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 밖에 나오지 않네요. 뭐랄까, 잠시 천상계에서 반가사유상 두 분을 뵙고 온 듯한 기분이에요.” (관람객 김민정·36세)
국립중앙박물관이 대표 소장품인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함께 선보이는 전용 전시실 ‘사유의 방’을 지난 12일 공개한 후, 14일 오전 11시 현재 1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개관 당일인 12일은 평일이었음에도 2,826명이 상설전시관을 방문했고, 토요일이던 13일 관람객은 7,066명으로 집계됐다. ‘사유의 방’이 자리잡은 상설전시관 2층은 과거 기증전시관이 위치했던 다소 한적한 곳이었지만 단숨에 ‘박물관 핫플’로 등극했다. 439㎡ 공간에 국보 반가사유상 단 두 점 뿐인데도 관객들이 몰입하는 데는 향, 빛, 공간의 ‘비밀’이 숨어있다.
향기는 기억을 자극하고 분위기를 조성한다. 상설전시관 2층에 도착해 ‘사유의 방’으로 향하노라면 반가사유상을 보기도 전에 차(茶)나 계피향 같은 냄새를 먼저 느끼게 된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향은 더 가까워진다. 이번 전시와 공간기획을 맡은 신소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반가사유상과 전시실 전체를 감싼 적벽(赤壁)은 흙에 숯·옻·향·계피·편백·삼베를 섞은 적토로 제작한 친환경 벽이며, 알듯 모를듯한 은은한 향기의 근원이다”고 말했다. 시골집의 토담에서 느끼는 향수와 온기, 오래된 사찰의 경건한 위엄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반가사유상을 만나는 과정은 관람이기보다는 하나의 ‘여정’이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 적힌 입구로 들어서면 터널처럼 어두운 복도가 펼쳐진다. 왼쪽 벽에서 프랑스인 미디어아티스트 장줄리앙 푸스의 작품이 펼쳐진다. 자연의 순환과정을 느리게 펼쳐 보이는 흑백 영상이다. 작품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만나는 반가사유상이 유난히 빛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는 조도가 낮아 훨씬 어둡지만, 복도를 통과하며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까닭에 상대적으로 안쪽이 더 밝게 보이는 것. 박물관과 협업해 전시실을 새롭게 꾸민 건축가 최욱 원오원아키텍스 대표의 구상이 반영됐다.
‘사유의 방’에 들어가면 두 반가사유상이 모두 ‘나’를 바라본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도 눈빛이 관람객을 향하는 것과 유사한 체험이다. ‘모나리자’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윤곽선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스푸마토 기법을 썼지만, 박물관은 전시기법과 조명으로 이 같은 효과를 이뤄냈다. 반가사유상 둘이 똑같이 정면을 향하는 게 아니라, 6세기 후반 백제 불상으로 추정되는 왼쪽 반가사유상이 입구 쪽으로 좀 더 돌아 앉았고 7세기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오른쪽 반가사유상은 정면을 향하게 배치됐다. 관람객을 중심으로 1,400여년 전의 두 반가사유상이 삼각구도를 만들었고, 이는 관람 내내 이어진다.
경사진 바닥, 기울어진 천장도 반가사유상의 숭고미를 극대화 한 장치다. 최욱 건축가와 협업한 박물관 소속의 이현숙 디자이너는 “바닥의 경사로와 천장의 기울기로 만들어지는 소실점에 반가사유상을 놓아 집중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면서 “천장에는 2만여 개의 봉을 달아 천상에 촛불을 밝힌 듯한 느낌을 주었다”고 밝혔다. 천장이 기울어 있기에 바닥면은 1도 경사의 얕은 오르막이지만 마치 4~5도 가량 기울어진 착시를 일으킨다. 여기다 양쪽 벽도 기울어져 있어 원근법이 사라진 ‘비현실적인 공간’이 조성된다.
신 학예사는 “요즘 ‘불멍’ ‘물멍’ 등 자신의 경험을 중시하는 최근의 사회적 트렌드를 ‘사유’와 접목했다”면서 “멈춤과 움직임의 찰나에서 번민과 수행의 교차를 보여주는 반가사유상을 통해 ‘사유’란 나를 내려놓는 것인지 나의 삶을 생각하는 것인지를 살피다 보면 반가사유상과 같은 공감의 ‘미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반가사유상이 함께 전시된 것은 지금까지 단 3회에 불과했으나 앞으로는 항상 이 곳에서 같이 만날 수 있다. 무료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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