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목전에 두고도 공공기관 임원에 여권 출신 인사가 내려앉는 낙하산 인사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권 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기관장보다는 억대 연봉과 임기를 보장받으면서도 견제받지 않은 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감사 자리를 꿰차는 경우가 늘고 있다. 취임 초 “공기업의 낙하산 보은 인사는 없도록 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공기업 방만 경영을 감시해야 할 감사에 전문성 없는 정치권 인사들을 내리꽂는 관행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남동발전은 지난달 25일 명희진 전 경남도청 정무특보를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명 신임 감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8·9대 경남 도의원을 지낸 뒤 김경수 경남지사 시절 3년간 정무특보로 일한 여권 인사다. 앞선 김봉철 전 감사도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 이들로 이뤄진 조직인 플랫폼경남 대표 출신이었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은 지난달 6·7대 구리시의원과 시의회 의장 출신의 신동화 전 의원을 비상임감사로 임명했다. 신 감사 역시 민주당 경기도당 지역위원회 사무국장과 윤호중 의원 정책보좌관을 지낸 여권 인사다. 지난 1월에는 기상청 산하 차세대수치예보모델 개발사업단 감사실장(상임감사)에 김부겸 국무총리와 2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진수 전 보좌관이 임명됐다. 이 전 보좌관은 제정구·최원식 의원 보좌관을 거쳐 김 총리가 의원과 행정안전부 장관이던 시절 보좌관으로 함께 일해 왔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청와대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다 올 1월 퇴직한 민주당 당직자 출신 A 씨와 대통령 비서실 출신의 별정직 고위공무원 B 씨는 각각 인천공항시설관리와 가스안전공사의 상임감사로 취업이 허용돼 조만간 임명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주요 공공기관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감사 자리를 꿰차고 있다. 올 1월 재선임된 남영주 가스공사 감사는 참여정부 민정비서관과 민주당 선대위를 거쳤고 황찬익 지역난방공사 감사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불교특보단 출신 인사로 연이은 연임을 통해 3년 넘게 재직하고 있다. 이 밖에 김경수 석탄공사 감사와 최영호 한국전력 감사, 정성학 한전KDN 감사, 정경수 한전원자력연료 감사는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고 손성학 남부발전 감사는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다.
공공기관의 상임감사는 기관장을 견제하고 임직원의 부정부패 감시와 회계 업무를 감독하는 조직 내 ‘2인자’다. 막중한 역할만큼 억대 연봉과 차량·비서 등 각종 혜택이 제공된다. 공공기관 상임감사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억 6301만 원. 기관장과 달리 외부에 크게 노출될 일도 없고 실제 업무 강도는 그리 세지 않아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꽃 보직’으로 통한다. 정권의 보은 인사 차원에서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인사들이 공공기관 감사 자리를 꿰차다 보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처럼 내부 통제 기능을 잃어버린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국회와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지난해부터 공공기관 감사 자격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행령에 ‘시민단체 또는 정당에서 1년 이상 감사·수사·법무, 예산·회계, 조사·기획·평가 등의 업무를 담당했을 것’이라는 일종의 예외 규정을 추가했다.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 투하를 막겠다면서도 실상은 시민단체나 정당 출신 인사가 공공기관 감사로 갈 수 있는 길을 보장해 준 셈이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감사는 무엇보다 전문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자리인 만큼 내외부 전문가를 적극 등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감사는 규정과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고 따지는 자리인데도 오히려 감사를 받으면 문제가 불거질 만한 인물이 감사로 가는 ‘미스매칭’이 반복되고 있다”며 “감사원이나 내부 감사실장 출신, 회계 전문가 등에게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현재 시행령의 자격 요건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아울러 현행 공기업 임원추천위원회의 복수 후보 추천 방식을 단수 추천으로 바꿔 낙하산 인사가 끼어들 여지를 차단하고 정부는 반려 권한만 갖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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