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3일 ‘ KTOP 30 지수’ 가 첫선을 보였다. KTOP 30 지수는 국내 경제와 증시를 대표하는 30개 초우량주로 구성된 한국판 다우지수다. 코스피 200 지수가 너무 많은 종목으로 구성돼 한국의 경제 성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가 개발에 착수, 8개월 만에 시장에 등장하게 됐다.
KTOP 30 지수에 가장 화려하게 입성한 종목은 단연 아모레퍼시픽이었다. 그러나 KTOP 30 지수 종목 구성 논의가 한창이던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모레퍼시픽은 논외의 대상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화장품 업계 대표 기업인 만큼 당연히 포함돼야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지만, ‘50만 원을 초과하는 고가주는 제외한다’는 종목 구성 대원칙에 위배돼 배제된 상태였다. KTOP 30 지수는 개인투자자들이 참고해 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50만 원 이하 종목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3월 3일, 아모레퍼시픽이 5,000원이었던 주식 액면가를 10분의 1인 500원으로 분할하기로 공시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액면 분할된 아모레퍼시픽 주식은 5월 8일 재상장하면서 7월 13일 출범한 KTOP 30 지수에도 편입될 수 있었다. 액면가가 10분의 1로 낮아지면서 주가도 10분의 1로 떨어져 주가가 50만 원을 하회했기 때문이었다.
액면분할 절차 바로 직전일이었던 4월 21일 388만 4,000원이었던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5월 8일 38만 8,500원으로 재상장됐다. 아모레퍼시픽 우선주와 아모레G(아모레퍼시픽그룹의 지주회사) 일반주, 아모레G 우선주 역시 5,000원이었던 액면가가 500원으로 액면분할 되면서 주가가 10분의 1가격으로 내려왔다.
◆ 황제주의 액면분할 배경
아모레퍼시픽이 밝힌 주식 액면분할의 배경은 ‘ 유통 주식수를 늘려 유동성을 키우고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액면분할 이전의 아모레퍼시픽은 유동성 주식이 300만 주 정도에 불과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액면분할 공시 전인 올해 1월과 2월 아모레퍼시픽의 일 평균 거래량은 1만 2,000주에서 1만 5,000주 사이로 총 상장주식 584만 주의 0.2%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유동성 주식 수도 적은 데다 1주 가격이 300만 원에 육박하는 초고가이다보니 거래가 위축돼 생긴 현상이었다.
시장에선 한국거래소를 앞세운 정부의 외압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정부는 최근 초고가 우량주들의 액면분할을 유도하고 있다. 액면분할로 이들 주식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배당 확대 정책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의 수익을 늘려주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재정 지출 없이도 경기 부양 효과를 일부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정부 정책과 궤를 같이해 한국거래소는 지난 1월 20일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해 삼성전자, 롯데제과, 남양유업, LG생활건강 등 고가 우량주 기업 담당자들을 불러 액면분할을 권고한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권고 43일만에 액면분할을 결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그동안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액면분할에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아모레퍼시픽이 직접 ‘액면분할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확인하기도 했고요. 이런 내용을 종합해 생각해보면 아모레퍼시픽이 올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건 좀 자연스럽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외압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박 의견도 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아모레퍼시픽은 당시 언급된 다른 기업들(삼성전자, 롯데제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부 입김이 덜 타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액면분할 결정에 외압이 크게 작용했다면 다른 기업들도 반응이 있었겠죠. 다른 기업들이 무덤덤한 상황에서 아모레퍼시픽만 액면분할을 했던 것인데, 이를 보면 외압의 영향력이 컸다는 주장은 과도한 해석인 것 같습니다. 주가가 300만 원대까지 치솟자 자연스럽게 내린 결정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같니다.”
◆ 유동성 크게 확대…주가는 롤러코스터
액면분할 이후 아모레퍼시픽 주식의 유동성은 크게 늘었다. 지난해 1만 6,000주 수준이었던 일 평균 거래량이 액면분할 이후에는 35만 주(5월부터 7월 현재까지 평균)로 크게 뛰었다. 10분의 1 액면분할을 고려하면 거래량이 약 2배 정도 늘어난 셈이다. 일 평균 거래대금 역시 지난해 293억 원에서 액면분할 이후 1,400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일 평균 거래량과 일 평균 거래대금의 상승 배수 차이는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지속 상승해 나타난 현상이다.
아모레퍼시픽 주식의 유동성이 커진 건 개인투자자들의 거래가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 주식의 투자자별 거래 비중은 외국인이 53.8%로 제일 높았고, 기관이 27.3%로 그 뒤를 이었다. 개인투자자 비중은 18.3%에 불과했다. 하지만 액면분할을 계기로 상황이 역전됐다. 개인투자자 비중은 50%대까지 치솟은 반면, 외국인과 기관 비중은 각각 20%대 초반으로 낮아졌다.
유동성은 크게 늘었지만, 주가는 메르스 영향과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우려 탓에 롤러코스터를 탔다. 5월 8일 38만 8,500원으로 재상장된 아모레퍼시픽주식은 며칠간 2~3%대 가격 등락을 거듭하다가 5월 18일 하루에만 10.51% 급등하며 43만 6,500원 종가를 기록했다. 액면분할 전으로 환산하면 400만 원 고지에 다시 오른셈이었다.
하지만 다음날인 19일부터 메르스 영향으로 인한 중국인 관광객 수 감소 우려가 커지면서 아모레퍼시픽의 주가는 5월 말까지 하락세를 이어갔다. 중국인 관광객 수 감소로 아모레퍼시픽의 실적이 악영향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우리나라 화장품은 ‘한국 방문 필수 쇼핑 아이템’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여서 중국인 관광객 수 감소는 우리나라 화장품 기업 주가에 악재로 작용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건 6월 중순 메르스 우려가 잦아들면서부터였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그동안의 하락분을 빠르게 만회하며 7월 2일에는 역사적 최고점인 45만 5,50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붉어진 그렉시트 우려에 다시 36만 6,000원까지 주저앉기도 했지만, 7월 14일 다시 40만 원을 회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서경배 회장, 국내 주식 부호 정점을 찍다
아모레퍼시픽의 주식 액면분할은 국내 주식 부호 순위(국내 상장 주식 기준)도 바꿔 놓았다. 꾸준히 우상향하는 실적과 액면분할 기대감에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3월 초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4월 20일에는 주가가 장 중 한때 400만원을 넘어서며 한국 주식시장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꾸준히 상승세를 탄 아모레퍼시픽 주가 덕분에 서경배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밀어내고 3월 26일 처음으로 국내 주식 부호 2위에 올라섰다.
서경배 회장은 아모레퍼시픽 주식 626만 주(전체 지분의 10.72%)와 아모레G 주식 4,444만 주(전체 지분의 55.7%)등을 보유하고 있다. 7월 2일에는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45만 원대까지 치솟으면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마저 제치고 국내 주식 부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지난 7월 7일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10% 이상 급락하면서 다시 2위로 내려오긴 했지만, 시장에선 서경배 회장이 곧 국내 주식 부호 1위 타이틀을 되찾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으로 나오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서경배 회장의 보유 주식 평가액은 6조 원대 초반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2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주식 평가액 증가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국내 주식 부호 1위에 올랐던 7월 2일에는 보유 주식 평가액이 12조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연초 대비 2배 가까운 상승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보유 주식 평가액은 7월 현재 11조 원대에 머물러 있다.
◇액면분할이란?
액면분할이란 기존 주식의 액면가를 일정 비율로 분할해 발행 주식 수를 늘리는 것을 말한다. 액면분할은 특정 주식의 시장 가격이 너무 높게 형성되어 있어 주식 거래가 부진하거나 신주 발행이 어려울 때 주로 사용된다. 액면분할을 하게 되면 주가가 싸진 것 같은 착시현상이 생겨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주가는 일반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기업 가치의 변화와는 무관한 일이어서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