회사 전체가 아닌 자신을 선임해준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엇이 현대차 지분을 취득한 뒤 가장 먼저 요구한 게 집중투표제 도입이었다. 과거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던 미국과 일본은 경영권 분쟁에 대한 우려로 집중투표제를 기업 자율로 바꿨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독립적인 경영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 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이 모회사 지분을 취득해 자회사 경영 개입의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독일·프랑스·영국 등 대다수 국가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부적격 이사를 주주가 해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재계의 우려가 크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주주가 이사를 해임할 수 있다면 기업에도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헤지펀드들이 이사 해임 건의를 통해 전략적으로 기업 경영권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이 실제로 시행될 경우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이 훼손되고 해외 투기자본에 악용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 하기 힘든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용·이재용·변수연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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